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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꿈의 해석 청소년을 위한 동서양 고전 9
박정수 지음, 지크문트 프로이트 원저자 / 두리미디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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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의 대가로 알려진 프로이트의 저서 중 가장 유명하다고 알려진 꿈의 해석은 무의식을 통한 심리적 행동을 해석한 것으로 우리가 흔히 접하는 심심풀이 해몽과는 뚜렷이 다른 양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꿈이라는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해몽은 단순히 꿈을 통한 정해진 틀에 따라 일정한 해석을 통해 운수를 보는 것이라면 정신분석학에서의 꿈은 단순히 꿈을 통해 예측을 하는 것이 아니라 꿈에 담긴 사람의 심리를 파악하여 우리가 모르고 있던 무의식의 세계에서 그 사람의 성향이나 자신도 모르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파헤치고 있다. 꿈을 통한 무의식의 표현을 분석하여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는 사람을 위한 심리 치료가 주된 목적이다. 이러한 꿈을 통해 자신이 겪었던 일이나 행위들을 꿈이라는 행위를 통해 다시금 표현함으로서 그 사람의 심리를 알아보는 것이다. 이러한 주제는 꿈이라는 명제를 가지고 사람의 무의식을 알아가는 하나의 단계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행동을 할 때가 있다. 가령 다리를 떨거나, 손톱을 물어뜯거나, 입을 내미는 행동 들을 할 때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이면서도 의식하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우리 신체가 불안함을 느끼게 되면 자연스레 그러한 행동으로 옮겨지게 만든 습관이다. 머리로 생각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신체를 통해 습득된 불안함의 습관으로 표현되는 무의식의 행위이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를 통해 우리는 쉽게 무엇 때문에 심리적 고통을 받는지 모른다. 이러한 신체는 습득된 행위로서 의식하지만 정신은 현실을 직시하고 있기에 의식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리적 불안은 신체를 통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꿈이라는 존재가 이러한 정신적인 부분에 있어 우리가 불안해하는 심리적인 부분을 꿈이라는 대상을 통해 이미지화 시켜서 그것을 통해 불안의 요소와 더불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표현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적인 부분으로 인해 신체가 겪는 고통이 단지 육체적으로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으로도 발생할 수 있기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꿈이라는 대상을 찾아 분석을 했는 것이다. 이러한 꿈에 대한 해석에 대하여 아직은 전문적인 접근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있어 이번에 접한 이 꿈의 해석은 상당히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든 장본인이다. 

 

프로이트에 대한 책이 읽기 힘든 이유는 고전이라는 아주 일반적인 이유와 정신분석학을 토대로 한 인문저서로 그의 이론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한 기초 지식의 부족이라 생각된다. 그러한 당사자인 나는 힘든 이러한 인문고전을 탐독하기 위한 시도는 여러 번 있었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쉽게 접근조차 하지 못했었다. 이러한 나에게도 꿈의 해석을 조금은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입문서 같은 이 책을 손에 들게 된 이유이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고전이란 가볍게 접근하지 못한다는 고정관념이 이러한 이유 아닌 이유를 만들어 낸다. 또한 이 책을 읽고 있어도 이론의 이해와 상관관계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머릿속에 이해되는 글보다 눈으로 훑어 내는 단지 국어 책을 읽는 것보다 더욱 못한 책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이러한 책을 읽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본적인 이해를 돕는 글들이 많고 시각적 다양성을 통해 성인이라도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 이런 인문고전의 접근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된다. 그래서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한’이라는 전제가 붙어 있는 책이지만 굳이 청소년이 아닌 아직은 인문고전에 대한 도전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독자 어느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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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스와 버질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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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파이 이야기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작가 얀 마텔이 두 번째 이야기로 돌아왔다. 사실 그의 전작이며 그가 유명해 지는데 도움이 되었던 파이 이야기를 읽어 보진 않았다. 단지 소문만 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에 자주 거론 될 만큼 유명 했고 굳이 글을 읽지 않더라도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접했었다. 그러했기에 이번 작품 역시 선택에 있어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이번에 그가 말하고자 하는 소설의 중점은 홀로코스트, 즉 유대인들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표현 방식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인데 이 표현 방식이 사람의 모습이 아닌 파이 이야기 때와 비슷한 동물의 모습을 빌려 말하고 있다. 작가는 독자가 알고 있는 또는 일반적인 매체를 통해 습득한 일반적인 상식 정도의 선에서 글을 써 내려 간 것이 아니라 베아트리스와 버질이라는 두 동물을 통해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에서의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집필 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단순히 동물들을 빌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 둘의 대화에서 오는 단순한 행위들이 예전 유대인이 겪었던 어떤 행위와 매우 흡사하며 그들이 겪었던 고통을 그 둘에게 투영시켜 독자에게 보여 줌으로서 우리가 알고 있었던 그 일들과 연관을 시키는 연결고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그 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처음 헨리가 구상을 하고 써내려간 작품으로 인하여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이야기만 들었다면 나 또한 홀로코스트, 나치라는 생각을 떠올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극중 작가 헨리가 만들어 놓은 그 틀에서 생각하다가 보니 결국 이 둘의 모습이 이렇게 보여 졌을 뿐이다. 또한 그렇게 만들어 놓은 글들에 두 동물의 이야기가 겹쳐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가 알고 있던 유대인의 슬픈 역사를 기억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박제사 헨리 역시 자신의 목소리만 빌려 말하는 베아트리스와 버질을 통해 자신이 생각했던 행동들을 다시금 바라보고 되새김으로서 그가 이 희곡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게 만든다.  

