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숨결에 날리는 깃털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장성주 옮김 / 복복서가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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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부모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를 세상의 전부로 받아들이고, 조금 더 자라서는 이해할 수 없는 타인으로 마주한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부모 역시 한 시대를 견디며 살아온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순간부터 자신의 삶 역시 새로운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지금의 자신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감정과 습관, 두려움과 침묵은 개인에게서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삶의 흔적이었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데뷔작 『신의 숨결에 날리는 깃털』은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화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 시선은 자꾸만 부모의 삶으로 향한다. 독일인 어머니와 중국계 파나마인 아버지. 전쟁과 이민이라는 거대한 역사는 한 가족의 배경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말수가 적은 아버지의 침묵이 되고, 끝내 고향을 놓지 못한 어머니의 그리움이 되며,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흔적으로 자녀의 삶에 스며든다. 부모에게 머물렀던 시간은 부모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한 세대를 지나온 기억은 다음 세대의 감정이 되어, 설명할 수 없는 삶의 흐름을 만든다.

오래 바라볼수록 익숙했던 얼굴은 조금씩 다르게 보인다. 부모라는 이름은 너무 오래 불려온 탓에, 그들이 한때 누군가의 딸과 아들이었고, 전쟁과 가난, 상실을 통과해온 개인이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부모라는 이름으로만 존재했던 사람이, 시간이 흐른 뒤에는 누군가의 딸이었고 누군가의 아들이었던 한 사람으로 다가온다. 그들에게도 처음부터 정해진 역할은 없었다. 그들 역시 자신의 시대를 통과하며 사랑하고 상처 입고,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품은 채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시그리드 누네즈는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 안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겹쳐 있는지를 바라본다. 독일인 어머니와 중국계 파나마인 아버지의 삶에는 전쟁과 이민, 언어와 상실의 기억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그 역사는 과거의 사건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했던 침묵, 잃어버린 고향을 향한 그리움, 쉽게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은 가족이라는 공간 안에서 다음 세대로 흘러간다. 한 사람의 삶은 자신이 경험한 시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보다 먼저 존재했던 수많은 삶의 흔적들이 하나씩 포개지며 지금의 자신을 만든다.

그래서 화자가 그들의 삶을 돌아보는 과정은 결국 자신의 삶을 다시 읽는 과정이 된다. 설명하기 어려웠던 마음의 방향에는 저마다의 기원이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감정과 쉽게 설명되지 않던 외로움, 세상을 대하는 태도까지도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삶의 문장들이었음을 깨닫는다. 인간은 자신의 기억만으로 자신을 설명할 수 없는 존재다. 우리는 누군가의 기억을 물려받고, 그것을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새로운 자신이 되어간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바라보는 시선은 현재의 나에 따라 달라진다.

침묵은 역설적이게도 이 작품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다. 그것은 말이 사라진 자리에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많은 것을 말하지 않고, 어머니는 많은 것을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침묵은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다. 말해지지 못한 기억들이 머무는 자리이고, 언어를 잃은 감정들이 살아남는 방식이다. 가족은 서로를 가장 잘 안다고 믿지만, 정작 가장 오래 품고 사는 것은 끝내 전하지 못한 삶들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들의 침묵은 자녀에게 또 다른 감각이 되어 이어진다. 이유를 알 수 없던 불안과 외로움, 설명되지 않던 마음의 방향 역시 오래전 누군가의 침묵의 흘러와 닿은 자리일 것이다.

『신의 숨결에 날리는 깃털』이라는 제목을 다시 떠올려 보자. 깃털은 스스로 바람의 방향을 선택하지 못한다. 다만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숨결을 따라 천천히 움직인다. 인간의 삶 역시 그렇지 않을까. 누구도 부모를, 시대를, 태어날 자리를 선택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 모든 시간은 한 사람을 조금씩 밀어 올리고, 마침내 하나의 삶을 그려낸다. 이 소설은 그 궤적을 따라가며, 지금의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보다 먼저 살아낸 삶들을 함께 이해하는 일임을 조용하고도 깊은 목소리로 들려준다.

