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몰입도 90%

굉장히 잘 쓰고, 감동적인 성장 소설. 더군다나 서양에, 그리고 서양의 시각에 경도된 우리 동양에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아프가니스탄의 지난한 역사와 전쟁의 상처를 볼 수 있는 유익한 책이다. 그리고 행복해 보이던 혹은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중요한 한 순간이 한 남자의 인생을 얼마나 지배하는지, 그리고 그 상처의 기억을 스스로의 힘으로 딛고 일어서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훌륭한 성장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타국에서 힘들게 사는 주인공 아미르에게 아프카니스탄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물질적인 풍요뿐만 아니라 소랍이라는 친구 덕택에 정신적인 면에서도 풍요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비겁함으로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위해 나서지 못하고 결국 그 친구를 잃어버린 기억은 성인이 되어서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비밀이 된다. 자신을 못 마땅해 하면서도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죽어간 아버지의 모습과 아버지보다도 더 속 깊은 사랑을 알게 해 준 라힘 칸이 전해 준 -과거의 행복한 이미지를 송두리째 흔드는- 비밀을 듣게 된 아미르는 그 과거의 숙제를 풀면서 아버지가, 친구가, 아저씨가 자신에게 베푼 사랑과 인생의 의미를 한꺼번에 깨닫게 된다.

긴 이야기지만 과거의 풍요로운 카불의 모습을 애정어린 눈길로, 그리고 소련과 탈레반에 의해 허물어져 간 카불의 모습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려내는 작가의 서술과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이 겪어 내는 드라마틱한 삶의 모습이 눈길을 떼지 못하게 한다.

아쉬운 점은, 주인공도 스스로 깨달았듯이 자기가 기억하는 아프카니스탄, 카불의 모습은 풍요로움 속에 포장된 기억이라는 것. 그 풍요 뒤에는 전쟁 전에도 전쟁 후에도 존재한 가난과 차별의 그늘이 계속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그늘보다는 사랑과 인간애, 깨달음 등이 강조되면서 어쩌면 그가 제 2의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해준 미국 헐리우드식 해피 엔딩이라는 시스템에 너무 쉽게 경도된 건 아닌 지 하는, 약간은 씁쓰름한 뒷맛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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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소리 마마 밀리언셀러 클럽 44
기리노 나쓰오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몰입도 95%

그녀의 책을 이제서야 읽었음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그녀의 책을 또 읽는 것은 당분간 보류해야겠다. 그 충격과 시달림을 바로 겪고 싶지는 않기 때문. 어찌됐건 밀리언셀러클럽은 나에게 또 한 명의 엄청난 작가를 알게 해 주었고, 앞으로 천천히 그들이 소개하는 멋진 작가들을 만날 거라는 기대감은 책 읽는 사람의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왠만해서는 원서 자료까지는 찾아보지 않지만, 주인공 아이코의 한자가 너무 궁금해 아마존 일본까지 들어가 봤다. 역시 주인공의 이름은 アイコ. 설마 '愛子'는 아니겠지 하는 예상이 맞았다. '일찍이 여자였던 괴물들에게, 그리고 앞으로 괴물이 될 여자들에게 바치는, 충격의 문제작'이라는 띠지와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는 - 마치 에미코의 집처럼- 곳으로 걸어가는 어린 여자애의 뒷모습이 찍힌 다큐 같은 사진의 표지가 인상적이다. 그런 면에서 한글판의 표지 삽화는 오히려 더 감상적인 느낌이다.

너무나 평범해서 한 번 보면 기억도 나지 않을 주인공이 살인을 서슴지 않는 '괴물' 혹은 '짐승'이 된 것은 태어나자 마자 짐승처럼 버려진 그녀의 출생과 고아원에서조차 서열상 먹이 사슬의 가장 아래에 있어야 했던 그녀의 성장 과정 때문일 수 있다. 짐승에게는 감정도 과거도 필요 없다. 그저 순간 순간 살아야 하며, 살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죽여서 잡아 먹어야 한다.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지우개처럼 지우기 위해 살인을 했다고 하지만, 짐승이 자신이 잡아 먹은 동물들을 어찌 일일이 기억하겠는가. 자신의 성장 과정을 탓하고, 스스로의 과거를 지우고, 그를 위해 죽인 사람들의 과거를 덧쓰고 살아가는 아이코의 모습은 짐승과 인간의 경계에 놓인 한 '괴물'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생존이라는 욕망과 본능에 충실한, 그래서 사람보다 더욱 순수한 존재다.

그런 그녀가 스스로의 위치를 자각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존재의 근원인 어머니를 만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어머니에게 '미안하다'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 그녀의 존재는 짐승의 세계에서 사람의 세계로 급격하게 쏠려 들어온다. 이후 그녀가 겪어야 할 삶, 사람에 가까워진 짐승으로서, 짐승 같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람들의 세계를 어떻게 살아내야 할 지 안타까운 마음마저 든다.

이제 그녀를 지배하던 정글의 법칙은 슬슬 힘을 잃을 지도 모르고, 어쩌면 더욱 커질 지도 모른다. 'I'm sorry, mama'는 과연 어떤 미래를 부르는 언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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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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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도 80%

그의 이전작, '펭귄뉴스'를 보고는 머리 속으로만 상상하는 요즘 소설들의 약간 발랄한 버전이라고 하며, 소재는 신선한데 전체적으로 지루하다는 평을 한 적이 있다.

1년이 넘게 지난 시점에 그의 새 소설집, '악기들의 도서관'을 읽게 되었다. 전작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쉽게 손이 가지는 않았지만, 평들이 대체적으로 좋길래 '그래? 그럼 어디 한번...' 같은 심정으로 읽게 되었다.

