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는 세계 - 제6회 넥서스 작가상 대상 수상작 ㅣ 넥서스 작가상
이태희 지음 / &(앤드)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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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세상이 아닌 누군가의 삶에서 사라진다. 한 사람이 떠난 자리는 빈 공간으로만 남지 않는다. 함께 바라보던 풍경이 달라지고, 익숙했던 일상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띤다. 부재란 존재 하나가 사라지는 일보다, 관계 속에서 만들어졌던 하나의 삶이 형태를 바꾸는 사건에 더 가깝다.

이태희의 『내가 없는 세계』는 이러한 부재를 개인의 상실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사라진 뒤에도 이전과 다름없이 흘러가는 현실, 그리고 변하지 않은 그 현실을 끝내 받아들이고 설명하려는 인간의 태도를 함께 풀어낸다. 어느 날부터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걸어나가기’ 시작하고, 남겨진 사람은 그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저마다의 단서를 모은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이 차례로 사라졌다는 사실은 하나의 실마리가 되고, 현실은 조금씩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기울어 간다. 그러나 작품은 ‘걸어나감’의 정체를 서둘러 밝히지 않는다. 오히려 그 현상 앞에서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삶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지를 오래 바라본다.

실종은 이 책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머물지만, 해석은 이야기 전체를 움직인다. 인물들은 예언과 신화, 철학과 언어를 경유하며 하나의 사건을 여러 갈래로 읽어 낸다. 특히 “표현이 중요한 것이다. 어쩌면 표현이 전부다.”(175쪽)라는 문장은 작품의 방향을 압축한다. 같은 현상도 어떤 이름을 부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된다. ‘실종’과 ‘걸어나감’은 같은 사건을 가리키지만, 표현이 달라지는 순간 그 사건을 받아들이는 방식 또한 달라진다. 인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이름을 붙이고 이야기를 덧입히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삶과 관계를 맺는다.

흥미로운 점은 작품이 그 수많은 해석 가운데 어느 하나에도 최종적인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언은 현실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하고, 우연은 끝내 우연으로 남으며, 철학 역시 모든 것을 해명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인물들은 설명을 멈추지 않는다. 설명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우연을 연결하며, 하나의 문장을 품는 일. 작품이 탐구하는 것은 미스터리의 해답보다, 설명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도 저마다의 이유를 만들어 가는 인간의 모습이다.

지점에서 『내가 없는 세계』는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낸다. ‘걸어나감’은 단순한 판타지적 장치에 머물지 않고 존재와 부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문학적 장치로 기능한다. 누군가 사라졌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 빈자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이며, 부재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삶의 감각이다. 제목이 가리키는 ‘내가 없는 세계’는 떠난 사람의 자리이면서, 동시에 남겨진 사람이 다시 살아가야 하는 시간의 이름이기도 하다.

다만 작품의 관심은 사건보다 그 사건을 둘러싼 사유에 조금 더 머무는 듯하다. 그 결과 독자가 기대하는 긴장감의 방향 역시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걸어나감의 진실을 추적하는 서사보다, 그 현상을 둘러싼 사유를 따라가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러한 구성은 작품의 철학적 깊이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미스터리의 전개를 기대했던 독자에게는 다소 낯선 호흡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쉽게 이해되는 소설이 되기를 선택하지 않는다. 독자가 하나의 해석에 다다르려는 순간마다 또 다른 층위를 펼쳐 보이며, 명료한 결론보다 사유가 오래 지속되는 시간을 택한다. 누군가에게는 그 모호함이 오래 머물고 싶은 사유의 공간이 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쉽게 닿지 않는 거리감으로 남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없는 세계』가 끝까지 바라보는 것은 분명하다. 설명되지 않는 삶 앞에서도 사람은 이야기를 만든다. 누군가를 잃은 뒤에서 삶은 이어지고, 남겨진 사람은 그 삶을 자신의 언어로 다시 받아들인다.

