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뒷세이아,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위대한 영웅의 여정에서 내 인생의 길을 찾다
김태진 지음 / 민음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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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수명은 무엇이 결정할까.
아무리 인기 있었던 이야기라도 아주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 그런 이야기가 있었나 싶을 만큼 순식간에 완벽하게 잊혀지는 이야기들이 있는 반면, 백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배경 및 설정이 지금과 너무나 다름에도 불구하고 읽을 때는 책 속에 사람을 가두고, 나를 책 속 인물로 만들고, 다 읽고 나서 책을 덮어도 마음은 아직 그 책을 읽고 있는 것 같은 여운을 주는 이야기들도 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고전이라 부른다.

최근 고전 하나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인기에 물음표를 붙인 이유는 이 이야기가 살아남은 세월이 이미 그 인기를 입증한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 고전은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이고, 이 이야기의 나이는 3,000살이다.

그 유명한 ‘트로이 목마’의 주인공 오디세우스, 그의 전쟁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책보다 영화로 먼저 <오뒷세이아>를 접한 사람이 많은데, 어려운 등장인물들의 이름과 소설보다는 노랫말에 가까운 형식이라 가독성이 생각보다 좋지 않고, 무엇보다 방대한 양(원전은 무려 24권이라고)에 도전했다가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제법 된다.

책을 읽고 나서 영화를 보겠다고 아직 그 어느 것도 시작하지 못했는데, 곧 책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잘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크다.

그때, #오뒷세이아어떻게읽을것인가 (#김태진 씀 #민음사 출판)을 만났다. 이 책은 순서가 뒤죽박죽인 <오뒷세이아>를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서 차근차근 들려주면서, 3,000년의 세월 동안 예술가들이 그린 이야기의 장면들을 보여주면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유명한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글을 빌려 신화와 영웅 서사에 대한 분석들도 보여준다.

책 제목 그대로 <오뒷세이아>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재미있게 먹기 좋게 살을 발라 밥 위에 얹어 떠먹여준다.
분명 원전 <오뒷세이아>를 읽을 때, <오뒷세이아 어떻게 읽을 것인가>만큼의 몰입력과 재미는 느끼지 못할 것이다. 물론 그런 것들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난이도는 완독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과 충만함을 주겠지만 말이다.

<오뒷세이아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이미 이 자체로 <오뒷세이아>의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굳이 원전을 읽지 않아도 영화를 보기에,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원전을 읽고 싶게 만든다. <오뒷세이아>로 이어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저자와 조지프 캠벨의 이 이야기에 대한 애정이다. 캠벨이 최고로 애정하는 이야기라는 문장이 여러 번 반복해서 나오는데, 말하지 않아도 느껴질 정도로 자세하고 다정한 설명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대체 어떤 이야기이길래 이토록 사람을 매료시킬 수 있는가라는 궁금증이 생긴다. 두꺼운 원전을 시도하기로 마음먹고 나서도 여전히 두려웠는데, 이 두 사람의 애정이 다시 한번 용기를 불어넣는다.

숱한 유혹과 난관을 뿌리치고 마침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처럼, 저자와 캠벨. 이 두 사람처럼 스스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블리스(Bliss).
온전히 살아있는 느낌을 나도 느끼고 싶다.

