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하오 미스터 빈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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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도 90%

분량도 길지 않고, 쉽게 읽히기도 하고, 재미까지 있는 소설.

사회주의 중국에서 벌어지는 돈키호테 같은 주인공의 인생역전 과정을 보여주며, 중국의 문제 뿐만 아니라 인정받고 싶어하는 한 인간의 욕망을 잘 보여준다.

사원아파트 추첨에 떨어진 뒤 관리자들에 불만을 품고 신문사에 풍자화를 보낸 샤오 빈. 심기가 불편해진 상사와 동료들의 구박에 반발하여 빈은 더 높은 관리자들에게 편지를 쓰지만 돌아오는 것은 조롱과 멸시뿐. 이제 아파트가 문제가 아니라 서화와 전각에 능한 자신을 멸시하는 답답한 사회주의와 사리사욕에 눈이 먼 관료들에 대한 저항과 피억압자들의 연대, 그와 더불어 더 큰 물에서 놀고 싶은 개인의 가치 실현의 욕망이 어우러져 일대 소동극이 벌어진다.

자본주의의 핵심인 집에 대한 욕구에서 시작해, 관료주의를 넘어, 개인들의 연대와 자아 실현이라는 주제로까지 이어지는 소설은 근대 중국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며,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 미스터 빈은 중국판 돈키호테라 불러도 무방할 듯 하다. 다분히 영국 코미디 미스터 빈을 의식한 책 제목은 엄청난 집착과 그러면서도 끝까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야 만다는 점에서 원조 미스터 빈에 전혀 뒤지 않으며, 시종일관 담담한 문체로 코믹한 상황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훌륭한 풍자극이라 하겠다. 물론 원제인 'In the pond'가 더 큰 물에서 놀고 싶은 주인공의 처지와 욕망을 더 잘 드러내 주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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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다치바나 식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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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온 한 책 소개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발견했다.

침대로 끌어들일 수 있다, 시간을 헷갈리게 만든다, 서로에 대해 불행한 애정을 품고 있다, 많은 후손을 만든다. 이것은 바로 산문집 《일방통행로》에서 발터 벤야민이 이야기했던 ‘책과 매춘부의 공통점’이다.

침대가 아닌 서재에서, 엄청난 책과 함께 글을 쓰며 산다는 점에서는 약간 다르지만, 마침 이 책을 다 읽어가 무렵에 이 문장을 발견하고는, 다치바나야말로 '이상 지적욕구 항진'에 걸린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것, 그것도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읽기 위해 직장도 때려 치우고, 인류의 지적 총체의 최첨단을 걷고 싶은 욕망, 저자가 만들어내고 독자가 반응하는 소우주에서 극한의 쾌감을 얻고 사는 저자야말로 이 병에 단단히 걸린 사람이다.

현실을 넘어서지 못하는 작가들의 빈곤한 상상력 때문에 문학을 읽지 않고, 픽션에서 논픽션으로 전향(?)했다고 하는 저자의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가 제시하는 14가지나 되는 독서론과 그가 구축한 서고, 고양이 빌딩은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일본어에 이런 말이 있다. '極める'. '끝까지 가다, 극한에 이르다'라는 의미인데 특정 분야에서 최고를 추구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극한까지 밀어부치는 일본인의 특징을 나타내 주는 말이라 할 수 있겠다. 다치바나야 말로 이 말을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아닌가 한다.

목적으로서의 독서와 수단으로서의 독서, 음악적 책 읽기와 회화적 책읽기 등 저자 나름의 분류도 재미 있지만, 서점의 판매대가 한 나라의 문화, 사회 현상을 전달하는 최고의 매체라는 저자의 주장에는 새삼 현재의 우리 서점 판매대의 모습이 부끄러워 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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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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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몰입도 95%

초판 발행일을 확인해 보니 2003년 8월에 1쇄가 나왔다. 무척이나 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그만큼 많은 칭찬과 관심을 받고, 이후 한국 소설계의 희망이며 기린아가 되어, 왠만한 발랄함이나 기발함은 그냥 자기의 아류로 만들어 버리는, 박민규. 의 그 두번째 소설을 이제야 읽었다.

이는 마치 가끔 할 일 없이 습관적으로 한바퀴씩 돌려보는, 100개가 넘는다고 자랑하지만 실상 보는 채널은 몇 개 되지도 않는 케이블TV의 그 무수한 채널 중 하나에서 가끔씩 보게되는 4년전 개그 콘서트의 한 장면과 같은 것이며, 대개는 그냥 다음 채널로 넘어가지만 문득 리모콘을 살포시 내려 놓고, 이제는 나오지도 않는 예전 개그맨들의 개그를 보는 것과 같은 경험이라고 할 수 있겠고, 남들은 이미 다 보고 웃은 개그를 새삼스럽게 4년의 시차를 두고 웃는, 이미 30대 중반도 넘은 아저씨가 고속버스나 기차에서 '상실의 시대'를 들고 열심히 보고 있는, 머 그런 난감하면서도 약간 민망한 상황과 대충 비슷하다고 하겠다.