누군가 사라진 뒤에도 세계는 이전과 다름없이 흘러간다. 그러나 한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보이지 않는 변화가 생기고, 남겨진 사람은 그 빈곳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 간다. 『내가 없는 세계』는 사라짐이라는 낯선 사건을 통해 존재와 부재, 그리고 인간이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섬세하게 바라보는 소설이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려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시선으로 해석하며 사유하는 문학을 찾는 독자에게 이 작품은 특별한 독서 경험이 될 것이다. 특히 상실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삶의 모습을 담은 서사와 명확한 답보다 오래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 속 ‘걸어나감’이라는 기묘한 현상이 만들어 내는 세계를 천천히 따라가 보기를 권한다.

✏️도서출판 넥서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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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 - 삶의 벼랑 끝에서 침묵을 택한 어느 은둔자의 이야기
피코 아이어 지음, 최지숙 옮김 / 서사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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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 참 쉽게 건넬 수 있는 말이다. 힘든 일을 겪는 사람에게, 실패 앞에 선 사람에게, 사랑을 잃은 사람에게 사람들은 습관처럼 이 문장을 건넨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말은 자주 위로가 되지 못한다. 미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건네는 확신은 때로 공허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위로는 말의 내용보다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삶의 무게를 먼저 증명한다. 같은 문장이라도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 이유다.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건네는 위로는 가능성을 말하지만, 삶을 통과한 사람이 건네는 위로는 시간을 말한다. 그 시간은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다. 상실과 실패, 이별과 기다림이 켜켜이 쌓인 끝에 비로소 한 문장은 자신의 무게를 갖게 된다.

피코 아이어의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는 바로 그 무게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고,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딸의 병을 지켜보는 동안 그는 삶을 설명하는 새로운 언어를 찾지 않았다. 대신 세상의 소음에서 한 걸음 물러나 침묵 속에 오래 머무른다. 이 책은 수도원의 평온함을 찬미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더 나아가 침묵을 통해 삶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보여준다.

침묵은 삶을 해석하는 방식을 바꾸는 장치로 기능한다. 현대 사회는 고통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이해한다. 해결되지 않는 슬픔은 미완의 과제로 남고, 오래 지속되는 상실은 극복하지 못한 감정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는 해결할 수 없는 사건들이 분명 존재한다. 죽음은 되돌릴 수 없고, 상실은 없었던 일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삶을 지탱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보다, 해결되지 않는 현실과 함께 살아가는 능력이 아닐까.

‘결국’이라는 두 글자는 시간을 압축한 말이다. 그 안에는 하루도, 한 계절도 아닌, 수없이 무너지고 다시 일어났던 시간이 포개져 있다. 그래서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라는 문장은 미래를 섣불리 낙관하는 약속이 될 수 없다. 그 누구도 내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은 끝내 이 문장을 말할 수 있다. 삶이 언제나 자신의 기대를 배반해 왔다는 사실을 알고도, 다시 삶을 선택해 온 사람만이 그 말을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위로의 문장이기 전에 시간과 신뢰의 문장이다. ‘괜찮아질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문장 앞에 놓인 ‘결국’이다. 그 두 글자는 희망을 낙관으로 만들지 않고, 삶을 견딘 시간을 한 문장 안으로 불러들인다. 누군가의 생애를 통과한 끝에 도착한 말이기에, 이 짧은 문장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피코 아이어가 수도원에서 발견한 것도 바로 이러한 시간이었다. 그곳에서는 슬픔조차 서둘러 정리하려 들지 않는다. 오래 바라보고, 천천히 견디며, 자기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를 기다린다. 삶에는 회복보다 먼저 필요한 시간이 있다. 고통을 해결하기에 앞서,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시간. 그렇게 흘러간 시간은 슬픔의 크기를 줄여 주지는 못해도, 그 슬픔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을 조금씩 만들어 간다.

상처는 흔적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상처는 흉터가 되어 오래도록 삶에 남는다. 그럼에도 인간은 그 흉터를 지닌 채 다시 시간을 건너고, 다시 사랑하고, 다시 하루를 살아간다. 피코 아이어가 건네는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라는 말도 그런 시간을 지나온 끝에 닿은 문장이다. 그래서 그의 말은 믿으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이미 그의 삶이 그 문장을 대신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보다 오래 살아남은 신뢰. 삶이 몇 번이나 무너져도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은 오래 견딘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가장 깊은 다정함이자, 고통이라는 길을 먼저 걸어간 사람이 뒤따라오는 이에게 남겨 두는 발자국이다.

