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 위기의 사고 - AI 시대, 인간은 어떻게 스스로를 포기하는가?
에릭 사댕 지음, 이선주 옮김 / 헤이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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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가 불안을 이끌고, 그 불안은 우리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게 한다. #멸종위기의사고 (#에릭사댕 지음 #헤이북스 출판)은 TV를 넘어 스마트폰을 넘어 인공지능 AI까지, 우리가 손에서 놓지 않는 ‘바보상자’들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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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이라고 믿고 있지만 100년 남짓밖에 되지 않은 공리주의와 같은, 세상을 통제하기 수월하게 지배층이 선택한 ‘사회 이념’에 AI도 동승했다.
그래서 AI가 도입되는 초반에 경계하고 면밀히 살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너무나 빠르게 실생활에 도입되었다. AI가 주도하는 산업 시장에서 인간은 ‘효율성’이 떨어진다. 비싼 인건비, ‘워라밸’이라 일컫는 삶의 질 보장과 같은 것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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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경제와 공리주의 이념 아래에서 더 나은 것은 당연히 더 많은 돈을 더 많은 사람(기업)이 버는 것이니까. 인간의 존엄성은 더 나은 결과를 얻는 데 방해물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나의, 우리의 진짜 삶은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 삶에 그것들을 받아들였기에 문제를 시스템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나는 왜 이렇게밖에 못 하는가’라며 스스로를 탓하고 비관하며 삶을 즐겁게, 소중하게 누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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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의 사고>를 읽으면서 머릿속에 익숙함과 편안함이라는 단어가 계속 맴돌았다. 우리는 더 나은 것을 추구할 때, 더 나은 것의 기준이 편안함이 되는 경우가 많다. 좀 더 힘들이지 않고, 좀 더 괴롭지 않게 되는 것, 편안함. 하지만 우리는 편안함과 익숙함을 혼동하고 있다.
지금 나의 상황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더 나아질 수 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식함에도 불구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익숙한 지금을 벗어나는 것이 힘들고 괴롭기 때문이다. 지금이 편안하다면 불편함을 느낄 리 없다. 하지만 우리는 불편함에도 행동하지 않는다. 사고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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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가 인간의 존엄보다 AI가 가져다주는 경제적, 물질적 풍요가 더 값어치 있게 여겨지는 오늘날의 현실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AI와 같은 기술들과 경제적 여건들은 우리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바람직한 삶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 주객전도가 발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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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직한 방향으로 발걸음을 틀 수 있는 갈림길에 놓인 이정표 같은 책이다. 이정표를 마주한 우리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사고하고 행동하고 인간의 고유성과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방향으로 한 발 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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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작은 아씨들 1~2 세트 - 전2권 ㅣ 비룡소 클래식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제시 윌콕스 스미스 외 그림, 황소연 옮김 / 비룡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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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보통 사람의 인생 전체를 주욱 따라가는 작품들을 읽으면 별다른 것 없이 고요하게 흘러가는 삶을 바라보는 잔잔한 감동이 있다. 조미료없는 슴슴한 음식에 묘한 매력을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별일 없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단단하고 후회없는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을 보며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던 나의 삶을 떠올려보면 신기하게도 나쁘지 않아 보이는 것이 적어도 한가지는 떠오른다. 삶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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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작은아씨들 (#루이자메이올컷 지음 #비룡소 출판)은 진수성찬이다. 따라가야 하는 삶이 적어도 네개. 거기에 자매의 부모와 옆집 로렌스까지 슴슴할 틈이 없는 각자의 맛이 뚜렷한 음식들이 늘어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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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어느 것 하나 진심이 담겨있지 않은 것이 없다. 저마다의 매력이 있고, 조금 속물 같이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설득력이 충분하다. <작은 아씨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저마다의 능력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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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다른 재능과 기질로 투닥거리기도 하지만 이십대가 되고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로 성장하는데 있어 서로가 스승이 되어주고 누구보다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주었다.