뒤늦게 보긴 했어도 그 재미란 게, 세월과 먼지에 가려 비 내리는 것처럼 흐릿해 진 것도 아니어서, 내게는 검정과 베이지 색의 절묘하고 세련된 유니폼과 붉은 등판과 팔의 줄이 인상적이었던 OB베어스의 유니폼과, 신경식, 윤동균, 박철순, 김우열 등으로 기억되고, 그해 겨울 우승기념 컵세트를 사서 장식장에 고이 모셔두었던 장면으로 남아있는 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해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크게 보면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 이 소설의 압권은 단연, 삼미 슈퍼스타즈의 활약(?)과 그 활약을 지켜보는 주인공과 조성훈의 모습을 그린 첫 부분이다. 이 부분은 마치 개그 콘서트 베스트를 보는 것과 같은 즐거움과 쾌감을 주는데, 그건 육봉달이나 강유미의 명 개그를 계속 이어 보는 즐거움이나 메가쇼킹의 만화를 쌓아 놓고 보는 것과 같은 수준이다.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는 철저하게 아마추어적인 자세와 야구를 통한 정신 수양이라는 높은 경지의 정신 세계를 통해, 3-S 정책을 통한 우민화와 자본에 의한 착취를 획책하던 음모 세력에 가열찬 똥침을 놓는 삼미의 슈퍼스타들은 그렇게 우리 기억 속에서 되살아 났다.

하지만, 소설의 재미의 태반을 삼미 슈퍼스타즈의 존재와 그 믿어지지 않는 존재가 주는 비현실감에 빚지고 있는 그 이유 때문에, 중반 이후의 전개는 너무나 구태의연하게 사실적(?)이고 평범하여 초반의 재미를 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어쩌면 팔아서 큰 돈을 쥘 수 있는 아파트를 가지고 있고, 명문대 졸업장을 가지고 어쨌거나 일거리를 구할 수 있고, 결국은 다시 돌아올 착한 아내를 가지고 있는 주인공의 여유가 실재했던 삼미 슈퍼스타들의 여유와는 다른 것이기 때문일 수 있겠다.

잠깐의 여유와 일탈 후에 원하든 원치않든, 스리슬쩍 주류(?)의 흐름에 한 발을 담가 버린 작가/주인공의 '인생은 삼천포'라는 여유만만하고 낙천적이며 비현실적인 발언에 동의를 하든 않든, 약 2시간 30분간 개콘 베스트에 버금가는 재미와 오랜만에 흉내내고픈 발랄한 문체를 만난 재미는 인정. 어찌됐든, 30세를 위한 즐거운 송가 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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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광인 - 상 - 백탑파白塔派, 그 세 번째 이야기 백탑파 시리즈 3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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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몰입도 85%

백탑파 시리즈 중 세번째 책. 시리즈 중 가장 마직막에 나온 책인데 가장 먼저 읽게 되었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열하일기에 미친 일명 '열하광인'들과 문체반정을 중심으로 한 임금과의 갈등, 그들을 해하려는 보이지 않는 음모가 뒤섞인 소설.

일단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역시 금서를 배경으로 한 '장미의 이름'.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과 변화, 지정학적 특징 등이 얽혀있다는 점에서 '내 이름은 빨강'이 떠오른다.

하지만, 팩션으로서 열하일기와 열하의 가르침을 따라 새 시대를 열려 하는 열하광인들의 충정과 그들을 품으면서도 견제하는 군왕의 모습은 일면 평면적이고, 그들의 충정이라는 것이 결국 임금의 손아귀(?)에서 놀아난다는 느낌이 드는 점이 안타깝다. 특히나 계속되는 살인과 진범에 대한 추적과 해결이라는 형식적 측면에서는 너무나 허술한 점이 아쉽다. 앞서 언급한 '장미의 이름'과 비교하면 주인공의 역량이나 추리 소설적 재미에서 부족하고, '내 이름은 빨강'과 비교하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금, 여기'에 대한 주인공들의 더 치열하고 적극적인 고민과 그것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느끼게 하는 작가의 의뭉스러움이 모자란 건 아닐까 싶다.

물론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백학파의 면면이나, 열하일기, 그리고 그 당시의 시대상을 면밀히 연구하여 풀어낸 묘사와 언어 등은 작가가 상당한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변방일수록 더욱더 정통과 규범을 내세운다고 했던가. 어쩌면 우리만의 중흥을 일으킬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역사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혁신'이라는 기치를 반성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는 작가의 말, '군왕은 결국 군왕의 편'이라는 소설 속의 말 등이 정조가 유행할 수밖에 없는 작금의 분위기 속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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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파는 남자 - KI신서 916
페르난도 트리아스 데 베스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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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몰입도 100%

철저히 경제적인 관점에 입각하여, 독자의 시간을 뺏는 것조차 막기 위해 주요 인물 등을 약자로 표기하고, 쓸데없는 서술과 묘사를 생략함으로써 콤팩트하게 정리한 책이니 만큼,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아주 '경제적인' 책이다.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 자신의 삶을 대차대조표로 만들어 보고는 자신의 부채가 결국 35년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아 버린 한 남자가 사람들에게 5분간의 시간을 상품으로 만들어 팔면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고, 모든 이들이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시간을 사버리는 바람에 커다란 문제에 봉착한 국가 경제와 주인공 자신의 운명을 결국 'T=$'에서 '$=T'라는 등식의 변환으로 해결하는 일련의 과정은 인생과 경제에 대한 하나의 재미있는 우화다.

과연 살아가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 중, 온전히 자기만을 위해 쓰는 시간이 얼마나 될 것이며, 살아 간다는 것이 단순히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아닐 터인데, 축내며 혹은 죽여가며 살아가는 시간은 또 얼마나 많은지...

가계부도 제대로 안 쓰는 게으른 내 인생의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본다면 부채는 도대체 얼마나 나올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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