어떤 말은 들은 순간보다, 살아낸 시간이 쌓인 뒤에야 의미를 드러낼 때가 있다.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도 그런 문장으로 시작해 그런 문장으로 끝나는 책이다. 상처를 너무 빨리 극복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지친 사람, 삶이 번번이 자신의 기대를 비껴간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침묵이 오래 곁을 지켜 줄 것이다. 삶은 언제나 앞으로만 흘러가지만, 사람은 때때로 잠시 멈추어야만 다시 걸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좋은 위로란 무엇인지, 누군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말에는 어떤 시간이 필요했는지를 한 번쯤 헤아려 본 적 있는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다. 이 책은 괜찮아지는 방법을 알려주기보다, 괜찮아질 수 있다고 말할 자격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다. 그 시간을 함께 지나고 나면, ‘결국 다 괜찮아질 겁니다’라는 문장은 더 이상 희망을 권하는 말이 아니라 삶이 스스로 증명해 낸 한 문장으로 읽히게 될 것이다.

✏️도서출판 서사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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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질문 - 선을 넘어야 비로소 열리는 것들
이동원 지음 / 에피케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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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래 침묵하는 것일수록 더 깊이 감춰져 있다. 그리고 인간은 거짓보다도 삶을 흔드는 진실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은 다시 묻지 않고, 불편한 사실은 상식이라는 이름 아래 봉합해버리곤 한다. 침묵은 그렇게 진실을 숨기는 가장 견고한 장소가 된다. 이동원의 『나쁜 질문』은 그 침묵을 걷어 내는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질문의 요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 앞에 선 인간이 어떤 태도를 선택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저자가 말하는 ‘나쁜 질문’은 무례하거나 공격적인 질문이 아니다. 그것은 관성을 깨고, 본질을 향해 나아가며,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불편과 책임을 기꺼이 감당하는 질문이다. 진실은 누구도 들춰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곳에 숨어 있다는 저자의 말은, 수많은 취재 끝에 얻어낸 하나의 지혜이자 윤리처럼 읽힌다. 가장 아픈 기억을 다시 꺼내고, 애써 감춰 온 모순을 다시 마주하게 만드는 순간, 현장에는 짧은 침묵이 내려앉는다. 그 침묵은 공백이 아니다. 누구도 입 밖에 내지 못했던 이야기가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질문은 진실이 스스로 걸어 나올 때까지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이 책이 오래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질문보다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사건과 비극을 가까이에서 마주한 사람이라면 인간을 믿기보다 의심하는 편이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이동원 PD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그 질문은 상대를 궁지로 몰아세우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끝내 말할 수 있는 인간, 끝내 진실을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을 믿기에 가능한 일이다. 의심만으로는 질문을 이어 갈 수 없다. 상대에게 아직 말하지 않은 진실이 남아 있다는 신뢰가 있을 때에만 질문은 추궁이 아닌 기다림이 되고, 집요함은 상대를 향한 압박이 아닌 진실을 향한 인내가 된다. 그래서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날카로운 질문의 기술이 아니라, 그 질문의 바닥을 이루고 있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그래서 이동원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하나의 콘텐츠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수없이 많은 질문이 폐기되고, 살아남은 질문 하나가 한 편의 이야기를 이끈다. 독서와 비평 역시 다르지 않다.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내용을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작품이 품고 있던 질문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사유와 언어로 이어 가는 일이다. 좋은 창작은 화려한 답변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익숙한 답을 반복하는 작품은 빠르게 소비되지만, 오래 살아남는 작품은 독자의 사고를 흔드는 질문을 품고 있다.

