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낙원]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불안한 낙원
헤닝 만켈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04년, 스웨덴에서 호주로 가는 배에 요리사로 승선했던 한나는 배에서 만나 결혼한 항해사 남편이 두 달만에 열병으로 죽자, 때마침 정박한 동아프리카의 항구도시로 도망친다. 배에서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배를 떠난 한나는 항구의 싸구려 호텔에 들었는데, 그곳은 호텔로 가장한 매음굴이었다. 거기서 아이를 유산하고 몸을 추스르는 과정에서 흑인 창녀들의 도움으로 건강을 회복한 한나는 매음굴의 사장인 포루투칼 남자의 청혼을 받고, 아무런 애정이 없는 상태에서 결혼에 응한다. 남편과 아이를 잃고, 자신이 가야할 목적지도 막막한 열 여덟의 한나에게 부유한 남자의 청혼은 새로운 삶을 위한 돌파구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남편 아티밀리오는 결혼식 후 몇 주가 지나도록 한나와 관계를 갖지 못해 전전긍긍 한다. 아티말리오는 발기부전이었던 것인데, 실패하는 날들이 몇 주에 걸쳐 계속되자 남편이 눈에 띄게 절망한다고 한나는 느꼈다. 이에 한나는 매음굴에서 자신을 간호했던 창부 펠리시아에게 이 일을 의논한다. 펠리시아는 주술사의 도움을 받아 발기부전에 효과가 있는 약초를 이용해보라고 제안한다. 한나는 보름달이 뜬 저녁, 펠리시아가 건네준 가루를 남편이 먹을 망고에 몰래 바른다. 결혼 후 관계를 시도했던 그 모든 날보다 더 강하고 오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날도 역시 관계에 실패하자 한나는 남편의 발기부전을 극복하려면 더 강한 약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한다.

 

이튿날 잠에서 깨어보니 그는 죽어 있었다. 그녀 옆에 누워 있었지만 얼굴에 핏기가 없고 몸도 이미 식어 있었다. …… 그는 잠들 때와 똑같은 자세로 누워 있었다. 한나는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두 번째로 미망인이 된 것이다. …… 아티밀리오는 완전한 침묵 속에 죽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룬드마르크처럼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아내와의 관계에 또 다시, 마지막으로, 실패했다는 수치심에 죽은 것 같았다. (199쪽)

 

남편이 죽었다. 딴에는 남편을 도와 부부로서의 정을 쌓고 싶은 시도였지만, 남편이 운영하는 매음굴의 창부가 준 약물을 먹고 남편이 죽었다. 그런데 한나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는다. 남편은 수시로 흑인들의 말을 믿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흑인들이 할 줄 아는 것은 거짓말 뿐이라며 언제나 그들을 비방했다. 잠시나마 그녀를 간호했던 백인 간호사 아나 돌로레스도 흑인들은 열등한 존재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백인은 신이 부여한 권리로 흑인들에게 명령하고 벌을 줄 수 있다고 했다. 남편이나 아나 돌로레스의 주의가 아니었더라도 백인과 흑인 간에 진실이나 믿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한나는 보았다. 백인들은 편견과 탐욕으로 흑인들을 지배했고, 자신들의 땅에서 노예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흑인들은 침묵 뒤로 증오를 감추고 있다는 것을 한나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백인이나 흑인 모두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안과 불신 속에 살고 있음을 그녀는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는 남편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하지 않는다. 그저 그는 수치심에 죽은 것 같다고 생각할 뿐이다.

 

아티말리오의 죽음이 흑인 창부와 주술사의 음모에 의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창부가 준 약을 먹고 남편이 죽었는데, 그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는 한나가 나는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가난과 추위를 빼면 기억할 것이라곤 음산한 초록의 깊은 강기슭 뿐인 고향을 열 일곱에 떠난 한나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아프리카 땅에 뚝 떨어졌다. 아프리카며 식민지, 흑인, 노예 등에 대한 사전지식은 전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땅, 낯선 사람들로 둘러싸인 곳에서 자신과 같은 피부색의 사람들이 하는 말을 주의깊게 듣지 않을 수 있는 한나의 주체성이, 혹은 어떤 편견도 갖지 않는 자유로운 생각이 나는 너무나 놀라웠다. 나였다면, 펠리시아를 의심하지 않고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식의 의문은 백인 남편을 살해한 이사벨에게도 이어진다. 약삭빠른 처신으로 식민지에서 거부가 된 피멘타는 흑인 여자 이사벨과의 사이에 혼혈의 아이 둘을 두었다. 피멘타는 이사벨과 마치 결혼이라도 한 것처럼 한 집에 살며 혼혈의 아이들을 자신의 보석이라 칭하고 가정교사까지 두어 보살폈는데, 이는 아프리카의 백인 사회에서 우려나 노골적인 경멸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백인 아내와 백인 아이들의 존재를 안 이사벨은 광분하는 백인 아내 테레사를 제치고 남편 피멘타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다. 나는 이 장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과 아이들 외의 가정을 꾸민 남편에 대한 증오라면 백인 아내 쪽이 더 열렬하지 않았겠는가. 이사벨은 피멘타에게 흑인 애인으로서는 드문 특혜를 받으며 생활했다. 그로인해 피멘타는 백인 사회에서 경멸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벨이 품을 수 있는 증오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아프리카에 오기 전 자신의 나라에서 꾸린 가정이 증오의 원인일 수는 없지 않은가.