 

작가 헨리에게 박제사 헨리는 그의 도움을 통해 글을 완성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털어 놓음으로서 자신 행한 행위에 대한 죄 값을 받기 위한 고해성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가 처음 작가 헨리에게 보낸 글에서 보여주듯 인생의 한 조각을 용서 받으면 인생 전체가 전부 용서가 되는 것처럼 보여주는 소설의 모습들을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했듯이 조그마한 용서가 전부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잘못된 이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엔 작가가 만들어 놓은 틀에서 생각하도록 만들었지만 책을 계속 읽다보면 결국 이 책은 하나를 위한 아픔을 전해 주기 위한 책이라는 느낌을 그다지 많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잔인하지도 슬프지도 않은 이야기이지만 보다 보면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었다. 그 생각을 통해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에 맞게 이 세상의 모습에 쉽사리 수긍하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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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세계명저 30선
마쓰바라 류이치로 지음, 최선임 옮김 / 지식여행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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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었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돌이켜 생각해 보면 머릿속에 남는 것이 없다. 경제 분야는 내 취약 분야이기도 하거니와 책을 보고서도 단어나 용어들이 생소하기도 하고 기본 지식이 전혀 없이 읽은 탓인지 기억이 잘 나지도 않는다. 단지 경제 분야에 대한 첫 도전이자 시도였다. 첫 발을 내딛은 것이다. 지금은 솔직히 이것으로 만족한다. 경제학자들과 철학자들의 대표 저서들을 저자의 생각과 취합해 낸 책으로 쉽사리 어떠한 책을 볼지 몰라 막막했던 나에게 길라잡이의 역할을 했기도 하거니와 경제 분야의 생소했던 내용들은 조금이나마 조금씩 맛보기로 접할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이 책은 각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 있다고 말하기 보다는 각 인물들이 낸 중요 저서들을 아주 간략히 소개함과 동시에 저자의 개인적인 견해를 더해 읽는 독자가 조금은 쉽게 고전에 다가 갈 수 있게 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겠다. 어떻게 보면 어떠한 책을 읽어야 할지 어떠한 책을 골라야 할지 머뭇거리는 독자들이 쉽고 빠르게 자신이 원하는 책을 찾아 볼 수 있게 또는 자신이 봐야 할 책이 어떤 것인지를 아주 간편하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고전이라는 개념 자체가 소설뿐만 아니라 여러 글들을 접할 때 항상 어렵게만 다가오는 이유는 하나의 분야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여러 분야의 모습을 담고 있기에 어렵게 다가오고 쉽사리 읽히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어려움 속에 조금의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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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시대
장윈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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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소설의 변방작가라 일컬어지며 조용한 음색을 소리 없이 내는 작가라 말하는 장윈, 그녀의 소설이 소리 소문 없이 나에게 찾아왔다. 일전에 중국 작가의 작품을 읽어 보았다면 ‘다이허우잉’과 ‘양이’작가의 작품이 나와 함께 했었지만 그 많고 많은 책들 중에서 중국의 작가의 작품을 두 권 밖에 읽지 않았었다는 것이 내가 접했었던 일본의 작가들과 대비 되었다. 내가 접했던 이 두 작가의 작품은 한 결 같이 조용한 음색을 내는 그래서 더욱 잔잔하고 무겁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작품들이었다. 그래서 이번 장윈 작가의 글을 보기에 앞서 비슷한 색깔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내심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은 힘들지만 나름 생각하는 소설들을 마냥 좋아하는 나의 성향이 이런 기대감에 한 몫 했었다. 겉모습은 잔잔하고 조용하지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런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소설들을 찾아다니고 있는 것이 나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시란 소재를 사용하여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모습을 기대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예전에 나는 조용호 작가의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에서 노래를 통해 마음을 치유해가는 소설을 접한 적이 있었다. 그 소설에서는 우리의 가락과 민요, 가요를 통한 이야기를 전개했던 것이지만 음율이 있고 음악이라는 소재로 인해 소설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감정들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적이 있다. 너무 오래된 또는 내가 모르는 음악들로 인해 단지 음악을 글로 느끼는 감정들로 인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모습들을 오롯이 보고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장윈의 작품에서는 시를 소재로 사용함으로서 운율 정도만 알고 있어도 설사 운율을 모른다 할지언정 우리가 바라는 감정이입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길 위의 시대는 위에서 말한 거와 같이 시를 소재로 사용하며 또한 서로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의 모습을 띈다. 중국의 80년대 청춘들의 모습들은 낭만과는 거리가 있을 거란 편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소설에서 망허와 예러우, 천샹의 모습에서 시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묻어나와 그들의 낭만과 아픔을 엿볼 수 있었다. 시로 인해 청춘을 길 위에 던지고 그 길을 따라 천천히 자신만의 모습을 얻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걸 수 있는 망허의 행동에서 이상을 찾기 위한 여정은 지금 물질적 풍요만을 위해 길을 걸어가는 우리네 모습과는 상당히 대비되는 모습으로 비춰졌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위해 방황 할 수 있다는 것은 망허 뿐만 아니라 천샹과 예러우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떠난 길 위에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었지만 망허를 만난 예러우는 같은 길을 선택하게 된다. 시의 이름 앞에서 서로에 대한 마음을 조심스럽게 천천히 열어가는 두 사람. 이 두 사람은 시에 마음을 담아 서로를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서로를 떠나야 하는 두 사람의 또 다른 슬픔을 보여주고 있다.