진실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른다. 침묵을 깨는 일도, 불편을 견디는 일도, 그 질문이 남긴 결과를 감당하는 일도 결국 누군가의 몫이다. 이동원 PD가 말하는 『나쁜 질문』은 질문의 기법이 아니라 질문 뒤에 따라올 진실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묻는 듯하다. 질문에는 언제나 불편함이 따르고, 불편함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그 책임을 외면하지 않는 자만이 금기를 지나 본질에 닿을 수 있다. 질문은 결국 타인을 향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안온함을 겨누는 일이다.

침묵은 안전한 선택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상을 조금이라도 앞으로 움직여 온 것은 침묵이 아니라, 불편함을 감수하며 한 걸음 더 다가간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창작자와 기획자, 사람을 만나고 기록하는 일을 하는 이들에게 더욱 깊이 읽힐 것이다. 좋은 이야기는 결국 좋은 답보다, 포기하지 않은 질문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익숙한 상식 앞에서 한 번쯤 멈춰 본 적 있는 사람에게도 오래 곁에 둘 만한 책이다. 질문을 잘하는 법보다, 질문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오래 생각하게 하는 책.

✏️도서출판 에피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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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넘는 미술사
이지호 지음 / 한경arte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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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름다움과 추함을 나누고, 허용과 금지를 구분하며,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 사이에 하나의 선을 긋는다. 경계는 그렇게 태어나고, 오래지 않아 진실의 얼굴을 한다. 예술과 외설 역시 그 선 위에서 갈라진 두 개의 이름이다.

이지호의 『선 넘는 미술사』는 그 이름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를 따라간다. 에곤 실레와 구스타프 클림트, 에두아르 마네, 귀스타브 쿠르베, 모딜리아니를 비롯한 예술가들의 작품은 미술사 속 명화이기 이전에 당대가 가장 불편해했던 이미지였다. 누군가는 그것을 외설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사회를 위협하는 위험으로 규정했다. 시간이 흐르자 같은 작품은 걸작이 되었고, 금기였던 표현은 예술사의 전환점으로 기록되었다.

그림은 처음부터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시대는 끊임없이 자리를 옮겼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시선은 자연스레 작품에서 인간에게로 향한다. 무엇이 예술인지보다 무엇을 예술이라 부를 권한을 누가 가졌는지가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미술사는 아름다움을 발견해 온 역사인 동시에, 아름다움을 정의하려 했던 역사이기도 하다. 작품의 가치는 캔버스 안에서만 완성되지 않는다. 시대의 윤리와 권력은 작품의 해석을 만들고, 그 해석은 반복될수록 상식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예술과 외설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처럼 보인다. 그러나 둘 사이를 가르는 선은 자연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들고, 사회가 승인하며, 시간이 그것을 하나의 규범으로 굳힌다. 그렇게 잣대는 절대성을 획득한다. 인간은 그 경계를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고 믿지만, 경계가 먼저 만들어 내는 것은 이해보다 안도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모호함은 질서가 되고, 질서는 반복될수록 확신이 된다. 아름다움과 추함, 예술과 외설, 허용과 금지는 한 사회를 지탱하는 언어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미술사는 그 절대성이 얼마나 자주 수정되어 왔는지를 쉼 없이 증언한다. 한 시대의 금기는 다음 시대의 미학이 되었고, 가장 위험하다고 여겨졌던 작품은 가장 오래 살아남았다. 그럼에도 인간은 또 다른 경계를 세운다. 기준이 무너질 때마다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야만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미술관의 벽에 걸리기 전, 많은 그림은 먼저 법정에 서야 했다. 시대는 그것들을 외설이라 불렀고, 예술은 그 이름을 오래 견뎌내야만 했다. 시간이 흐르자 심판은 방향을 바꾸었다. 사람들은 그림을 다시 보기 시작했고, 흔들린 것은 자신들이 믿어 온 판단이었다. 검열의 역사는 창작이 실패한 흔적이 아니다. 사회가 자신의 확신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경계를 세워 왔는지를 보여 주는 기록이다. 『선 넘는 미술사』를 따라가다 보면 그림보다 인간이 먼저 읽힌다. 작품보다 오래 시선을 붙드는 것은 캔버스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시대의 감각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잣대를 만들고,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미술은 그런 확신 앞에서 쉽게 침묵하지 않는다. 늘 경계 가까이에 머물며 당연하게 여겨진 감각을 흔들고, 익숙한 언어의 바깥을 가리킨다. 그래서 한 시대의 문제작은 다음 시대의 걸작이 되고, 절대적이라 여겼던 판단은 또 하나의 시대적 감각으로 남는다. 『선 넘는 미술사』는 명화를 통해 인간을 읽는다. 인간이 자신의 잣대를 만들고, 그것을 절대화하며, 마침내 다시 수정해 온 시간. 미술사가 오래 기록해 온 것은 아름다움의 역사만이 아니다. 인간이 자신의 확신을 어떻게 수정해 왔는지에 대한 역사이기도 하다.

