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스테인 2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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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자이며 이야기를 끌어가는 화자인 작가 네이선 주커먼은 예순다섯 살의 작가로, <미국의 목가>에도 등장했던 인물이다. <미국의 목가>에서도 역시 주커먼은 작가이며, 작품의 화자였는데 이는 또다른 책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이 세권은 일종의 삼부작으로 여겨진다고.
<미국의 목가>는 이미 읽었지만,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는 앞으로 읽어볼 참이다.
 
아테나 대학의 교수인 콜먼 실크는 개강하고 한번도 수업에 참석하지 않는 두 학생을 '유령들'이라는 의미의 spooks로 지칭했다. 그러나 spooks라는 단어에는 '검둥이들'이라는 또다른 의미가 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수업시간에 한번도 등장하지 않은 이 두 학생이 흑인으로 밝혀져 콜먼 실크는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지탄을 받게 되고, 그 일로 결국 대학을 떠나게 된다. 콜먼이 인종차별주의자로 매도당하고 자신 역시 공산주의자로 몰리게 된 충격으로 아내 아이리스가 갑자기 죽자, 이에 분개한 콜먼 실크는 그 지방에 은둔해 글을 쓰고 있는 작가 네이선 주커먼을 찾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미국의 목가>에서도 삶에서 많은 축복을 받은 것처럼 여겨지는 스위드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닥친 느닺없는 일로 불행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네이선 주커먼을 찾아오고, 네이선 주커먼은 콜먼과 스위드의 고백과 주변사람들의 증언, 상황의 추리 등을 통해 콜먼과 스위드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간다. 
 
계획한 것은 아니였지만 공교롭게도 <휴먼 스테인>1권을 읽고, <미국의 목가>를 읽고 난 후에 다시 <휴먼 스테인>2권을 읽은 나는, 두 이야기의 진행이 많이 비슷한 것에 다소 당황했고, 두 이야기를 섞어 이해하기도 했는데 그렇더라도 전혀 무리가 없을만큼 두 이야기는 전혀 다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한 맥락의 이야기였다.
그뿐아니라 <휴먼 스테인>까지 읽고 나서야 오히려 <미국의 목가>를 이해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미국으로 이주한 유태계 이민 2세대인 필립 로스는 유태인들의 선민의식, 폐쇄성, 편협한 종교관  따위와 미국 중류 사회의 고질적인 개인주의와 자기만 옳다는 편협성과 아집을 <미국의 목가>와 <휴먼 스테인>을 통해 고발하고 있는데, 유대인이든 미국인든 흑인이든 그 모든 것은 결국 인간이라는 하나의 종으로 귀결되며, 본시 인간은 알 수 없는 것, 알지 못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으며 선명하게 구분되지 않는 것까지도 억지로 분류하기를 좋아하고, 그 분류 또한 그 자체에 의한 고유의 것이 아닌 보는 사람 자기 자신에 맞춘 것으로 오해로 시작해 오해로 끝나기 쉬운 것이 인간의 시선이며 삶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다는 것은 사람들을 오해하는 것이고, 오해하고 오해하고 또 오해하다가,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본 뒤에 또 오해하는 것이다. -<미국의 목가> 1권, 62쪽
인종차별주의자로 몰려 대학교수를 그만두고, 아내까지 잃은 콜먼은 아이러니하게도 흑인이다. 피부가 하얀 흑인이라니 동양인인 나로서는 좀 의아스럽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백인과 다르지 않은 흑인도 있을 수가 있는가 보았다.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제임스 웰든 존슨의 <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이라는 책도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콜먼은 흑인이지만 인종세탁을 했다고 해야 하나 백인으로 군대에 다녀오고, 그 이후로도 자신이 흑인이라는 것에 대해 구지 말하지 않고, 가족과의 인연을 끊음으로써 자신이 흑인이라는 것을 거부하고,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흑인으로서의 유전적 성향에 가슴 졸이면서 그의 형 월터의 말처럼 백인보다도 더 백인처럼 지내오다가 단 한번의 실수 아닌 실수, 오해 아닌 오해로 반평생을 지나온 삶의 터에서 추방되고, 갑작스럽고도 수치스러운 죽음을 맞게 된다. 죽기전 일흔 한 살의 콜먼에게는 그의 나이에 딱 반밖에 되지 않는 문맹의 애인 포니아 팔리가 있었다. 
더더욱 재미있는 것은 콜먼의 죽음의 장면에까지도 오해에 오해가 더해지고, 각색에 각색이 더해져 더더욱 추잡한 추문으로 퍼져나간다는 것이다. 한 사람을 오해하고 매도하는 데는 충분한 근거도 어떤 동기도, 논리도, 이론도 필요하지 않다. 그저 꼬리표 하나면 족한 것이다.  그렇다면 콜먼은 그런 인간의 속성으로 부터 자유로웠을까? 네이선 주커먼은 또 어떨까? 그렇다면 나는?
그러고도 경건한 척, 고인을 조문하는 척, 유족을 위로하는 척하는 장례식 모인 사람들이라니. 
 
