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 다락방의 책장에서 만난 우리들의 이야기
이유경 지음 / 다시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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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쓰고 싶다, 나는

글을 잘 쓰고 싶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읽어주는 글을 쓰고 싶다. 어쨌든 글을 쓰고 오픈해두는 의미는 '내 글 좀 읽어달라'는 얘기니까. 그래서 종종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읽는다. 그렇다고 전문적인 글쓰기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글쓰기 전문가가 되고싶다거나 작가를 꿈꾸는 것은 아니니까. 다만 너무 엉망으로 아무런 체계도 없이 두서없는 글을 써서는 안되겠기에 나보다 먼저, 더 많이, 더 잘 쓰는 사람들의 글쓰기 방식을 참고하고 싶은 것이다. 혹, 그들은 내가 모르는 어떤 비책이라도 알고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최근에 읽은 책으로 기생충 박사가 쓴 <서민적 글쓰기>가 있다. 그는 박사라는데, 그것도 남들이 별로 알고싶어하지 않는 분야의 전문 박사라는데, 의외로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즐긴다(인문학을 중요시 하지않는 우리나라에서 한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을 업으로하는 이른바 전문가들은 왠지 일반적인 책읽기나 글쓰기를 비롯해 다방면에 잡다한 관심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내 생각과 다르게 <서민적 글쓰기>의 지은이 서민은 본업 외에 컬럼니스트를 겸할 정도로 글을 잘쓴다. 책에서 그는, 서평은 자기 느낌을 자유롭게 쓰는 것이고 정해진 틀은  없다며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의 한부분을 인용했다.

 

"나는 책에 대한 글을 쓸 때 줄거리를 요약하지도 않고 형식을 갖추지도 않는다. 작가가 의도한 것과 무관하게 사소한 부분에 꽂히기도 하고, 나의 경험과 비교하기도 한다. 내가 쓴 글은 순전히 나의 감상이고...."

바로 이 문장을 읽으며 이유경의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가 "급" 읽고 싶어졌다. 나는 누가 뭐래도 책을 읽고 느낀 것들을 글로 쓰고 싶은 거니까. 내 느낌을 잘 정리해서, 그걸 읽는 사람들이 내가 느낀 것과 같은 것을 느꼈으면 좋겠으니까. 그래서 이왕이면 그 책을 꼭 읽었으면 좋겠으니까. 세상이 아무리 험해도 책을 읽는 이들이 많을수록 사람과 삶에 대한 생각은 깊어지고, 딱 그만큼 세상은 더 부드러워질테니까.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3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연간 독서량은 9.2권으로 OECD 회원국 중 꼴찌 수준(2015.10.18. 한국일보)이라고 한다. 한 달 독서량이 한국 성인의 연간 독서량을 웃도는 나는 제법 책 좀 읽었다고 자부한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를 주욱 훑어보고는 좀 의아했다. 그녀도 나도 소설을 주로 읽는데, 의외로 내가 읽지않은 책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떤 책들은  제목도 작가도 낯설어 당황스럽기까지 했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이 책이 더 반가웠다. 그녀가 읽어주는 책들을 읽고, 아직 읽지 않은 새로운 책들을 읽을 수 있을테니.

SF, 스릴러, 추리물, 청소년 문학, 고전 문학, 현대 문학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하는 그녀의 책읽기 스타일은 소설이란 소설, 하다못해 그림책까지 섭렵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책을 읽어도 글쓰기 스타일은 늘 한결 같았는데, 서민은 <서민적 글쓰기>에서 이유경의 글쓰기 스타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유경은 책의 사소한 부분을 가지고 리뷰를 쓰는 걸로 유명하다(<서민적 글쓰기>, 232쪽)."

