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여름 - 태양, 입맞춤, 압생트 향… 청년 카뮈의 찬란한 감성
알베르 카뮈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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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들어가니 수많은 작품들이 저마다의 색을 뽐내며 전시되어 있다.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가며 작품 하나하나와 눈을 맞춘다.
어렵다.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제대로 마주하기 쉽지 않고, 잠시라도 집중을 놓치면 다시 바라봐야 한다.
하지만 바라봄을 멈추지 않는다.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본능적으로 하나는 알기 때문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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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여름 (#알베르카뮈 씀 #녹색광선 출판)을 읽는 나의 심정이 그러했다. 전시 입구부터 두 눈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쪽빛을 따라 들어가 마주한 문장들은 쉽지 않았다. 긴 흐름은 집중하기 쉽지 않았고, 집중하지 않으면 문맥을 놓치기 일쑤였다. 그러나 잘 모르는 나에게도 문장 하나하나가 아름다웠다. 통필사를 하고 있다는 독서 친구도 있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명작들 앞에서 하루 종일 모작을 그리고 있는 청년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이해보다는 아름다움을 따라 멈추지 않고 걸었다. 이해보다 표현하지 못할 감동이 더 힘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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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가 무더운 여름을 보낸 알제리를 포함한 지중해 지역에서 작성된 글은 ‘여름’이 주는 이미지와는 달리 전쟁과 죽음, 허무와 같은 비관적인 것들을 다루고 있다. 시지프 신화와 이방인의 주요 개념이 되었던 부조리의 씨앗이 글 군데군데에서 발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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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뜨거운 여름 날에도 멈추지 않고 관능적인 춤을 추는 젊은이들 때문일까. 글은 ‘부조리하게도’ 생명력으로 넘쳐난다. 죽지 않는 몸으로 죽을 때까지 무거운 바위를 계속 밀어올려야 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자유 의지의 결과로 받아들인 시지프의 꺼지지 않는 눈빛과 터질 듯한 팔다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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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보다 죽음이 더 가까웠던 모든 것이 황폐했던 겨울을 지나 마침내 맞이한 여름은 의미가 없어도 괜찮다.
그렇게 땀을 흘리고 생명력을 뿜어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면, 겨울을 겪은 후에도 여전히 잘못된 것과 옳은 것을 구분하고 굽히지 않을 수 있다면 무언가를 배우고 깨우치지는 못하더라도 지중해의 여름을 그저 그렇게 그대로 만끽하는 것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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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이 아닌 애정 어린 비판의 시선. 그 시선의 끝에는 젊음과 생명이 있다. 그 시선의 끝을 넘어 아직 만나지 못한 끝없는 생명력과 젊음, 뜨거움이 박동하고 있다.
아마 글 너머에 있는 그 뜨거움을 나는 느낀 게 아닐까.
그렇기에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글에 감화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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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이성적이고 철학적인 글일 테지만 나는 감각적으로, 그것만으로 읽었다.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 이 훌륭한 쪽빛 입구의 전시관은 언제나 그 빛을 간직한 채 나를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을 테니까. 언제든 나는 그저 찾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관람을 멈추지 않다 보면 작가의 진의를 마주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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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해 눈치를 보는 순간이 제법 있다. 독서 모임을 시작한 이유도 그러했다. 혼자서는 찾지 못할 올바른 방향을 다른 분들이 다정하게 이끌어 주었다. 이 책도 그분들과 함께 읽었지만 올바른 방향보다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아름다운 것을 함께 바라보는, 전시회에 함께 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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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전시로 기억되어 또 다시 기웃거리게 될 것이 분명한 책이다. 또 바라보았을 때 나는 무엇을 발견하고, 기록하게 될까. 여름이 지나가고 있지만 또 여름을 꿈꾸고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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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라이팅 - 첫 문장의 부담을 내려놓고 누구나 막힘없이 쓰는 법
바버라 베이그 지음, 박병화 옮김 / 부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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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1년 반 정도 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자신이 없다. 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기 쉽지 않았다.
서평가도 아닌 흔한 일반인이 책을 읽고 쓴 글을 ‘글’이라고 할 수 있는지부터 고민이 되었다. 내 글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막연하게 이게 맞나라는 의구심만 지닌 상태로 계속 글을 썼다.
마감 기한이라는 강제력이 없었다면 아마 나의 글쓰기는 진작 끝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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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글쓰기를 놓지 않은 덕에 #프리라이팅 (#바버라베이그 씀 #부키 출판)을 만났다. 뿌옇게 안개가 자욱했던 머릿속이 선명해지는 느낌이었다.
