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통역사
리 랑그바드 지음, 손화수 옮김 / 푸른숲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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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말을 사용하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서로를 이해하면 관계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을까. 해외 입양인인 ‘나’는 친가족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지만, 가족과 나누는 모든 대화는 통역사를 거쳐야만 한다. 가족이 웃고, 묻고, 설명하는 동안 주인공에게 직접 도착하는 말은 많지 않다. 공백과 마침표로 채워진 페이지는 읽는 이마저 그 대화에서 한 발 떨어진 자리로 데려간다. 무엇이 오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보다 더 선명하게 읽히는 것은, 이해받고 싶다는 마음조차 타인을 통해 전달해야 하는 한 사람의 외로움이다. 언어가 사라진 자리에는 침묵과 더불어, 스스로 자신의 삶에서 한 발 비껴난 듯한 감각도 머문다.

그러나 언어를 잃은 사람만이 고립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가족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지 않는가. 원가족은 주인공의 삶보다 결혼 여부와 화장, 애인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언니들은 그의 존재를 자신의 가족에게조차 숨긴다. 관심처럼 보이는 말은 상처가 되고, 침묵은 거리가 된다. 반대로 가장 깊은 마음을 나누는 존재는 혈연이 아닌 통역사이자 연인이다. 이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관계를 이어주는 것은 상대의 삶을 이해하려는 태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말은 같아도 마음은 멀 수 있고, 말이 달라도 한 사람의 침묵을 오래 품어 줄 수 있다. 인간은 같은 시간을 살아도 서로 다른 시간을 견디며 살아간다. 관계는 그 시간을 성급히 판단하지 않을 때 가까워진다.

통역은 중립적인 행위가 아니다. 말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일은 언제나 누군가의 해석을 거친다. 어떤 표현은 부드럽게 바뀌고, 어떤 감정은 생략되며, 어떤 고백은 번역조차 되지 않는다. 작품 속 통역사는 주인공의 연인이기도 하기에 더욱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려는 마음과 진실을 전달해야 하는 책임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모든 관계에는 저마다의 통역이 존재한다. 부모는 자식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언어로 해석하고, 자식은 부모의 침묵을 나름의 방식으로 번역한다. 연인과 친구 또한 상대의 표정과 말투, 망설임을 제각기 읽어 낸다. 우리가 이해했다고 믿는 많은 순간에도 저마다의 해석은 겹겹이 포개져 있다. 같은 말을 듣고도 서로 다른 의미를 품는 이유는, 말보다 먼저 각자의 삶이 그것을 읽어 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간은 서로를 해석하며 살아가지만, 그 번역은 언제나 완전하지 않다.

그렇다면 이해란 무엇일까. 그것은 상대를 남김없이 알아내는 일이라기보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쉽게 지워 버리지 않는 태도에 가까울 것이다. 『나의 통역사』에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 많다. 주인공은 가족을 그리워하면서도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원가족을 만나러 오면서도 한국어를 배우지 않는다. 그 모순은 너무도 인간적이다. 상처는 사랑과 거리를 동시에 만들고, 인간은 가까워지고 싶으면서도 또다시 다칠 가능성을 경계한다. 그래서 서로를 향해 조금씩 다가가는 시간은 언어를 배우는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린다. 사람은 타인을 모두 이해하는 순간보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그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더욱 깊은 신뢰를 쌓아 간다. 서로에게 닿지 않는 영역이 있다는 사실은 한 사람을 하나의 세계로 존중하는 출발점이 된다.

리 랑그바드가 들려준 것은 입양인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살아온 시간이 다르고 품어 온 상처가 다른 이상, 누구도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가족도, 연인도, 친구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말을 건네고, 서툰 번역을 반복하며 관계를 이어 간다. 이해는 평생에 걸쳐 계속되는 실천이다. 서로를 섣불리 규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관계를 오래 지켜 낸다. 이해란 결국, 한 사람을 끝까지 하나의 세계로 남겨 두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조용하고도 지난한 과정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또 얼마나 소중한 기적인지를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작품, 『나의 통역사』.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하나의 언어를 배우는 일과 닮아 있다. 아무리 오래 곁에 머물러도 끝내 해석되지 않는 문장이 있고, 설명되지 않는 침묵도 있다. 가족을 이해하고 싶지만 자꾸만 엇갈린다고 느껴본 사람, 해외 입양인의 삶과 디아스포라의 시간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작품은 타인을 이해한다는 일의 속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의 모든 것을 알아내는 일이 아니다. 닿지 않는 부분까지도 한 사람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그리고 언어와 관계를 철학적으로 바라보는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 한 사람을 쉽게 규정하기보다 그의 세계를 오래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싶은 이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모든 마음이 번역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해하려는 마음은 언제나 관계를 시작하게 하는 가장 오래된 언어가 된다.

✏️도서출판 푸른숲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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