경계는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지지만, 때로는 세상을 가장 좁게 바라보게 만드는 선이 되기도 한다. 『선 넘는 미술사』는 그 선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흔들려 왔는지를 미술이라는 언어로 들려준다. 당연하다고 믿어 온 판단의 출처를 되짚어 보고 싶은 사람, 명화를 감상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이 아름다움을 정의해 온 방식을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분명 즐거운 독서가 될 것이다. 그림보다 시대를, 작품보다 인간을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책. 그림을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달라지고, 그보다 먼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 한국경제신문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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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2
솔베이 발레 지음, 손화수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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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앞으로 흐른다. 계절은 옆으로 이동한다. 이 단순한 차이가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2』를 특별하게 만든다.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내일이다. 내일이 사라지면 미래도 함께 사라진다. 시간은 미래를 약속하는 가장 오래된 질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베이 발레는 그 질서를 무너뜨리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시간을 빼앗긴 뒤에도 인간은 미래를 가질 수 있는가. 이 소설은 그 불가능한 명제 위에 자신의 세계를 세운다.

1권에서 반복은 출구를 찾기 위한 시간이었다. 모든 시도는 내일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2권에서 반복의 의미는 조금씩 달라진다. 내일을 되찾기 위해 견뎌야 했던 하루는 어느새 그 안에서 삶의 방식을 새롭게 익혀가는 시간이 된다. 출구를 향하던 시선이 계절을 향하는 순간, 이 소설 역시 시간의 서사에서 삶의 서사로 방향을 튼다.

1년째 같은 11월 18일을 살아가는 타라 셀테르는 더 이상 출구만을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시선은 시간에서 공간으로 옮겨간다. 앞으로 갈 수 없다면 옆으로 움직이면 된다. 북쪽에는 겨울이 남아 있고, 남쪽에는 아직 봄이 도착하지 않았다. 그녀는 도시를 이동하며 계절의 파편들을 수집한다. 시간을 건너지 못하는 사람이 공간을 건너 계절을 이어 붙이는 순간, 달력은 더 이상 삶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

시간은 직선이지만 계절은 지리다. 이 한 문장으로도 작품의 세계는 거의 설명된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지만 계절은 장소를 따라 흩어진다. 그래서 시간을 잃은 사람도 계절만큼은 잃지 않는다. 타라는 시간을 되찾지 못하지만, 계절을 다시 만들어낸다. 인간은 시간을 숫자로 기억하지 않는다. 어느 해의 4월보다 벚꽃이 늦게 피었던 봄을, 어느 해의 8월보다 숨이 막힐 만큼 뜨거웠던 여름 햇살을 더 오래 기억하곤 한다. 삶은 달력보다 계절의 감각으로 저장된다. 그래서 시간을 잃은 타라가 계절을 붙드는 일은 우연이 아니다. 계절은 시간을 대신하는 기억의 언어인 까닭이다.

