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없는 세계 - 제6회 넥서스 작가상 대상 수상작 ㅣ 넥서스 작가상
이태희 지음 / &(앤드)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은 세상이 아닌 누군가의 삶에서 사라진다. 한 사람이 떠난 자리는 빈 공간으로만 남지 않는다. 함께 바라보던 풍경이 달라지고, 익숙했던 일상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띤다. 부재란 존재 하나가 사라지는 일보다, 관계 속에서 만들어졌던 하나의 삶이 형태를 바꾸는 사건에 더 가깝다.

이태희의 『내가 없는 세계』는 이러한 부재를 개인의 상실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사라진 뒤에도 이전과 다름없이 흘러가는 현실, 그리고 변하지 않은 그 현실을 끝내 받아들이고 설명하려는 인간의 태도를 함께 풀어낸다. 어느 날부터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걸어나가기’ 시작하고, 남겨진 사람은 그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저마다의 단서를 모은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이 차례로 사라졌다는 사실은 하나의 실마리가 되고, 현실은 조금씩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기울어 간다. 그러나 작품은 ‘걸어나감’의 정체를 서둘러 밝히지 않는다. 오히려 그 현상 앞에서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삶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지를 오래 바라본다.

실종은 이 책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머물지만, 해석은 이야기 전체를 움직인다. 인물들은 예언과 신화, 철학과 언어를 경유하며 하나의 사건을 여러 갈래로 읽어 낸다. 특히 “표현이 중요한 것이다. 어쩌면 표현이 전부다.”(175쪽)라는 문장은 작품의 방향을 압축한다. 같은 현상도 어떤 이름을 부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된다. ‘실종’과 ‘걸어나감’은 같은 사건을 가리키지만, 표현이 달라지는 순간 그 사건을 받아들이는 방식 또한 달라진다. 인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이름을 붙이고 이야기를 덧입히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삶과 관계를 맺는다.

흥미로운 점은 작품이 그 수많은 해석 가운데 어느 하나에도 최종적인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언은 현실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하고, 우연은 끝내 우연으로 남으며, 철학 역시 모든 것을 해명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인물들은 설명을 멈추지 않는다. 설명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이야기를 만들고, 우연을 연결하며, 하나의 문장을 품는 일. 작품이 탐구하는 것은 미스터리의 해답보다, 설명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도 저마다의 이유를 만들어 가는 인간의 모습이다.

지점에서 『내가 없는 세계』는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낸다. ‘걸어나감’은 단순한 판타지적 장치에 머물지 않고 존재와 부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문학적 장치로 기능한다. 누군가 사라졌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 빈자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이며, 부재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삶의 감각이다. 제목이 가리키는 ‘내가 없는 세계’는 떠난 사람의 자리이면서, 동시에 남겨진 사람이 다시 살아가야 하는 시간의 이름이기도 하다.

다만 작품의 관심은 사건보다 그 사건을 둘러싼 사유에 조금 더 머무는 듯하다. 그 결과 독자가 기대하는 긴장감의 방향 역시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걸어나감의 진실을 추적하는 서사보다, 그 현상을 둘러싼 사유를 따라가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러한 구성은 작품의 철학적 깊이를 만들어내는 동시에, 미스터리의 전개를 기대했던 독자에게는 다소 낯선 호흡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쉽게 이해되는 소설이 되기를 선택하지 않는다. 독자가 하나의 해석에 다다르려는 순간마다 또 다른 층위를 펼쳐 보이며, 명료한 결론보다 사유가 오래 지속되는 시간을 택한다. 누군가에게는 그 모호함이 오래 머물고 싶은 사유의 공간이 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쉽게 닿지 않는 거리감으로 남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내가 없는 세계』가 끝까지 바라보는 것은 분명하다. 설명되지 않는 삶 앞에서도 사람은 이야기를 만든다. 누군가를 잃은 뒤에서 삶은 이어지고, 남겨진 사람은 그 삶을 자신의 언어로 다시 받아들인다.

누군가 사라진 뒤에도 세계는 이전과 다름없이 흘러간다. 그러나 한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보이지 않는 변화가 생기고, 남겨진 사람은 그 빈곳을 이해하기 위해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 간다. 『내가 없는 세계』는 사라짐이라는 낯선 사건을 통해 존재와 부재, 그리고 인간이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섬세하게 바라보는 소설이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려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시선으로 해석하며 사유하는 문학을 찾는 독자에게 이 작품은 특별한 독서 경험이 될 것이다. 특히 상실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삶의 모습을 담은 서사와 명확한 답보다 오래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 속 ‘걸어나감’이라는 기묘한 현상이 만들어 내는 세계를 천천히 따라가 보기를 권한다.

✏️도서출판 넥서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