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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2
솔베이 발레 지음, 손화수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6월
평점 :
시간은 앞으로 흐른다. 계절은 옆으로 이동한다. 이 단순한 차이가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2』를 특별하게 만든다.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내일이다. 내일이 사라지면 미래도 함께 사라진다. 시간은 미래를 약속하는 가장 오래된 질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베이 발레는 그 질서를 무너뜨리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시간을 빼앗긴 뒤에도 인간은 미래를 가질 수 있는가. 이 소설은 그 불가능한 명제 위에 자신의 세계를 세운다.
1권에서 반복은 출구를 찾기 위한 시간이었다. 모든 시도는 내일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2권에서 반복의 의미는 조금씩 달라진다. 내일을 되찾기 위해 견뎌야 했던 하루는 어느새 그 안에서 삶의 방식을 새롭게 익혀가는 시간이 된다. 출구를 향하던 시선이 계절을 향하는 순간, 이 소설 역시 시간의 서사에서 삶의 서사로 방향을 튼다.
1년째 같은 11월 18일을 살아가는 타라 셀테르는 더 이상 출구만을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시선은 시간에서 공간으로 옮겨간다. 앞으로 갈 수 없다면 옆으로 움직이면 된다. 북쪽에는 겨울이 남아 있고, 남쪽에는 아직 봄이 도착하지 않았다. 그녀는 도시를 이동하며 계절의 파편들을 수집한다. 시간을 건너지 못하는 사람이 공간을 건너 계절을 이어 붙이는 순간, 달력은 더 이상 삶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
시간은 직선이지만 계절은 지리다. 이 한 문장으로도 작품의 세계는 거의 설명된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지만 계절은 장소를 따라 흩어진다. 그래서 시간을 잃은 사람도 계절만큼은 잃지 않는다. 타라는 시간을 되찾지 못하지만, 계절을 다시 만들어낸다. 인간은 시간을 숫자로 기억하지 않는다. 어느 해의 4월보다 벚꽃이 늦게 피었던 봄을, 어느 해의 8월보다 숨이 막힐 만큼 뜨거웠던 여름 햇살을 더 오래 기억하곤 한다. 삶은 달력보다 계절의 감각으로 저장된다. 그래서 시간을 잃은 타라가 계절을 붙드는 일은 우연이 아니다. 계절은 시간을 대신하는 기억의 언어인 까닭이다.
‘계절을 가지려면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미래를 가지려면 그 역시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125쪽) 이라는 문장은 작품 전체를 떠받치는 하나의 축이다. 미래는 흘러오는 시간이 아닌 스스로 빚어내는 시간이라는 선언이다. 타라가 북쪽으로 향하고,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며, 봄과 여름을 ‘거짓말처럼’ 이어 붙이는 이유다. 그녀가 모으는 것은 계절이면서 동시에 미래다. 흥미로운 것은 소설이 그 계절을 끊임없이 ‘거짓말’이라 부른다는 점이다. 봄의 거짓말, 여름의 거짓말. 계절은 실제가 아니다. 기상학자의 그래프를 따라 이동하며 잠시 빌려온 풍경일 뿐이다. 그런데도 그 거짓말은 이상할 만큼 진실하다. 인간의 삶 역시 그런 작은 허구들 위에서 유지되기 때문이다. 새해라는 이름도, 새로운 시작이라는 믿음도, 언젠가는 괜찮아질 것이라는 다짐도 모두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을 먼저 믿는 행위가 아닌가. 삶은 사실만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먼저 상상하는 능력이 오늘을 견디게 한다. 타라는 계절을 통해 삶을 다시 설득한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기록은 기억을 보존하기 위한 행위로 읽히지 않는다. 계절의 수첩은 일기가 아닌 시간을 대신하는 장치다. 한 장 한 장 적어 내려가는 문장들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조금씩 조립하기 위해 존재한다. 시간이 멈춘 세계에서 기록은 미래를 향한 기술이 된다. 아무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세계에서 기록은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하루를 살아내는 일과 하루를 남기는 일은 같은 의미를 품게 된다.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은 이동이 이 작품에서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존재 방식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타라는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오래 머물수록 괴물이 자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괴물은 절망이라기보다 정지한 의식이 스스로를 끝없이 증식시키는 형상에 가까워 보인다. 시간이 막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삶은 다른 방향을 발명해야 한다. 타라가 선택한 방향은 ‘앞’이 아닌 ‘옆’이다. 시간을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은 공간을 통과한다. 그녀의 여행은 목적지를 향한 이동이라기보다, 시간을 대신할 또 하나의 좌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오래 머문다는 것은 장소에 머무는 일을 넘어 하나의 감정에 머무는 일이기도 하다. 그녀는 삶의 호흡을 이어가기 위해 이동한다.
『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2』는 시간이라는 관념을 해체한 뒤, 인간이 무엇으로 미래를 구성하는지를 탐색하는 철학소설에 가깝게 읽힌다. 2부에서도 작품은 끝내 시간의 비밀을 설명하지 않는다. 11월 18일이 왜 반복되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하루를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이기 때문이다. 설명되지 않는 세계를 견디는 힘은 해답에서 오지 않는다. 타라는 계절을 모으고, 기록을 남기고, 계속해서 이동한다. 하루를 하루 위에 포개며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어간다. 시간은 우리를 미래로 데려가는 가장 익숙한 방식일 뿐, 유일한 방식은 아니다. 미래는 달력보다 먼저, 오늘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 모아온 계절들의 총합에서 만들어진다. 그녀에게 달력은 끝내 다음 장을 허락하지 않지만, 타라는 계절을 모으며 자신의 미래를 조금씩 빚어낸다. 시간은 멈췄지만 삶은 멈추지 않는다. 타라가 만들어낸 것은 내일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한 사람의 시간이다. 느리고도 완강한 지속.
모든 시간이 앞으로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삶은 오래도록 같은 자리에 머물고, 어떤 사람은 달력 대신 계절을 따라 자신을 이어간다. 그래서 이 소설은 시간을 잃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넘어, 멈춰 있는 삶을 견디는 방식에 대한 아름다운 비유가 된다. 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듯한 감각 속에서 오래 머물러 본 사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시간을 살아본 사람이라면 타라의 이동이 얼마나 간절한 생존의 몸짓인지 자연스레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기다림 역시 하나의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계절과 풍경을 오래 바라보는 이들, 시간과 존재를 천천히 사유하는 철학적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국내에 아직 2권까지만 출간되었다는 사실이 유난히 아쉽게 느껴질 것이다. 시간을 되찾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을 잃고도 삶을 계속 빚어내는 법을 보여주는 드문 소설. 그래서 다음 계절이, 다음 권이 조금 더 빨리 찾아오기를 바라게 된다.
✏️도서출판 은행나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