망허와 예러우와는 달리 서로의 길이 같이 시작했다고 생각 했지만 시의 단어 속에 숨은 뜻을 찾듯 서로 다른 의미의 모습을 보여주고 처음부터 만나지 않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던 두 사람 망허와 천샹, 이 두 사람의 시작은 작은 도시의 강연회라는 자리에서 시라는 주제를 가지고 시작 되었지만 그 것은 시 속에 숨겨진 다른 뜻이었고 다른 길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속에 같은 단어라도 그 뜻이 상반되거나 다른 모습으로 보여줄 때가 종종 있다. 망허라는 인물이 이러한 두 개의 다른 뜻은 품고 있는 그런 인물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작은 반전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시를 좋아 하기 때문에 시인이라는 모습 또한 좋아했던 천샹이지만 시간이 흐른 후 그의 진실을 알게 된 천샹으로 인해 자심이 가진 시의 모습들이 마냥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게 된다. 자신이 그토록 좋아 하는 시를 통해 행복했지만 또 다시 시를 통해 끔찍한 고통을 받게 된다. 시를 통해 망허나 예러우, 천샹의 모습들은 시를 통해 만족감을 얻었지만 시를 통해 상실을 또한 경험하게 된다.

 

시란 천천히 다가와 천천히 마음을 둘러 보다 눈물을 통해 밖으로 배출되는 뭐 그런 종류의 글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글을 함축하고 짧은 그 글 속에 모든 생각을 담을 수 있고 그 글을 통해 감동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시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되뇌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만의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그래서 일반적인 소설 보다 시에 접근하기가 더 어렵게만 생각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 생각을 했던 것이 소설의 모습이지만 그 속에 쓰인 글들은 소설을 읽는 다는 느낌 보단 그 글들을 보면 볼수록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시의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다. 내용의 연관성이 시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내용은 내가 생각 했던 그 이상의 잔잔한 감동이상을 주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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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나를 위해서만 - 죽을 때 후회 없을 단 한 가지 삶의 태도
라인하르트 K. 슈프렝어 지음, 류동수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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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문득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라는 생각이 자주 하게 된다. 나도 내가 원하는 거, 즐기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눈치 보지 않고 해보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주위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온전히 나를 위한 삶이 잠시만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다. 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까? 솔직히 남부러울 거 없는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다 처음으로 내가 원해서 ‘나 이거 꼭해야겠다.’ 라는 말과 함께 시작한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프로젝트를 위해 하루 밤낮으로 걸상에 엉덩이 부비며 살아온 시간들이 나를 이렇게 바뀌게 만들었다. 솔직히 쉬운 일은 이 세상엔 없다는 것을 다시금 절실히 깨닫게 되는 상황이다. 학창시절에는 선생님과 부모님이 채찍질 해가며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면 지금은 주위에 아무도 없다 내가 원하는 거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도 나에게 가져다주지 않는다. 그렇게 힘든 생각을 가지게 되다보니 자연스레 나를 채찍질 해 줄 수 있는 멘토 같은 책을 찾아 나서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책 제목만으로도 나를 위한 무엇인가 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은 모습이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되어버렸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을 크게 남과 나라는 두 가지의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했었다.

