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 세계적인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가장 속물적인 돈 이야기
석영중 지음 / 예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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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생전에 이미 러시아 최고의 작가였다. 평생 대중의 냉대 속에 묻혀 살다가, 죽고 난 후에야 명성과 명예를 얻은 불운의 작가가 아니였음에도 대부분의 경우 당장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소설을 썼다. 안타깝게도 생존을 위해 써야만 했던 당대 러시아 최고의 작가는 바로 도스토예프스키다.

헉! 소리가 나게 놀랐다. 돈을 벌기 위해, 돈을 벌어 다름아닌 먹고 살기 위해 글을 써야했던 대 작가라니.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고 장황한 도스토예프스키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해 보겠노라고 선택한 책이 바로 이 책이 였다. 러시아 문학을 강의하고 도스또예프스키 전집을 번역한 석영중 교수의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는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이전에 대문호 톨스토이를 근본주의에 미친 노인으로 해석한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를 재미있게 읽었기에 선뜻 이번 책도 고를 수 있었다. 평생을 돈에 쫓기며, 돈을 쫓아 산 또 한 명의 대 작가라니. 다소 실망스럽지만 이 책에 대해서라면 이번에도 역시 실망하지 않을 것 같았다. 러시아 문학 전공자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도스토예프스키를 친근하게 읽히고 싶어 쓴 책이라는 석영중 교수의 말처럼 이 책과 함께 읽는 도스토예프스키는 흔히 말하는 고리타분한 고전작가라기 보다는 현대의 미스터리 작가처럼 흥미진진할 수 있겠다 싶다.

 

석영중 교수가 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속의 돈은 자유이며, 시간이고, 인간관계의 기본 고리이다. 또한 돈은 무엇보다 힘이며 권력이다. 이러한 통찰은 늘 돈에 쫓겨야 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산 경험에 의한 것으로 책상물림에 의한 죽은 지식이 아닌 것이다.

공병학교에 다니던 청년시절에는 과시용 소비가 다소 있기는 했지만, 그 이후 토스토예프스키의 전생애를 통해 늘 돈이 궁했던 것은 이른바 측은지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으니, 어쩌면 도스토예프스키는 빈곤했던 것이 아니라 너무 너그러웠던 탓에 늘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죽은 형의 빚을 도의적인 책임 때문에 떠안았고, 형의 남겨진 가족들과 의붓아들에 대한 책임 또한 회피하지 않았다. 또 사랑하는 아내 안나에게 선물하는 것 좋아했다. 그렇더라도 자신의 분수를 넘는 지나친 적선이나 선심이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사치나 낭비 때문은 아니였더라도 늘 돈에 쫓긴 도스토예프스키는 한 번에 큰 돈을 벌기 위해 도박에 빠지기도 했다. 이때의 경험을 쓴 작품이 바로 <노름꾼>이다. 이렇듯 돈에 대한 작가의 경험은 여러 작품 속에 녹아있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과 <죄와 벌>은 돈 때문에 벌어진 살인 사건 아니던가.

어쨌든 도박 때문에라도 돈에 대한 그의 열망은 더 커졌으며, 돈을 쫓고 돈에 쫓기는 악순환의 반복 속에서 매번 책을 쓰겠다는 약속을 하고 출판사로부터 미리 돈을 당겨 쓰거나 지인들에게 애처러운 편지를 써서 빌렸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돈을 빌린 지인 중 트루게네프가 있는데, 이후 트루게네프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의 행동은 도저히 대작가 답지 못해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또 그도 역시 중년의 한 가장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작가라기 보다는 돈에 쫓기던 불쌍한 삶이였다고 생각하니 좀 씁쓸하긴 하다. 이렇듯 돈에 쫓기던 도스토예프스키의 빚쟁이 인생은 폐동맥 파열로 60세에 사망하기 얼마 전에야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늘 돈이 부족했던 도스토예프스키임에도 그가 돈을 삶의 전부이며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돈에 대한 판단보다는 돈의 철학을 탐구하고자 했던 것이며, 돈을 이해한 사람이었다라고 석영중 교수는 말한다. 또, 도스토예프스키는 경제학에 관한 한 문외한이었다고 한다. 숫자를 무엇보다 어려워했고, 때문에 경제에 대해 이론보다는 감성적으로 다가선 사람이라고 했다. 이부분에서 어찌나 반가웠던지. 다름 아닌 내가 그렇기 때문이다.

돈을 코드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이해하는 일은 너무 즐거웠다. 이미 읽었던 <죄와 벌>이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장면을 기억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새롭게 안 사실들에 대해 흥분하기도 했다. 또한 새롭게 안 사실들을 생각하면서 두 작품을 다시 읽어봐도 좋겠다 생각하지만 무엇보다 아직 읽지 않은 <악령>이나 <백치>를 먼저 읽고 싶다.

 

에필로그에서 석영중 교수는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 산다 라고 했다. 사실 조금 실망이다. 행복을 위해 산다니 너무나 상투적이고 교과서 적이다. 인간은 행복해 지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그냥 태어났으니까 산다. 그야말로 죽을 수는 없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돈이 행복의 척도가 아니듯이 행복이 삶의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과연 행복해지기 위해 돈을 쫓았던 것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저 살자면 무언가 눈에 보이는 목적이 있어야 했던 것은 아니였을까? 때문에 수중에 돈이 들어오더라도 개인적인 사치나 낭비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쓰듯 퍼부었던 것은 아니였을까... 도스토예프스키가 돈에 쫓기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그는 대작가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필력이 경험을 쫓을 수는 없을 테니까. 어쨌든 그는 돈을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돈에 무관심했던 것이다. 사랑했다면 쌓아두고 보는 것만으로도 흐믓해 했을텐데, 그는 늘 돈을 써버리지 못해 안달이였으니 말이다.

이 책으로 삶과 행복에 관한 비밀을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숨은 그림은 짜맞출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과 함께 읽는 도스토예프스키는 정말 흥미진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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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4-02-07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끼 님은 돈에 시달리며 글을 쓴 일이 널리 알려지기도 했지요.
그런데,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에
스스로 즐겁게 가난을 받아들이면서
온갖 경험을 다 하고,
이 경험을 다시 글로 썼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아무튼, 도끼 님은
글을 쓰며 누린 고단한 삶을
언제나 즐겁게 맞아들였으리라 생각해요.

비의딸 2014-02-09 16:28   좋아요 0 | URL
언제나 즐겁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어쨌든 보통 사람은 아니였던게 분명해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