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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귀신 - 조선시대 여인의 한과 복수 키워드 한국문화 6
최기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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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겁이 많은 나는 공포영화나 괴기소설, 혹은 놀이기구까지도 공포라는 감정을 조장하는 매체는 일절 이용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애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를 책등이 보이지 않게 뒤집어 꽂아놓았을까. 공포는 정상적이기 보다 비정상적인 감정이다. 내면에 깔린 수치심이나 적개심등이 공포감으로 변질되어 겉으로 발산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어떤 수치심이, 적개심이 잠재되어 있는 것일까. 

어쨌거나 이런 나에게 <처녀귀신>은 별로 읽고 싶지 않은 장르의 이야기가 분명했다. 몇날 몇일을 책꽂이에 방치해두었다가 결국에는 읽고야 말았다. 혼자 앉아 읽기가 두려워 일부러 지하철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이거 전혀 무섭지 않을 뿐더러 책 속으로 순식간에 몰입되었다. 머리풀어헤치고 피흘리며 도끼눈 뜬 여귀들이 별로 무섭지 않았다. 그녀들은 그저 자신의 한을 죽어서 그렇게 밖에 표현 할 수 없었던 불쌍한 여인들이었다. 그 한을 듣기 전에 풀어헤친 모습을 보고 내 내면의 수치심과 적개심들이 공포를 가장해 나를 두렵게 했을 뿐이었다.

과거 우리의 역사 속의 여인은 남자와 같은 사람이기 보다는 남자와 가문의 소유물에 가까웠다. 그녀들은 입이 있으되 말할 수 없었고, 감정이 있으되 표현할 수 없었다. 길지 않은 생을 살면서 가슴에 쌓인 한을 죽어서야 겨우 말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남자 귀신이 죽어서도 가장노릇 충신노릇을 하며, 지위와 체면, 책임과 권위를 행사하지만 여귀는 한을 품은 원귀로 등장해 개인적인 한을 풀기에 급급하다. 전근대 사회의 제도와 이념 속에서 숨죽인 채 살아야 했던 그녀들의 한은 죽어서 저승에도 가지 못한 채 귀신이 된 후에라야 존중받을 수 있었다. 

귀신이야기나 공포물의 내용은 여느 장르의 문학과 같이 그 시대의 산물일 수 밖에 없다. 그 시대의 억눌린 가치와 강박, 표현되지 못한 욕구, 그에 대한 사회적 현상들을 억압을 뚫고 숨을 쉴 수 있도록 해주는 숨구멍이라고 할까. 귀신 이야기는 단순히 자극적인 오락물로 그 기능을 다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키워드를 놓고 한국사를 이야기 하는 이 시리즈 책은 .<왕세자의 입학식>을 읽은 후의 두번째로 <처녀귀신>을 읽었는데 연대순 사건순의 역사나열이 아니라 독특한 키워드를 중심으로 역사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지루하지않고 무척 재미있다. 남귀와 여귀의 차이점에 대한 해석과 자살을 개인의 책임보다는 사회적 현상으로 이해한 것, 타인에 대한 인정, 거절에 대한 저자의 풀이가 이야기에 재미를 더해준다. 때마침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신나는 휴가철이다. 어디론가 떠나는 가방 속에 <처녀귀신>을 살짝 담아간다면 일상을 잊는 즐거움에 오싹한 즐거움이 더해져 잊지 못할 휴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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