어떤 삶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보다, 자신이 어디에서부터 흘러왔는지를 돌아보기 위해 읽게 된다. 『신의 숨결에 날리는 깃털』은 그런 시간을 건네는 소설이다. 부모를 이제야 한 사람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이들에게, 자신의 감정과 성격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오래 헤아려본 적 있는 이들에게 이 작품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가족 안에 남겨진 침묵과 쉽게 설명되지 않는 거리감을 오래 품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문장이 품은 사유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이 데뷔작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던 그녀의 시선을 발견하는 기쁨도 함께 만나게 될 것이다.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언제나 현재에서 시작되는 것 같지만, 때로는 자신보다 먼저 살아낸 시간들을 천천히 더듬어 올라갈 때 비로소 또 다른 풍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도서출판 복복서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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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력 구제 금지
김성민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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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인간의 복수를 막기 위해 존재한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었다고 해서, 누군가가 죄를 지었다고 해서 개인이 직접 심판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 ‘자력 구제 금지’라는 법률 용어는 결국 감정에 휩쓸린 판단이 가진 위험성을 경고하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법의 문장처럼 반듯하지 않다. 누군가는 신고 이후에도 안전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고통 속에 남겨진다. 법이 모든 사람을 구해주지 못하는 순간, 인간은 흔들린다. 기다리는 것과 직접 나서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고, 정의와 복수의 경계에서 길을 잃는다. 김성민 작가의 『자력 구제 금지』는 바로 그 불완전한 지점에서 시작된다.

한 남자의 죽음을 둘러싼 사건과 그 안에 얽힌 인물들의 욕망을 따라가는 이 작품은 단순히 범인을 찾아가는 추리소설에 머물지 않는다. 작품은 끊임없이 묻는다. 우리가 정의라고 믿는 것은 정말 정의일까. 누군가를 벌해야 한다는 마음속에는 과연 타인을 향한 올바른 판단만 존재하는 것일까. 인간은 때때로 자신의 선택을 정의라고 부른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붙인다. 하지만 선한 의도에서 시작된 행동이라도 그것이 타인의 삶을 결정할 권리가 되는 순간, 정의는 본래의 의미를 잃고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내는 힘으로 변할 수 있다.

이 작품이 더욱 몰입되는 이유는 소설 속 사건이 결코 낯선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 아동 학대와 같은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피해자들이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고통 속에 놓이는 경우도 존재한다. 법과 제도가 모든 위험으로부터 인간을 완벽하게 지켜줄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누군가는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 선택이 또 다른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은 더욱 복잡한 윤리적 갈림길에 놓인다. 『자력 구제 금지』는 바로 그 현실의 틈에서 출발해, 법과 정의 사이에 놓인 인간의 불안한 모습을 바라본다.

특히 은아라는 인물은 책임과 연민이라는 서로 다른 감정을 동시에 불러낸다. 그녀의 선택에는 분명 돌아봐야 할 잘못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선택이 만들어진 배경과 그녀가 지나온 삶까지 함께 바라보는 순간, 단순한 판단은 불가능해진다. 죄를 지은 사람은 어디까지 죄인으로 남아야 할까. 인간을 하나의 잘못으로만 기억하는 것은 과연 정의로운 일일까. 물론 잘못에는 책임이 따른다. 상처 입은 사람들의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누군가는 자신의 행동을 반드시 마주해야 한다. 그러나 책임은 스스로를 끝없이 벌하는 것과는 다르다. 잘못을 인정하게 하는 죄책감은 인간에게 필요한 감정이지만, 그것이 삶 전체를 지배하는 순간 과거는 반성이 아닌 또 다른 형벌이 된다. 『자력 구제 금지』는 죄를 지은 인간을 쉽게 용서하지도, 그렇다고 영원히 단죄하지도 않는다. 대신 잘못 이후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인간을 따라간다.

