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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너스
박지선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26년 6월
평점 :
함께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드문 기적이다. 같은 계절을 지나고, 같은 풍경을 기억하며, 서로가 변해 가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일. 우리는 그것을 너무 오래 누린 탓에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한 존재만 시간이 멈춰 버린다면. 함께 흘러가던 시간이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것이 된다면. 이 작품은 그 고요한 상실을 오래 바라보게 한다.
박지선의 『루미너스』는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근미래의 통일 한국을 무대로 한다. 실종된 반려 로봇 소녀를 둘러싼 미스터리, 인간과 다름없는 안드로이드, 그리고 오래전 사라진 한 로봇의 흔적을 따라가는 이야기는 첫 장부터 독자를 낯선 세계로 이끈다. 여러 인물의 시점이 교차하고 새로운 용어와 세계관이 쏟아지는 초반은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낯섦은 이 작품의 약점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세계의 규칙을 하나씩 익혀 가는 과정 자체가 SF 문학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이자 고유의 ‘맛’이며, 어느 순간 독자는 그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이 미래는 한국인의 상상력만으로 빚어진 공간처럼 보이지 않는다. 재미 한인인 박지선이 그려 낸 통일 한국은 분명 서울을 닮았지만, 중국의 풍경과 미국의 정서가 희미하게 겹쳐진다. 익숙한 도시인데도 어딘가 이방의 공기가 감도는 이질감은 작품의 세계를 더욱 독창적으로 만든다. 미래를 상상한다는 것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그려 내는 일이면서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이 소설은 공간의 감각만으로도 보여 준다.
그러나 『루미너스』가 오래 시선을 사로잡는 이유는 정교한 세계관 때문만은 아니다.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이 작품이 들여다보는 대상은 인공지능의 발전이나 기술의 윤리가 아니라, 가족과 상실, 그리고 시간을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이다. 인간을 닮은 기계를 상상하는 일보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일. 이 작품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그곳에 있다.
그 중심에는 요요가 있다.
요요는 인간이 아니지만, 작품은 단 한 번도 그를 기계처럼 다루지 않는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그는 처음부터 가족이었다. 다만 누구보다 먼저 시간이 멈춰 버렸을 뿐인 존재. 몸은 어린 소년의 모습에 머물러 있고, 기억은 여러 번의 죽음과 복제를 거쳐 이어진다. 모든 부품이 교체된 배를 여전히 같은 배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오래된 형이상학의 사고 실험인 ‘테세우스의 배’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렇다면 사람을 같은 사람으로 남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루미너스』는 그 답을 논리보다 관계에서 찾는다.
그 모습은 피터 팬을 떠올리게 한다. 피터 팬은 영원한 어린아이로 기억되지만, 그 영원은 결코 축복만은 아니다.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시간과 함께 살아갈 기회를 잃는 일이기도 하니까. 모두가 나이를 먹고 서로를 떠나보내는 동안 혼자만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는 삶. 사람은 함께 늙어 가며 관계를 완성한다. 같은 시간을 살아냈다는 사실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기억이 되고, 그 시간은 서로를 가족으로 만든다. 『루미너스』가 그려 내는 슬픔은 죽음보다도 시간에 닿아 있다. 시간을 함께 흘려보낼 수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작품이 품은 가장 큰 비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루미너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비는 인간과 로봇이 시간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인간은 시간을 견디며 변한다. 기억은 흐려지고 몸은 늙으며, 상실은 사람을 이전과 다른 존재로 만든다. 기억은 과거를 붙잡지만 시간은 사람을 앞으로 데려간다. 반면 요요는 기억을 간직한 채 같은 자리에 머문다. 인간은 변하기에 같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요요는 변하지 않기에 끝내 홀로 남는다. 그 역설은 이 소설을 더욱 애틋하게 만든다.
작품 속 로봇들은 인간보다 더 깊이 사랑하고, 상실 앞에서 무너지고, 타인을 위해 희생한다. 그들이 인간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감정을 흉내 내기 때문이 아니다. 누군가를 자신의 삶 안으로 받아들이고, 그 관계를 잃는 아픔을 견디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명이 사랑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착각하곤 하지만, 실은 사랑이 비로소 하나의 존재를 생명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독서인의 축제인 서울국제도서전 2026에서 ‘여름, 첫 책’으로 선정되며 큰 화제를 모으고, 《가디언》이 선정한 올해의 SF와 《LA 타임스》 도서상, 어더와이즈 상을 비롯한 여러 상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거대한 세계관과 미스터리, 감정의 깊이가 유기적으로 맞물리는 만큼 영상화 소식이 더욱 기대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활자로도 이토록 선명했던 시간과 감정이 화면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 움직이게 될까. 『루미너스』는 화려한 미래 기술을 내세우는 대신, 그 기술을 통해 인간이 오래도록 품어 온 감정을 이야기한다.
시간을 함께 흘려보낼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깊은 상실일까. 언젠가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과 같은 시간을 살아갈 수 없는 날이 찾아올 것이다. 누군가는 먼저 늙고, 누군가는 먼저 떠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기억 속에서만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 함께 웃고, 같은 식탁에 앉고, 같은 계절을 건너는 일. 함께 나이를 먹어 가는 얼굴들. 서로의 변화를 지켜보며 살아가는 일. 너무 오래 곁에 있어서 당연하게 여겼던 시간들은 사실 가장 쉽게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지만, 오래된 감정을 다시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루미너스』는 그 두 가지를 모두 해낸다. 가장 먼 시간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가장 가까운 삶을 바라보게 하는 방식으로. 오늘날과는 다른 기술과 도시를 바라보는 동안, 문득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면. 그 순간 『루미너스』는 가장 먼 미래를 이야기하면서도 가장 가까운 삶에 닿은 것이다. 바로 지금, 당신에게.
어떤 이야기는 미래를 상상하면서도 현재를 더 선명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SF를 통해 인간을 다시 바라보고 싶은 사람, 가족과 상실의 시간을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루미너스』는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작품이 될 것이다. 미스터리의 긴장감과 거대한 세계관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응시하게 된다. 기억과 사랑, 존재의 동일성 같은 철학적 사유를 즐기는 독자에게도, 영상처럼 선명한 장면과 감정을 오래 품는 이야기를 찾는 독자에게도 자신 있게 권하고 싶다. 가장 먼 미래를 향해 걸어가면서도 결국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드문 SF 소설이다. 미래를 읽고 있었는데 어느새 오늘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도서출판 황금가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