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화상
에두아르 르베 지음, 정영문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8월
평점 :
사람의 삶을 이야기로 만드는 일에는 일정한 질서가 필요하다. 태어나고, 자라고, 어떤 일을 겪고, 그것을 통해 변하고, 현재에 이르렀다는 시간의 흐름. 무엇이 삶을 바꾼 사건이었는지, 무엇이 사소한 기억에 불과했는지를 가려내는 선택. 그렇게 정리된 삶은 하나의 서사가 되고, 우리는 그 서사를 통해 한 사람을 이해한다. 그러나 에두아르 르베의 『자화상』에는 이런 익숙한 질서가 없다. 르베는 이야기를 만들지 않는다. 사건 사이의 인과를 제거하고, 기억의 순서를 해체하며, 삶을 하나의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중심 사건도 설정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에 관한 수많은 문장을 흩어놓는다.
르베가 연대기와 인과관계를 버린 것은 삶을 무질서하게 재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하는 순간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선택과 배제를 드러내기 위해서다. 어떤 기억을 중요하게 다루고 어떤 기억을 지워버릴 것인지 결정하는 순간, 자서전은 이미 한 인간을 특정한 서사 안에 배치한다. 어린 시절의 어떤 사건은 현재의 나를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어떤 만남은 인생을 바꾼 전환점이 되며, 나머지 수많은 날들은 그 사건을 설명하기 위한 배경으로 밀려난다. 삶은 그렇게 의미 있는 것과 의미 없는 것으로 구분된다. 『자화상』은 바로 그 질서를 거부한다. 르베에게는 인생을 바꾼 사건과 별것 아닌 습관 사이에 반드시 존재해야 할 위계가 없다. 폴 리쾨르가 말한 ‘서사적 정체성’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하며 ‘나’라는 존재를 이해한다는 생각에 닿아 있다. 그렇다면 르베의 작업은 그 서사를 구성하는 방식 자체에 작은 반론을 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죽음과 음식, 사랑과 여행, 어린 시절의 기억과 신체에 대한 감각은 서로 다른 무게를 가진 사건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한 문장이 다른 문장을 설명하지 않고, 어떤 기억이 다음 기억의 원인이 되지도 않는다. 문장들은 저마다 하나의 작은 사실로 존재한다.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판단을 최대한 유보한 채, 삶을 구성했던 것들을 같은 높이에 올려놓는 것이다. 이때 『자화상』은 한 인간의 삶을 특별한 사건들의 연속으로 바라보는 관습에 의문을 던진다. 실제로 한 사람을 이루는 것은 몇 번의 극적인 순간만이 아니다. 매일 반복되는 취향과 습관, 무심코 지나친 감각,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않았던 생각과 기억 역시 그 사람의 일부다.
르베는 바로 그 사소함을 집요하게 수집한다.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떤 사람에게 끌리고 어떤 사람과 거리를 두는지, 여행을 어떻게 느끼는지, 자신의 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떤 기억을 간직하고 어떤 기억을 잊었는지를 기록한다. 그중에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사실도 많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사소함이 결코 주변부로 밀려나지 않는다. 오히려 특별하지 않다는 이유로 기억에서 탈락했던 것들이 하나씩 불려 나온다. 그렇게 보면 『자화상』은 한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목록이면서, 동시에 ‘중요함’이라는 기준을 해체하는 작업이다. 삶을 회고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의미를 찾는다. 하지만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기억은 다시 편집된다. 수많은 날 가운데 몇 장면만 선택되고, 선택된 장면에는 현재의 내가 알고 있는 의미가 덧씌워진다.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를 설명하기 위한 인물이 되고, 현재의 나는 그 과거를 해석하는 사람이 된다. 르베는 그 해석의 과정을 최대한 걷어낸다. 그에게 과거는 현재를 설명하기 위한 원인이 아니라, 그저 한때 존재했던 수많은 사실 중 하나로 남는다.
그러나 사실을 많이 모은다고 해서 한 사람을 완전히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화상』에서는 자신에 관한 사실이 쌓일수록 그 사람의 모습이 선명해지기보다,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더 또렷해진다. 르베는 자신에 관해 놀라울 만큼 많은 것을 말하지만, 그 많은 문장은 하나의 완전한 인물상으로 수렴하지 않는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누구를 사랑했는지,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본질까지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삶의 사실과 삶의 진실 사이에는 쉽게 건널 수 없는 거리가 놓여 있다. 모든 문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 사실들의 총합이 곧 한 인간의 진실이 되지는 않는다. 기억은 언제나 선택적이고, 자기 자신에 대한 판단에도 현재의 시선이 개입한다. 같은 사건을 다시 떠올릴 때마다 기억은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도 있고, 자신에게는 중요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던 순간도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정작 자기 자신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을 말하는 순간에도 선택은 발생한다. 무엇을 기억할 것인지, 어떤 단어를 사용할 것인지, 어떤 사건을 기록할 것인지 결정하는 순간 이미 하나의 ‘나’가 만들어진다. 르베는 이 문제 앞에서 더 많은 사실을 끌어온다. 자신을 가능한 한 많은 문장 속에 분산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시도가 자기 자신의 불투명성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수많은 조각을 모았는데도 전체의 모습은 완전히 닫히지 않는다.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쓴 문장이 오히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남긴다. 그리고 그 불완전한 초상 안에는 타인이 끊임없이 들어온다. 친구와 연인, 가족과 낯선 사람, 우연히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모습이 르베의 자화상에 함께 놓인다. 자신을 그리는 책인데 정작 혼자서 존재하는 ‘나’는 거의 없다. 인간은 본래 관계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의 나와 혼자 있을 때의 나, 상처를 받았을 때의 나와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의 나는 서로 다른 얼굴을 가진다. 타인의 시선은 나를 바라보는 외부의 눈인 동시에 내가 나를 인식하는 방식에 스며든 하나의 기억이기도 하다.