일단 소문이 퍼지면 그게 사실로 굳어져버리기 마련이다.-2권, 169쪽
필립 로스는 굉장히 할 말이 많은 작가인 것 같다. <미국의 목가>에서도 그랬지만 <휴먼 스테인> 역시 주인공의 삶의 괘적뿐 아니라 주변인물들의 과거와 현재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는데 그것 역시 주인공의 이야기만큼이나 몹시 디테일하고 흥미롭하다. 누구든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고 지나온 삶의 괘적은 지금의 행동을 하는데 전혀 무의미 하지 않은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 포니아 팔리의 전 남편이었던 래스터 팔리가 하얀 눈이 덮인 아르카디아 산정 호수에 여나무개의 얼음구멍을 뚫고 앉아 낚시대를 드리우고 무심한듯 공포스럽게 던지는 질문처럼 너의 삶에는 어떤 흠이, 어떤 얼룩이, 어떤 오점이 있느냐고 묻는 로스의 질문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다음 번 읽을 로스의 책으로는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가 좋을까 <에브리맨>이 좋을까, 조금 고민된다. 두 권 다 먼저 읽고싶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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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4-07-23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작가가 참 읽고 싶었는 데 그러지를 못 했어요. 말콤 x 라든가 리처드 라이트 등 흑인 작가나 그들의 삶에 관심이 많아서 뭐랄까 동질감 느낀다고 할까요? ㅎ 그런 류의 책을 참 즐겨 읽거든요. '보이지 않는 인간'이란 책도 읽었던 기억이 나요.

루쉰 선생이 평범한 민중들에게는 그 어떤 무기도 없지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하나의 단칼의 무기가 있다고 하는 데 그게 '소문'이라고 하셨거든요. 전 예전에 기독교 대학을 다녔거든요. 거기서 다닐 때 불교 서적을 들고 다니며 봤는 데 조계종 큰 스님 아들이라는 소문이 퍼진 적 있어요. 그래서 목사님이 저를 참 싫어 하셨어요. 제가 별 다른 액션을 취한 것도 아니고 채플 때도 기독교에 대해 정확히 알고 싶어서 맨 앞자리에서 열심히 듣고 했거든요.

여러 질문들을 드리곤 했었는 데, 목사님 입장에서는 제가 착실한 불교 신자로서 신을 모독하는 질문을 하신다고 오해 하셨나봐요. ㅎ 암튼 소문은 꽤 무서워요. 그게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만드니 말이죠.

로스의 책 읽으시고 또 올려주셔요. 공부하느라 독서를 많이 못하는 데 비의 딸님의 일목요연하고 핵심을 적어내는 서평을 읽으며 대리 만족을 하고 있으니 말여요. 제가 참 부러워하는 글쓰기여요. 저도 이렇게 정확하게 짚어내고 간결한 스타일리스트 적인 글을 쓰고 싶어요. 주저리 주저리 한 없이 늘어지는 글 쓰는 게 습관이 되어버려 간결하고 임팩트 있는 글이 잘 되지가 않아요. ㅎㅎㅎㅎ

비의 딸님 장마 입니다. ^^ 아무리 비의 딸이라고 하셔도 비 조심하셔야 해요. ㅎ

비의딸 2014-07-23 17:55   좋아요 0 | URL
ㅎㅎㅎ 비가 오니 오셨군요! 엊그제 밤엔 천둥과 번개가 제법 요란하더라구요, 저는 그렇게 오는 비 참 좋거든요.. 비로 고생한 기억이 없어 그런가봐요, 그렇지만 만일 비로 인해 위험이 닥친다면 아마 제일 먼저 도망가겠죠. 그런거 많이 느껴요 요즘에.
책상물림이라고 하잖아요. 경험없이 책으로만 본 것, 들은 것 그래서 겁없이 막 덤벼들지만 막상 큰일이다 싶으면 무서워하고, 그런 내 모습에 절망하고, 그래도 결국 도망치고....

