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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괴 2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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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미문학의 거봉으로 불리우는 미시마 유키오는 1925년 도쿄에서 출생하였고, 동경 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했으며 대표작으로 <가면의 고백>과 <금각사>가 있고, 이중 나는 <금각사>를 읽었다. 주인공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금각사'라고 생각하는 말더듬이이다. '나'는 말더듬이를 결핍으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완전해지고 싶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금각사 또한 완전하지 못한 존재로, 폭격이나 담배불씨 따위에 쉽게 사그러질 아름다움임을 알았기에 아름다운 순간을 각인하기 위해 주인공 '나'는 방화를 저지른다. 파괴함으로써 오히려 아름다움을 기억한다니, 나로서는 언뜻 이해되지 않는 소설 <금각사>이긴 하지만, 정작 미시마 유키오에 대해 놀랐던 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극적인 찬미보다 할복이라는 방법으로 시행된 그의 자살이였다. 자위대의 각성을 요구하며 미시마 유키오는 할복했던 것인데, 더욱 당황스러웠던 것은 허약한 체질로 태어난 미시마가 육체적열등감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보디빌딩을 통해 복근을 단련시킨 후 자살을 감행했다는 것다. 파괴를 위해 가장 보기좋은 상태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이또한 아름다운 것의 파멸 장면이라는 퍼포먼스였던 것이며, 이를 위해 자신의 몸을 이용하고 끔찍한 모습의 주검을 연출했다는 것이 놀랍고도 당황스러운 것이다. 

소설 <결괴>에는 '단순한 파괴충동'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미네 사네미라는 젊은 화가는 도청 청사가 폭발해서 붕괴 직전에 있는 그림이라던가, 일본의 유명 광고회사를 무너뜨리고, 불길 속에서 사원을 파괴하기도 하는 등의 과격한 그림으로 유명해졌다.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작품을 '단순한 파괴충동'이라고 표현한다. 금각사의 '나'도 그렇고, 미시마 유키오의 할복도 그렇고 이렇듯 '단순한 파괴충동'으로 이해한다면 내가 너무 몰지각한 것일까. 어쨌든 소설<결괴> 속의 화가 미네 사네미와, 실존 인물인 미시마 유키오는 파괴충동을 예술적으로 승화 시킨 것만은 분명하다. 미네 사네미가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을 정도만으로 자신의 파괴충동을 조절했다면, 그에 비해 미시마가 가진 파괴 충동은 '탐미'라는 이름으로 걸러지긴 하였으되, 할복이라는 충격요법으로 마무리 되었다. <결괴>의 다른 등장인물인 살인범도 파괴충동 조절에 실패 혹은 스스로 포기한 그런 이탈자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히라노 게이치로는 미시마 유키오의 재래라는 평을 듣는 젊은 작가이다. 그 또한 교토대 법학부 재학중 문단에 데뷔하였고, 그 자신도 미시마 유키오의 탐미주의 문체를 동경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의 데뷔작이며, 대표작인 <일식>은 읽지 못했다. 의고체라고 불리는 문체가 어렵기도 했고, 일본 청년이 쓴 중세의 수도사 이야기라는 게 어쩐지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아 읽어보려는 시도는 해보았으되 그냥 멈추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2006년에 발표한 <얼굴없는 나체들>은 읽어보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9금의 딱지를 붙이고 출판된 책으로 바로 그점때문에 호기심이 더 동했던 것도 사실이나, 무엇보다 현대의 일본 사회를 조명하고 있으며, 그 도구가 인터넷이였다는 것에 특히나 관심이 있었다. 그후, <책을 읽는 방법>과 <문명의 우울>을 읽었고, 이번 책 <결괴>는 내가 읽은 히라노 게이치로의 네번째 작품이었다. 

<문명의 우울>에서 히라노 게이치로는 '정체 모를 것', '낙서의 단상' 이란 제목 아래 미디어에 대해 이처럼 적었다.

