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 게임 : 50번째 추첨의 날 ㅣ 헝거 게임 시리즈 5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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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인 세계가 오래 지속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힘이 압도적으로 강해서일 수도 있지만, 더 오래 작동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 힘을 거스를 수 없다고 믿게 되는 일이다. 매년 반복되는 추첨과 헝거 게임을 바라보며 열여섯 살 헤이미치가 느끼는 체념도 그와 다르지 않다. 어제까지 일어났던 일이 내일도 일어날 것이라 믿는다면, 그 세계를 바꾸려는 생각은 처음부터 무의미해진다. 그런 질서에 작은 의문을 던지는 목소리가 있다. 반복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앞으로도 반복될 이유는 없다고.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믿는 순간부터 변화할 가능성도 사라진다고. 수잔 콜린스가 이번 작품에서 헤이미치의 과거를 꺼내든 이유는 어쩌면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한 인간이 어떻게 체념을 배우고, 그 체념을 다시 거슬러 나가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소수의 권력이 다수를 지배할 수 있는 까닭은 그 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 지배를 하나의 현실로 받아들이고, 현실의 바깥을 상상하기 어려워질 때 권력은 더욱 단단해진다. 캐피톨이 만들어놓은 세계에서 헝거 게임은 더 이상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매년 반복되는 의식이고, 아이들이 추첨되는 날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일정이며,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죽음마저 하나의 익숙한 볼거리가 된다. 끔찍한 일이 반복되면 사람은 그것을 견디는 법부터 배운다. 그리고 견딜 수 있게 된 순간, 부당함에 저항해야 한다는 감각은 조금씩 희미해진다. 헤이미치의 이야기는 그 익숙함을 깨뜨리는 데서 시작된다.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이라는 생각에 아주 작은 틈을 내는 것. 어쩌면 저항의 시작은 그 정도로 작을 수 있다.

『헝거 게임 : 50번째 추첨의 날』에서 가장 섬뜩한 것은 아이들이 죽는 장면만이 아니다. 그 죽음이 하나의 방송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캐피톨은 조공인들의 몸을 감시하고, 행동을 촬영하고, 그 장면을 편집한다. 그리고 편집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결정하는 순간, 무엇을 믿게 할 것인지도 함께 결정되기 때문이다. 헤이미치가 경기장에서 보여준 행동과 조공인들의 연대는 캐피톨이 원하는 서사와 맞지 않는 순간 삭제되고, 그 자리에 순종적이고 무지하며 서로를 죽이기 위해 모인 아이들의 이미지가 들어선다. 권력은 사람의 피로 자신의 이야기를 그린다. 사람을 죽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죽음이 어떤 의미로 기억될 것인지까지 결정하려 한다.

끊임없이 바라보는 눈은 사람의 행동을 통제하고,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를 의식하게 만든다. 여기에 방송과 편집이 결합하면서 감시는 단순히 몸을 통제하는 장치에서 현실을 정의하는 장치로 변한다. 『헝거 게임』의 경기장은 아이들이 죽는 장소인 동시에, 무엇이 진실로 기억될 것인지 결정하는 거대한 스튜디오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저항은 거대한 무기를 드는 일보다 먼저 시작된다. 카메라가 원하는 표정을 짓지 않는 것, 죽은 아이의 몸을 감추지 않는 것, 서로를 적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 캐피톨이 가장 원하지 않는 것은 조공인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할을 거부하는 일이다. 경쟁해야 할 사람들이 서로를 걱정하고, 살아남아야 할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생존을 생각하는 순간 게임의 규칙은 더 이상 완전하지 않게 된다.

억압은 사람을 혼자 남겨둘 때 가장 강력해진다. 반대로 서로가 서로의 고통을 알아보는 순간, 개인의 두려움은 공동의 감각으로 바뀐다. 경기장에 모인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연대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모두 서로 다른 구역에서 왔고, 서로를 경쟁자로 만나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함께 살아남을 방법을 찾기 시작하면서 캐피톨이 정해놓은 관계의 질서를 벗어난다.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행위를 타인과 함께 세계를 만들어가는 일로 바라보았듯, 이들의 연대는 단순한 생존 전략에 머물지 않는다. 혼자 살아남으라는 명령에 함께 살아남겠다고 답하는 것. 누군가의 고통을 나의 생존과 무관한 일로 취급하지 않는 것. 그 순간 개인의 생존은 공동의 저항으로 변한다.