한편 이 작품은 철학적인 질문뿐 아니라 장르소설이 가진 재미 역시 충실하게 담아낸다. 챕터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형사의 사건 수첩은 용의자들의 진술, 민법 내용, 신문 스크랩 등을 통해 독자를 사건 안으로 끌어들인다. 독자는 수동적으로 진실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을 따라가며 끊임없이 의심하고 추리하게 된다.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인물을 마음껏 의심하고, 숨겨진 진실을 상상하는 즐거움은 추리 스릴러 소설만이 가진 매력이다. 더불어 스릴러의 긴장감과 로맨스의 감정을 서로 충돌시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엮어낸 작가의 구성력 역시 인상적이다. 사건의 냉혹함과 인간 사이의 감정이 함께 흐르며 작품의 폭을 넓힌다.

법은 인간의 행동을 판단하지만, 인간의 마음까지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그 사이에 남겨진 존재들을 바라봐야 한다. 죄를 지은 사람, 상처받은 사람, 그리고 잘못된 선택 앞에서 흔들리는 사람들. 완벽한 정의를 향한 욕망은 때때로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내지만, 그렇다고 불완전한 인간을 외면하는 것 역시 답이 될 수 없다. 결국 필요한 것은 누군가를 심판하는 시선보다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려는 태도일 것이다.

『자력 구제 금지』는 정의를 둘러싼 사건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법이 닿지 못하는 인간의 영역을 향한다. 법은 행위의 결과를 판단할 수 있지만, 그 선택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이 지나온 시간과 감정까지 모두 재단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작품은 누가 옳고 그른지를 빠르게 나누기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만들어진 선택의 무게를 바라본다. 정의를 향한 마음은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강한 동력이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한 명분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를 구하기 위한 선택이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고, 옳다고 믿었던 행동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김성민 작가는 『자력 구제 금지』를 통해 정의와 복수, 책임과 용서 사이에 놓인 인간의 모습을 세밀하게 비춘다. 이 소설이 남기는 것은 하나의 답이 아니다. 다만 법의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마음의 영역, 그 선택의 무게를 짊어진 채 살아가는 인간을 오래 바라보게 한다.

누군가의 잘못을 판단하는 순간, 우리는 종종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까지 함께 재단하려 한다. 『자력 구제 금지』는 한 남자의 죽음을 둘러싼 사건 속에서 법이 결정하지 못하는 인간의 감정과 선택의 무게를 세밀하게 비춘다. 정의를 향한 마음이 언제든 또 다른 상처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편한 사실을 마주하며,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구분 너머에 놓인 사람들의 모습을 따라간다. 법과 윤리 사이의 복잡한 경계에 관심 있는 독자, 현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담아낸 소설을 찾는 독자에게 이 작품을 권하고 싶다. 또한 치밀한 추리 과정과 심리 묘사가 살아 있는 스릴러를 좋아하거나, 완벽하게 선하거나 악한 인물이 아닌 저마다의 이유를 가진 인물들의 이야기에 끌리는 독자에게도 깊은 몰입을 선사할 것이다. 결국 이 소설이 바라보는 것은 사건의 진실만이 아니다. 법과 정의의 언어로는 모두 담아낼 수 없는 인간의 선택과 그 책임의 무게를 파고든다.

✏️도서출판 황금가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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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풍주점
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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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세계의 주인이라고 믿어 온 시간 이전, 이 땅에는 인간보다 오래 살아온 존재들이 있었다. 산의 모습을 한 거인, 바다의 숨결을 품은 자연, 그리고 그 안에서 이어져 온 수많은 생명의 기억. 우밍이의 『해풍주점』은 인간보다 긴 시간을 살아온 존재들의 시선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비춘다. 짧은 생을 살아가는 인간은 무엇을 기억하며 살아가고, 무엇으로 사라짐에 저항하는가. 이 작품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에 남긴 흔적이 어떻게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지 섬세하게 탐색한다.