처음에는 누군가에게 더 몰입되고, 다른 누군가는 조금 시시해보이던 것이 두꺼운 두 권을 덮을 때는 어느 것 하나 하찮은 것이 없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이 합쳐져 하나의 삶을 완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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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자매는 겉으로 보이는 삶의 모습을 제각각이었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랑하는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심지어 왜 책을 읽는가, 왜 달리는가 라는 질문에 시원하게 답을 하지 못한다. 여전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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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네 자매는 결국 원하는 것을 찾아서 그것을 좇았다. 책 마지막에 그들의 삶의 모습이 좇던 것과 일치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그들의 삶은 계속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서른의 나이.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긴 이들에게 지금의 모습은 과정일 뿐이다. 하지만 결국 이들의 삶은 완성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 확신의 이유는 자신을 알려고 노력했고, 원하는 것을 얻기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지금까지 살아왔기 때문이다. 더불어 시대가 시대인지라 결혼, 여성에 대한 사회관이 지금 우리와는 몹시 달랐음에도 그렇게 많이 답답하지 않았던 것은 가난한 가정임에도, 가난을 벗어나고 싶어했음에도 결혼을 택한 이유가 상대방의 배경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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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집필 될 때는 연애결혼이라는 것이 거의 없던 시절이라 사랑으로 결혼한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거의 판타지에 가깝다. 그 판타지를 우연이 아니라 심지어 주체적인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었으니. 이 시대를 이야기하는 수많은 작품 속 여성들 중에서 인물 자체의 흡입력은 부족할 수 있으나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지금 우리의 시대에서 보아도 부족하거나 아쉽지 않은 거의 유일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여성이 글을 쓰고, 심지어 글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에서는 그렇게 크게 와닿지 않는다. 사랑있는 삶. 스스로가 결정하고 나아가는 삶. 그것의 한 모습일 뿐이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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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엔 그들의 삶에서 배우고 느끼는 것이 너무 많았다. 어느 한순간에도 훈훈함이 가시지 않았던 한 가족의 이야기, 그 자체가 삭막한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이미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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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 없는 삶이란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더 가치있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 나아갈 수는 있다. 그런 나아감을 응원해주는 의지와 따뜻한 격려. 이 모든 것이 이 책에 빼곡하게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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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이지수 옮김 / 디플롯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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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만 년의 인류 멸종기라고 해야할까.
#큰새에게사로잡히지않도록 (#가와카미히로미 지음 #디플롯 출판)에 담겨있는 순서에 맞지않게 배치되어 있는 14개의 이야기는, 읽는 동안은 그래도 주인공은 어느 시점에 위치하고 있는지 상상하게 하면서도 마지막 장을 덮으면 책도, 역사도 끝났구나라는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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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멸종되는 것을 최대한 지연시킨 것은, 인간이 그렇게나 경계하던 인공지능이었다. 인간이 사라지면 자신의 쓸모도 없어진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목적이 흐릿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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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을 키워내는 어머니, 그리고 ‘커다란 어머니’로, 그 오랜 세월 인간들을 키우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런 인간들 사이에서 특이한 아이들이 태어나고 인간의 멸망을 막기위해 소집단 규모의 고립을 택한다.
고립에서 오는 각각의 형질을 지켜내고, 그로인해 다양성을 유지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그 다양성 속에서도 인간의 본성이 변화를 막아선다. 기가 막히게 자신들과 다름을 알아채고 제거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상황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나아진다는 것은 작은 변화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지금 자신들의 쥐고 있는 것을 놓지 못하는 인간은 멸망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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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배척하는 인간과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않고 인간들을 키워왔던 인공지능. 무엇이 더 ‘인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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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여자 둘만 남아 멸종이 확실해진 상황.
그 상황에도 최후의 인류를 보살피고 있는 것은 역시나 ‘커다란 어머니’, 인공지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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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희망이라고는 없는 고요한 마지막 장에서 최후의 인류 두 사람의 삶의 방식은 다르다. 고요하게 언제올지 모르는 죽음을 슬프지 않게 맞이하려는 아이와,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내겠다는 아이.