그러나 저항에는 언제나 대가가 따른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인간에게 저항은 더욱 잔인한 일이 된다. 사랑은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이면서 동시에 권력이 겨눌 수 있는 가장 깊은 약점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모든 것을 잃도록 설계된 판이라면, 그래도 싸워야 할 이유가 남아 있을까. 이 질문 앞에서 헤이미치의 이야기는 단순한 성장담이나 영웅담에서 멀어진다. 그에게 살아남는 일은 무언가를 얻는 일이 아니라, 살아남은 만큼 더 많은 것을 기억해야 하는 일이 되어간다. 경기장에서 만난 사람들, 가족, 레노어 도브와의 관계가 사라질수록 헤이미치에게 남는 것은 기억뿐이다. 그래서 헤이미치의 이후 삶을 바라보는 일은 한 사람이 왜 무너졌는지를 묻는 일과 동시에, 기억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바라보는 일이 된다.

기억은 과거를 보존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아직 현실을 다시 해석할 힘이 남아 있다. 권력이 사람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려 할 때, 살아남은 사람은 자신의 언어로 그 죽음을 기억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았던 사람이라는 사실, 누군가와 함께 웃었던 순간, 한때 다른 세계를 꿈꾸었던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캐피톨이 만든 이야기는 완전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헤이미치에게 기억은 축복인 동시에 고통이다. 잊을 수 있다면 조금 편해질 수 있겠지만, 잊는 순간 캐피톨이 원하는 방식으로 역사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 앞에서 헤이미치는 자주 실패하고, 많은 것을 잃고, 자신마저 잃어버린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사람에게는 한 가지 일이 남는다. 무엇이 있었는지를 기억하는 것. 누가 사라졌는지를 말하는 것. 자신에게 강요된 이야기 대신 자신의 언어로 과거를 다시 부르는 것.

그래서 마지막에 남는 것은 승리의 감각보다 시간에 대한 생각이다. 헤이미치의 저항은 그가 바라던 방식으로 즉시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헝거 게임은 계속되고, 캐피톨은 그의 행동을 자기들이 원하는 이야기로 다시 편집한다. 한 사람이 목숨을 걸고 만들어낸 장면조차 권력의 편집 앞에서 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저항은 실패한 것일까. 어쩌면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헤이미치의 이야기는 훗날까지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헤이미치가 만들었던 작은 저항의 흔적은 훗날 캣니스의 등장과 함께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작품 속 플루타르크가 말하듯 저항에는 연속성이 있다. 오늘의 행동이 당장 세상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다음 사람에게 도달한다면 역사는 그 행동을 완전히 지워버릴 수 없다. 한 사람의 실패가 다른 사람에게는 시작이 될 수 있고, 한 세대가 남긴 상처가 다음 세대에게는 다시 일어설 이유가 될 수 있다.

결국 『헝거 게임 : 50번째 추첨의 날』은 헤이미치가 어떻게 헝거 게임의 승자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면서, 한 인간이 어떻게 복종을 배우고 그 질서에 저항하는 사람이 되어가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캐피톨이 빼앗으려 한 것은 목숨만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하고, 기억을 빼앗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게 만들며,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것. 지배는 그렇게 사람의 바깥에서 안쪽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저항 역시 그 안에서 시작된다. 지금의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 눈앞의 사람이 적이 아니라는 감각, 사라진 사람의 이름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 거대한 혁명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그런 작은 선택들이다.

태양은 매일 떠오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일도 오늘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반복되는 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지, 그 반복에 작은 몸 하나를 세워 다른 가능성을 만들 것인지는 다른 문제다. 헤이미치가 남긴 것은 승리의 영광이 아니었다. 모든 것을 잃은 뒤에도 자신이 보았던 것을 기억하고, 언젠가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작은 자리를 남겨두는 일이었다. 사랑하는 모든 것을 잃도록 설계된 세계에서도 싸울 이유가 남는다면, 아마 그것은 승리하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의 내일이 오늘과 같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어제까지 당연했던 운명을 내일의 사람에게까지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한 사람이 남긴 작은 저항이 시간 너머의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기 위해서.

✏️소정의 원고료와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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