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노은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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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출간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않았던 이 시대의 위대한 학자. 그의 유일한 회고록. 그가 솔직하게 바라본 세계가 가득 담겨있을 것 같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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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들)
클레르 마랭 지음, 류재화 옮김 / 사람in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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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가슴이 미어지다 못해 찢어지는 일들이 생각보다 제법 많이 찾아온다.
이별, 질병, 배신, 죽음 등 하나의 단어에서도 수많은 갈래의 통증이 담겨있다. 그런 일들을 겪으면 우리는 상처입은 곳이 너덜너덜해지고 마침내 찢어진다.
그 찢어진 절단면은 깨끗하지 않아 다시 이어붙일 수도 없다. 단면의 상처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아예 사라지는 것이다.

#단절들 (#클레르마랭 지음 #사람in 출판)은 이런 단절(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단절이 마냥 상실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무언가가 자라날 기회로 보는 것이다. 실제로 저런 단절을 겪으면 떨어져 나가는 단절도 있지만 이전까지의 자신과도 단절된다. 극복하든 극복하지 못하든 분명 이전과는 다른 자신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삶까지 단절되는 것은 아니니 우리는 그 단절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결국 단절은 정체성과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된다.

책의 제목인 단절은 이전 자신과의 이별을 야기하는 원인과 동시에 정체성을 의미하고, (들)은 이런 것들이 살면서 한번만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내포한다.

단절들. 무수히 많은 일들을 겪으며 이전과 다른 또 다른 자신들. 수많은 정체성들.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여러개의 정체성이라 하면 자연스럽게 페르소나(가면)이 떠오른다. 가면이 주는 이미지 때문일까. 진정한 자신을 속이고 거짓된 모습을 보여준다는 편견이 생겨버렸다. 하지만 수많은 단절들에서 이전의 나와 단절되어 내 안에서 지금의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숱한 나 자신들을 모두 거짓이라 낙인찍고 숨기고 외면하고 ‘원래의 나’라고 생각하는 모습만을 꺼내어 산다면 그것이 더 가짜가 아닐까.

숱한 단절들에서 만들어진 여러 나의 정체성들은 각자의 상황에 맞춰 변형된 일종의 진화체들이다. 진화라는 말도 더 나은 것이라는 우월의 의미로 약간 변질되어 있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생존하기 수월하게 적응한 것을 의미한다. 각각의 단절들을 견뎌내 적응해낸 그것이 자신이 아니면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각각의 슬픔과 변화들을 견뎌낸 정체성(들)은 자랑스러운 훈장이자 그럼에도 계속 되는 삶을 살아가게 해준다.계속 하는 것. 나는 그것을 도약이라 부르고 싶다.

단절을 넘어 앞으로도 계속될, 마주하게 될 단절들을 도약하게 해줄, 지금까지의 내가 도약한 흔적들.
그 흔적들이 마디마디가 되어 부러지지 않고 유연하게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

무수한 내가 나를 흐르게 하는 기쁨.
그 기쁨을 느끼면 단절(들)은 더이상 나를 부수는 것만이 아니게 된다. 마냥 힘들고 괴로운 것이 아닌 미래를 위한 또다른 가능성의 씨앗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인생에는 피할 수 없는, 심지어 자신이 직접 삶에 집어넣는 단절들이 있음을 인정하고 피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부딪히게 될 것이다.
단절들로 깨어지는 것이 당연한 세상. 그것을 우리는 일상이라 부른다.

물론 괴로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속에 한줄기 빛, 숨통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분명한 사실만 기억할 수 있다면 우리의 일상은 조금 더 긍정적이고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삶에서 수없이 깨지고 단절되는 것.
그것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그로 인하여 조금 더 웃음지으며 살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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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피의 계산에 대하여 2
솔베이 발레 지음, 손화수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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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반복되는 11월 18일.
규칙을 발견하기 위해 애쓰던 반복의 초기. 예측불가한 하루에 대한 연인의 불안 속에 묘한 짜릿함이 담겨있다는 것에 기시감을 느끼던 주인공.
그 기시감은 11월 18일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주인공이 실제로는 11월 18일에 속하지 못한 완벽한 타인이 될거라는 것을 예고하는 것이었을까.

하루동안 벌어지는 모든 일을 알고있는 그녀였지만 영원과도 같은 11월 18일 하루 속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똑같은 하루를 반복할 뿐이다.