작가 스스로도 이것이 독자에게 보내는 자신의 편집 앨범이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음악이라는 하나의 커다란 소재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는 단편들은 전작 보다는 많이 정돈되고 통일된 느낌을 주었다.

작가는 8편의 단편들을 통해, 글을 쓴다는 것, 즉 소설가로서의 업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책 말미의 평론가는 리믹스, 혹은 디제이 소설가의 탄생이라고 했지만, 나는 김중혁이라는 소설가를 '콜렉터' 로서의 소설가라고 말하고 싶다. 그가 대단한 '콜렉터'라는 말은 어디선가 들은 기억일 수도 있고, 그의 이번 소설집을 읽으면서 나 혼자 느낀 인상일 수도 있다. (쓰다가 다시 보니, 출판사 책소개에 '잘 알려진 수집광'이라는 내용이 있다)

콜렉터로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고민은 그의 작품 곳곳에 드러나 있다.

'음악은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소멸되는 것입니다...', '... 쓴다는 것은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발굴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나는 문장 위에 덮인 먼지를 조심스럽게 툭툭 털어내기만 하면 된다. 고고학자가 된 기분이다.', '새로운 것은 어디에도 없다.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또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누군가, 가 그 수많은 밑그림 위에다 자신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등등

콜렉터의 할 일이란 찾기, 모으기, 편집하기/리믹스, 되살리기의 과정이다. 어찌보면 스크래치 없는 레코드, 악기들의 원음, 오리지널 텍스트, 原典은 지금의 소설가의 몫이 아닌 것이다. 그걸 바란다면 그는 아마 시인이 되었을테지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지난번 그의 소설집에 대해서도 이제는 약간은 너그러워 질 수 있겠다. 특이한 것을 모으는 콜렉터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기 때문에. 그의 지난 소설집이 찾기, 모으기에 집중한 것이라면 이번 소설집은 편집하기/리믹스의 단계가 아닐까. 이제 편집 앨범이 아닌 그만의 오리지널 앨범을 바란다면 무리한 희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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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 대한민국 30대를 위한 심리치유 카페 서른 살 심리학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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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사실 이 책을 집어든 나도 속으로는 누군가에게 터 놓고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게다.

내 인생은 대체 왜 이러냐고. 정말 잘 살고 있는 거냐고. 앞으로는 도대체 어떻게 될까.. 흔히들 술자리에서 털어 놓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해답이란 고작해야 같이 술 취해서 혀 꼬부라진 말로 장광설을 늘어 놓지만 다음날이면 서로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거나, 한가한 시간이 나는 주말 오후에 용하다는 점집이나 사주보는 집을 찾아가서 내 인생에 숨겨진 오의를 듣거나 하는 식이다.

생각해 보면, 이제 나는 서른살에서도 점점 멀어지고 있지만, 이 책은 스스로 문제를 푸는 것 보다는 풀이집의 해설을 보는 게 더 이해가 잘 가는 세대를 위한 해설집 같은 책이다. 어찌 보면 흔하디 흔한 성공 우화와 비슷하면서도, 심리학자가 풀어 놓는 얘기라니 좀 더 솔깃한 느낌.

결국 인생의 문제는 풀이집에 써 있는 모범 답안으로는 풀 수 없는 것. 그래도 자신 없는 사람들은 서점에 서서 살짝들 읽어 보시라. 이 책이 주는 답은 그 정도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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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먹다 - 제1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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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도 70%

단편 소설 한 번 써 보지 않은 아주머니가 처음 쓴 장편 소설로 권위있는(?) 문학상을 탔다는 사실을 먼저 알았다. 그리고 남자 이름을 한 이 작가가 블로그를 하고, 인터넷에 연재를 한다는 사실을 그 후에 알았다. 이 소설을 만난 건, 그녀가 그 연재 글 중에 인용한 문단들을 통해서였다. 한동안은 그랬다.

작가는 스스로 표면 장력의 끝을 본 게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라 했다. 입력이 넘치면 출력을 해야 한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작가의 글은 많은 입력이 있어왔고, 출력까지 또 많은 시간이 걸렸음을 보여 준다.

표면 장력. 어릴 적 물잔의 물이 넘칠 듯 넘칠 듯 시침핀을 계속 집어 넣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표면 장력으로 부풀어 오르는 수면 밑에는 그렇게 끊임없이 가라앉는 존재들이 있다.

읽으면서, 그래도 좀 더 넘쳐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삭이고 삭인 인물들의 내면은 매 챕터마다 등장하는 그들의 서술로 펼쳐지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목소리는 작가의 목소리 하나였다. 그래서 계속 새로운 인물이 나올 때마다 앞장을 뒤적이며 이름들을 찾아야 했다. 인물들을 작가의 가슴 속에서 좀 더 풀어 줬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답답함이, 인물들의 모진 사랑과 운명보다 더 먼저 느껴졌다.

스토리는 재미있다. 하지만, 너무 열심히 썼다. 그래서... 읽는 재미는 솔직히 많이 없다. 심사평 중 '공부하면 쓴 소설'이라는 말이 눈에 띄었다. 재미없다는 말을 이리저리 에둘러 말한 박완서 작가의 평에 동감한다. 심사평까지 다 읽고 나니, 상을 줘야 될지 말아야 될지 고민한 심사위원들의 난감함이 드러난다.

하지만, 작가의 다른 글에서 받은 인상은, '그녀는 말이 많다'는 것. 처음이라 그랬다 치자. 그녀의 문장은, 그녀의 공부는 그래도 기대를 하게 하지 않는가. 좀 더 시원하게, 좀 더 넘치게 풀어 낼 그녀의 이야기,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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