내가 느낀걸 더 많이 쓰고싶은데 생각한 걸 그대로 옮기는 것이 힘들어요. 그래서 매번 글이 또각또각 끊어진 느낌이죠. 전 그게 너무 싫은데, 루쉰님은 그걸 간결하다라고 표현해 주시네요. 저는 오히려 루쉰님처럼 꼼꼼하게 적는 글을 배우고 싶어요. 글을 잘 쓰는 첫번째가 본 것, 느낀것을 그대로 옮기는 것 아니겠어요..
음, 누구 보라고 적기보다는 내가 읽고 생각한 걸 정리하는 데 더 많이 비중을 두겠다하면서 위로하죠.

전 참 소통이 힘든 사람인 것 같아요. 비를 대할 때처럼 사람도 쉽게 대하지만, 절대 마음은 안열거든요. 사람처럼 무서운 게 없고, 사람처럼 슬픈게 없고...

장마답게 씩씩하게 비가 왔으면 좋겠어요. 찔끔거리면서 끈끈하거 매우 안좋거든요. 공부 즐겁게 하시고요, 루쉰님도 비 조심... 그리고 개 조심..? ㅎㅎㅎ

루쉰P 2014-07-28 09:04   좋아요 0 | URL
비가 오지 않아도 옵니다. ㅋ

저도 비의 딸님과 비슷한데요 뭐. 무서워하고 절망하고 도망치고 이런 거요. 누구나 다 똑같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 너무 자기에 대해 실망하지 마세요.

전 꼼꼼한 게 아니라 정말 너저분 하게 길게 쓰는 것 뿐이에요. 아주 읽는 사람 곤란하게 만드는 글쓰기죠. ㅋ 사람의 모습이 다르듯이 각기 글 스타일이 다른 건 좋은 것 같아요. 다 저와 같이 글을 쓴다면 읽기 힘들 것 같아요. ㅎ

ㅋㅋㅋㅋ 저도 35년 평생 사람들과 소통에 담을 쌓고 살아온 사람이에요. 마음을 안 여는 게 나쁜 건 아니에요. 마음을 열 만한 사람이 생기면 그 때 여셔도 될 것 같아요. 무리해서 억지로 열어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얼마나 세상에 그냥 겉으로만 만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사람들과 관계를 가지는 사람이 많아요. 전 그런 만남이라고 한다면 마음 안 열고 사는 게 편하다고 봐요.

대신 사람을 무서워하시면 안 되요. ㅎ 나쓰메 소세키였는 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풀잎'이라는 소설에서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이 힘들다고 아무리 해도 사람이 없는 곳은 무인도 밖에 없고, 그런 곳에서 살 수도 없다. 우리는 싫던 좋던 인간들과 떨어질 수는 없다고 쓴 걸 본 기억이 나요.

비의 딸님이 겁 없이 막 덤벼든다고 하셨잖아요. 사람은 겁없이 그냥 덤벼들어 이쪽에서 무서워하는 티를 내면 안 되요. ㅎ 어차피 혼자 살 수는 없는 사회이니 저도 되도록이면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그들이 저를 무섭게(?) 하고 있어요. 흠...별로 좋은 건 아닌 듯...

사람과의 관계처럼 복잡하고 어렵고 머리 아픈 것 없다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인정 받으려고 공부를 하고 그러는 것이진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곤 해요.

젼 복잡할 땐 저만 생각하고 저만 봐요. 내가 좀 더 깊이 있게 파 내려 가는 것, 내가 맡은 거에 있어서 더 철저하게 하는 거 등등, 사람과 복잡할 때 저를 파내려 가요. 물론 뭐 오타쿠나 그런 건 아니구요. ㅎ

저를 탐구하고 연구하는 거 그런 거에 재미를 느끼고 그래요. 좀 변태 같나요? ^^;;ㅎ

비의딸 2014-07-29 17:41   좋아요 0 | URL
제 스타일로 짧게 답해서, 변태 안 같아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