지구의 공전에서 벗어나고 단 한번의 자전만 허락받은 그녀는 그 하루 속 자신의 무의미함에 두려움을 느낀다.
의미가 없기에 해야할 것도, 하고픈 것도 없다.
그런 그녀를 사로잡는 것은 계절이다.
영원한 11월 18일, 그 18일을 벗어나 19일, 20일, 12월, 1월을 살면 맞이할 차갑고 매마른 공기, 겨울을 소망한다. 그래서 그녀는 매일 기차에 올라 국경을 넘어 북쪽으로 향한다. 스톡홀름, 런던, 몽펠리에. 조금이라도 다음 계절이 먼저 다가오는 곳으로 향하는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 당연히 찾아오는 것이라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고, 누리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매일 오르는 기차 안에서, 평소에는 책을 읽으나 들리지 않거나 소음과 같아 듣지 않았던 타인들의 이야기가 귀에 들려온다. 그들의 이야기 안에는 당연하듯 내일과 미래가 담겨있다. 그들의 이야기에 이입하며 그녀도 그 흐름속에 서 흘어가는 상상을 한다. 그렇게 반복되는 이탈과 회귀의 반복 속에서 문득 놓쳤던 것 하나를 더 신경쓰게 되는데 바로 부모님의 일상이다. 독립한 후 잘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모님의 하루를 따라 밟아보는 그녀의 발걸음이 내 마음 속에도 짙은 발자국을 남겼다.

우리는 당연하단듯 내일을 오늘로, 또 어제로 보내며 살아간다.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것은 나를 포함한 모두가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다. 늙기 싫고 내일이 오지 않길 바라는 순간들이 있다. 평범한 것으로부터 한번의 일탈. 그것은 놀라우면서도 짜릿한 이벤트로 여겨질 수 있다. 하나의 특권처럼. 하지만 혼자 멈춰서서 하루동안 하는 모든 것이 의미없는 일이 되어 아무것도 남지않은 것이 반복되면 그것은 특권이 아니라 소외로, 고독으로 바뀐다.

그때서야 비로소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잃어버린다는, 어쩌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을거라는 불안함이 공기처럼 내 곁에 머물고 있던 것들을 소중하게 만든다.

반복되는 시간 속에 갖혀 내일의 소중함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하게 다가오던 내일같은 일상적인 것들에 가치를 깨닫는 이야기라 울림이 컸다.
똑같은 크기의 공간에서 부피는 항상 일정하다. 단위만 바뀔 뿐. 하지만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얼마나 밀도있게 감각하고 살아가는가에 따라 우리 인생, 내 하루의 부피는 달라진다.

매 초, 매 분, 매 시간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을 예민하게, 소중하게, 감사하게 느끼는 농도짙은 삶.
내 안을 가득채우다 못해 나를 팽창시킨다. 나를 좀 더 큰 사람으로 만든다.
그렇게 나의 부피가 달라지고 나를 담고 있는 이 세상의 부피도 달라진다.

나를 더 큰 사람으로, 나를 담고 있는 세상을 좀 더 큰 세상으로 만들 수 있는 답이 이 책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와 함께 나도 계속해서 밀도있게 나아가고 싶다.

#부피의계산에대하여 #솔레이발레
#은행나무 #국제부커상최종후보
#부피의계산에대하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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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이야기 이야기의 낮과 밤 1
알베르 카뮈 외 지음, 이재경 외 옮김 / 유선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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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장면은 인물들의 사건과 서사. 그 상황의 감정을 적절하게 묘사해 주기도 하면서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마중물이 되기도 한다.
처음 문학을 읽을 때 인물들의 대사와 서술되는 감정을 따라가는 것도 벅차 배경까지 눈에 담지는 못했다.

조금 인물들이 서있는 배경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을때 #정원이야기 (#유선사 출판)를 만났다.
버지니아 울프, 알베르 카뮈,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나쓰메 소세키, 마르셀 프루스트 같은 대문호들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정원들이 모여있는 책이다.
등장인물이 직접 열과성을 다해 가꾸었거나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용 정원이거나 가족들이 가든파티를 여는 자랑스러운 장소로 여기저기에 등장하는 정원은 단순히 배경이 아니라 각자의 거리감으로 인물들과 관계 맺는다.

어느 누구도 드나들 수 있는모두의 정원, 자기가 가꾸지 않았더라도 가족과 함께 사는 집 앞에 다른 사람을 초대해도 부끄럽지 않을만큼 관리되고 있는 정원, 인물이 애정을 가지고 직접 관리하고 있는 정원. 각자의 거리감으로 정원을 누비고 식물을 바라보면서 그 곳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고민한다.

계획적이든, 우연히든 수많은 식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은 어딘가 익숙한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 맺고 함께 사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키 큰 식물들이 그 아래에 자리잡고 자라나고 있는 새싹들에게 가야할 햇빛을 막아서 자라게 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주고받는 관계도 유익한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렇게 유익하고 유쾌하지 못한 관계 속에서 이야기는 더 잘 피어난다.

푸르는 녹음과 형형색색의 꽃들을 바라보는 것은 그렇게 떠오른 아픔들이 덜 아프길 바라는 작가의 안배일까.

겨울이 되어도, 정원에 식물들이 모두 죽은 것 같아도 다시 봄이 될 때 싹을 틔우기 위해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그 무한함이 적잖은 위안을 준다.