꼭 <오뒷세이아>가 위의 두 사람처럼 나에게 그런 느낌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그 안에 수십 년에 해당하는 이야기에서 나에게 와닿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대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마주하게 하는 완벽한 입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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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만들어라 - 피카소의 화실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침묵까지 철학하는 철학사 4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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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를 넘어 인류 역사에서 손꼽히는 예술가 피카소. 그 피카소의 가장 유명한 작품을 꼽으라면 <아비뇽의 처녀들>이 아닐까. 가로 세로 2.5m의 거대한 화폭을 자랑하는 이 그림은 대상의 모습을 하나의 시선으로 보지 않고 여러 시각을 구분 짓지 않고 이어 붙인 입체형으로 바라본 모습을 담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처녀들‘의 모습은 아니지만, 어쩌면 그 존재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 입체형에서 큐비즘이라는 단어가 시작되었고, ’아비뇽의 처녀들‘은 피카소를 살아생전 이미 가장 위대한 예술가의 반열에 올렸다.
무수한 비평이 끊이지 않았던 그림이 20세기 가장 중요한 작품이 되었다.
이 중요성은 예술가의 이름값 때문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에 통용되는 보편적인 원리를 알려주는 상징이었기에 가능했다.
고정된 절대적 관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을 그림이라는 언어로 문자적 언어보다 더 적확하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세상을만들어라 (#리하르트다비트프레히트 지음 #열린책들 출판)은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의 폭발과 함께 벌어진 20세기의 철학‘들’의 무수한 탄생과 변화들을 다루고 있다. 베르그송, 프로이트, 후설, 에른스트 카시러, 하이데거, 베냐민, 비트겐슈타인까지 나치즘과 파시즘이라는 아픈 역사, 그 역사를 살아가는 그들이 한 선택들과 연계 지어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각자의 언어, 이론, 사상은 물과 기름처럼 도저히 섞일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지만, 이들은 모두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확실성’과 ‘존재의 근거’에 대한 집요함이다.

양차 대전을 직접 몸으로 겪고 나치를 피하기도, 합류하기도 하는 선택들을 하면서, 이런 모든 움직임들이 결국 파시즘이라는 최악의 선택지로 굴절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왜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나’라는 질문에 부딪혔을 것이다. 스스로에게도, 그들에게도. 무언가를 단 하나의 형상으로 강하게(병적으로) 확신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너무나 많은 피로 몸소 겪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존재들은 왜 존재했어야만 했는지 그 근거까지 파고들면서 똑같은 것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적어도 그 참사가 왜 일어났어야만 했는지 이해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들이 너무나 무가치해지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떤 의견을 제시했는지는 <세상을 만들어라>에서 솔직히 중요하지 않다. 한 사람의 사상이 완전히 뒤집히기도, 같은 사상을 공유하다 끝내 갈라 서기도 하면서 그 모든 것이 정답인, 적어도 ’그럴 수 있겠다‘ 싶은 유의미한 무언가로 남겨지는 과정을 보면서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
모두가 어떤 하나를 바라보며, 같은 것을 보며 그 대상을 설명하지만, 모두 같은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다. 그것이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어 어느 쪽으로 극단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공생할 수 있는 완충제 역할을 한다.
다양하기에 흑과 백으로 나누는 시선을 거둘 수 있고, 무수히 다양한 그 사이 회색들이 존재함을 인식할 수 있다. 그 모든 것들의 유의미함을, 존재의 이유를 깨달아야 그런 피의 역사는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역사를 직접 걸어오지 않은 우리에게, 그 통찰을 전해주어 유연한 사고와 대처를 가능하게 한다.
유연함이 딱딱한 것들에서도 유머와 위트를 만들어 낸다.
<세상을 만들어라> 이 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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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라이팅 : 리더 편 - 오늘부터 나는 이런 문장을 쓴다
백선엽 지음 / 지와인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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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잘하고 싶다라는 생각은 모두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문제없이 읽고 말하고 쓰고. 혼자 영어권에서 지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수준. 그런 수준의 영어를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문법도 알면 당연히 좋겠지만 재미도 없고 흥미가 식어 다시 영어공부를 미루게 된다. 드라마와 영화를 자막없이 보는 것도 좋지만 막상 한 두 단어 경우 들리는 수준으로 반복하는 것도 쉽지않다. 나의 경우 텍스트를 읽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느려도 괜찮다. 하루 두 세 페이지 정도씩만 찬찬히 읽으면서 관용적 표현도 확인하고 마음에 드는 문장에 밑줄도 치고. 결국 완독이라는 눈에 보이는 성과가 따라오기에 동기부여도 강하다.
하지만 표현들을 나에게 각인시키는 것은 조금 더 과정이 필요한 것 같다. 가이드를 따라 열심히 읽어도 읽는 것 만으로는 표현들이 기억에 남지 않더라.