작품의 중심에는 어린 시절 서로의 운명을 바꾼 수쯔와 투누흐가 있다. 위험을 피해 달아난 두 아이는 우연히 만나고, 서로의 삶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선택을 한다. 한 사람의 이름을 품고, 한 사람의 자리를 지켜주는 일은 두려움 속에서도 타인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준다. 우밍이는 이 과정을 통해 인간이 타인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고, 서로의 존재를 어떻게 이어가는지를 깊이 들여다본다. 두 아이의 관계에서 사랑은 거대한 구원의 서사보다 오래 지속되는 마음의 형태로 그려진다. 상대의 상처를 없애려 하기보다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 맞이할 계절을 함께 받아들이는 태도에 가깝다. 누군가를 향해 걸어간다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존재를 기억하고, 그 기억이 이어질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다. 『해풍주점』 속 사랑은 그렇게 한 사람의 삶이 다른 사람에게 닿으며 만들어지는 조용한 연대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사유는 해풍촌이라는 공간에서 더욱 깊어진다. 해풍촌은 사람들이 머무는 장소를 넘어 세월과 기억이 축적된 하나의 세계다. 산과 바다의 풍경, 조상의 흔적, 마을 사람들이 이어 온 삶의 방식은 그곳에 살아 있는 시간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해풍촌의 변화는 한 마을의 모습이 바뀌는 사건을 넘어, 한 공동체가 자신들의 삶을 기억하는 방식이 흔들리는 순간으로 다가온다.

우밍이는 개발과 보존이라는 단순한 구도로 세계를 나누지 않는다. 시멘트 공장을 둘러싼 갈등 속에는 생존을 위한 욕망과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기대가 함께 존재한다. 작품이 오래 바라보는 것은 발전의 방향보다 그 과정에서 희미해지는 것들이다. 오래된 기억, 자연의 목소리, 그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이 사라질 때 인간 역시 자신의 뿌리를 잃어간다.

거인은 이러한 세계관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존재다. 인간보다 먼저 이 땅에 머물렀던 거인은 자연이자 인간이 잊어버린 오래된 기억이다. 우밍이는 자연을 인간 바깥의 풍경으로 배치하지 않는다. 인간 역시 거대한 생명의 흐름 안에 놓인 존재임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거인의 몸속에서 피난처를 찾는 장면은 문명 이전부터 이어져 온 자연의 품이 인간에게 얼마나 근원적인 의미를 지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거인은 인간과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과 닮은 감정이 흐른다. 사랑을 기다리고, 상처를 품으며, 사라짐 앞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우밍이는 인간만을 중심에 둔 세계의 경계를 넓혀 모든 생명이 서로 관계 맺는 세계를 그려낸다.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하나의 목소리를 가진 존재이며, 인간은 그 목소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해풍주점은 이러한 세계가 만나는 장소다. 제목 속 주점은 상처 입은 사람들이 잠시 머물며 자신의 이야기를 내려놓는 공간이다. 각자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서로 다른 기억이 하나의 테이블 위에서 교차한다. 이곳에서 중요한 것은 상처가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상처를 품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과정이다. 해풍주점은 인간이 서로의 삶을 지탱하는 방식에 대한 우밍이의 가장 따뜻한 대답이다.

우밍이는 생태와 공동체, 사랑과 기억을 하나의 흐름 안에서 엮어낸다. 각각의 주제는 따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를 비추며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확장한다. 『해풍주점』이 보여주는 세계에서 인간은 독립된 존재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이어받고 기억을 나누며 자신의 시간을 만들어 간다.

