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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괜찮을 미래 - 소아청소년암과 그 곁을 지킨 사람들 7편의 인터뷰
박지영.이건명 지음 / 크루즈엑스 / 2026년 3월
평점 :
우리나라에서 암은 더 이상 일부 사람들의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국민의 생애 암 발생 위험과 암 유병자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소아청소년암은 전체 암 가운데 차지하는 비율은 크지 않지만 성장기라는 특수한 시기에 발생한다는 점에서 삶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더욱이 소아청소년암은 성인암과 달리 발병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경우가 많아 예방 또한 쉽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질병을 헤아리기보다 질병을 경험한 사람을 먼저 규정하는 데 익숙하다.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의 사건이 있다. 누군가는 사고를 겪었고, 누군가는 장애를 얻었으며, 누군가는 가족을 잃었다. 어떤 이는 암을 경험했다. 그러나 사건은 삶의 한 페이지일 뿐인데도 우리는 종종 그 한 장면으로 사람 전체를 기억한다. 이름보다 사건을 먼저 떠올리고, 얼굴보다 상처를 먼저 본다. 그렇게 한 사람은 어느새 ‘암을 앓았던 아이’, ‘아픈 사람’, ‘불쌍한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환원된다. 타인의 삶은 결코 하나의 정보나 경험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그 안에는 타인이 끝내 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과 기억, 수많은 인연이 겹겹이 쌓여 있다. 그럼에도 가장 눈에 띄는 사건 하나만으로 존재 전체를 이해했다고 믿는 순간, 사람은 한 인간이 아닌 하나의 이미지로 축소된다.
『꽤 괜찮을 미래』가 가장 먼저 흔드는 것은 바로 이 익숙한 시선이다. 이 책은 소아청소년암을 설명하기 위해 쓰인 책이라기보다, 암이라는 하나의 경험 뒤에 여전히 살아가는 누군가를,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또 다른 누군가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
그 사실은 책의 형식에서부터 드러난다. 이 이야기는 소설도, 에세이도 아니다. 소설이었다면 가공의 인물의 삶을 상상해 완성했을 것이고, 에세이였다면 한 사람의 독백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그러나 인터뷰는 다르다. 인터뷰어가 묻고, 누군가가 답하는 동안 독자는 그 사이에 조용히 자리를 얻는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멀리서 관찰하는 일이 아니라 그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일임을, 이 책은 형식 자체로 보여준다. 이해는 상대를 대신 해석하는 능력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이 잠시 마주 앉아 자신의 세계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라난다. 그래서 대화는 정보를 주고받는 행위를 넘어, 타인의 삶을 함부로 결론짓지 않게 만드는 태도가 된다.
그래서 이 책에는 거대한 극복 서사가 없다. 영웅도 없고, 기적도 없다. 대신 학교로 돌아가는 길이 있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평범한 하루가 있고, 진로를 고민하는 시간이 있다. 부모의 걱정이 있고, 형제자매의 마음이 있고, 의료진과 교사, 사회복지사와 연구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이어온 시간이 있다. 서로 다른 목소리들은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많은 관계 위에서 이어지는지 보여주며, 암은 그 삶을 설명하는 전부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한 사람은 여러 관계 속에서 삶의 모습을 갖춰간다. 어느 하나의 사건만으로 삶을 정의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히려 오래 남는 것은 병보다 시선이다. 병은 치료가 끝날 수 있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쉽게 끝나지 않는다. ‘불쌍하다’는 말은 위로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때로는 상대를 한없이 작게 만든다. 아이를 바라보는 대신 병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대신 살아남은 사람을 바라본다. 선의라는 이름으로 건네진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벗기 어려운 이름표가 되기도 한다. 시선은 눈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언어가 되고, 언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만들며, 그 거리는 한 사람이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방식까지 바꾸어 놓는다. 결국 사람을 가장 오래 붙잡는 것은 질병 자체보다 타인이 붙여준 이름일 때가 많다.