 

매스미디어가 못마땅한 것은 무엇보다 그것이 가끔, 마치 하나의 생물처럼, 정보의 수신자와 송신자 모두를 배신해버리기 때문이다. 이제 유입된 정보에 미치는 매체의 영향에 더욱 명확한 의식을 가져야 할 때가 왔다. 언론은 이를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수신자인 우리도 매스미디어와 좀더 냉정하고 적합한 거리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문명의 우울/정체 모를 것, 19쪽)

내가 보기에 낙서는 지금 새로운 적절한 장소를 찾아내 무한히 증식해가고 있는 듯하다. 익명성을 유지하면서도 이해받기를 바라는 어딘가 켕기는 욕구를 가장 손쉽게 만족시켜주는 곳, 그것은 무법지대로 변한 인터넷일 것이다.(문명의 우울/낙서의 단상, 45쪽)

 

보이는 현실과 보이지 않는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썼던 <얼굴없는 나체들>과 과도하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현대 문명과 그에따라 달라지는 소소한 인간사를 적은 에세이 <문명의 우울>을 쓴 후, <결괴>는 필연적으로 히라노가 쓸 수 밖에 없는 결과물로 여겨진다. 역시 <결괴>에서 사건의 시작은 인터넷이 발단이 된 것이다. 현실의 아내를 비롯한 가족과 나눌 수 없는 마음의 상처, 비밀, 이해받고 싶은 마음 따위를 낙서하듯 블로그에 적음으로써, 익명의 누군가를 불러들이게 되는데 그것이 사건이 시작이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고도 교토의 중심지에서, '악마'의 메시지가 박힌 사람의 머리가 절단된 양쪽 손발과 함께 발견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보도되고 일주일. 그후 쓰루미 강 하천부지에서 오른팔, 후쿠야마에서 왼팔, 다카쓰키에서 왼다리, 교토 시 니시교 구에서 몸통이 발견되면서 사건은 전대미문의 광역 사체유기사건으로 발전했다. 나아가 니시아자부와 사이타마에서 발견된 손과 발의 신원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잔학무도한 범행으로 일본 열도를 뒤흔들고 있는 수수께끼의 '이탈자' 집단. 수사선상에 오른 의외의 인물은- (2권, 110쪽)

 

사건은 1권이 거의 마무리되는 단계에 가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범죄 소설임을 이미 알고 읽기 시작했기에 더딘 진행이 자못 지루했고, 모든 인물과 모든 대화가 다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어떤 사건이 벌어질 거지? 도대체 이들 중 누가 죽는거지? 누가 죽일거지? 그리고 그러한 살인 사건은 왜 일어날 거지? 어떤 시작, 어떤 과거, 어떤 어린시절을 거쳤기에 누군가는 살인자가 될 수밖에 없는거지..? 이런 생각때문에 오본을 맞아 귀향하는 평범한 한 가정의 구성원들의 행동이 모두 기묘하게 보였으며, 그들이 건네는 말 한마디가 모두 속뜻을 품은 것처럼 미스터리하게 여겨졌다. 그런 긴장감이 점점 무료해지고 자못 짜증으로 변해갈 때 쯤 사건이 시작된다. 너무 잔인하고, 처참한 모습으로. 작가가 하려는 말은 고작 상상 이상의 잔인한 살인장면 뿐이였을까 의심이 갈 만큼 잔혹한 살육이.

1권이 사건의 시작과 형 다카시의 정체에 대한 의심을 증폭시키는 기폭장치였다면, 2권에서는 그야말로 '결괴'로 악마의 메세지를 담은 모방 살인사건은 일본열도 곳곳에서 발발하며, 인터넷에서는 악마를 자처하는 범행성명문이 흘러 넘친다. 이처럼 한번 터진 '악'에 관한 봇물은 주체하지 못할 곳으로 점차 흘러 넘치며, 급기야 한 소년은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묻는다. '왜 사람을 죽이면 안되나요..?'

왜 안되는가. 내가 남으로 부터 억지로 비명횡사하지 않기 위해. 내 가족이 그러한 처참한 일을 당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사회속의 개인들은 해서는 안되는 일과 해도 되는 일에대해 암묵적인 약속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 사실은 터져버린 방죽처럼 생활 곳곳으로 스며들어 축축한 습기를 남기며 점차로 암묵적인 사회규약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들이 늘어만 간다. '왜 일까..?'

