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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나
안드레 애치먼 지음, 홍한별 옮김 / 비채 / 2026년 7월
평점 :
안드레 애치먼의 『마리아나』와 『페루에서 온 신사』는 원래 한 권의 책에 함께 실린 두 중편이다. 비채가 두 작품을 나란히 소개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마리아나』가 사랑의 종결 이후를 바라본다면, 『페루에서 온 신사』는 죽음과 시간까지 건너 사랑이 다시 돌아올 가능성을 상상한다. 하나는 이별 뒤의 기억을, 다른 하나는 상실 이후에도 지속되는 욕망을 다룬다. 그러나 두 작품의 관심은 사랑의 시작이나 연애의 사건 자체에 머물지 않는다. 애치먼이 오래 응시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경험을 통과한 인간의 변화다. 누군가를 사랑한 뒤에는 그 사람을 만나기 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관계가 사라진 뒤에도 그 변화만은 현재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두 작품을 관통한다.
『마리아나』에서 이 문제는 편지라는 형식을 통해 선명해진다. 이탈리아에서 이타마르를 만난 마리아나는 짧고 강렬한 사랑을 경험하고, 관계가 끝난 뒤 그에게 편지를 쓴다. 하지만 이 편지에서 중요한 것은 수신자의 응답이 아니다. 이미 떠난 사람에게 계속 말을 거는 행위 자체가 마리아나의 시간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함께했던 장면과 말들을 되짚으며 사랑이 시작된 순간부터 이별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반복해서 통과한다. 과거는 지나간 사건으로 정리되지 않고 현재의 의식 속에서 계속 수정된다. 이타마르가 떠난 뒤에도 마리아나의 삶에는 그와 함께 있을 때 발견했던 욕망과 감각,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자기 자신의 모습이 남는다. 그래서 그녀가 상실한 것은 한 사람만이 아니다. 한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형성된 자기 자신 역시 상실의 일부가 된다.
이때 애치먼의 사랑은 상대방을 소유하는 관계와 상당한 거리를 둔다. 타인은 나의 삶에 들어와 나를 변화시키는 존재이며, 그 변화는 상대가 떠난다고 해서 함께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의 경험이 한 인간의 자기 인식을 바꾸어놓는다면 관계의 지속 여부만으로 그 사랑의 성패를 판단하기도 어려워진다. 마리아나가 이타마르를 계속 기억하는 이유 역시 그가 특별히 완전한 사람이어서라기보다, 그를 통해 자신 안에 존재하던 무엇인가를 처음 경험했기 때문이다. 사랑의 대상은 기억 속에서 점차 하나의 인물인 동시에 하나의 시기가 된다.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 속에서만 가능했던 자아의 형태까지 함께 기억되는 것이다.
『마리아나』의 편지는 연애편지이면서 기억의 형식이기도 하다. 애치먼에게 기억은 지나간 시간을 보관하는 기능보다 현재의 감정을 다시 구성하는 힘에 가깝다. 마리아나는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그때의 자신을 다시 만난다. 같은 사건도 현재의 감정에 따라 다르게 읽히고, 한때는 사랑의 증거였던 말이 나중에는 이별의 징후로 바뀐다. 사랑했던 순간은 과거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 기억하는 사람의 현재가 달라질 때마다 과거 역시 조금씩 모습을 바꾼다. 그래서 사랑의 종결 이후에 남는 것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다. 현재의 자신을 계속 만들어가는 하나의 시간이다.
『페루에서 온 신사』는 이 사고를 현실의 시간 바깥까지 확장한다. 아말피 해안의 호텔에서 우연히 만난 라울은 타인의 통증을 치유하고 그들이 숨겨온 삶의 일부를 알아맞히는 기묘한 인물이다. 오래전 사랑했던 마리아를 사고로 잃은 그는 수십 년이 지난 뒤 만난 마고에게서 그녀의 흔적을 발견한다. 두 사람의 만남은 환생이라는 초현실적인 설정을 통해 진행되지만, 애치먼이 바라보는 것은 환생의 진위보다 한 인간에게 과연 현재의 삶만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다. 라울이 말하는 ‘그림자 자아’는 실제로 살아온 나의 뒤편에 존재하는 수많은 가능성의 나를 가리킨다. 다른 선택을 했다면 존재했을 사람, 다른 시간에 누군가를 만났다면 경험했을 사랑, 살아보지 못한 삶까지도 현재의 자아를 구성한다는 발상이다. 사랑은 이처럼 한 사람의 현재를 과거와 미래, 그리고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까지 이어놓는다.