자화상이라는 형식은 본질적으로 모순을 품는다. 자화상은 자신이 자신을 그리는 그림이지만, 자신을 완전히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거울 속 얼굴을 아무리 오래 바라보아도 그 얼굴이 살아온 시간까지 함께 볼 수는 없다. 내가 알고 있는 나와 타인이 기억하는 나는 다르고, 지금의 내가 기억하는 과거의 나와 당시의 내가 느꼈던 나 역시 다르다. 르베의 자화상에 타인의 얼굴이 끊임없이 들어오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한 사람의 초상은 혼자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자화상』의 파편적인 형식은 단순한 실험이나 문체적 기교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라는 존재가 본래 하나의 완결된 서사로 환원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형식 자체로 보여준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은 삶에도 언제나 명확한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처럼 읽힌다. 우리는 지나간 사건들에 뒤늦게 이유를 붙이지만, 실제로 살아가는 동안에는 수많은 일이 아무런 설명 없이 지나간다. 삶은 언제나 이야기보다 먼저 존재하고, 이야기는 그것이 지나간 뒤에 만들어진다.
르베는 그 사후적인 질서를 거부한다. 그래서 그의 자화상에는 성장도 없고, 극복도 없고, 완성도 없다. 어떤 사건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식의 결론도 없다. 한 사람은 그저 수많은 순간을 통과하며 존재한다. 서로 모순되는 욕망과 기억, 애정과 무관심, 확신과 망설임을 함께 품은 채로. 결국 『자화상』이 그려내는 것은 완성된 인간의 얼굴이 아니다. 오히려 한 인간을 이루는 수많은 조각과, 그 조각들을 아무리 모아도 완전히 채울 수 없는 빈자리다. 르베는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사실을 늘어놓지만, 그 사실들이 하나의 정답으로 모이도록 만들지 않는다. 각각의 문장은 자신이었던 어느 한순간을 붙잡고 있을 뿐이다. 그 문장들이 모여 하나의 얼굴을 만들어내는 순간에도, 가까이 들여다보면 얼굴은 다시 무수한 점으로 흩어진다.
그 점에서 『자화상』은 자신을 완성하는 책이 아니라 자신을 완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책이다.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하면 지나간 시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소함이 사라진다. 르베는 그 사라진 것들을 다시 불러낸다. 별것 아닌 취향과 오래된 습관,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순간까지 한 사람의 삶으로 되돌려놓는다. 그리고 그 수많은 사실 앞에서 비로소 자화상의 의미가 달라진다. 자신을 닮은 얼굴을 만드는 것이 자화상이라면, 르베의 책은 끝내 하나의 얼굴이 남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을 이루었던 순간들을 빠짐없이 바라보려는 시도가 자화상이라면, 이 책은 누구보다 집요한 초상이다. 인간은 하나의 이야기로 설명되지 않으며, 하나의 얼굴로도 붙잡히지 않는다.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존재는 수많은 기억과 관계와 습관과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잠정적인 형상에 가깝다.
르베는 그 형상을 억지로 완성하지 않는다. 대신 수많은 문장을 통해 한 사람이었던 순간들을 하나씩 남겨놓는다. 완성된 얼굴 대신 흩어진 조각을, 삶의 의미 대신 삶의 흔적을. 그렇게 『자화상』은 한 인간을 가장 많이 말하면서도 그 인간을 하나의 문장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한 사람을 그린다는 것은 완성된 얼굴을 내놓는 일이 아니라, 그 얼굴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순간을 끝까지 지워버리지 않는 일이다.
한 사람의 얼굴은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오히려 선명한 윤곽을 잃는다. 기억과 습관, 사랑과 무관심,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간 하루의 감각까지 서로 다른 크기의 점들이 겹쳐질 때 비로소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오른다. 10년 만에 다시 돌아온 에두아르 르베의 『자화상』은 그렇게 점묘화처럼 흩어진 1,400여 개의 문장으로 한 인간의 초상을 그려낸다. 한 문장만 떼어놓으면 사소하고 무심한 사실에 불과하지만, 그 점들이 한 페이지씩 쌓여갈수록 독자는 르베의 얼굴과 동시에 자신의 얼굴까지 그려보게 된다.
익숙한 소설의 문법에서 벗어난 작품을 찾는 독자,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특히 권하고 싶다. 평범한 취향과 오래된 습관,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처럼 쉽게 서사가 되지 못했던 것들을 오래 들여다보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소설과 자서전의 경계를 흐리는 실험적인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도 르베의 방식은 낯설고 매혹적인 독서가 될 것이다. 한 문장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사람을, 수많은 문장으로 그려낸 책.
2015년 처음 한국에 소개된 뒤 절판되었던 이 책은 재출간을 기다리는 독자들의 목소리와 함께 다시 돌아왔다. 이번 개정판에서는 국내에 르베의 작품을 처음 소개했던 소설가 정영문이 문장을 새롭게 다듬었다. 오래된 책이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보다 반가운 것은, 그때의 문장들이 지금도 여전히 한 사람의 얼굴을 그릴 수 있다는 점이다. 르베는 자신을 설명하려 수많은 점을 찍어놓았고, 독자는 그 점들을 이어 하나의 얼굴을 만들어보게 된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바라보고 나면 그 얼굴은 르베의 것만으로 남지 않는다. 흩어진 점들 사이에서 저마다의 삶이 하나의 초상으로 떠오르는 순간, 자화상은 비로소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도서출판 은행나무로부터 은행잎 4기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