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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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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 책이 5월의 광주 이야기라는 것을 알지 못한채로 먼저 서너페이지를 읽었다. 보통 처음 읽는 책은 표지와 뒷표지, 날개까지 꼼꼼히 살펴보고 본문을 읽는데비해, <소년이 온다>만은 그냥 덥썩 쥐어들고 곧바로 내용을 펼쳐들었다. 제목만으로 어렴풋이 성장소설쯤 되려나 보다라고 가볍게 생각했기때문이었는데, 나는 바로 이 문장에서 멈춰섰다.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은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17쪽
애국가를 부르고 태극기로 사체를 휘감는 일은 꼭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폭도들이 아니였으니까. 그들이 목이 터져라 외쳐댔던 자유대한민국은 몸을 갈갈이 찢으면서라도 지켜야할 자신들의 조국였으니까. 따라서 그들을 죽인 자들은 나라가 아니라 오히려 폭도들이였을테니까 말이다.
가족들이 있는 따뜻한 방에서 없는 것처럼 숨을 죽일 수도 있었을 그들을 거리로 그날 그 자리로 모이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정말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심 밖에 없었던 것일까. 나라가 당장 망하는 것도 아닌데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들이 지켜야 할 무엇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들을 그 자리로 모았던 그힘은은 무엇이었을까.
 
이제 시내에는 관이 동났다고, -19쪽
시내에 있는 관이 모두 사용되어 베니어판으로 관을 짜거나 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데 그걸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되었을까. 지금도 그걸 알고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며, 그일을 내 일처럼 분노할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거기 없었다면 마치 애초부터 없었던 일인 것처럼, 마치 그런일은 일어나지도 않았던 것처럼 나 역시 낯설고 믿을 수가 없다. 그당시는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을 수 있지만, 그후로도 오랫동안 모르고, 혹은 모르는척 지냈다. 고향이 광주라는 사람을 만나면 80년 그때에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소문으로만 들었던 그일을 그도 겪었는지 속으로만 궁금해 하면서.
그러니 5월 광주에 대한 소설이라면 이미 나올 만큼 나오지 않았느냐는 말은 옳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들을만큼 들은 이야기일 수 있지만, 아직도 더 많은 누군가들에겐 30년 전 일이 아니라 마치 80년 전의 일인 것처럼 책에서만, 입에서 입에서만 전해들은 옛이야기 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낯설더라도 더 많은, 질리도록 더 많은 광주의 이야기가, 부민항쟁 이야기가, 베트남전 이야기가 쏟아져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적거리는 노인의 두 눈을 너는 마주 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45쪽
그날 그 자리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자신이 살았다는 것에 오래도록 죄책감을 갖는다. 목이 터져라 애국가를 부르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지킨 그것이 정의였다는 믿음을 뒤로하고. 차라리 그자리에서 즉사했더라면 당하지 않았을 온갖 치욕 속에서 자신은 그저 고통과 배고픔에 밑바닥을 보인 살덩어리 그 자체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에 죄책감을 갖는다. 그 죄책감으로 인해 평생 자기 스스로를 죽이며 살다가 끝내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죄책감으로 괴로워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자신들이 잘못한 것은 그 굴욕을 모두 견디며 단지 살아냈다는 것 뿐인데, 아니 그것이 어떻게 잘못일 수 있을까. 배가 고파 음식 앞에서 허기를 느끼는 것에 어떻게 죄책감을 느낄 수 있을까. 그들이 느껴야 할 것은 죄책감이 아닌 증오여야 할텐데. 그들은 그 증오를 안으로 안으로만 내 뿜어 독을 만들며 스스로를 죽인다.
 
