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숨결에 날리는 깃털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장성주 옮김 / 복복서가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에게나 부모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를 세상의 전부로 받아들이고, 조금 더 자라서는 이해할 수 없는 타인으로 마주한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부모 역시 한 시대를 견디며 살아온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순간부터 자신의 삶 역시 새로운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지금의 자신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감정과 습관, 두려움과 침묵은 개인에게서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삶의 흔적이었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데뷔작 『신의 숨결에 날리는 깃털』은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화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 시선은 자꾸만 부모의 삶으로 향한다. 독일인 어머니와 중국계 파나마인 아버지. 전쟁과 이민이라는 거대한 역사는 한 가족의 배경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말수가 적은 아버지의 침묵이 되고, 끝내 고향을 놓지 못한 어머니의 그리움이 되며,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흔적으로 자녀의 삶에 스며든다. 부모에게 머물렀던 시간은 부모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한 세대를 지나온 기억은 다음 세대의 감정이 되어, 설명할 수 없는 삶의 흐름을 만든다.

오래 바라볼수록 익숙했던 얼굴은 조금씩 다르게 보인다. 부모라는 이름은 너무 오래 불려온 탓에, 그들이 한때 누군가의 딸과 아들이었고, 전쟁과 가난, 상실을 통과해온 개인이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부모라는 이름으로만 존재했던 사람이, 시간이 흐른 뒤에는 누군가의 딸이었고 누군가의 아들이었던 한 사람으로 다가온다. 그들에게도 처음부터 정해진 역할은 없었다. 그들 역시 자신의 시대를 통과하며 사랑하고 상처 입고,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품은 채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시그리드 누네즈는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 안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겹쳐 있는지를 바라본다. 독일인 어머니와 중국계 파나마인 아버지의 삶에는 전쟁과 이민, 언어와 상실의 기억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그 역사는 과거의 사건으로만 머물지 않는다.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했던 침묵, 잃어버린 고향을 향한 그리움, 쉽게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은 가족이라는 공간 안에서 다음 세대로 흘러간다. 한 사람의 삶은 자신이 경험한 시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보다 먼저 존재했던 수많은 삶의 흔적들이 하나씩 포개지며 지금의 자신을 만든다.

그래서 화자가 그들의 삶을 돌아보는 과정은 결국 자신의 삶을 다시 읽는 과정이 된다. 설명하기 어려웠던 마음의 방향에는 저마다의 기원이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감정과 쉽게 설명되지 않던 외로움, 세상을 대하는 태도까지도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삶의 문장들이었음을 깨닫는다. 인간은 자신의 기억만으로 자신을 설명할 수 없는 존재다. 우리는 누군가의 기억을 물려받고, 그것을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새로운 자신이 되어간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바라보는 시선은 현재의 나에 따라 달라진다.

침묵은 역설적이게도 이 작품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다. 그것은 말이 사라진 자리에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많은 것을 말하지 않고, 어머니는 많은 것을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침묵은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다. 말해지지 못한 기억들이 머무는 자리이고, 언어를 잃은 감정들이 살아남는 방식이다. 가족은 서로를 가장 잘 안다고 믿지만, 정작 가장 오래 품고 사는 것은 끝내 전하지 못한 삶들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들의 침묵은 자녀에게 또 다른 감각이 되어 이어진다. 이유를 알 수 없던 불안과 외로움, 설명되지 않던 마음의 방향 역시 오래전 누군가의 침묵의 흘러와 닿은 자리일 것이다.

『신의 숨결에 날리는 깃털』이라는 제목을 다시 떠올려 보자. 깃털은 스스로 바람의 방향을 선택하지 못한다. 다만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숨결을 따라 천천히 움직인다. 인간의 삶 역시 그렇지 않을까. 누구도 부모를, 시대를, 태어날 자리를 선택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 모든 시간은 한 사람을 조금씩 밀어 올리고, 마침내 하나의 삶을 그려낸다. 이 소설은 그 궤적을 따라가며, 지금의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보다 먼저 살아낸 삶들을 함께 이해하는 일임을 조용하고도 깊은 목소리로 들려준다.

어떤 삶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보다, 자신이 어디에서부터 흘러왔는지를 돌아보기 위해 읽게 된다. 『신의 숨결에 날리는 깃털』은 그런 시간을 건네는 소설이다. 부모를 이제야 한 사람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이들에게, 자신의 감정과 성격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오래 헤아려본 적 있는 이들에게 이 작품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가족 안에 남겨진 침묵과 쉽게 설명되지 않는 거리감을 오래 품고 살아온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문장이 품은 사유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이 데뷔작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던 그녀의 시선을 발견하는 기쁨도 함께 만나게 될 것이다.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언제나 현재에서 시작되는 것 같지만, 때로는 자신보다 먼저 살아낸 시간들을 천천히 더듬어 올라갈 때 비로소 또 다른 풍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도서출판 복복서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