‘계절을 가지려면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미래를 가지려면 그 역시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125쪽) 이라는 문장은 작품 전체를 떠받치는 하나의 축이다. 미래는 흘러오는 시간이 아닌 스스로 빚어내는 시간이라는 선언이다. 타라가 북쪽으로 향하고,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며, 봄과 여름을 ‘거짓말처럼’ 이어 붙이는 이유다. 그녀가 모으는 것은 계절이면서 동시에 미래다. 흥미로운 것은 소설이 그 계절을 끊임없이 ‘거짓말’이라 부른다는 점이다. 봄의 거짓말, 여름의 거짓말. 계절은 실제가 아니다. 기상학자의 그래프를 따라 이동하며 잠시 빌려온 풍경일 뿐이다. 그런데도 그 거짓말은 이상할 만큼 진실하다. 인간의 삶 역시 그런 작은 허구들 위에서 유지되기 때문이다. 새해라는 이름도, 새로운 시작이라는 믿음도, 언젠가는 괜찮아질 것이라는 다짐도 모두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을 먼저 믿는 행위가 아닌가. 삶은 사실만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상상하는 능력이 오늘을 견디게 한다. 타라는 계절을 통해 삶을 다시 설득한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기록은 기억을 보존하기 위한 행위로 읽히지 않는다. 계절의 수첩은 일기가 아닌 시간을 대신하는 장치다. 한 장 한 장 적어 내려가는 문장들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조금씩 조립하기 위해 존재한다. 시간이 멈춘 세계에서 기록은 미래를 향한 기술이 된다. 아무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세계에서 기록은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하루를 살아내는 일과 하루를 남기는 일은 같은 의미를 품게 된다.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은 이동이 이 작품에서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존재 방식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타라는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오래 머물수록 괴물이 자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괴물은 절망이라기보다 정지한 의식이 스스로를 끝없이 증식시키는 형상에 가까워 보인다. 시간이 막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삶은 다른 방향을 발명해야 한다. 타라가 선택한 방향은 ‘앞’이 아닌 ‘옆’이다. 시간을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은 공간을 통과한다. 그녀의 여행은 목적지를 향한 이동이라기보다, 시간을 대신할 또 하나의 좌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오래 머문다는 것은 장소에 머무는 일을 넘어 하나의 감정에 머무는 일이기도 하다. 그녀는 삶의 호흡을 이어가기 위해 이동한다.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2』는 시간이라는 관념을 해체한 뒤, 인간이 무엇으로 미래를 구성하는지를 탐색하는 철학소설에 가깝게 읽힌다. 2부에서도 작품은 끝내 시간의 비밀을 설명하지 않는다. 11월 18일이 왜 반복되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하루를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이기 때문이다. 설명되지 않는 세계를 견디는 힘은 해답에서 오지 않는다. 타라는 계절을 모으고, 기록을 남기고, 계속해서 이동한다. 하루를 하루 위에 포개며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어간다. 시간은 우리를 미래로 데려가는 가장 익숙한 방식일 뿐, 유일한 방식은 아니다. 미래는 달력보다 먼저, 오늘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 모아온 계절들의 총합에서 만들어진다. 그녀에게 달력은 끝내 다음 장을 허락하지 않지만, 타라는 계절을 모으며 자신의 미래를 조금씩 빚어낸다. 시간은 멈췄지만 삶은 멈추지 않는다. 타라가 만들어낸 것은 내일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한 사람의 시간이다. 느리고도 완강한 지속.

모든 시간이 앞으로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삶은 오래도록 같은 자리에 머물고, 어떤 사람은 달력 대신 계절을 따라 자신을 이어간다. 그래서 이 소설은 시간을 잃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넘어, 멈춰 있는 삶을 견디는 방식에 대한 아름다운 비유가 된다. 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듯한 감각 속에서 오래 머물러 본 사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시간을 살아본 사람이라면 타라의 이동이 얼마나 간절한 생존의 몸짓인지 자연스레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기다림 역시 하나의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계절과 풍경을 오래 바라보는 이들, 시간과 존재를 천천히 사유하는 철학적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국내에 아직 2권까지만 출간되었다는 사실이 유난히 아쉽게 느껴질 것이다. 시간을 되찾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을 잃고도 삶을 계속 빚어내는 법을 보여주는 드문 소설. 그래서 다음 계절이, 다음 권이 조금 더 빨리 찾아오기를 바라게 된다.

✏️도서출판 은행나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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