반면 시민들을 짓밟고 비인간적인 고문을 서슴치 않던 자들은 또 어떻게 죄책감없이 살 수 있을까.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나는 가끔 궁금하다. 80년 그때,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고 곤봉을 날리고 대검을 휘두르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부마항쟁에서 공수부대로 투입되어 특별히 잔인하게 행동한 대가로 몇십만원씩 포상을 받았다는 그들은 가위눌림에 밤잠을 설치거나 하진 않을까. 베트남전 당시 시골 마을회관에 여자들과 아이들, 노인들을 모아놓고 불을 질렀다는 그들의 삶은 괜찮은걸까?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도 있었다는데, 그들은 또 어떻게 살아갈까? 그들 또한 그후로의 삶이 고통스럽다면서 그 고통을 나서서 증언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 것일까?
그 날의 그 잔인함과 포악성은 다만 명령을 생명처럼 소중히하는 군인이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그때는 그들이 진정 나라를 망칠 폭도들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생각했을뿐이라고, 그러나 그일로 인해 자신의 삶도 온전치 못했다고, 살아있다는 것이 온통 고통이라고, 그러니 망가진 내 삶을 돌려달라고 왜 국가를 상대로 소송하지 않는걸까.

내가 아직 몸을 가지고 있었던 그 밤의 모든 것 -55
그들은 평범했다. 총을 들고 시청을 지키던 시민들도 물론 평범했지만, 쏟아져 나온 시민을 향해 총을 쏘고, 대검과 곤봉을 휘두르며 사람을 내려치고, 들어보지도 못한 온갖 잔인함으로 고문을 자행하던 그들도 평범했다. 평범한 얼굴, 평범한 눈, 평범한 입, 하물며 차마 할 수 없는 일을 행하던 손의 모양까지도 너무도 평범했다. 

사내의 얼굴은 평범했다. 전체적으로 요철이 없는 얼굴에 입술이 얇았다. 칼라가 넓은 미색 와이셔츠에 통이 넓은 회색 양복바지를 입었고, 유난히 버클이 반짝거리는 혁대를 하고 있었다. 만일 우연히 거리에서 만났다면 평범한 회사의 주임이나 과장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 평범하고 얇은 입술을 열어 사내가 말했다. 개 같은 년.너 같은 년은 여기서 어떻게 돼도 아무도 몰라, 쥐새끼 같은 년. -67
계엄군이 시청을 덮치던 그밤 집으로 돌아가라는 권유를 서로에게 하면서 자신은 차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마지막까지 쏘지도 못할 총을 받아들었던 그들에게는 죽어도 좋다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이라는 그것을 양심이라불러도 좋은게 있었지만, 그 반대편에서 온갖 무장을 하고, 사람을 개나 소 다루듯 하면서 폭력을 휘들렀던 이들에게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것을 정의감이라해야 할까, 충성심이라 해야 할까, 그도 아니라면 그저 자기들끼리의 의리? 딴에는 폭도로 부터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협심? 제대로 무장하지도 못한 어설픈 무리를 응징하겠다는 정의감?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그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 있는가. 제발 그들의 삶도 평탄하지는 않았다고, 그일로 밤이면 잠을 잘 수 없어 평생의 삶을 스스로 갈아먹어왔다고 한사람만이로 단 한사람만이라도 스스로 나서주길. 특별히 소극적이었던, 특별히 공감능력이 뛰어났던, 특별히 양심적이었던 그런 단 한사람만이라도 나서서 그때의 포악함에 대해, 그때의 잔인함에 대해 증언해주길. 다음번에 출판될 5월의 광주 이야기는 그렇게 씌였으면 좋겠다.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되는 것이다. 어떤 군중은 상점의 약탈과 살인, 강간을 서슴지 않으며, 어떤 군중은 개인이었다면 다다르기 어려웠을 이타성과 용기를 획득한다. 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숭고했다기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지닌 숭고함이 군중의 힘을 빌려 발현된 것이며, 전자의 개인들이 특별히 야만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야만이 군중의 힘을 빌려 극대화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95쪽, 군중을 주제로 한 인문서의 서문에서 따왔다는 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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