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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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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가족인가?

가족은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이른다고 국어사전에 기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가족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는데 의심을 품지 않는다. 그런데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든 소개를 받아 결혼까지 이어졌든, 남남이 만나 서류로 묶인 사이를 진정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아무리 죽고 못 살아 결혼한 사이라 해도 헤어지고 나면, 그러니까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이제부터 부부가 아니라는 증명을 하고 나면, 남보다도 못한 관계가 되기 십상인 것이 바로 부부 사이이기 때문이다. 서류로 증명되지 않은 사실혼의 경우에도 살림을 작파하면 생판 남이 되거나, 서로를 원수 보듯 하기 쉬운데, 한때 서로에게 그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 이였기 때문에 돌아서면 그 반향이 더 큰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서류상 이혼을 하지 않았더라도 부부라는 이름으로 생활을 지속하는 사람들이 모두 가족애로 똘똘 뭉쳐 사는 것도 아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경외도 존중도 배려도 남아있지 않지만 가족이란 울타리에 묶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어느날 배우자가 사망한다면, 이후 배우자의 부모와 형제들은 계속 가족인걸까? 죽기 전에 이혼했다면 확실히 남이겠지만, 배우자가 사망한 경우는 혼인관계 파기가 아니므로, 배우자의 가족을 계속 내 가족으로 여겨야하는 것일까?

 

대학교수로 어느 정도 자리 잡기에 성공한 오기는 아내와 여행을 떠났다. 불행히도 그 길은 둘 사이의 마지막 여행이 되었다. 아내는 죽었고, 오기는 눈을 깜박이는 것 외에는 몸을 움직일 수도, 감각을 느낄 수도 없는 처참한 지경으로 살아남았다. 열 살에 어머니가 자살하고, 결혼 전에 아버지까지 세상을 뜬 오기에게는 가족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장모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인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장모는 딸의 죽음을 뒤로 하고 사위의 재활을 위해 발 벗고 나선다. 나한텐 딸뿐이고, 자네한테는 나뿐일세. 그걸 알아야 하네. 죽은 딸의 방에 머물며 오기의 간병을 자처하고 나선 장모의 말은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인 사위의 회복을 위한 기원이라기 보다는 어쩐지 너의 회복은 나에게 달려있다는 엄포처럼 들려 내가 오기였다면 그야말로 오금이 저렸을 것 같은데, 도대체 그동안 오기 부부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처녀시절과 결혼 초기만 해도 오기의 아내에게는 재능도 있고,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비교적 화려한 직업여성들을 롤 모델로 삼던 아내는 그들처럼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만들지 못한 아내는 설상가상으로 엄마가 되는데도 실패한다. 이후 정원 가꾸기와 메모와 기록에만 집중하던 아내는 여행길에서 오기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자신은 그동안 괜한 메모를 해온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자신이 쓴 것은 한 인간에 대한 고발문 이라는 선포였다. 일찌감치 속물이 된 한 남자가 성공을 위해 어떤 술수를 부렸는지, 그런 그가 과연 누군가를 가르칠만한 입장에 있는 인물인지에 대한 것들을 세세하게 썼고, 그 기록을 남편의 학교나 지인들에게 보낼 생각이라는 것이다. 핸들을 잡고 있던 오기는 바로 그 순간 순식간에 무력해졌고, 어둠 속에서 커지는 구멍으로 빨려들었다.

 

깊고 어두운 구멍에 누워 있다고 해서 오기가 아내의 슬픔을 알게 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내를 조금도 달래지 못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아내가 눈물을 거둔 것은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지, 더 이상 슬프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209)

 

장모와 사위는 가족관계인가?

아내를 잃은 오기에게 남은 가족은 장모뿐이었다. 그건 몇 년 전 남편이 병사하고, 외동인 딸까지 떠나보낸 장모도 마찬가지다. 가족이라곤 세상에 단 둘뿐인 그들이 가족애를 발휘해 장모는 사지마비 지경의 사위를 일으키고, 장모 덕에 새 삶을 살게 된 사위가 장모의 남은 여생을 책임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면 무지막지하게 재미는 없을지언정, 딸이 없는 상태에서도 장모와 사위는 가족이다라는 미담으로 이해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소설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가족이라는 이름의 피상적인 관계에 대해서였을 터. 서류가 빠지면 부부도 더 이상 가족이 아닌 것이다.

 

과장된 우아함으로 외로움과 삶의 고통 따위를 감추고 살아오던 장모는 간병을 위해 딸의 방에 머물며 딸의 결혼생활이 불행했다는 것을 차츰 알아간다. 뿐만 아니라 설상가상으로 장모는 사위에게서 여자문제로 일찍 퇴직한 남편의 모습을 보는 지경에 까지 이른다(물론 이것은 내 생각일 뿐이고, 소설은 끝까지 오기의 관점으로 쓰였다).

여자들이 종종 자신의 삶에서 전환점이 되었다고 믿는 오기는 삶에서 자신이 잘못한 것에 대한 생각은 미치지 않는데, 그것은 그가 사경을 헤매는 지경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기는 무엇보다 자신 외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내가 자신의 치부를 만천하에 공개하겠다는 선언을 하자, 그제서야 비로소 어둠 속의 구멍으로 추락하는 자신을 볼 수 있었지만, 오기는 정작 아내가 빠져있는 구멍은 보지 못했다. 아내가 슬퍼할 때 그녀를 달래 줄 방법을 몰랐고, 달래줘야 할 이유도 몰랐으며, 달래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얼마나 많은 남편들이 오기와 같은지!). 아내는 제풀에 지쳐 자기만의 구멍으로 숨어들 뿐이었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십여 년 간을 살아오면서 한 번도 아내에게 깊이 공감하지 못한 오기. 그건 오기에게 있어 아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오기의 성공이나 기쁨을 아내 역시 제 몫으로 기뻐할 줄 몰랐고, 그랬으므로 그녀는 더더욱 고독해졌다.

부부는 가족인가. 물론 가족이다. 문제는 가족 간이라도 전적인 공감과 이해는 불가능할 터. 다만 배려만이 가족을 이루는 진정한 울타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배려하고 배려하고 또 배려하는 가운데에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가족일지라도 타자인 것은 분명하다. 오기는 비로소 울었다. 아내의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다.

 

 

* 알라딘 공식 신간 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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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6-05-17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서로 이해할 마음이 조금도 없이 자신의 잣대로 서로를 평가하는 사람들이었죠. 저는 조금 더 미스테리어스하게 읽었는데 해석이 명료하고 좋습니다

비의딸 2016-05-18 13:09   좋아요 1 | URL
어떤 새엄마가 아이를 앉혀놓고, `너와 네 아빠는 1촌이지만, 나와 네 아빠는 무촌이다. 부부는 촌수도 없을 만큼 한 몸인거다`라고 했다고 해요. 처음엔 그 얘길 듣는 아이가 느낀 충격이나 배신감, 아픔 그런것들 때문에 마음이 아팠었는데, 좀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가엾은 건 오히려 새엄만거예요. 얼마나 절박한 마음이었으면 어린애를 앉혀놓고 그런 얘길 했겠어요. 부부는 그만큼 아무것도 아닌 거죠. 이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장모와의 관계에서는 영화 `미저리`가 떠오를 만큼 긴장감이 넘치죠. 그런데 저는 장모와 보다는, 이전에 아내와 어땠을까가 많이 궁금해지더라구요. 분명한 것은 일방적인 건 없다는 거고.. 그렇다면 둘 사이도 그랬겠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