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남자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7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이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것은 행운일까? 서른다섯의 평범한 한 남자가 먼 친척으로 부터 예기치 못한 유산을 물려 받는다. 직장일과 평범한 일상에 신물이 날 대로 난 그는 당당하게 직장을 그만두고, 오랫동안 지내온 더러운 호텔을 떠나 새로운 아파트를 얻고 그야말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이 일은 정말 행운인걸까?
 
이제 밥벌이는 끝났다. -34쪽
개인적으로 내 생각을 말하자면 이 일은 행운 맞다. 직장 혹은 일을 듣기 좋은 말로 자기실현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사실상 일을 하는 이유는 밥벌이를 위해서가 아니던가. 그런데 밥벌이를 위해 더이상 시간을 버리지 않아도 되는 삶, 삶을 지속하기 위해 더이상 나를 죽이지 않아도 되는 뜻하지않은 유산상속이라니.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진다면 그것은 마치 로또 복권에 당첨된 것과 같은 행운일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에게도 그일은 행운이었을까. 결론적으로 보자면 주인공에게도 역시 예기치못한 유산상속은 행운이었다. 그러나 그는 행운을 거머쥐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 대신, 그 행운으로 인해 더더욱 무기력해지고 나태해졌다. 이렇게 본다면 이것은 주인공에게 전혀 행운이 아닌듯도 하다.
 
그러나 주인공은 유산이 아니었더라도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처럼 삶에 목적도 꿈도 없이 이미 충분히 권태로웠지만, 유산을 받음으로써 더 더욱 방황하게 된다. 아니, 방황이라는 말은 사치스럽다. 차라리 방황했더라면 삶이 그토록 권태롭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은 매일매일이 일요일인듯한 여유를 찾아 관찰자의 시선에서 주변의 모든 것을 본다. 그러나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삶은 무력하다. 나는 행동하지 않고, 상자 안의 피조물들을 들여다 보는 것 같은 그의 삶은 세상 모든일에 스스로 무력하기를 택한다.
주인공은 여행을 떠나볼 생각을 하지만 그것은 나중일이다. 주인공은 우선 안정을 취하고 싶다. 옛 직장 동료를 찾아가볼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귀찮다. 주인공은 누구와도 무엇과도 관련없이 그렇게 무심하게 삶을 관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의아스러운 것이 세상일에 무심하고, 권태로운 주인공이 죽음만은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이토록 우울하고 무력한 상태라면 차라리 죽음을 불사하는 것이 말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일을 하지 않으면 무력해지고, 지레 늙는다더니 정말 그럴까? 지금 내생각으로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럽기만 하다. 마음껏 잘 수 있고, 마음껏 책 볼 수 있고,  마음껏 여행 할 수도 있고, 마음껏 멍 할 수도 있고, 마음껏 무력 할 수도 있고, 그 모든것을 마음 내키는대로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는데 오히려 무력해지다니, 지금의 나로서는 이해가 되질 않는다.
주인공과 같은 행운이 나에게 벌어진다면,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내 삶터를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그 런데 지금 당장 내가 하고 싶은일은 멍청하게 있는 것이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않고 멍청하게, 되는대로 시간을 보내면서... 어쩌면 나도 주인공과 다르지 않겠구나, 이제야 생각하게 된다.
 
이오네스코의 <외로운 사람>은 권태에 관한 소설이다. 회한과 권태로 무력해지는 주인공을 보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고도 말 할 수 있는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가 떠올랐다. 허먼 멜빌은 <필경사 바틀비>를 통해 권태보다는 권위와 관습, 규범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믿어의심치 않는다. 또  곤차로프의 <오블로모프>도 떠올랐는데, 오블로모프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울 '권태로운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들 삶이 권태롭지 않을까. 여유가 있다고 해서 삶이 권태로워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평이한 반복을 좋아하지 않는 생물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권태롭기 때문에 맛있는 음식을 탐닉하고, 권태롭기 때문에 여행을 한다. 권태롭기 때문에 사랑을 하고, 또한 권태롭기 때문에 이별을 한다. 뿐만 아니라 권태롭기 때문에 싸움을 하고, 권태롭기 때문에 때로는 노력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나의 생각은 절반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외로운 남자>나 <오블로모프>는 권태롭기 때문에 무력했고, 무력했기 때문에 여행도 사랑도 싸움도 노력도 모두 포기한 채로 스스로를 외로움의 감옥에 가두워 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독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외로웠다. 외로움을 박차려는 의지조차도 무력한 채로.
 
