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트리스와 버질
얀 마텔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파이 이야기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작가 얀 마텔이 두 번째 이야기로 돌아왔다. 사실 그의 전작이며 그가 유명해 지는데 도움이 되었던 파이 이야기를 읽어 보진 않았다. 단지 소문만 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에 자주 거론 될 만큼 유명 했고 굳이 글을 읽지 않더라도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접했었다. 그러했기에 이번 작품 역시 선택에 있어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이번에 그가 말하고자 하는 소설의 중점은 홀로코스트, 즉 유대인들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표현 방식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인데 이 표현 방식이 사람의 모습이 아닌 파이 이야기 때와 비슷한 동물의 모습을 빌려 말하고 있다. 작가는 독자가 알고 있는 또는 일반적인 매체를 통해 습득한 일반적인 상식 정도의 선에서 글을 써 내려 간 것이 아니라 베아트리스와 버질이라는 두 동물을 통해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에서의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집필 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단순히 동물들을 빌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 둘의 대화에서 오는 단순한 행위들이 예전 유대인이 겪었던 어떤 행위와 매우 흡사하며 그들이 겪었던 고통을 그 둘에게 투영시켜 독자에게 보여 줌으로서 우리가 알고 있었던 그 일들과 연관을 시키는 연결고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그 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처음 헨리가 구상을 하고 써내려간 작품으로 인하여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베아트리스와 버질의 이야기만 들었다면 나 또한 홀로코스트, 나치라는 생각을 떠올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극중 작가 헨리가 만들어 놓은 그 틀에서 생각하다가 보니 결국 이 둘의 모습이 이렇게 보여 졌을 뿐이다. 또한 그렇게 만들어 놓은 글들에 두 동물의 이야기가 겹쳐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가 알고 있던 유대인의 슬픈 역사를 기억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박제사 헨리 역시 자신의 목소리만 빌려 말하는 베아트리스와 버질을 통해 자신이 생각했던 행동들을 다시금 바라보고 되새김으로서 그가 이 희곡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게 만든다.  

 

작가 헨리에게 박제사 헨리는 그의 도움을 통해 글을 완성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털어 놓음으로서 자신 행한 행위에 대한 죄 값을 받기 위한 고해성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가 처음 작가 헨리에게 보낸 글에서 보여주듯 인생의 한 조각을 용서 받으면 인생 전체가 전부 용서가 되는 것처럼 보여주는 소설의 모습들을 빌려 자신의 이야기를 했듯이 조그마한 용서가 전부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잘못된 이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엔 작가가 만들어 놓은 틀에서 생각하도록 만들었지만 책을 계속 읽다보면 결국 이 책은 하나를 위한 아픔을 전해 주기 위한 책이라는 느낌을 그다지 많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잔인하지도 슬프지도 않은 이야기이지만 보다 보면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었다. 그 생각을 통해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에 맞게 이 세상의 모습에 쉽사리 수긍하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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