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를 씻기고 온 방에 튄 물을 닦을 때마다, 조금만 더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많이는 아니고, 조금만. 그건 욕심이 아니라 희망이라고 생각했다. 그 희망이 이뤄지려면 남편이 시험에 붙어야 했다. 시험에 붙을 때까지는 공부를 해야 했고, 공부를 하는 동안은 내가 돈을 벌어야 했다. 일이라면 이골이 난 몸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었다. 나는 남편이 허드렛일을 하는 게 아니라 그래도 상 앞에 앉아 책을 펼쳐 드는 사람이어서 좋았다.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다. 희망이 있다는 사실이 희망이었다.(29)

등신. 그것도 희망이라고.

자기는 써보지도 못한 돈을 빚으로 떠안고 고시원으로 쫓겨나 낮에는 공장에서 눈알이 빠질 듯 선별작업에 몰두하고 그나마 밤에도 호객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먹고 살아지는 처지에 감히 사랑을 하고, 아이를 갖고,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남편이 공무원 시험에만 합격하면 고단한 삶이 당장 달라질 것처럼 희망을 갖고, 동생들이, 엄마가, 남편이, 아이가 죽도록 희생에 희생만을 요구하는데도 말도 안되게 수동적인 삶을 살며,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거는 머저리, 맹추, 등신...

 

환영. 눈 앞에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는 것, 그러니까 한마디로 착각. 눈 앞에 일어나지 않는, 일어날지 알 수도 없는 환영을 믿으며, 자신과 오늘과 내일까지 거는 이런 이야기는 너무 식상하다. 그렇지만 환영일지라도 희망을 갖는 것이 잘못이 아니듯, 드문 일도 아니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모두 불확실한 내일을 위해 자신과 오늘을 희생한다. 단지 내일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로.

 

그러나 희망을 갖고 오늘을 희생했더니 과연 바램이 이루어졌다 라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희망을 이룬다라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으니까. 몸뚱이를 굴리지 않아도 먹고 살아지는 것을 말하는 건지, 남보다 나은 입성을 자랑삼을 수 있을 만큼 살게 되는 걸 말하는 건지, 삼십 몇 개월 할부로 뽑은 새 차를 굴려 축제다 맛집이다 찾아다니며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는 것을 말하는 건지를 적어도 나는 알지 못하니까.

아이를 씻겨도 물이 튀지 않는 욕실과 방의 구분이 명확한 집을 얻고 나면, 주방과 거실의 경계가 뚜렷한 집을 바라게 될 것이고, 그다음엔 아이와 부부가 개인적 공간을 확보할 만큼의 여유가 있는 집이 필요해 질 것이며, 그리고 그것들은 계속 욕심이 아닌 희망으로 남을 것인데, 과연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희망으로 여겨야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말도 안되게 불행한 이야기를 읽으며, 소소하고도 일상적인 불행을 잊고 싶었지만, 주인공처럼 이렇게 저렇게 몸을 써서 먹고 살지 않는다고 해서 다행이라 여기며 안도 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희망이란 환영에 홀려 사실은 를 전부 팔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각성을 하게 되었으므로.

 

이보다 더 끔찍할 수 없을만큼 신산스럽고, 그러느니 차라리 죽지 왜사느냐 묻고 싶은 주인공의 삶이지만, 김이설은 그걸 질척대지 않고 쓸 줄 아는 작가다. 늘어지는 감상을 거둬버린 건조한 문체, 꾸밈이나 더함없는 그 문체 때문에 이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읽고 읽고 또 읽으려 또다른 김이설을 찾는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쉰P 2016-05-04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시원에서 공부를 하며 비의 딸님의 저 글들이 남 일처럼 읽혀 지지가 않네요.
나 역시 등신은 아닐까? 하고 말이죠. 희망...무서운 희망, 시험만 붙으면 바뀔 것이라는 그런 무서운 희망.
저 역시 환영의 주인공처럼 그러고 있네요. 독서는 못 한지 꽤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 처지가 더 우울해 질 것이라는 직감은 들지만 말입니다. ㅎ
잘 지내시죠? ㅎ

비의딸 2016-05-04 16:48   좋아요 0 | URL
희망을 걸고 있는 한, 우리는 모두 등신일 수 밖에 없다는 `자조`입니다.
그런데 또 한편 생각해보면 희망이 없다면 살아지지 않을 것 같아요.
책 읽을 시간도 없이 고시원에서 공부하고 계시는 루쉰 님께 함부로 드릴 말씀은 아니라는 생각에 가슴이 싸해지네요. 이깟 리뷰에도 마음이 왔다갔다 하는데,
이야기를 지어내는 작가들은 글에 얼마나 많은 마음을 담아야할까요.. 읽는 사람이 아프지 않게, 마음 다치지 않게, 희망을 잃지않게...
그런데 저는 기질이 어두워서 그런지 소설들을 읽으면 희망보다는 절망을 겪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이어 김이설의 소설을 읽는 이유는 지금 제가 겪고 있는 소소한 불행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서에요. 그러니 저는 김이설의 주인공들이 겪는 절망 속에서 나름의 희망을 보고 있는 것이죠..
글쎄요.. 루쉰 님께 이 책을 자신있게 권할 수 있을지는 조금 망설여집니다.
왜 그런말 있잖아요. 임신했을 때는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먹으라는... ^^;;
더위가 몰려오는 데, 두루두루 잘 이겨내시길 바라요.

