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력 구제 금지
김성민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7월
평점 :
법은 인간의 복수를 막기 위해 존재한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었다고 해서, 누군가가 죄를 지었다고 해서 개인이 직접 심판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 ‘자력 구제 금지’라는 법률 용어는 결국 감정에 휩쓸린 판단이 가진 위험성을 경고하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법의 문장처럼 반듯하지 않다. 누군가는 신고 이후에도 안전하지 못하고, 누군가는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고통 속에 남겨진다. 법이 모든 사람을 구해주지 못하는 순간, 인간은 흔들린다. 기다리는 것과 직접 나서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고, 정의와 복수의 경계에서 길을 잃는다. 김성민 작가의 『자력 구제 금지』는 바로 그 불완전한 지점에서 시작된다.
한 남자의 죽음을 둘러싼 사건과 그 안에 얽힌 인물들의 욕망을 따라가는 이 작품은 단순히 범인을 찾아가는 추리소설에 머물지 않는다. 작품은 끊임없이 묻는다. 우리가 정의라고 믿는 것은 정말 정의일까. 누군가를 벌해야 한다는 마음속에는 과연 타인을 향한 올바른 판단만 존재하는 것일까. 인간은 때때로 자신의 선택을 정의라고 부른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붙인다. 하지만 선한 의도에서 시작된 행동이라도 그것이 타인의 삶을 결정할 권리가 되는 순간, 정의는 본래의 의미를 잃고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내는 힘으로 변할 수 있다.
이 작품이 더욱 몰입되는 이유는 소설 속 사건이 결코 낯선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 아동 학대와 같은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피해자들이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고통 속에 놓이는 경우도 존재한다. 법과 제도가 모든 위험으로부터 인간을 완벽하게 지켜줄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누군가는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선택한다. 하지만 그 선택이 또 다른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은 더욱 복잡한 윤리적 갈림길에 놓인다. 『자력 구제 금지』는 바로 그 현실의 틈에서 출발해, 법과 정의 사이에 놓인 인간의 불안한 모습을 바라본다.
특히 은아라는 인물은 책임과 연민이라는 서로 다른 감정을 동시에 불러낸다. 그녀의 선택에는 분명 돌아봐야 할 잘못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선택이 만들어진 배경과 그녀가 지나온 삶까지 함께 바라보는 순간, 단순한 판단은 불가능해진다. 죄를 지은 사람은 어디까지 죄인으로 남아야 할까. 인간을 하나의 잘못으로만 기억하는 것은 과연 정의로운 일일까. 물론 잘못에는 책임이 따른다. 상처 입은 사람들의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누군가는 자신의 행동을 반드시 마주해야 한다. 그러나 책임은 스스로를 끝없이 벌하는 것과는 다르다. 잘못을 인정하게 하는 죄책감은 인간에게 필요한 감정이지만, 그것이 삶 전체를 지배하는 순간 과거는 반성이 아닌 또 다른 형벌이 된다. 『자력 구제 금지』는 죄를 지은 인간을 쉽게 용서하지도, 그렇다고 영원히 단죄하지도 않는다. 대신 잘못 이후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인간을 따라간다.
한편 이 작품은 철학적인 질문뿐 아니라 장르소설이 가진 재미 역시 충실하게 담아낸다. 챕터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형사의 사건 수첩은 용의자들의 진술, 민법 내용, 신문 스크랩 등을 통해 독자를 사건 안으로 끌어들인다. 독자는 수동적으로 진실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을 따라가며 끊임없이 의심하고 추리하게 된다.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 인물을 마음껏 의심하고, 숨겨진 진실을 상상하는 즐거움은 추리 스릴러 소설만이 가진 매력이다. 더불어 스릴러의 긴장감과 로맨스의 감정을 서로 충돌시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엮어낸 작가의 구성력 역시 인상적이다. 사건의 냉혹함과 인간 사이의 감정이 함께 흐르며 작품의 폭을 넓힌다.
법은 인간의 행동을 판단하지만, 인간의 마음까지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그 사이에 남겨진 존재들을 바라봐야 한다. 죄를 지은 사람, 상처받은 사람, 그리고 잘못된 선택 앞에서 흔들리는 사람들. 완벽한 정의를 향한 욕망은 때때로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내지만, 그렇다고 불완전한 인간을 외면하는 것 역시 답이 될 수 없다. 결국 필요한 것은 누군가를 심판하는 시선보다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려는 태도일 것이다.
『자력 구제 금지』는 정의를 둘러싼 사건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법이 닿지 못하는 인간의 영역을 향한다. 법은 행위의 결과를 판단할 수 있지만, 그 선택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이 지나온 시간과 감정까지 모두 재단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작품은 누가 옳고 그른지를 빠르게 나누기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만들어진 선택의 무게를 바라본다. 정의를 향한 마음은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강한 동력이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한 명분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를 구하기 위한 선택이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고, 옳다고 믿었던 행동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김성민 작가는 『자력 구제 금지』를 통해 정의와 복수, 책임과 용서 사이에 놓인 인간의 모습을 세밀하게 비춘다. 이 소설이 남기는 것은 하나의 답이 아니다. 다만 법의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마음의 영역, 그 선택의 무게를 짊어진 채 살아가는 인간을 오래 바라보게 한다.
누군가의 잘못을 판단하는 순간, 우리는 종종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까지 함께 재단하려 한다. 『자력 구제 금지』는 한 남자의 죽음을 둘러싼 사건 속에서 법이 결정하지 못하는 인간의 감정과 선택의 무게를 세밀하게 비춘다. 정의를 향한 마음이 언제든 또 다른 상처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편한 사실을 마주하며,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구분 너머에 놓인 사람들의 모습을 따라간다. 법과 윤리 사이의 복잡한 경계에 관심 있는 독자, 현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담아낸 소설을 찾는 독자에게 이 작품을 권하고 싶다. 또한 치밀한 추리 과정과 심리 묘사가 살아 있는 스릴러를 좋아하거나, 완벽하게 선하거나 악한 인물이 아닌 저마다의 이유를 가진 인물들의 이야기에 끌리는 독자에게도 깊은 몰입을 선사할 것이다. 결국 이 소설이 바라보는 것은 사건의 진실만이 아니다. 법과 정의의 언어로는 모두 담아낼 수 없는 인간의 선택과 그 책임의 무게를 파고든다.
✏️도서출판 황금가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