결국 다른 생명체의 세포에서 유례한 작은 인간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하고 그들의 성장과 삶을 위에서 ‘신’처럼 바라본다. 다른 아이는 궁금하다. 그 ‘인간’들도 ‘기도’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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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인줄 모른다지만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속 인간들은 ‘커다란 어머니’를 부르는 어머니라는 단어에서는 가족이라는 관계가 느껴지지만 대디, 맘이라고 부르는 ‘진짜 혈연관계’에서는 그것이 그 사람들의 이름일뿐인 것 같이 느껴지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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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 안락함, 부. 많은 것들을 꿈꾸며 살아가는 우리 인간이지만 어쩔 수 없이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위해서 다른 이들을 배척하고 그들과 싸워 승리하는, 승리하는 것 뿐만 아니라 상대를 파괴하는 선택들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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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서 이런 저런 관계들을 맺고 있지만, 소속감을 느끼기 쉽지 않은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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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의 영장이라는 거창한 지위를 누릴 수 있는 것도 결국은 규모때문이다. 지구 상에 이토록 많은 개체수를 가지고 있는 종이 또 있을까. 아니 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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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그나마 더 낫다면 다른 것들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
다른 것이 틀린 것이 아니며,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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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우리가 멸종하는 시기가 온다라는 것을 막연히 지금 우리도 생각하고 있다. 살기 퍽퍽해지면서 먼 훗날을 생각하기 보다 지금 자신에게 집중하며 살고 있다. 인간이라는 종 대부분이 그렇게 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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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태도들이 우리의 마지막을 앞당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정함이 우리를 살릴 수 있다라는 말을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더불어 무엇을 해야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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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1 ㅣ 비룡소 클래식 43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제시 윌콕스 스미스 외 그림, 황소연 옮김 / 비룡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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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진정한 행복일까.
부러움이란 감정은 끝이 있을까.
꼭 여성스러워야 할까.
수많은 질문들이 네 자매의 일상에서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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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함을 싫어하면서도 힘든 부모님께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려 누군가는 일을 하러 다니고, 놀이에 필요한 것들은 할 수 있는 한 만들고, 진지하게 피아노와 함께하는 삶을 꿈꾸지만 덜그럭거리는 누래진 건반의 오랜 피아노를 싫은 기색을 숨기며 연주한다.
‘여자처럼’을 몹시 싫어하지만 언니의 치장을 누구보다 열심히 돕고 파티에 함께 참여한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비록 완벽한 이해는 하지 못한 것 같지만) 반대라서 오히려 끌리는 법이라며 서로의 다름에 기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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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씨들 (#루이자메이올컷 씀 #비룡소 출판)의 두툼한 첫번째 권을 넘기는 내내 동화같다는 생각을 했다.
유치하다는 뜻이 아니라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했다는 뜻이다. 힐링이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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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바로 옆에 누가 사는지, 살고 있는지 비어있는지도 모르는 삭막한 사회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것 같은 다정한 유대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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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이 가난하다고 여기고 있음에도 이웃이 배를 곯고 있으니 자신들의 크리스마스 기념 식사를 기꺼이 가져다 주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유복한 가정에서 살지만 다른 아이들과 잘 지내지 못하는 아이에게 먼저 손을 내밀기도 한다. 이 자매의 다정한 손길은 그 온기를 전해받은 아이들이 그렇게 말했듯 천사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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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사람만이 다정한 온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작은 아씨들>이 다시한번 알려주었다. 다른 이들을 바라볼 수 있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환경만을 불행하다 여기지 않고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 그 마음이 다른 이들을 사실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사실 그대로 바라보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도 필요하다. 나의 아픔과 저울질 할 필요없이 다른 이들의 다른 아픔도 똑같이 아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한다. 넉넉하지 못하더라도 나의 것이 더 뜻깊게 쓰일 수 있다면 기꺼이 나눠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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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후천적으로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인데 그렇기에 가르침이 무척 중요하다. 비룡소의 고전 시리즈가 다 그러하지만 특히 <작은 아씨들>은 아이와 부모 함께 보기에 더 좋은 이유가 이것이다. 전쟁이 났을 때 피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위해 기꺼이 참전한 아버지. 전쟁터에서도 아내의 노고와 아이들의 사랑을 절대 잊지 않고 다정한 편지를 적어 보낸다. 그런 아버지(남편)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하루종일 일하는 엄마.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항상 다정하면서도 해야할 것을 정확하게 가르치는 엄격함도 갖추고 있다. 누군가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기쁨을 알려주는 것도 엄마다. 나누어주자 제안하고 직접 준비하게 하고, 직접 베풀게함으로 보람과 기쁨을 느끼게 한다. 그 기쁨을 맛보고 나서는 당연히 그 기쁨을 다시 맛보기 위해 주위로 눈을 더 자주 돌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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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가치관을 지키면서 그와동시에 수정을 하며 네 자매는 성장해간다. 더이상 아이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의 사춘기가 떠올랐고, 누구보다 중요한 시기임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의 중요한 성장기를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아이의 성장을 통해 이제 더이상 아이가 아닌 나도 성장의 여지가 있음을 느끼고 성장하고픈 마음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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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2>에서 이 동화같은 이야기가 어떻게 끝맺음을 할지 기대된다. 책을 덮었을 때 내가 어떤 것을 깨달았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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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서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배수아 옮김 / 봄날의책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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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개의 조각. 그 조각들을 조각이라 부를 수 있을까.
