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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래한다
이주혜 지음 / 다람 / 2026년 7월
평점 :
대부분의 소설은 누군가의 ‘나’로 시작하지만, 좋은 소설은 그 ‘나’를 한 사람의 것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처음에는 낯선 타인의 목소리였던 문장이 어느 순간 자신의 기억을 흔들고, 이해할 수 없었던 삶이 어느 순간 자신의 언어를 빌려 말하기 시작한다. 『나는 노래한다』는 그 오래된 문학의 원리를 아이누 신요에서 발견한다. 신의 노래는 모두 ‘나’로 시작한다는 이야기. 그 ‘나’는 신이기도 하고, 동물이기도 하며, 인간이기도 하다. 노래하는 순간 하나의 목소리는 여러 삶을 품는 자리가 된다. 이 소설에서 노래는 자신의 삶을 들려주는 형식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자신의 목소리로 이어 부르는 형식이다.
인간은 무엇을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며 살아갈까. 이주혜는 그 질문을 특별한 사건보다 경계 위에 선 인물들의 감각을 통해 드러낸다. 어느 곳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사람들, 하나의 언어로 자신을 설명할 수 없는 사람들, 혈통보다 기억이, 출생보다 시간이 더 많은 것을 결정해버린 사람들. 이들에게 정체성은 태어나는 순간 주어지는 명확한 이름이 아니라, 살아오며 품게 된 기억과 관계가 오래 축적되어 이루어진 서사다. “어떤 언어도 제 것이 아니고 어떤 언어라도 제 것인 것 같은”(169쪽) 감각은 특정 인물의 고백이면서도, 현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경계인의 초상이기도 하다. 결국 사람을 이루는 것은 어디에서 왔는가보다 무엇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는가에 있다.
『나는 노래한다』에는 누군가를 완전히 구원하는 인물이 없다. 대신 마지막까지 한 사람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시선이 있다. 서로를 스쳐 지나간 인물들은 상대의 운명을 대신 살아주지 못하지만, 그의 삶이 이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만은 잊지 않는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목격자’를 뜻하는 이름을 가진 인물이 보내오는 짧은 편지는 그래서 단순한 후일담이 아니다. 그것은 결말을 알려주는 문장이 아닌, 한 사람의 삶이 끝내 익명으로 흩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문장이다. 인간은 타인의 기억으로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삶은 너무 쉽게 세상 밖으로 밀려난다. 이 소설은 구원보다 먼저, 누군가의 삶을 목격하고 증언하는 일이 왜 윤리인지를 되묻는다.
그래서 이 작품의 다정은 쉽게 낭만과 감동을 약속하지 않는다. 선의는 실패할 수 있고, 진심은 오해를 낳기도 한다. 타인의 삶은 대신 살아줄 수도, 대신 책임질 수도 없다. 그런데도 인간은 서로를 향해 손을 내민다. 결과를 장담해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자신의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 소설에서 다정은 상대를 섣불리 판단하지 않으려는 절제로 작용한다. 누군가의 파도를 대신 건널 수는 없어도, 서로가 지나온 바다를 잊지 않는 마음. 서로의 파도를 계속해서 목격하는 일. 이주혜는 다정을 감정이 아닌 타인을 대하는 태도로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노래한다』에서 노래는 감정을 표현하는 소리가 아니다. 한 사람의 삶이 다른 사람 안에서 다시 시작되는 방식이며, 서로의 시간을 이어받는 약속이다. 아이누 신요에서 모든 노래가 ‘나’로 시작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 ‘나’는 혼자만의 목소리를 넘어, 수많은 삶을 통과하며 계속 이어지는 자리다. 그렇게 노래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행위에서 멈추지 않고, 타인의 삶을 기꺼이 자기 목소리로 이어 부르는 일이 된다. 우리는 혼자 살아온 시간으로만 완성될 수 없다. 누군가의 삶을 기억하고, 다시 불러주고, 자신의 삶 역시 또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 오래된 소망을 품은 소설.
✏️도서출판 다람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