 
첫째, 남을 위한 인생 - 자신이 한 행동이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을 위한 행위가 아닌 남을 위한 행위를 해왔었던 지난날의 삶이다. 내 인생을 남을 위해 살아왔다는 것이 아니라 남의 눈치와 모든 주변 여건상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야만 했었던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울, 무기력, 핑계, 주변의 환경으로 인한 자연스런 선택적 상황까지 그것은 나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자기합리화에 기인한다. ‘~했기 때문에, ~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하지 않으면’ 등등 이러한 말 자체가 어떻든 간에 말한 원인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짐으로서 결과를 떠안게 된다. 결과적으론 ‘남을 위해서 나를 희생한다.’라는 전제가 깔려 있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남을 위해 나의 삶을 없애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그러한 선택에 있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선택에 자신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결과를 만들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 자체가 남을 위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이 그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이 맞딱들인 상황에 대해 억울해 하는 모습이 잘못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이 그렇게 선택했었기에 그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자신에게 있지만 우리는 쉽사리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은 항상 남을 위해 살았다는 기분으로 인생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주지 시켜주고 있다.

                                          “ 결단이 차이를 만든다. ” - [p187]

둘째, 나를 위한 인생 - 이러한 남을 위한 삶을 이제는 벗어 버리고 자신만을 위한 진정한 선택을 하라는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자의든 타의든 선택을 했으면 후회는 없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나를 위한 인생을 사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가 사회에 속해 살면서 배재 할 수 없는 부분이 주변의 상황과 자신의 위치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그런 상황과 위치에 억매이지 않고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하기 바라는 저자의 궁극적인 목적을 제시 하고 있다. 우선은 자신을 위해 해야 할 것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지금 당장 우물쭈물 하지 말고 과감한 결단력으로 실행에 옮기길 바라고 있다. 이것은 저자가 우리에게 바라고 있다고 생각하기보단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바라고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항상 주변의 눈치를 받고 있는 삶에 대한 스스로의 탈피를 위해 노력하지만 결과적으론 앞서 말한 행위에 대한 자유의 구속적인 모습이 계속적으로 악순환 될 뿐이다. 그러니 이제는 ‘~할 것이다, ~해야지,’ 등의 어렴풋한 결심 보다는 ‘ 지금(당장) ~한다.’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미래를 위해 세우는 결심은 다음으로 미룰 수 있지만 현재(지금)에 당장 실행해야 하는 약속은 미룰 수 없다. 지금이 아니면 그것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들을 습관화 시킨다면 전보다는 나를 위한 삶의 부분이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감정적으로 책을 접해서인지 화가 났었다. 내가 알고 있던 당연시 생각했었던 상황을 토대로 나를 질타하는 책은 아니었지만 생각의 생각을 거듭하고 읽고 또 읽으면 화가 나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또한 그 화의 주인공은 나로 향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나를 위한 쓴 소리를 이 책을 통해 접하지만 앞서 말한 것과 같이 화가 나는 이유는 도덕적 논쟁, 합리적인 논쟁을 떠나서 오로지 인과관계에 따른 나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과 그 결과의 책임은 나를 향해 있다는 것이다. 감정을 배제한 원인과 결과, 그것이 결국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게 만들어 버리고 화를 나게 만드는 이유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 책의 제목에서 보듯이 오롯이 『내 인생 나를 위해서만』이다.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사회적인 지위와 공동체 삶 안에서의 나의 지위로 인해 만들어진 내 삶이 아닌 주위의 간섭 없는 나 혼자만을 이야기 한다. 그래서 처음 접할 때는 주위의 모습에 둘러싸인 내 모습을 투영해 보기에 이해를 하기 힘들겠지만 모든 것을 주위의 모든 요소를 하나씩 소거해 보게 되면 분명히 이해하고 조금은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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