루쉰P 2016-05-07 01:07   좋아요 0 | URL
이걸 어쩌면 좋죠 ㅎ 여기 하루 밥 값은 3,800원 입니다. 이 책이 가까운 신림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4천원에 판매 되기에 비 오는 날 한끼 굶고 굳이 걸어가서 사고 말았네요 ㅎㅎㅎ
그리고 지금 다 읽었습니다. 비의딸님이 추천하지 않을 만한 소설이라 깊이 납득을 하고 있습니다.
윤영의 남편 모습에서 제가 보이고, 윤영의 모습에서 제가 보이네요. 하지만 전 기질이 워낙 희망 쪽으로 강한 편이라 그런지, 고맙게도 이 소설이 개인적으로는 글을 잘 쓰는 소설은 맞지만 제 기준으로 안 좋은 소설이네요 ㅎ
전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무얼 말하고 싶은 지 모르겠습니다. 깊은 절망? 아니면 삶의 구차함? 전 한국 소설을 무척 싫어합니다. 어쩌다 읽으면 죄다 이렇게 인물들은 하나의 방향으로만 정해져서 가고, 그리고 끝이 없는 나락으로 밀고 갑니다.
그게 마치 현실의 피할 수 없는 진실인 것처럼 말이죠.
전 이 작가가 옥탑방 계단에 앉아 미친 여자처럼 웃으며 최악만을 생각하는 윤영처럼 지금보다 더 지옥만을 생각하며 현실을 버티는 그런 모습을 사람들에게서 발견한 것인가 하고 생각합니다.
주제 넘지만 전 이 작가가 사람에 대해 그리고 그 진실에 대해 한 단면만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이 작가가 의도한 것이면 모르겠지만요 ㅎ
탈출구 없는 현실을 보여주며 도대체 무얼 바라는 것일까?란 생각도 들고 마치 선이 있으면 악, 어둠이 있으면 빛이 있듯이 그런 반사적 효과를 노리는 것인지 하는 생각도 들고 합니다. ㅋ
결론적으로 전 이 소설을 읽으며 이 작가에 대한 반발심이 일어납니다.
당신이 생각하고 묘사하는 것만큼 인간의 삶은 단순하지 않고 그리고 한 방향으로만 정해져 가지 않는다고 말이죠 ^^
제일 좋았던 부분은 윤영의 가족들이 잠깐 모여 공사판 여자도 함께 밥을 먹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작가의 마음이 지금의 뉴스들을 보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무조건 희망적인 것만 읽고 써야 한다는 것도 아니긴 합니다. 그러나 전 이 작가를 보면서 평생 정신병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망치고 말 것이라 여기다가 진짜 그렇게 망가져서 자살해 버린 아쿠타카와 류노스케가 생각이 나네요.
덕분에 어둠을 보니 빛이 보입니다. ㅎ 좋은 소설 이었습니다. 리뷰 감사합니다 ㅎ

비의딸 2016-05-09 11:39   좋아요 0 | URL
루쉰 님 말처럼 저도 한국소설이 좋진 않아요. 읽다보면 모두가 다 같이 절망을 향해 나란히 가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기 때문이죠. 주인공에게서 나를 본다거나 상황에 나를 넣어보기가 때론 겁이 날 만큼 절망스럽죠. 그런데 이번엔 못말리게 불행한 주인공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에 김이설의 소설을 택했어요. <오늘처럼 고요히>를 시작으로 <환영>을 읽고, <나쁜피>를 지나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은 끝까지 읽지 못하고 책을 덮었어요. 절망도 이쯤이면 피해망상이다 라는 생각이, 더이상은 지긋지긋해서 못읽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도 인간을 제법 좋아하지 않는 부류이긴 하나, 작가 김이설을 따라갈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렇지만 어쨌든 저는 말도 안되게 불행한 김이설의 주인공들을 보며 기운을 차렸다고 하면 이해하실런지요. 행복은 부족한 것을 채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무사태평한 나른함 속에 부족한 듯 차오르는 적당한 긴장감, 그래도 이만하면 살만 한 것 아니냐고 느낄만한 비교 우위의 위치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다소 천박한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결론을 얻었거든요. 소설을 읽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아마도 나를 대입시키는 것이아니라 무심한 가운데 스치듯 지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더불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