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모리 오가이 지음, 김영식 옮김 / 리토피아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다카세부네>를 읽으려고 오래전에 사두고 잊었다가 이제서야 읽었다. 동생을 죽게한 죄로, 죄인을 실어나르는 배 다카세부네를 탄 기스케의 이야기인 이 단편은 아주 짧지만, 인간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인간은 병이 나면 병만 나았으면 좋겠다 하고, 가난으로 굶주리게 되면 굶주리지만 않으면 좋겠다 하고, 재산이 없을때에는 재산만 조금 모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인간이란 절대 만족을 모르는 존재로, 어쩌면 그러한 욕망이 인간을 살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욕망은 <기러기>에서 등장하는 고리대금업자의 첩인 오다마에게도 있었다. 처음에 첩이 되고자 했던 것은 단지 늙은 아버지를 편하게 모시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오다마는 점차로 몸이 편해지자, 자신의 신분을 잊고 다른 사랑을 꿈꾸기 시작한다. 몰래 연정을 품었던 오카다가 지나가는 모습만이라도 볼 수 있기를 바라던 심정은 말 한번 걸낼 수 있는 장면을 꿈꾸게 되었고, 오카다를 향한 욕망은 점차로 커져만 가는 것이다. 모리 오가이는 이 장면을 이렇게 표현한다.
 
여자에는 갖고 싶지만 실제로 얻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물건이 있다. 그런 시계나 반지가 쇼윈도 안에 장식되어 있는 가게를 지날 때마다 들여다 본다. 일부러 그 가게 앞에 가려고 하지는 않는다. 뭔가 다른 일로 그곳 앞에 지나게 되면 반드시 쳐다보게 된다. 갖고 싶다는 욕망과 그것을 사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다는 체념이 하나가 되어, 가슴 아플 정도는 아니지만 희미하고 달콤한 어떤 애상적 정서가 생긴다. 여자는 그것을 맛보는 것을 즐긴다. 그것과는 달리, 여자가 실제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물건은 그 여자에게 강렬한 고통을 준다. 여자는 안절부절 못할 만큼 그 물건 때문에 괴로워 한다.(144쪽)
인간이 종종 이런 감상에 빠진다는 것을 불행의 시작으로만 보아야 할까, 끝내 손에 쥐지는 못하지만 살면서 겪게되는 애절한 경험 한번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기스케를 호송하는 포졸 쇼베에는 살인범 기스케를 보면서 자신의 생활을 들여다 보는 한편으로 자살하려다 실패한 동생의 고통을 자신의 손으로 끝낸 기스케가 과연 죄인인지에 대해 고민하지만, 결국 그는 이렇게 결론내린다. 자기보다 윗사람의 판단을 따를 수 밖에 없다고. 권위의 판단을 내 뜻으로 여기자고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뒷맛은 개운치 않다. 인간이란 그런 것이다. 복잡하고 힘든 일에 내 판단을 유보하고 권위를 믿기로 하는 것, 그렇지만 또 그것이 그렇게 유쾌하지만 않은 그런 존재인 것이다.
 
<다카세부네>를 읽고 싶어 산 책이였지만, <기러기> 역시 만만찮게 재미있다. 생활을 위해 고리대금업자의 첩이된 한 여자가 뒤늦게 사랑을 알게되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이야기로 쉽게 요약될 수 있는 <기러기>는, 표면적으로는 고리대금업자의 첩이라는 신분때문에 경멸을 당하지만, 속으로는 좋은팔자라고 시샘을 받는 '첩'이, 첩이라는 신분을 잊고 비로소 자각하게 되는 불행한 사랑이야기인 것이다.  '금병매'의 스토리를 살짝 덧씌워 마치 이 첩의 사랑이 이루어질 듯 하지만, 결국 그녀의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장난삼아 던진 돌에 맞아 죽은 '기러기'와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모리 오가이는 나쓰메 소세키와 더불어 일본 근대문학의 쌍벽을 이루지만, 흔히 모리 오가이의 소설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에 비해 지루하다는 평을 듣는다는데, 나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 소이다>를 읽다 지루해서 포기한 기억이 있기 때문인지 모리 오가이의 소설이 더 읽기 좋았다.
더군다나 역자인 김영식은 소설의 배경을 찾아 찍은 사진들을 이야기 중간중간에 함께 실었는데, 그것이 꽤 색다르고 괜찮았다. 보통 외국문학은 외국문화 만큼이나 낯선 물건, 낯선 장면이 많아 아무리 잘된 묘사라도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기 일수인데, 사진과 자상한 설명으로 이야기가 더욱 가깝게 이해되었다. 또한 책의 말미에  첩 오다마의 서글픈 사랑의 배경인 무엔자카의 '기행문'을 함께 실어, 보통 작품해설이라고 실린 글보다도 더 재미있고 친숙했다. 이런 방식의 번역도 꽤 훌륭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은 절판되었다.
절판 된 책을 갖고 있다는것은, 마치 한정판 특별본을 갖고 있는 것처럼 기분이 좋기는 하지만, 이런 참신한 시도의 책들이 대형출판사에 밀려 사라지는 것이 몹시 안타깝다.  <기러기> 역시 한 대형출판사에서 다시 재출간 된 것으로 알고있다. 물론 김영식의 번역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 하루빨리 도서정가제가 실시되어 작은 출판사들의 다양한 시도가 가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소비자의 입장에서 한 권이라도 더 사고 싶은 욕심은 어쩔수 없다. 아 나는 또 고민스럽다. 책사는 일을 '소비'행위로 일축해도 괜찮은 것인지. 나부터도 정가로 책을 구입해야 하는데,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고민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역시 길게 생각한다면 '도서 정가제'의 정착이 반드시 필요한 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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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7-07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이 생각해 보면
4대강사업이나
핵발전소나
군부대나
이런저런 것들...에 드는 돈을 돌리면
우리가 아주 값싸게 아주 아름다운 책을 누릴 만한데,
우리 사회는 아름다운 길로는 안 가지 싶어요.

학습지와 자기계발과 종교 같은 책을 뺀
모든 '책'을 정부에서 지원해서 책으로 펴내 준다는
정치 지도자가 나올 수는 없을까 궁금하기도 해요.
4대강사업 따위를 한다는 헛짓 말고요...

비의딸 2014-07-08 15:13   좋아요 0 | URL
그런 지도자가 나온다면 저부터도 기꺼운 마음으로 지지하겠지만 함께살기 님 말씀처럼 그런 아름다운 길로 가기엔 우리 사회는 이미 너무 많이 아름답지 못하죠. 음, 지하철을 타면 참 무서워요. 꼬마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조그만 화면에서 헤어나질 못하니 말이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꼭 학교가 아니어도 사회의 통념이 된 듯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