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거품에 거품 물지 않기
이시은 지음 / 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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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살아간다는 것.
“열심히는 필요없어. 잘 해야지.”같은 말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는 요즘에는 특히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누군가는 승승장구하는데 나는 제자리, 내가 준비한 기획은 그냥저냥 흘러가나 수챗구멍속으로 빨려들어가 사라져버린다. 결국 결과가 발생하지 않으면 나의 시간은 그냥 흘러간 것이다. 실패라는 이름으로 시계추마냥 집과 회사를 왔다갔다하는.

그래서 그럴까. 쉽게 이직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한 회사에서 오랜세월 근무하는 것이 경이로운 수준이다.
5년, 10년, 15년… 그렇게 회사를 지속적으로 다닐 수 있는게 정말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때문일까?
무언가 이룬 것이 없어보이는데 회사를 그렇게 지속해서 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물거품에거품물지않기 (#이시은 씀 #달 출판)은 카피라이터로 24년 근무해온 워킹맘의 특별하고도 보통의 이야기들로 채워져있다.
최근에 회사를 그만두고 자기만의 회사를 꿈꾸며 준비를 하고 있는 작가의 회사 이야기를 들으면 신선하다.
아마 내가 일하고 있는 직업과의 차이때문에 그럴 것이다. 카피라이터란, 광고를 만든다는 것은 이런 과정을 거치는구나. 클라이언트와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같은 호기심을 자극하는 타인의 삶을 지켜보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공감가는 일이 대부분이다.

패기만 넘쳤던(결국 그것마저 넘쳐 흘러 사라진)신입시절부터 첫 카피를 만들려고 전전긍긍하던 모습, 프리젠테이션을 위해 철야, 주말근무를 불사하던 모습, 출산, 육아 등등 모든 것이 나의, 또는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대면 한번 한적없는 작가가 들려주는 일상에서 수많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그만큼 회사를 다니고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시기콜콜 주고받는 것은 보통의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두가지이다.
첫째는 제목이기도 한 ‘물거품에 거품 물지 않기’마인드다. 잠도 못자고 퇴근도 못하며 준비한 일이 한순간에 허무하게 사라지는 경우 모두 한번씩은 겪어봤을 것이다. 분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고 오만 감정이 교차되는 그것에 몇날 며칠을 정신을 못차린다.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나싶어 혼자, 또는 동료들과 물거품을 안주삼아 쓴 소주를 하염없이 넘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면 그런일이 있었구나싶다. 돌이켜봐야할만큼 기억에서 사라졌다는 것과 그런 일을 겪고도 또 다시 살아냈다는 사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죽을 것 같던 일도 결국 지나가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거다. 이 경험으로 허망한 일이 생기면 마인드 컨트롤을 잘해야한다. 결국 회사를 다닐것이고, 또 살아갈테니까. 그런일도 거품물면 나만 손해다.

그리고 두번째는 성과없이 흘러온 시간이 의미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 작가는 책에서 ‘운을 모은다’라고 표현하는데 성과가 없었어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온 것은 후에 무언가 큰 성과를 달성하는데에 필요한 운을 모으는 과정이라고 한다. 만화보다 더 만화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도류’오타니가 세상 모든 운을 야구에 모으고 싶어 다른 취미를 잘 하지않고 떨어진 쓰레기는 꼭 줍는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성과없이 회사를 다니는 것과 길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것. 별 큰일 아닌 것 같지만 그 자체로도 후에 어떤 큰 행운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세상에 무의미한 것은 없다.
결국 해낸다는 것. 그러니 믿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계속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늘 한번 바라본 적이 언제인가.
매일 하늘 바라보기 챌린지도 있더라.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니다보면 이런 사소한 것들을 놓치게 된다. 그리고 위에서 말했다시피,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 결국 무언가를 해내게 할 ‘운’의 총량을 채운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운을 모으는 특별한 과정이다.
그러이 평범한 일상 속 평범한 일들은 실은 특별한 것들이다. 그런 일들을 하는 우리도 특별하다.

그런 낙관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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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계의 나에게 Entanglement 얽힘 5
연여름.조우리.황모과 지음 / 다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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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지칠 때.
그런 때는 생각보다 많다. 아니 대부분의 시간이 힘들고 지친 날들이 일상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일상을 꼬박꼬박 꾸역꾸역 일어나 살아낸다.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답은 의외로 간단하고 거창하지 않았다.
“뭐 다 그렇게 사니까.”
어떤 형태로든 이 세상에서 외톨이가 아니라 흔하디 흔한 모습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일반성. 각자의 구체적 형태가 다르더라도 그 본질은 같다는 절대로 떨어지지 못한다는 그 얽힘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다른세계의나에게 (#연여름 #조우리 #황모과 씀 #다람 출판)은 너무나 당연해 잊고있던 이 얽힘을 세 편의 이야기로 우리에게 각인시킨다.
웹소설 속 나와 같은 이름의 영웅, 나의 악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난 ’누군가에게 악몽‘인 꿈 속 세계, 이 세상 여기저기에 살아가고 있는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
어쩌면 실존하지 않는 웹소설 속, 또는 꿈 속 세상.
이것들과는 다르게 나와 같은 세상 속에서 실존하지만 그 존재를 몰라 실존하지 않는 것과 다를바없는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다보면 어쨌든 사람들이 위안받는 경우는 한가지였다.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함께란 물리적으로 한 공간에 있는 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웹소설 속에서 영웅으로 살아가는 또 다른 나에게 질 수 없다며 힘을 내기도 하고, 병에 걸린 환자는 고독함을 느끼지만 보호자와 치료자는 환자가 생기면 동시다발적으로 함께 생기는 세트이다. 그리고 이 역할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꿈을 그냥 가짜라고 해버리면 나의 꿈 속 세상이 현실인 누군가는 얼마나 고독할까. 기적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버젓이 여기서 이렇게 숨쉬고 고통받고 있음을 이해하고 공감해 달라는 것이다.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접점이 한번도 없었던 사람들도 공감하지 못할 각자의 아픔을 가지고 있지만 뭐 어떤가. 그렇다고 나와 이름이 같은 타인의 안녕을 빌어줄 수는 없는 걸까?