 

이밖에도 한나가 흑인 남자인 모세스와 사랑에 빠지는 장면이라던가, 아나 돌로레스가 침팬지 카를루스를 살해하는 장면 등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등장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을 배재한 간결한 문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나는 무리의 습관과 사회의 질서에 쉽게 동조하는 류의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나는 자신에게 보여지는 대로 보고, 자신이 믿는대로 믿었다. 남편이 또는 아나 돌로레스가 흑인들에 대해 아무리 악담을 해도 그녀는 눈으로 보지 않은 이상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한나의 눈에는 흑인도 백인과 꼭 같은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흑인들에 대한 백인들의 우월감은 남의 것을 착취하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가장 가난한 지역 출신인 한나는 스웨덴에서는 하녀였던 자신이 다만 피부색이 하얗다는 이유로 흑인들을 노예로 부릴 권리가 없다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포르투칼의 식민지였던 모잠비크의 불행한 역사를 소설로 담은 <불안한 낙원>을 보며 엉뚱하게도 나는 인간은 무리를 지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일까를 생각했다. 백인으로, 또는 흑인으로. 남성으로 또는 여성으로 구분하지 않고 독립적인 개체 하나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일까.

매음굴에서 돈을 내지 못한 손님으로 부터 아티말리오가 화대 대신 빼앗은 침팬지 카를루스는 인간처럼 옷을 입고 웨이터 노릇을 하다가도 불현듯 사라져 숲 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러나 카를루스는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항상 인간세계로 돌아왔다. 그런 카를루스를 보며 한나는 생각한다.

침팬지가 더이상 침팬지이기를 원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 인간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더 이상 지금의 자신이기를 원하지 않는 일이?(180쪽)

 

백인 남자를 죽인 이사벨은 정식 재판도 받지 못하고 지하 감방에 갇혀 짐승처럼 죽어간다. 한나는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이사벨을 구명하고자 하는데, 이는 백인 사회에 대한 절대적인 저항이였다. 그렇다고 그녀가 흑인들에 대해 착취를 일삼는 백인 사회의 질서를 무너뜨고자 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이사벨을 통해 자신이 납득지 못하는 공동체에 순종할 수 없는 스스로를 보았으며, 인간이 짓는 억지스러운 무리 대신 그녀 자신으로서의 삶을 살고 싶었던 것이다. 낯선 땅에서 백인으로도 흑인으로도 구속되지 않고 이질적인 존재로 침팬지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외로움을 달래는 한나는 자신이 속할 공동체를 갈망하지만, 결국 홀로 남기로 결정한다. 주워진 틀 안에서 정해진대로 생각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인 한나는 나비가 되어 날아간다.

 

다시 카를루스 생각이 났다. 그는 침팬지이기를 원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인간이 될 수는 없었다. 외로운 침팬지는 흰 웨이터 외투 속의 공허로 변해버렸다. 그녀는 무엇으로 변하고 있었을까?(185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五車書 2016-01-13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 친구로 등록된 회원이 별점을 매긴 책에 대한 리뷰를 반기면서 단숨에 읽었습니다. 책 내용을 요약해놓은 것 같아서 굳이 책을 따로 읽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

비의딸 2016-01-14 10:05   좋아요 1 | URL
윽... 스포가 왕창인 리뷰군요. 책을 따로 읽지 않아도 될 정도라니,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제가 쓴 리뷰만으론 이 책을 이해하기 많이 부족하답니다.
무엇보다 저는 서구열강이 아프리카를 착취하는데에 집중하지 않고, 개인의 정체성에 포인트를 두고 읽었거든요. 오차서 님이 만약 <불안한 낙원>을 읽으신다면 다른 관점으로 이해하시지 않을까요.. 모든 소설은 이야기를 파악하는데서 아니라, 나한테 어떻게 해석되어지는가에서 재미를 느끼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ㅠ.ㅠ 리뷰만으로는 어느 책을 전부 이해하긴 힘들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