우리가 기억하는 이름, 우리가 지켜낸 장소, 그리고 누군가가 돌아왔을 때 다시 머물 수 있는 자리. 인간을 살아 있게 하는 것은 완벽하게 홀로 선 삶이 아니라 서로에게 남겨진 흔적들이다. 누군가의 삶을 온전히 대신 살아갈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이 다시 자신의 계절을 시작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남겨두는 일은 가능하다. 『해풍주점』은 그 가능성을 거인의 오래된 숨결과 해풍촌을 스쳐 가는 바람, 그리고 밤마다 작은 불빛을 밝히는 주점 안에 담아낸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건넨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다음 계절을 살아갈 힘으로 이어진다.

오래된 산과 바다에는 인간이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들이 잠들어 있다. 『해풍주점』은 그 잊힌 시간의 목소리를 빌려, 우리가 서로의 삶을 어떻게 이어가며 살아가는지 섬세하게 바라보는 작품이다. 거인의 숨결과 한 마을의 기억, 그리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작은 주점은 인간이 홀로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나누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깊이 사유하는 소설을 찾는 독자, 상처 입은 존재들이 만들어 내는 연대의 서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작품이 펼쳐 보이는 해풍 속을 천천히 걸어보길 권한다. 또한 사라져 가는 장소와 그 안에 깃든 기억을 바라보는 문학, 현실과 신화가 교차하며 인간 존재의 깊은 층위를 비추는 서사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도 『해풍주점』은 오래된 세계와 마주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그리고 그 바람의 끝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삶을 기억한다는 일이 한 세계를 지켜내는 가장 오래된 방법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도서출판 비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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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한다 말하기엔 조금 숨이 차지만 - 러닝 앤솔러지
김연수 외 지음 / 판미동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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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에 대해 말하는 책인데 왜 이리 눈물이 나던지.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이렇게도 눈물이 나는 것이었나.

책에도 욕심이 많고, 다른 것들에도 욕심이 많다. 운동만큼은 욕심이 없다. 전혀 없다. 그런데 왜 남이 달리는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을까.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행위와 감정이 이토록 생생하게 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신기하다. 이들이 달리기를 사랑하는 마음은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와 나 사이의 거리를 천천히 좁혀 놓는다. 그 무한한 거리를 당신들은 걷고, 또 달려 내게까지 왔다. 마음은 그렇게 경험보다 먼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건넌다.

『좋아한다 말하기엔 조금 숨이 차지만』은 러닝을 주제로 한 에세이 앤솔러지다. 달리기는 이 책의 시작점일 뿐, 일곱 명의 작가가 들려주는 것은 결국 자신을 살아가게 하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생각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해, 우울과 불안을 지나가기 위해, 미처 다하지 못한 안부와 후회를 품기 위해. 일곱 명의 작가는 저마다 다른 이유로 신발 끈을 묶는다. 달리는 이유는 모두 다르지만, 그 발걸음 끝에는 저마다 지키고 싶은 삶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달리기는 앞으로 나아가는 행위이기 전에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늘 더 빠른 속도를 권하지만, 사람은 남의 속도로 오래 살아갈 수 없다. 오래 살아남는 사람은 누구보다 빠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호흡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반복되는 ‘내게 맞는 속도와 보폭’이라는 말은 운동의 원칙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로 읽힌다.

앙리 베르그송은 삶의 시간을 시계가 재는 숫자가 아닌 저마다의 의식 속에서 흐르는 ‘지속’으로 바라보았다. 같은 하루를 살아도 누군가는 천천히 회복하고, 누군가는 오래 망설이며, 또 누군가는 제자리처럼 보이는 시간을 견딘다. 삶의 시간은 언제나 사람마다 다르게 흐른다. 달리기가 가르쳐 주는 것도 결국 같은 사실이다. 자신의 호흡을 지키는 사람만이 자기 삶의 시간을 끝까지 살아낼 수 있다는 것.

