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 - 박홍규, '에세'를 읽으며 웃다
박홍규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몽테뉴의 <수상록>이 학창 시절 필독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쨌든 학교에서 필독서라고 꼭 집어주던 책들은 몹시도 재미없고, 지루하며, 고리타분했다는 기억이 있고, 덕분에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을 더더욱 멀리하게 되더라는 청개구리 심보는 잘 기억하고 있다. 이것이 꼭 내 청개구리 기질 때문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아이를 키우다보니 부모가 혹은 학교에서 좋은거라고 권하는건 꼭 하지않더라는 건 알겠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책 읽기'라는 부제를 단 김운하의 <카프카의 서재>를 읽다가 몽테뉴에 급작스러운 관심이 생겼다. 김운하는 사는게 뭔가 싶은 고독과 우울속에서 집어들게 되는 책이 몽테뉴의 <수상록>이라고 했다. 나로서는 살아야 할 이유보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몽테뉴를 읽고 싶어졌다. 그러한 이유로 사다놓은 <수상록>(권응호 옮김/홍신문화사)는 읽기가 쉽지 않다. 어쩐지 책만 집어들면 잠이 쏟아져 한두 페이지를 넘기가 힘겹다. 오랜 세월의 탓도 있겠으나, 문화의 탓도 있겠고, 번역의 탓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해서 책장에 곱게 모셔둔 <수상록>을 볼 때마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만 깊어지는 듯 하다.

 

정혜윤의 <침대와 책>을 읽으며, <몽테뉴의 숲에서 거닐다>와 홋타 요시에의 몽테뉴 전기를 알았다. 왠일인지 두 책다 절판 된 상태로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었지만 홋타 요시에의 몽테뉴 전기는 도서관에서, 박홍규의 이 책은 중고서점에서 어렵게 구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몽테뉴 <수상록>의 해설판과 같은 책이다. 몽테뉴가 에세를 쓰게 된 배경, 몽테뉴의 개인적 이야기, 에세가 의미하는 것, 에세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또 몽테뉴와 현대는 어떻게 조화로운지 등등. 나처럼 몽테뉴의 '에세'가 궁금하지만, 쉽게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참고서 같은 책이다. 이 책의 도움으로 <수상록>에서 '철학은 죽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를 읽었다. 그러나 역시 몽테뉴의 문장 그대로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않다. 그나마 이 책이 없었다면, 그 한꼭지 조차도 끝까지 읽지 못했을 것 같다.

박홍규 교수에 의하면 수상록과 같은 좋은 책이 우리나라에서 좋은 번역으로 출판되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는데, 나역시 그렇다. 읽기에 버겁고, 펼치기만 하면 졸음이 쏟아지는 그런 책 말고 읽고싶어지는 그리하여 충실하게 살고 싶어지는, 혹은 죽음을 겁내하지 않게 되는 그런 '에세'가 출판되어 준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다. 박홍규 교수야 뭘 좀 아는 사람이니 그런 말을 자신있게 하는 것일테고, 나는 뭘 좀 모르니까 쉽게 읽고싶을 뿐이다.

 

물론 책을 읽어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는 케케묵은 것인지도 모르나, 하나의 가능성으로 이해할 수도 있으리라. 그 가능성의 하나가 글쓰기의 문제다. 나는 새로운 글쓰기의 표본으로 몽테뉴를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99쪽

 이러저러한 이유로 참고서만 백날 읽은들 소용없는 일 일터. 읽기 쉽고 지루하지 않은 몽테뉴의 '에세'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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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4-03-23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저도 있고 박홍규 교수님은 저도 무척 좋아하는 저자에요 이 분 책은 매번 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