두 작품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시간을 바라본다. 마리아나는 이미 끝난 사랑을 기억 속에서 반복하며 ‘다르게 될 수 있었던 우리’를 상상한다. 라울은 시간 자체를 건너 ‘다시 만날 수 있는 우리’를 믿는다. 전자가 기억을 통해 과거의 가능성을 복원한다면 후자는 환생을 통해 가능성을 현재로 불러온다. 현실에서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충분히 가능했던 세계, 애치먼이 ‘그럴 수도 있었던 것’과 ‘그럴 수도 있는 것’으로 설명해온 가능성의 영역이 두 작품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셈이다. 인간은 자신이 살아온 삶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택하지 않은 길과 만나지 못한 사람, 하지 못한 말과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미래까지 끌어안은 채 현재를 살아간다. 사랑은 특히 이 가능성의 영역을 넓힌다. 사랑에는 언제나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 함께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을 시간 너머로 연장하려는 욕망에는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페루에서 온 신사』에서 라울이 마고를 마리아와 겹쳐 바라보는 순간, 과거의 사랑을 보존하려는 마음은 현재의 한 사람을 과거의 이미지 안에 가둘 위험을 갖는다. 사랑했던 사람을 기억하는 일과 눈앞의 사람을 그 사람의 대체물로 바라보는 일은 다르다. 애치먼은 이 차이를 명확한 윤리적 선언으로 설명하기보다 라울과 마고 사이의 불안정한 관계 속에 배치한다. 과거를 잃지 않으려는 욕망이 현재를 어떻게 바라보게 만드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랑에는 소유하려는 충동이 따라붙지만, 상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나의 기억과 욕망으로 완전히 환원될 수 없는 독립된 세계임을 인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두 작품에서 상실은 사랑의 반대편에 놓이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이 가진 성격을 드러내는 조건으로 작동한다. 사랑했던 사람이 언제까지나 곁에 있을 수 없다는 사실, 함께 상상했던 미래가 현실에서 실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사랑은 현재의 감각을 강렬하게 만든다. 『마리아나』의 마리아나에게는 지나가버린 시간이, 『페루에서 온 신사』의 라울에게는 죽음으로 끊긴 시간이 현재를 향해 되돌아온다. 둘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부재한 사람과 관계를 지속한다. 그 과정에서 사랑은 더 이상 두 사람 사이에서만 발생하는 감정이 아니다. 한 사람이 자기 삶을 해석하는 방식 전체를 바꾸는 경험이 된다.
애치먼의 작품에서 사랑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사랑은 행복한 상태로 오래 유지되는 감정이라기보다 인간의 감각과 기억, 시간의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사건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그의 인물들은 사랑했던 사람보다 그 사랑을 경험하면서 달라진 자신을 더 오래 데리고 살아간다. 『마리아나』의 편지는 그 변화를 기록하는 형식이고, 『페루에서 온 신사』의 환생은 그 변화를 시간의 경계까지 밀어붙이는 장치다. 현실적인 실연과 초현실적인 재회라는 전혀 다른 외형을 갖추었지만 두 작품의 내부에서는 같은 일이 일어난다. 사랑이 지나간 뒤에도 인간은 그 이전의 자신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사랑은 왜 반복되는가. 상실의 가능성을 알면서도 다시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애치먼의 두 작품은 이에 대한 낙관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사랑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집착과 후회와 그리움의 자리로 데려간다. 그럼에도 사랑을 경험한 사람에게 그 이전의 안전한 상태로 돌아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사랑은 삶에 하나의 가능성을 열고, 그 가능성이 사라진 뒤에도 그것을 경험했던 사람의 감각을 바꾸어놓는다.
결국 『마리아나』와 『페루에서 온 신사』가 함께 보여주는 것은 사랑의 전과 중과 후가 서로 단절된 시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랑하기 전에는 가능성이 있고, 사랑하는 동안에는 자아가 변하며, 사랑이 지나간 뒤에는 기억과 상실, 살아보지 못한 삶이 남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통과한 인간은 다시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이 삶을 안전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는 삶의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 없는 삶은 상처받을 일도 적을 것이다. 그러나 타인을 향해 자신을 열어본 경험이 없다면 인간은 자신의 세계가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는지도 알기 어렵다. 애치먼이 두 작품에서 집요하게 바라보는 것은 바로 그 확장이다. 누군가를 사랑한 뒤에는 그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뿐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자신까지 삶에 남는다. 사랑은 떠난 사람을 붙잡아두는 힘이 아니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되어버리는 사건이다. 그래서 사랑이 끝난 뒤에도 사랑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기억 속의 한 장면으로 남는 대신, 이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일부가 된다.
✏️도서출판 비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