역시 <외로운 남자>는 <구토>와 <오블로모프>의 영향을 받은 소설이라는 역자의 해설이다. 아직 읽지 않은 사르트르의 <구토>를 읽어볼 생각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쉰P 2014-07-29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로운 남자는 저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주네요. 공부에 지치거나 잠시 방심을 하면 외로운 남자의 주인공처럼 삶을 관조하거나 멍 때릴 때가 많아요. 권태로워 진다고 할까요? 그리고 취직을 하고 싶어도 취직이 안 되어서 1년 동안 어쩔 수 없이 쉰 적이 있었어요. 쉰다는 게 절대 좋지가 않았어요. 매일 매일 똑같은 일상에 잠도 늘고 이거 왜 살고 있나 하는 생각도 많이 들더군요.

권태롭게 되다 보면 무력해 지는 건 순식간이었어요. 언젠가 봤는 글에 '육체적 죽음보다 정신적 죽음이 더 무섭다'고 쓴 걸 봤는 데, 현대인들은 정신적인 죽음이 더 크다고 했었어요. 그 말을 읽으며 실감을 했죠.

쉬는 건 딱 하루가 좋을 수도 있어요. 한 이틀 삼일 지나가면 권태로움이 온 몸을 잡아 먹어요. 게다가 인생의 목적이 없는 삶은 갈 곳 모르는 배처럼 인생의 바다에서 정처 없이 떠 다니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필경사 바틀비>를 참 좋아해요. 그는 무력하다고 볼 수는 없고, 뭐랄까 루쉰 선생의 말처럼 저항 정신이 투철하다고 할까요? 본인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지속하려고 하는 의지. 옆에 사람들이 봤을 때는 정신병자와 비슷할 정도의 강박관념과 같은 자리에 대한 집착이지만 바틀비의 내면에 있는 그런 집념과 같은 모습을 저는 참 좋아해요. 짠 하기도 하고요.

저는 비의 딸님이 서재에 글 올리시는 데 댓글 없으시면 권태로울까봐 ㅋㅋㅋ 이렇게 글도 남기고 ㅋㅋㅋ

전 목적이 있는 삶이 좋아요. 행여 목적이 없을 순 있어도 자신의 죽음에 대한 극복, 그리고 뭔가 어제 보다 나아질려고 하는 자신에 대한 투쟁(제대로 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그런 것들에 대해 항상 갈구해요.

나름 살아오며 시간들을 돌이켜 보면 권태로울 때 처럼 불행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나저나 비의 딸님의 서평이 올라오면 올 수록 매끈해지고 아주 물 흐르듯이 문장들이 이어지네요. 역시나 많이 써야 되는 것 같아요. ㅎ

공부를 하느라 책을 못 읽고 있지만 비의 딸님의 서평을 읽으며 대리만족을 하고 있습니다. ㅎ 다음 책도 기대할께요 ㅎ

비의딸 2014-07-29 17:40   좋아요 0 | URL
힉... 서재에 댓글이 없던 것은 늘 있는 일인걸요, 없던 댓글이 길게길게 달리니까 새롭고 긴장이 되긴 하죠. 그렇지만 없더라도 권태롭거나 하진 않을 거예요. 아마도 ^^^

음, 전 늘 가끔 자주 권태로운 것 같아요. 현재에 별로 만족을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그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마 이런 감정은 권태라기 보다는 지루한 것이라고 표현해야 하는 걸까. 어떻든 저한테는 변화가 좀 필요한 것 같아요. 예를들면 짧게라도 여행을 간다든지 하는.

개인적으로 저는 책을 안 읽는 건 괜찮아도 못 읽는 건 좀 견디기 힘들 것 같네요. 그래도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