그래서 영어로 된 텍스트를 만나는 좀 더 좋은 방법이 필사다. #데일리라이팅 (#백선엽 씀 #지와인 출판)은 “좋은 문장은 생각을 바꾸고 생각은 행동을 바꾸고 결국 인생을 바꾼다”라는 이념으로 샘 알트먼, 젠슨 황과 같은 기업의 총수뿐만 아니라 키아누 리브스, 돌리 파튼과 같은 아티스트들의 말들이 하루 십분정도만 투자하면 충분히 쓰고 읽힐 수 있는 분량으로 88개가 담겨있다.

강연, 인터뷰에서 한 인상적인 구절들이라 와닿는 문장들도 많고 길지않아 마음에 든다면 통째로 외울 수도 있다. 오랜 세월 영어를 가르쳐온 저자가 직접 고른 리듬과 구조가 좋은 문장들을 읽고 쓰고 마음에 담다보면 88일의 여정 중 문장 몇개가 남지 않을 수 없다.

직접 깨닫고 생각하고 살아내는 과정을 거쳐 신중히 뱉어내진 문장들은 군더더기가 없다. 단어 하나 구조 하나에 숱한 세월의 정제과정이 담겨있다. 쉽고 깊이있고 단단한 문장들. 익숙한 표현들로 정감있게 다가오는 것도 그러한 다듬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만의 글에 활용해보면 가장 좋겠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데일리 라이팅>과 함께 하다보면 내가 쓸 수 있는 표현도, 직접 써보고 싶다는 꿈도 조금씩 늘어날 것이고 마침내 실행에 옮겨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 만난 돌리 파튼의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발견하고 (Find out who you are) 그대로 살아가는 것 (Do oit on purpose) 사랑과 다정함은 풍성하게(rich in love and kindness). 아직 만나지 못한 내 스스로의 모습들이 이 책에 담겨있다. 영어는 물론, 나 자신까지 알게 해주는 부담없는 책이라 참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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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머묾 세계문학 자아 3부작
알베르 카뮈 지음, 한수민 옮김 / 머묾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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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들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해야 하는가. 모든 아들들은 경제적 여력이 부족해도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서는 안 되는가. 모든 아들들은 어머니의 장례 바로 다음 날에 이성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안 되는가.
‘안 되는가’와 ‘안 된다’ 이 둘 사이에는 ‘이성’이라는 노력과 이해가 담겨 있다. 하나는 개인의, 또 다른 하나는 전체를 대표하는 복수의 사람들의.

일 대 다수라는 것만으로 이 둘 사이에 우위를 정할 수 있을까. 사회를 위해 개인은 희생하고 무시당해야 하는가.
애초에 사회란 무엇이며, 사회를 ‘위한다’는 것은 누가 만든,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절대 기준이 될 만한 것인가.

#이방인 ( #알베르카뮈 지음 #머묾 출판) 속 뫼르소는 읽는 내내 ‘얘는 왜 이래?’라는 의문이 끊이지 않는 인물이다. 자신은 오늘을, 내일을, 현실을 보고 있다고 하지만 그가 바라보는 현실은 그의 현실 속 우리가 더 눈이 가는(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에서 멀어져 있다. 하지만 그는 직장이 있고, 친구가 있고, 타인에게 (최소한의) 관심이 있고,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연인도 있다.

그렇다면 그 주변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인정하고 받아주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들도 ‘이상한 것’일까. <이방인> 속 사회에서는 뫼르소를 이상함을 넘어 문제가 있다고, 죄를 짓고 있다고(지을 것이라고), 사회에서 분리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정당방위로 바라봐 질 수도 있는 가능성조차 엄마의 장례식에서 슬퍼하지 않았고, 엄마에게 향했어야 할 연민과 사랑이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몸과 마음으로 향했다는 것으로 소멸되는 사회.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은 뫼르소, 사건이 아닌 다른 것으로 죄를 결정짓는 사회. 무엇이 더 이상한가?