 

살해된 것은 한 사람이지만, 정작 죽음보다도 깊은 고통을 겪게되는 것은 남아있는 그들 가족 모두였다. 가족이 살해되었다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나눠가졌지만, 그들은 그들끼리도 서로 상처내고, 원망한다. 직접적인 사인은 네가 아닐지라도 결과적으로 너 때문에 죽었을 것이라는 서로를 향한 원망의 속 뜻은 자기자신을 향한 자책을 피하고자하는 나름의 방어기제일 것이다. 나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믿기 위해 너를 원망해야 하는데, 다카시는 애초부터 방어기제랄 것 없이 자기 자신을 원망했던 것 같다. 언제나 다정다감하고 지나치게 유능한 다카시는 어디서나 인정받고 사랑받는 존재였지만, 그때문에 거북한 존재이기도 했다. 부모에게도 형제에게도. 뿐만아니라 자기조차 자신을 믿지않을 때, 그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리고 그가 살아갈 수 없도록 주변의 상관없는 사람들은 정의를 가장한 호기심으로 점차로 그가 설 공간을 압박해 간다. 너 따위는 죽어버려! 라는 메세지는 도처에서 넘쳐나고, 사람들은 모두 그런일은 없었다는 표정을 짓는다.

살인이 꼭 손에 칼을 들어야만, 피를 묻혀야만 살인이 아닌 것이다. 책임질 수 없는 말, 자신의 감정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말, 혹은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말들로 사람은 죽기도 하는 것이다. 범인은 살해 전에 희생자에게 말한다. "말이 너 자신과 완전히 일치하도록 책임을 져! 라고.

그런 한편으로 상대에 따라 말과 분위기를 맞출줄 알아 모두로부터 다정다감한 인간으로 여겨지던 다카시야말로 사실은 공감능력 제로의 반사회적인격장애자 였던것이 아니였나 의심이 든다. 모두에게 왕따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로부터 자신을 왕따시키는 자. 다카시는 그 스스로 '이탈자'가 되어 궤도를 이탈해 버린다. 나는 다카시의 행동에 의혹과 함께 안쓰러움을 느낀다. 조금쯤은 무능한척 그렇게 적응할 수는 없었을까. 순응하는 자가 되어 그렇듯 무심하게 살아갈 수는 없었을까.

 

현대는 갈수록 정신병과 관련한 병명을 늘려가고,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들을 이른바 '부적응자'로 분류하며 관리한다. 근대형 권력 형태는 인간의 신체를 적극적으로 관리 경영해 왔다는 다카시의 말처럼 권력은 점차로 인간의 정신 조차도 관리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악이 그야말로 건강의 결여에 불과하다면 용서니, 책임이니 하는 것들은 다 듣기좋은 말놀음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이런 점에서 다카시는 용서의 불필요를 믿었던 것이다. 용서를 받을 필요도, 용서를 할 필요도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더불어 살아갈 이유조차도.

1권을 읽고서 히라노 게이치로도 자극적이고, 변태적인 범죄 소설을 써버렸다고 한탄했던 것과 달리 2권을 읽고나자, 그토록 잔인한 살인이 아니였다면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을 세상을 살고 있는 거라고 막연하게 끄덕이게 된다. 금각사가 불타지 않았으면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남지 못했을 것이며, 미시마 유키오가 할복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는 탐미문학의 거봉이 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의미에서 이 소설은 그저 단순히 범죄소설이 아니다. 철학서 만큼이나 복잡하고 생각거리가 많으며 그만큼 어렵다.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라 한가닥으로 정리하기조차 힘겹다. 많은 말들이 속에서 웅웅거리는데, 어떻게 꺼내야할지 도대체 모르겠는거다. 어쨌든 히라노 게이치로 그는 천재일뿐만 아니라, 음울한 관찰자이다. 어쩌면 다카시는 그의 분신일 수도.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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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11-13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식>을 읽다보면 유럽사에 대한 히라노 게이치로의 탄탄한 배경지식에 놀라게 됩니다.초중고교 내내 교과서,참고서,문제집만 학습하는 우리 학교 교육에서는 그런 해박한 지식을 20대에 갖추기가 힘들죠.

비의딸 2013-11-13 17:2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덕분에 <일식>을 읽어볼 용기가 생기는데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