책 속의 달리기는 승부와는 거리가 멀다. 김연수에게는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감각이고, 노지양에게는 오롯이 자신이라는 사람의 본질을 마주하는 시간이다. 윤이나는 우울과 불안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달리고, 박은지는 뛰고 또 뛰는 사이 조금씩 만들어지는 자신을 믿기 위해 달린다. 김혜나는 미루어 두었던 마음들을 다시 꺼내기 위해 달린다. 같은 길을 달려도 모두가 다른 세계를 본다. 그래서 이 책은 달리기를 이야기하면서도 끝내 사람을 이야기한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은 이상하다. 좋아할수록 더 힘들어지고, 더 지치기도 한다. 그런데도 다시 그곳으로 돌아간다. 책을 읽는 사람도 그렇고, 글을 쓰는 사람도 그렇고, 달리는 사람도 그렇다. 좋아하는 마음은 효율을 따지지 않는다. 손익을 계산하지도 않는다. 이유를 다 설명할 수 없는데도 자꾸만 발걸음을 그쪽으로 향하게 만든다.

어쩌면 사람은 좋아하는 것을 통해 자기 삶의 리듬을 만들어 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책을 읽으며, 누군가는 음악을 들으며, 누군가는 글을 쓰며, 또 누군가는 달리며 하루를 견딘다. 방법은 모두 다르지만, 그 마음은 닮아 있다. 삶을 조금 더 오래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

『좋아한다 말하기엔 조금 숨이 차지만』을 읽으며 오래 바라보게 되는 것은 달리는 모습보다 그 마음이다.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일이 한 사람의 하루를 어떻게 바꾸고, 어떻게 살아갈 힘이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달려 본 적 없는 사람도 이 책 앞에서는 몇 번이고 걸음을 멈춘다. 누군가의 숨찬 고백이, 오래 품어 온 사랑이, 자신의 속도로 살아가려는 다짐이 어느새 내 호흡과도 같은 박자가 되어 가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에는 언제나 약간의 숨참이 따라온다. 그 숨은 버거워서 차오르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감각이 너무 선명해서 차오르는 숨.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사랑의 고백이면서, 동시에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고백처럼 오래 마음속을 달린다.

어떤 마음은 오래 움직일수록 더 선명해진다. 처음에는 가벼운 호기심으로 시작한 일이 어느 순간 하루를 지탱하는 힘이 되고, 숨이 차오르는 순간에도 다시 그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좋아한다 말하기엔 조금 숨이 차지만』은 일곱 명의 작가가 각자의 보폭으로 기록한 러닝의 이야기이자,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한 사람의 삶에 스며드는 방식에 대한 에세이다. 아직 서툰 시작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 바쁜 하루 속에서 자신의 호흡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이 책은 조용한 속도로 곁을 내어준다. 또한 책이나 음악, 글쓰기처럼 저마다의 방식으로 어떤 것을 오래 사랑해 온 사람이라면 일곱 작가의 달리기 속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달리기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도 이 책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한 사람의 숨과 걸음을 이해하게 된다. 서로 다른 길을 달려온 마음들이 결국 같은 곳에 닿는 순간, 좋아한다는 일이 얼마나 한 사람을 오래 움직이게 하는지 알게 되는 책이다.

✏️도서출판 판미동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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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세계
고혜원 지음 / 다이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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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과 백, 단 두 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작은 바둑판 위에는 세계가 담겨 있다. 돌 하나를 어디에 놓을지 결정하는 순간마다 수많은 가능성이 갈리고, 한 번의 착점은 이후의 모든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바둑은 선택과 기다림, 상대를 이해하는 과정이 축적된 삶의 축소판과도 같다.

고혜원의 《백의 세계》는 이러한 바둑의 본질을 궁궐이라는 정치적 공간과 결합한다. 신라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 궁궐은 또 하나의 거대한 바둑판이다. 왕권과 외교, 신분과 권력이 서로 다른 돌처럼 놓이고, 그 위에 선 인간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의 계산 속에 배치된다. 별궁에 머무는 공주 연화 역시 그러한 판 위에 놓인 존재다. 공주라는 이름은 있었지만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없었다.