30여 년 동안 글쓰기와 글쓰기 교육에 몸담아온 저자는 글쓰기가 재능이 아니라 갈고 닦으면 성장하는 노력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생각나는 대로 비판하지 않고 쉼 없이 펜을 놀리는 ‘프리 라이팅’ 기법을 포함한 글쓰기의 과정을 소개한다. 마감 기한이 임박해서 토해내듯 두들겨내는 바이트(byte)들이 아니라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 내가 얼만큼 알고 있는지에 따라 정해진 과정을 따라 효율적이고 ‘유용한 좋은’ 글을 적당한 시간을 소요하며 쓸 수 있도록 과제를 제시하며 실제 글쓰기 수업 현장에 와 있는 것처럼 직접 실습을 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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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을 해보며 책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니 내 글쓰기를 방해하는 요인과 글의 올바른 방향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을 내가 제일 사랑하고 격려해줘야 하건만, 나의 가장 커다란 적은 나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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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주제로 삼든, 어떤 문장을 적든 한번 의구심이 생기면 스스로의 눈에는 좋아 보이지 않는다. 계속 생각하면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하게 하는 뇌의 구조상 결국 ‘나까짓게’ 무슨 글이냐며 글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으로 낙인찍어 버린다. 글을 그냥 적어봐야 하는 것. 그냥 시작해봐야 하는 것이다. <프리 라이팅> 속 글쓰기의 첫 단계도 ‘시작하기’이다. 시작해야 생각해 볼 대상이 생긴다.
조금 못 쓰고 못나 보이면 어떤가. 잊었던 오구오구를 열과 성을 다해 나 스스로에게 나의 글쓰기에게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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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의 목표에 대한 생각도 조금 더 할 수 있었다.
처음에 아무 생각 없이 써 오다가 글의 목적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북스타그램으로 친해진 분의 질문에서부터였다. ‘그래서 하고픈 말이 뭐예요?’ 이 질문에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냥 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 질문 이후로 하고픈 말을 정하고 그것이 녹아들도록 나름 글을 써 왔는데 <프리 라이팅>이 말하는 글의 목표는 ‘독자의 목표’였다. 글은 글을 쓰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독자에게 건네는 글로 된 말이며 대화의 시작이자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을 위한 것이다.
그렇기에 독자들이 이 글을 왜 읽어야 하는지, 어떤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이 글을 찾을지를 생각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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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단순하면서도 기본인 이 두 가지를 나는 이제서야 깨달았다. 나같이 글쓰기에 대해 자신이 없고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 제법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좋은 자세다. 하지만 그것이 과해져 결국 펜을 들지 못하는 지경이 되기 전에 <프리 라이팅>을 따라 스스로를 믿고 어여삐 여기며 찬찬히 연습해 나간다면 글쓰기를 사랑하게 되고, 그렇게 꾸준히 글을 쓰는 나 자신도 사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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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삶에, 하루의 일부분으로 꾸준히 두려는 사람에게 훌륭한 교재다. 격려까지 잊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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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의 법칙 ㅣ 인간 본성의 법칙
로버트 그린 지음, 이지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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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틀린 경우가 제법 되는 말이다. 대부분 통증으로 신호를 보내는 몸도 나 스스로 잘 알기 쉽지 않은데, 들여다보아도 잘 보이지 않는 무색무취, 만질 수도 없는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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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부모에게서부터 시작되는 타인들이 건네는 말 한마디 한마디들이 모여 ‘나’가 되는데, 이것을 곧이곧대로 믿고 스스로 생각하고 파악하기를 멈추면 그 삶은 그냥 숨만 쉬며 ‘작동’하고 있는 것과 같다. 내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특정한 것들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키트가 필요하다. 나 자신의 반응을 살피는 데 집중할 수 있는.