 

지은이 이유경과 내가 같이 읽은 많지않은 책들 중, 모신 하미드의 <주저하는 근본주의자>가 있다. 이 책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미국인으로 살아가던 파키스탄 청년이 9.11 사건을 목격하고 자신은 미국인이 아닌 이방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후 파키스탄이 전쟁의 위기에 놓이면서 자신의 위치에 갈등하던 청년은 파키스탄으로 돌아가 근본주의자가 된다. 서구의 시선에서 바라본 자신의 조국을 비롯한 이른바 제3세계는 왜곡되고 뒤틀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를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그것은 '미국이 세계에서 행동하는 방식에 대해 늘 분개하고 있었다'는 찬게즈의 고백이 바로 나의 그것과 같기 때문이다. 나 역시 줄곧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근본주의자가 될 수 없고, 찬게즈는 그 길을 택했다. 근본주의자가 된 찬게즈는 정체불명의 미국인에게 자신이 근본주의자가 된 그간의 내력을 들려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내용인데, 그의 고백을 듣는 익명의 미국인은 아마도 정보원이거나 킬러인듯 주머니가 권총으로 생각되는 물체로 불룩했다.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도 위태위태한 장면들이 안타까웠고, 힘의 논리에 희생되는 사람들을 상상하는것이 가슴이 아팠으며, 그리하여 찬게즈 같은 사람들이 근본주의자가 될 수 밖에 없는 내력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만큼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랐다. 그랬기때문에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를  이 책에서 발견하곤 무척 기뻤는데, 미국이 세계에서 행동하는 방식 운운하며 전투적인 감상을 늘어놓았던 나와 다르게 그녀가 쓴 글의 제목은 "나의 공간을 지켜주세요".

이유경은 찬게즈가 사랑한 미국인 여자에 집중했고, 그녀는 찬게즈에게 "당신은 사람들에게 공간을 줘요."라고 말했다던가. 나는 도대체 기억도 나지 않는 대목이니, 이유경의 감상글이 얼마나 새롭게 읽히던지. 그녀는 테러니, 제3세계니, 불편한 진실이니를 쓴 이 아슬아슬한 책을 읽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공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예의바름, 아름다움 뭐 그런것에 대해 쓴 것이다. 이 감상글을 읽고 나는 다소 놀랐다. 하나의 책을 읽고 나누는 감상은 그 책을 읽은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지 않은가에 대해. 그리고 그것이 가장 그녀다운 그리고 가장 나다운 일이라는 것에 대해.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에는 이유경처럼 글 잘 쓰는 비책 나온다. 잘난 척하지 않고 아는 척도 하지 말며, 읽는 사람이 헛갈리지 않게 쉽게 써야 하고, 무엇보다 쓴다는 행위를 어여삐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녀만의 글쓰기 비결이며, 매력이기도 하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녀의 개인적인 감상글에 매혹되어 몇 권의 책을 주문할 수 밖에 없었음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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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11-05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의딸님은 글을 잘 씁니다. 진짜예요. 저는 책에 대한 감상을 적당한 분량(너무 짧지도 않고, 너무 길지도 않은)으로 풀어내는 서평이야말로 잘 쓴다고 생각해요. 비의딸님의 글이 제가 선호하는 서평의 조건을 충족하고 있어요. ^^

비의딸 2015-11-06 10:10   좋아요 0 | URL
오홋... 부끄부끄하면서.. 기분이 좋으면서.. 기운도 나면서.. 다시 부끄부끄하고.. ^^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계속해 볼 용기도 생기네요.

chsnyoo 2015-12-14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 이유경이 후반부에서 김유경으로 바뀌었어요. 수정이 필요하네요.

비의딸 2015-12-15 10:46   좋아요 0 | URL
헉..이런 중대한 실수를... 꼼꼼히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heartvibrator 2016-09-09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늘 회사에서 일은 안하고, 하루종일 비의딸님 글 읽었네요.
이 리뷰에 쓰는게 좋은 거 같아서 남겨요~ ㅋ

글이 잘 읽혀요~ 너무 좋네요^^
이렇게 담백하면서,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문장들이 넘 부럽네요.ㅋ
배우고 갑니다.

자주 놀러올게요!

비의딸 2016-09-19 11:20   좋아요 0 | URL
앗.. 감사합니다. 서재에 글을 남긴지도 제법 된 것 같은데 이렇게 계속 읽어주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에 새삼 놀랍기도 하고, 또 함부로 글을 남겨서는 안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오래 쉬고 출근했더니 머리가 멍... 그냥 또 잠이나 잤으면 싶으네요.
하늘이 참 예뻐요.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