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일기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겨울일기>는 64세의 폴 오스터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적은 기록이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당신'으로 지칭하며, 지나온 시간을 회상하는데 그 기록은 시간순이 아니다. 오히려 기억나는 순서라고 보는 것이 맞다. 하나의 줄기를 잡고 시간을 거슬러올라가며 기억나는 데로 적은 자유로운 형식의 글인 것이다. 때문에 이번에(미국에서는 2012년에, 우리나라에서는 2014년 1월) 출간된 책 제목이 '일기'인 것은 너무나도 온당하다.

 

하나의 줄기로 '흉터'라거나, 자신이 살던 '집', 혹은 '어머니' 등을 떠올리는 회상 속에서 오스터는 때로는 열살의 아이로 되돌아가 한여름의 마당에 서 있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육신의 쾌감에 몸을 맞기는 청년이 되는가 하면, 다음 장면에서는 개미둑에 쪼그리고 앉아 넋을 놓는 서너살의 꼬마이기도 하고, 바로 그 다음 순간에는 갑작스런 어머니의 죽음에 공황장애를 겪는 장년의 오스터가 되기도 한다.

 

언제 어느때의 장면이건 그 세밀한 기억력에 나는 몹시 놀랐는데, 작가는 꼼꼼한 관찰력뿐만 아니라 치밀한 기억력까지 갖춘 존재인가 보다 싶다. 64세에 열몇 살, 혹은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서너 살 시절의 장면까지를 기억하는 것이 무척 놀라웠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기억력은 오스터 특유의 세밀한 묘사력에 비한다면야 그다지 놀라운 것도 아니다. 언제 어느때, 어떤 일을 기억하건 꼼꼼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그건 기억이라기 보다는 작가다운 창작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나'를 담고 있는 그릇인 '몸'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라고 늙으며 종래에는 '죽음'에 이른다. 오스터는 이를 '당신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일' 이라고 칭하는데, 이때의 '당신'은 오스터 자신을 가르키기도 하지만 책을 읽는 '독자'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책을 읽으며 나는 자주 나의 어린 시절과 아직 오지 않은 노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어느 모로 보더라도 인생의 종착역이라고 밖에는 여길 수 없는 회색빛의 겨울로 대변되는 노년의 시기는 대작가 오스터에게도 역시 낯선 일이다. 그 낯섦에 오스터는 다소 당황스러워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오스터는 순차적으로 노화하는 과정을 다 겪고 난 뒤 맞는 죽음은 얼마나 평화로운 일인가에 대해 얘기한다. 물론 인간은 언제 어느때고 얼마든지 죽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은 '기적'일 수 밖에 없고, 지금 이순간  죽지 않고 살아있는 모든 인간들은 행운아들이다. 그러나 그런 행운아들에게도 죽음의 순간은 여지 없이 다가올 것이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자신의 삶에 대해 회고해야 한다. 아무것도 아닌 채로, 있었던 적도 없는 것처럼 사라지기 전에.

 

이제 너무 늦기 전에 말해 보라. 그러면 더 이상 할 말이 남지 앟을 때까지 계속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아니면 당신의 이야기는 잠시 밀어 두고 당신이 살아 있음을 기억할 수 있는 첫날부터 오늘까지 이 몸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살펴보자. 감각적 자료들의 카탈로그랄까. '호흡의 현상학'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되겠다. (p.7)

살아오면서 무수하게 겪는 크고 작은 압박과, 고통과, 슬픔과, 기쁨, 환희, 놀라움, 혹은 무미건조함을 다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가 제아무리 뛰어난 작가일지라도 말이다. 그렇지만 제 몸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과 제 정신에 쌓이는 감정의 순간들을 한시라도 소홀히 하지 않는 사람만이 진정 자신의 삶을 살았다고 말 할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그러니 매 순간의 '나'를 느끼는 '나'는 마땅히 행복하리라. 비록 내일 당장 죽게 된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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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11-20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예순에도 나이 열에도 나이 서른에도
참말 언제나 오늘은 기적이지 싶어요

비의딸 2014-11-20 11:06   좋아요 0 | URL
참말.. 참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