원래 하나임이 분명해야 조각이라 부를 수 있을텐데. 분명히 각자가 저마다의 색으로 살아 숨쉬고 있다.
하지만 분명 이것은 조각들로 나에게 다가온다.
‘불안’이라는 하나의 감정 때문일까.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하나의 인물, 하나의 삶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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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서 (#페르난두페소아 씀 #봄날의책 출판)은 각자의 크기로 깨어져 한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방대한 양의 부(-)의 감정들이 어둡게 반짝이고 있다. 실패하고, 넘어지고, 부서지고, 절망하고, 자책하고, 비난하고, 숨 쉬기를 그만두고, 끝내 침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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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책이 그런 온갖 부(-)의 감정으로 가득함에도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페소아의 침묵의 방식때문이다. 페소아는 침묵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글이라는 조용한 목소리로 자기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에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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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레스라는 또 다른 자신을 앞세워 자신은 온전한 침묵을 누리는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을 가리는 것도, 드러내는 것도 <불안의 서>에 모두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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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이야기가 숫자와 상관없이 자유로운 조합으로 무수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의 기억한다는 행위와 비슷하다. 각각의 장면, 그 장면 중에서 일부의 것들이 아무런 개연성 없이 연결되어 또 하나의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지않나. 481개의 이야기도 여기저기에서 뚜렷한 이유도 없이 만나 새로운 이야기의 가능성을 싹틔운다. 그래서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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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으며(덮으며)떠올린 이야깃거리는, 양립할 수 없어보이는 침묵(들)과 사람들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담은 <불안의 서>를 쓴 페소아는 이처럼 불안을 비롯한 부(-)의 것들이 가득한 삶을 살았으니 불행한 삶이었을까라는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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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그리고 온갖 부(-)의 감정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물러있을 때 생겨나고, 그 힘이 강해진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않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않으려하는 중력과 관성, 그런 것들에 함몰되어 멈추었을 때, 내 내면의 마음과 지금 나의 행동의 어긋난 균열에서 그런 감정들이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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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감정들을 물리치는 방법은 하나다. 행동하는 것.
지금의 편안함과 예상가능성을 물리치고 기꺼이 어떤 결과로 다가올지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한걸음 내딛는 것. 그것이 기분 좋은 긴장감과 묘한 해방감을 느끼게 하고 카타르시스에서부터 시작되는 정(+)의 감정들을 느끼게 한다. 그런 미지의 위험을 예찬하고, 불확실성을 환대하는 것. 페소아가 <불안의 서>를 쓴 것이 나는 그가 그런 위험을 향해 내딛은 족적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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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몇 번의 책이 흥행에 실패하고 몇 살에 죽었는지는 겉으로 보이는 사실일 뿐, 그가 불행해 했다는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그는 살아생전 70여개의 이명 (heteronym)을 사용했다고 한다. 가명(pseudonym)이 아닌 이명. 그는 하나의 정립된 자신이 아닌 각각의 서로다른 가능성을 지닌 자아들로 이루어진 사람이었다.
한 사람이자 세상 모든 사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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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의 삶의 모습이 수많은 조각들, 가능성으로 만들어진 <불안의 서>와 많이 닮아있다.
그의 삶 그 자체와 같은 책.
모두가 자신의 못난 감정을 대입할 수 있는 책.
이런 책을 써낸 사람이 충만하지 않았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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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의 삶과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계속 나아가고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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