이 작품에서 바둑은 승리를 위한 기술이 아니라 존재를 지키기 위한 사유 방식으로 확장된다. 스승이 공주에게 가르치는 것은 정해진 수를 외우는 법이 아니다.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상대의 의도를 읽으며, 제한된 조건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법이다. 바둑판 위에서 집을 만들고 활로를 찾는 과정은 곧 자신의 삶을 지키는 방식과 닮아 있다. “살아남으셔야죠. 바둑에서든, 궁궐 안에서든.”(52쪽)이라는 말은 이 작품이 말하는 생존의 의미를 압축한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단순히 버티는 일을 넘어, 자신이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다.

그러나 궁궐이라는 공간은 인간을 쉽게 하나의 수로 환원한다. 『백의 세계』 속 권력은 사람을 마음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기보다 목적을 위한 대상으로 다룬다. 왕실의 관계와 정치적 질서는 끊임없이 계산되고, 약한 위치에 놓인 사람일수록 더욱 쉽게 희생된다. 작품 속 바둑판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이 얼마나 쉽게 타인의 계산 속에 놓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치다. 동시에 그 판 위에서 자신의 수를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함께 드러낸다.

이 소설이 깊어지는 지점은 승리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는 데 있다. 바둑에서 승리는 상대보다 많은 영역을 차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삶에서의 승리는 반드시 같은 방식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백의 세계』는 가장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언제나 올바른 승리는 아니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가 아니라, 그 선택이 자신의 삶을 향하고 있는가에 있다. 타인이 정한 승리의 기준을 따라가는 삶과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한다.

또한 이 작품은 철저한 계산의 세계인 바둑 안에서 계산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을 보여준다. “이 세상엔 흑돌과 백돌로는 계산 안 되는 것들이 많습니다.”라는 문장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시선이다. 사람 사이의 믿음과 연대, 누군가를 향한 마음은 수치로 환산할 수 없다. 바둑판 위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수를 찾는 것이 중요하지만, 인간의 삶에서는 때때로 비효율적인 선택이 가장 깊은 의미를 만들어낸다. 작품 속 인물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마음은 모두 계산 너머에 존재하는 가치들이다.

결국 『백의 세계』는 한 사람이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바둑이라는 언어로 풀어낸 작품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바둑판 위에서 살아간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정해진 조건과 위치가 있고, 때로는 원하지 않는 판 위에 놓이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돌을 놓을 것인지, 어떤 방향으로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갈 것인지는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흑과 백 사이에 놓이는 하나의 돌이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듯, 인간 역시 수많은 선택을 쌓아 삶을 완성해간다.

삶은 언제나 완성된 바둑판 위에서 시작되지만, 그 위에 어떤 돌을 놓을지는 누구도 대신 결정해줄 수 없다. 『백의 세계』는 정해진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인물의 이야기를 넘어,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권력과 신분이 뒤엉킨 궁궐이라는 거대한 판 위에서 바둑은 단순한 승부가 아닌 삶을 읽는 방식이 되고, 한 수 한 수를 고민하는 과정은 결국 자신을 지키는 태도로 이어진다. 한 번의 선택이 삶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을 좋아하는 독자, 역사 속 권력과 인간의 내면을 함께 바라보는 소설을 찾는 독자, 그리고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다시 자신만의 자리를 만들어가는 인물의 이야기에 끌리는 독자라면 이 작품의 깊은 결을 오래 따라가게 될 것이다. 흑과 백으로 나뉜 바둑판 위에서도 인간의 마음만큼은 계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 소설은, 결국 자신의 삶이라는 판 위에서 어떤 수를 둘 것인지 조용히 돌아보게 한다.

✏️도서출판 빅피시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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