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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는 것의 기술
하타무라 요타로 지음, 황소연 옮김 / 가디언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간만에, 별 다섯개로는 책에 대한 내 개인적인 평가가 모자라는 책을 만났다. 늘 알고 싶었고, 알기 위해 노력했고, 그래도 조금은 알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지만, 내 스스로 '아는 사람'이라고 평하기에는 무엇인가 찜찜하고, 나 자신을 속이는 일 같기도 한, 한마디로 자신감 없는 겉핥기식 앎을 지양하고 있던 나로서는 '앗, 이것이다'라는 한줄기 광명과도 같은 책이 었다라고 할까.
논리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감성적이라고 대충 얼버무린다.
치밀하지 못하다. 따라서 여유롭다라고 얼렁뚱땅 넘긴다.
'수'와 친하지 않다. 따라서 계산적이지 않다고 나름 계산적으로 말한다.
남의 것을 흡수는 잘한다. 그러나 스스로 하는 배수는 영 엉망이다.
공부 부족에서 오는 조잡한 형식 논리로 모든것을 대충대충 넘기고 마는 나는, 진정 알고 싶은 욕구만 있는 궤변가일 뿐이다. 조금더 치밀하고, 농밀하고, 자신감있게 알고 싶은데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게으름' 탓으로 모든걸 돌린채 얼버무리고 말게된다. 게으름 탓이 아니라면 주입식 교육 탓이라고 해야하려나.
하타무라 교수는 일본 명문대 수재들이 '정해진 답' 이외에는 내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워 '진정한 앎'에 대한 제대로 된 시도를 위해 이 책을 냈다고 한다. '진정한 앎'이란 정답을 찾아 척척 시험문제를 풀어내는 것에 있지 않다.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이 과제인지를 찾아내는 과제를 설정하는 힘에 있다. 또, 자신의 주장이 성립하는 범위와 전제조건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힘에 있다. 남의 지식을 암기로 빨아드기만 한 사람은 절대 '진정한 앎'의 단계에 오를 수 없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겠다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진정 아무것도 모른다. 내 스스로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하는 힘도, 내 주장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할 힘도 없다. 결국 처음으로 돌아가는 수 밖에 없다. 모르기에 알고싶다는 마음 하나로. 모르지만 알아야겠다는 희망 하나로. 조지 오웰은 자신의 에세이, '과학이란 무엇인가?'에서 과학이란 관찰한 사실을 논리적으로 따짐으로써 참된 결론에 이르는 사고방식이며, 과학은 한 덩어리의 지식에 불과한 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했다. 나는 오웰의 그 글을 읽으며 인문서를 읽어내는 대도 과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조망하는 힘은 과학에도 인문학에도 필요하다. 감성만 앞세운 주먹구구식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고, '할' 수 없다.
저자는 기계학 교수이기 때문에 책은 기계의 설계와 조립의 과정으로 설명되어 있지만 이 책은 옮긴이의 말처럼 '지'에 대한 인문서이다. 내 스스로 생각하고 설계하고 조립하는 '앎'에 대한 설계서이다. 조금 더 과학적이고, 수학적으로 '알'기 위해 저자의 다른책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