#인간본성의법칙 (#로버트그린 씀 #위즈덤하우스 @출판)은 인간이라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18가지의 법칙을 소개하는데, 이것이 오히려 나 자신을 파악하는 18개의 진단 키트가 된다. ‘맞아 맞아’라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이것은 좀 와닿지 않는다’ 식의 반응을 하다 보면, 이 반응이 내 주위 사람들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세상은 내가 인식하는 대로 생겨먹는다고 했다. 타인도 당연히 세상의 일부라는 듯이 타인을 인식하려 하니, 나 스스로에 대해 먼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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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원래 나다운 게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는 평생 고민해야 하는 어려운 질문이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를 잘 모르는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에 대해 잘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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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는 타인을, 이것이 이기심보다 이타심이라면 조금 나을 수 있지만 타인의 시선, 사회에 걸맞는 정해진 모습으로 살아가느라 나를 살펴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를 살펴보려면 잠시 멈춰야 하는데, 이 사회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 일상에서 멈출 수 있는 순간이 바로 독서이다. 심지어 이렇게 스스로를 살펴볼 수 있는 키트 같은 책이라면 금상첨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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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Yes 또는 No로 하나씩 대답해나가다 보면 나라는 거대한 지도가 조금씩 밝혀질 것이다. 물론 새롭게 조우하는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리더십처럼, 좋아 보이는 것들에 공감하지 못하거나 나쁜 것들에서 자신을 발견하여 얼굴이 붉어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 본성의 법칙>은 어느 것도 긍정, 부정 한쪽으로 치우쳐 있지 않다. 좋아 보이는 것에는 주의할 점이, 나빠 보이는 것에는 이렇게 바꿔보면 도움이 된다는 팁이 반드시 존재한다. 세상에 완전히 좋은 것도, 완전히 나쁜 것도 없다는 이치를 곱씹게 해서 자기 스스로를 혐오하는 것을 막아준다.
그래서 덜 부담스럽게, 그로 인해 더 솔직하게 자신을 투영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렇게 나 자신과의 관계를 더 올바른 쪽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발견하게 하고, 그것으로 인해 이 책의 원래 목적인 직장과 인간관계에서 성공을 이루고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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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잠언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곳을 펼쳐 들어도 그날의 나에게 맞게 적절히 의미가 바뀌어 다가온다. 그것이 공감받는 느낌을 주고, 그로 인해 평온함과 용기를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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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수시로 빼어서 보기에는 많이 두껍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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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또 타인을 유심히 살필 수 있는 관찰자로.
스스로에게 하루하루 위안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잠언으로. 멋진 역할을 해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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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빌려 읽다 마침 멋진 리커버가 나와 구매할 수밖에 없었던 좋았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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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분들과 함께 읽어 더 좋았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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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 - 사유하는 인간
린지 스톤브리지 지음, 손성화 옮김 / 사람in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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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마음이 촛불을 밝힐 때, 함께 빛을 발하는 개념이 있으니 바로 악의 평범성이다. 수단과 목적이 전도되고, 그 전도 속에서 자신의 이득을 대의라 믿는 삐뚤어진 합리화를 통해 방법도, 결과도 최악으로 치닫는 악 중의 악. 그 악을 행한 사람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법정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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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으로 한나 아렌트라는 이름을 알았고, 그렇게 아이히만까지 나아갔다. 한나 아렌트라는 이름이 저서보다 유명한 사상가. 사람, 저서, 사상. 이 셋 중에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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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평범성에 관련된 책 하나, 한나 아렌트의 집안 내력까지 훑으며 문자로 된 까만 피가 흐르는 또 하나의 한나 아렌트를 만들어내던 책 하나를 지나 만나게 된 #한나아렌트 (린지 스톤브리지 씀 #사람IN @출판)는 평생을 한나 아렌트라는 사람의 모든 것에 쏟아부은 사람이 만들어낸 한나 아렌트의 한 부분과도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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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사상, 삶을 한나 아렌트가 혼자 읽으려고 적어 놓은 메모까지 뒤져 그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틈을 작가가 채워 이야기를 완성해 나간다. 자서전이기도, 일기이기도, 에세이이기도, 소설이기도 한 <한나 아렌트>는 시대만큼이나, 그녀의 저서와 개념만큼이나 난해하고 복잡한 한나 아렌트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지치지 않고 끝까지 몰입해서 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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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를 읽으면서 내가 이해한 한나 아렌트는 하나의 것에서 양극단에 존재하는 두 개를 모두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특히 사랑에 대한 그녀의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사랑이라 하면 달콤하고 따뜻해서 주저앉아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이라고만 믿는 사람을 일으키는 그런 긍정적인 것이라고만 생각하지만, 그 사랑에 눈이 멀어 누가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차별의 기준이 되어버리기도 한다는 것을 꿰뚫어 보았다. 난민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어 나가던 시기에 살았던, 살아남은 사람이기에 가능한 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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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사상들이 특별한 이유는 타인의 시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울타리 밖에서, 외부자의 입장에서 ‘상상’한 것이 아니라 발 디딜 곳 하나 없이 빼곡하게 갇혀 있던 울타리 안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당사자의 시선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이해하려 애썼다. 난민이었기에 정치를, 사랑을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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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우리 시대의 사상가’라는 말을 어떤 시대에서든, 항상 듣는다. 왜 지난 시대의 사상가에게 이런 호칭이 붙는 것일까. 그녀의 생생한 사유도 물론 이유가 되지만, 그것보다 더 울림을 주는 이유는 부메랑이다.