신생아중환자실에서 근무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치료를 위해 환아가 담긴 인큐베이터를 끌고 중환자실 밖으로 나갈 때면,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이 들리곤 했다. ‘너무 불쌍하다.’, ‘엄마 뱃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곧 죽겠네.’ 그 말들은 환아의 병을 말하는 듯했지만, 실은 한 생명을 병으로 덮어버리는 시선이다. 보호자도 아닌 의료진의 마음조차 무너질 만큼 아팠던 그 순간들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 삶을 살아야 했던 아이들과 가족은 얼마나 깊은 상처를 견뎌야 했을까. 『꽤 괜찮을 미래』 속 목소리들은 그 상처가 병보다 오래 남는다는 사실을 들려준다. 누군가를 연민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순간, 그의 삶은 현재형을 벗어나 과거의 사건에 머무르게 된다. 반대로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은 그가 다시 자신의 오늘을 살아갈 수 있도록 자기 삶을 되돌려주는 일이기도 하다.
이 책이 반복해서 말하는 ‘평범함’이라는 단어는 유난히 크게 다가온다. 평범하다는 것은 아무 일도 없는 삶이 아니다. 누구에게도 특별한 존재로 취급되지 않고, 학교에 가고, 친구를 만나고, 미래를 계획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삶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너무 당연해서 의식조차 하지 않는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바라던 미래가 된다. 평범함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존엄의 다른 이름이다. 인간다운 삶은 거창한 성취보다 자신의 가능성을 펼치고, 관계를 맺고, 내일을 계획할 수 있는 일상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평범함은 소박한 바람이 아니라 사회가 모든 사람에게 보장해야 할 삶의 조건이 된다.
그래서 치료는 끝났지만 삶은 끝나지 않는다. 병원 문을 나선 뒤에도 학교가, 사회가, 사람들의 시선이 있다. 의학은 몸을 치료할 수 있지만, 평범한 일상을 회복시키는 일은 사회 전체의 몫이다. 치료 이후를 살아갈 수 있는 제도와 이해, 그리고 편견 없는 시선이 없다면 완치는 의학적 성공으로만 남을 뿐 삶의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삶의 회복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개인을 둘러싼 제도와 공동체, 그리고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함께 회복될 때 비로소 일상은 다시 이어질 수 있다.
이 책이 말하는 미래는 거창한 희망이 아니다. 암을 경험한 사람이 더 이상 특별한 존재로 불리지 않는 사회, 동정이 아닌 존중으로 서로를 마주하는 사회, 병을 먼저 보지 않고 사람을 먼저 바라보는 사회. 그런 일상이 가능해질 때 비로소 미래는 ‘꽤 괜찮다’라는 이름을 얻게 될 것이다.
인간은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질병도, 상처도, 실패도 한 사람의 삶을 구성하는 수많은 장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 자주 누군가를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하고, 하나의 단어로 정의한다. 『꽤 괜찮을 미래』는 그 단순한 습관을 멈추게 한다. 그리고 사건 너머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바라보도록 우리의 시선을 이끈다. 이해는 상대를 설명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삶이 자신의 이름을 되찾도록 끝까지 귀 기울이는 데서 시작된다. 인간은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갈 때 가장 인간답다. 한 사람의 이름을 끝까지 지켜주는 사회. 『꽤 괜찮을 미래』가 꿈꾸는 미래는 결국 그런 세계일 것이다.
인간은 질병 그 자체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병을 품은 채 자신의 삶을 이어간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쉽게 한 사람을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하고, 하나의 이름으로 불러버린다. 그래서 이 책은 소아청소년암을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인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되묻게 한다. 누군가를 하나의 경험으로 정의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의료인과 교사, 사회복지사처럼 타인의 삶 가까이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오래 곁에 두고 읽었으면 한다. 병을 함께 견디며 보호자의 시간을 살아가는 가족들에게도 이 책은 자신의 마음을 비로소 언어로 마주하는 시간이 되어줄 것이다. 질병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과 그 삶을 함께 지탱하는 사회의 역할을 고민하는 사람, 이해란 상대를 대신 설명하는 일이 아니라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일임을 믿고 싶은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비영리프로젝트 슈가스퀘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