카뮈의 그 유명한 ‘부조리’라는 개념이 담겨 있는 소설 <이방인>을 읽기 전에 겨우겨우 <시지프 신화>를 읽었더랬다.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 자신의 신념을 지켜 결국 평생 반복하는 벌을 받은 시지프.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벌을 받는 시지프,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벌을 피한 시지프. 과연 누가 행복할까. 누가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시지프 신화>처럼 <이방인>에서도 개인과 사회, 제도의 엇나감, 그것에서부터 발생하는 부조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결국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 살아나가야 하는 것은 본인인데,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옳지 않은 것이라 하니 무엇을 따라야 이 부조리함이 해결될까.
세상이 부조리함으로 가득하다고, 이 부조리함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냐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냐고 <이방인>은, 카뮈는 묻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뫼르소의 이질감이 힘들게 했다면 책을 덮고 나서는 사회의 이질감이 뒷맛을 찝찝하게 만든다.
애써 외면해 오려 했던 것을 기어코 마주한 기분.
뫼르소가 남다른 것은 이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발견해낸 이 부조리함에서 우리 스스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내는 것이 정녕 중요한 문제였다.

끝없이 바위를 밀어올리는 벌을 받을 것인가.
딱 한 번 눈감고 사회의 안락함을 누릴 것인가.
내 안에 있는 나는 어떤 ‘시지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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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을 읽는 40가지 이야기 - 중동으로의 첫 발걸음
박현도 외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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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먼 나라. 유럽과 미국 그 먼 거리를 여행하는 것은 당연하고 부러운 것으로 여기지만 이곳으로 간다고 하면 왜? 라는 의문과 함께 두려움과 거부감이 드는 곳.
중동이다. 서양의 입장에서 우리나라가 있는 극동보다는 가까운 곳을 편의상 중동이라 부르던 것이 고착된 것인데, 중동의 지도를 보면 신기하게도 국경이 직선이다. 여러 가지 이해관계의 결과로 여기저기로 굽이치는 것이 국경인데 중동의 국경은 반듯하다. 열강들이 문화와 살고 있는 인구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편의상 갈라버렸기 때문이다. 중동의 여러 나라들이 독립하면서 국경을 새롭게 정하기도 하지만 열강이 갈라놓은 국경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것마저 자신의 정체성이라 여기기에.
어떤가? 흥미로운가?

위에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중동이라 하면 본능적으로 ‘꺼린다’. 우리가 아는 중동이라 하면 이슬람, 왕족, 석유, 여성 인권, 친미, 반미, 전쟁과 같은 것이 대부분이다.
뉴스가 알려주는 대로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 것이다.
이것을 과연 중동을 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모르기에 진짜인지 가짜인지, 진짜라면 중동의 어느 정도에서 일어나는 일인지, 보편적인 것인지 특정 소수의 이야기인지 판단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닐까?

#중동을읽는40가지이야기 (#박현도, #이수정, #양정아 씀, #영진닷컴 출판)은 중동에 대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40개의 시선이 담겨 있다.
중동에서 여행하기 좋은 나라와 도시, 그곳의 음식과 멋진 관광 명소들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를 담당하는 지역으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수메르 문명부터 이슬람 종교의 기원. 그것을 넘어 오스만 제국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왕조들, 열강의 침략으로 식민화되는 아픈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뿐인가. 오일 머니에 의존하는 국영 방식을 바꾸기 위해 개방화 정책을 펼치면서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되는 종교에 의한 여성 차별에 대한 시선 변화와 그 과정에서 동반되는 쿠데타와 내전, 그것을 넘어 첨단 과학을 받아들여 빠르게 자국화시키는 우주를 향하는 미래적 시선까지.
중동이라는 지역이 이렇게나 풍성한 곳이었다는 것에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끝나지 않은 전쟁과 여성 인권 뉴스에서 들려오던 모든 것들이 거짓이라는 것은 아니다. 이들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 해도 이것을 합당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왜 그런 일들이 발생했는지, 어떤 목소리가 정확한 사실이 아닌 누군가의 사견이 더해져 있는지, 얼마나 과장되어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누군가를 알게 된다는 것은 그들에 대해 판단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제대로 모르는 상태로 미디어에서 말하는 그대로 믿고 말을 옮기는 것은 앵무새와 같다.
내가 <중동으로의 첫걸음>을 통해 만난 중동은 그런 어두운 이야기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보다 화려하고, 다정하고, 알고 싶고, 걸어보고 싶은 곳이었다.

첫걸음엔 다정한 손길의 도움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 다정한 손 같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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