그녀는 이 부메랑을 진심으로 걱정했다.
제국주의가 아렌트의 시대에 전체주의라는 이름으로 부메랑처럼 돌아왔다고 생각한 한나 아렌트는 이런 부메랑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를 걱정했다.
그리고 그녀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음을 우리는 우리 시대에 다양한 이름으로 돌아오고 있는 부메랑들을 통해 깨닫고 있다. 그렇기에 한나 아렌트는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 시대의 사상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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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개념과 저서가 자신이 죽은 뒤에도 여전히 구식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일 것이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는 그 행복보다 잊혀질 행복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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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순환의 부메랑이 끝나기를. 끝나서 사람들이 또 다른 생각을 하고, 그 생각들 사이사이를 이어 붙여 앞으로 흘러흘러 더 좋고 유익한 것들을 만들어내는 사유의 선순환이 새롭게 시작되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악순환을 그토록 염려했던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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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녀의 염려와 많은 것이 담긴 눈빛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녀의 저서를 찾아보고 싶어진다. 그녀를 학문적으로 배우고 싶다기보다는, 그 사상가 자체를 알려면 저서를 온전히 한번은 읽어봐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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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물음표를 불러일으켜 다음으로 내딛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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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에 시럽 뿌리기 - 셋셋 2026
이영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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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상처 받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모두 셀 수 없을만큼 많은 크고 작은 상처들을 안고 살아간다. 어떤 것은 상처가 아직, 여태 아물지 않아 다른 누군가의 그 상처와 전혀 상관없는 말에 쓰라리고 더 벌어지기도 한다.

#상처에시럽뿌리기 (이영주, 원영원, 강다운, 김나은, 신은솔, 이비 지음 #한겨레출판 출판)은 여섯 명의 작가가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소설, 시가 담겨있다.
각자의 작품에는 각자의 상처가 존재한다.
모르는 개를 산책하다가 알게된 낯선 여자의 죽음, 든든하게 지켜주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는 자기 비하에서 시작되는 우울감과 의처증, 떠났던 엄마가 이름도 얼굴도 바꾸고 병에 걸려서야 돌아오는 상황, 부모님의 부재와 같은 상처들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음에도 ‘나도’라는 생각이 절로 떠오르게 한다.

진짜 찢어지고 갈라지고 피가나는 상처였으면 흉이 지더리도 아물기라도 하지. 더 이상 아프지라도 않지. 마음의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살기위해 기억 저편으로 치워졌다가 뜬금없이 스위치가 켜져 다시 피가 흐른다. 그런 상처들을 가지고 있고, 그럴때마다 괴로움에 몸서리치면서도 살아가고 있기에 책에 담겨있는 상처들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상처에 시럽을 뿌리는 상상을 해봤다.
쓰라린 붉은 상처에 쏟아지는 투명하고 끈적한 시럽.
괜히 영화 쥬라기 공원 속 호박석이 생각났다.
끈적한 용액이 모기를 덮어 수백만년의 세월을 견뎌내게 해주었듯, 시럽은 우리의 상처를 더이상 진행되지 않게 정지시키는 것이 아닐까.
마음의 상처는 아물지 않으니까. 그대로 두면 너무 괴로우니까. 그상태 그대로 더 심해지지 않게 달콤함으로 포장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시럽코팅이 떨어져나가면 허둥지둥 거리며 애쓰는 와중 손에 묻는 끈적한 시럽을 살짝 핥아보면 어떨까.
그 건조하면서도 여전한 달콤함이 세어나오는 상처를 포기하지 않고 마주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우울하거나 힘들 때 단 것들이 당기는 것처럼.

각자의 상처가 시럽에 코팅되어 제각각의 색으로 반짝인다. 그 모든 빛들이 모여 세상을 이룬다. 달콤하고 반짝일수록 세상은 상처로 가득한 모순.
그 모순이 상처를 가지고 있음에도 살아가게 만드는 것인가보다.

외면하지 않고 상처를 바라보고 ‘나도’라고 말할 수 있게 세상을, 상처를, 나를 코팅해주는 달콤한 시럽.

세상에서 누구보다 먼저 이 달콤함을 맛볼 수 있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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