정원이 가지는 물리적 거리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우리가 쉬는 보금자리와 전쟁을 치뤄야하는 바깥 세상 그 사이의 경계에 정원이 있다. 세상으로 완전히 나가기 전 숨을 고를 수 있는 휴식의 공간이자 보호를 받으며 세상을 배울 수 있는 조금 더 열린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세상에 속하면서도 속하지 않은 정원에서 세상에서 벌어진 일을 듣고 보고 생각하면서도 거리를 두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세상과 동떨어지지 않으면서도 휩쓸려가지않는 완충지대. 그래서 우리는 정원의 벤치에 앉아 집이 아니라 세상쪽을 바라보는 것일 수도 있겠다. 적당한 거리감은 바라볼 용기를 주니까.

책을 덮고 쨍한 날이지만 논밭과 메타세콰이어가 펼쳐져있는 집근처 모두의 정원을 가보았다.
외부활동을 자제하라는 안내문자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오손도손 모여 찬찬히 자신들만의 속도로 산책을 하고 있었다. 쨍하지만 우거진 메타세콰이어가 산책로를 그늘지게 해주고, 산책로 밖 식물들은 빛을 받아 각자의 색으로 형형색색 빛나고 있다. 땀은 흐르지만 모두의 표정은 밝다. 정원이란 그런 곳이다.
수고로움을 기꺼이 마다하지 않고 행하는 곳.
나가기 싫을 때 나갈 수 있는 곳.
그래서 좀 더 뚫린 생각을 할 수 있는 곳.
생각을 정리하기도, 저 멀리까지 자라고있는 초록식물들 아래에 나쁜 생각들을 묻어둘 수 있는 곳.
그래. 다시한번이라 다짐할 수 있는 곳.

소란스럽지 않지만 사계절, 각자의 속도로 무한히 계속 되고 있는 소우주. 그곳에서 내 세상에서 다시 한걸음 걸을 수 있게 마음을 가볍게 하면서도 두 발이 굳건히 땅을 딛고 있다는 중력을 기분좋게 느낀다.

모두 그런 나만의 정원 하나씩 마음에 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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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안 사이코
버지니아 페이토 지음, 배지은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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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성설. 선악설.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한 주제다.
인간은 타락하는 것일까 착한 척 하는 것일까.

#빅토리안사이코 (#버지니아페이토 지음 #현대문학 출판)을 읽는 동안 계속 생각했지만 그 답을 끝내 찾지 못했다. 사이코패스로 태어나 악마를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주인공 위니프레드 노티는 파운즈 가문의 가정교사로 들어간다. 목적은 단 하나. 크리스마스에 이 집의 모든 사람을 죽이겠다. 왜 노티는 이 집안읕 선택한 것일까.

피와 죽음, 어둠으로 가득한 노티의 내면과 현실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독자들에게 직접 ‘속았지? 현실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고.’라며 조롱할 정도로 노티의 내면과 현실은 마구잡이로 뒤섞여있다.
그래서 얇은 분량임에도 흐름을 따라가기 쉽지않은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작가의 의도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마지막 장을 덮으며 들었다.

솔직히 우리 모두 마음 속에 악마가 산다.
훔치고 싶을 때도 있고, 미칠 듯이 화가나서 누군가를 때리고 싶고 죽이고 싶은 경우도 있다. 다만 실행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면 안된다. 이것은 본능에서 기인된 것일까 아니면 학습된 사회화의 결과일까.

끝내 답을 내리지 못하는 이 질문 때문에 마음이 복잡하다. 이런 복잡함을 읽는 동안 끊임없이 유도해 내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게다가 절대로 실천할 수 없는 노티의 행보를 보며 쾌감이 드는 순간들도 있으니 더 미칠 노릇이다.
이런 사이코패스의 무분별한 살인 행각에 대리만족 비슷한 쾌감이라니. 살인 뿐인 불쾌한 이야기를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이유가 이 만족감때문이었다.

이런 만족감. 이런 것들을 가끔 충족시켜줘야 우리가 조금 더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전제한다면 위에서 말했던 선성설, 선악설의 답이 얼추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빅토리아 시대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도 악이 성장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회적 규범, 특히 노예보다도 못했던 여성에 대한 규범과 그 규범으로 인해 말도안되는 처벌이 강행되었던 그 사회에서 과연 올바른 여성은 존재할 수 있었을까.

규범으로 나아가면 지금 우리 시대의 모습도 저절로 생각해보게 된다. 성민감성이 역사상 가장 높은 시대이면서 그렇기에 무분별한 성차별, 성혐오가 발생하기도 하는 지금의 시대에서 과연 노티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과연 지금이 모든 면에서 빅토리아 시대보다 더 나은 시대인가 물어보게 된다.

사회가, 타인이, 가족이. 여러 문제들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게 구해줄 수 있을 것이다. 피의 크리스마스를 끝까지 보고나서 찾아오는 ‘현타’.그 현타의 이유와 여러 방면에서의 문제에 대해 수많은 물음표가 남는,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유쾌한 교보재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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