세상에 절대 불가능한 것은 없다.
다른 이의 상황이 절대 나에게 벌어지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구체적인 형태는 다르지만 비슷한(심지어 동일한)감정을 유발하는 것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고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타인의 악몽을 외면하는 것일까.
기쁨을 나누면 배가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고 했지만 이 세상에서 기쁨을 나누면 듣는 사람은 배가 아프고 슬픔을 나누면 듣는 사람은 ‘꼬수워’한다.

이게 다 삶의 기준이 내가 아니라 타인과의 비교에서 우위에 서는 것으로 삼기 때문이다.
직접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바라보는 나를 나에게 투영한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감을 잃고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고 나만의 철옹성을 쌓아올린다. 그렇게 세상과 단절된다.

타인을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조차도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상을 이해하기위해 나의 경험 나의 생각을 투영해야하는데 자신과도 공감하지 못했으니 무엇에대가 무엇을 투영할 수 있을까.

이 책은 타인과 알게모르게 얽혀살아가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우리가 잊어버리고 있는 것을 다시한번 상기시켜주는 것은 물론 시선을 내 안 깊숙한 곳으로도 향하게 해준다. 이 세상에 내가 모르는 곳이 존재하는 것 만큼 내 안에도 아직 내가 모르는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나와도 세상과도 지독하게 얽혀 정전기가 따끔하게 일도록 하나되어 살고 싶어지게 하는 바람을 갖게 하는 책이다.
정전기 때문에 겨울을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그럼에도 누군가와 손을 잡고 팔짱을 끼려 따끔함을 견디듯이 또 그 상대방도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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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예술, 가짜 예술 - 우리를 조종하는 것들,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들
장 프랑수아 마르텔 지음, 김기상 옮김 / 서스테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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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둘러보면 이것이 정말 나와 같은 인간이 만들었단 말인가 입이 자연스레 벌어지는 놀라운 것들이 가득하다. 높디 높은 유리벽 건물, 튀어나올 것 같은 입체영상,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첨단 문물들, 이제 인간의 입지를 걱정하게 만드는 AI까지. 이것들을 보면 떡 벌어진 입에서 ‘정말 예술이네!’ 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예술. 예술은 도대체 뭘까?
이렇게 우리를 애워싼 모든 것이 예술이라면 우리는 어째서 미술관과 전시회를 찾아다니며 왜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발걸음을 붙잡는 작품을 만나는 것일까.

#진짜예술가짜예술 (#장프랑수아마르텔 씀 #서스테인 출판)은 ‘인공물’과 ‘예술’을 구분짓는다. 예술이나 인공물이나 모두 사람이 만들어냈으니 인공물이기는 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바로 ‘의도’이다.
이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이끌어내는 의도. 이것을 사라, 이것을 선택해라, 이 사람을 뽑아라와 같은 명백한 의도가 인공물은 그 아름다움 속에 터질듯이 가득하다.

하지만 진짜 예술은 의도가 없다. 아니 아예 사람 자체가 없다. 분명 사람이 만들고 자신의 삶 한 부분을 똑 떼어다가 옮겨놓은 것이지만 만들어낸 작가가 담겨있지 않고 독립된 무언가가 된다. 그래서 예술의 물감, 석고, 청동 등의 다양한 표면 속은 커다란 여백이 존재한다. 그 여백은 가능성이다. 결코 찾지 못할 답을 찾는 것이기도 하며, 그러는 와중에 각자가 발견한 수많은 의미가 될 가능성.

수만년 전 동굴 벽에 그려진 벽화부터 르네상스, 인상주의를 넘어 현대미술까지 형태는 무수히 변해왔지만 ‘발전’하지는 않았다. 더 나은 것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쌓이는 시간에 상응하는 다양성이 축적되는 과정이었다. 예술은 본래 인간을 필수조건으로 삼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인간보다 먼저 존재했을 수도 있고, 처음 인간들의 삶에 나타났을 때부터 완성되어 있던 완전무결한 것이었다. 그런 것을 지금에 와서 의도를 구겨넣어 탄생하기도 전부터 이미 예술의 본질과 멀어지게해 또 하나의 인공물로 격하시키는 오늘날은 오히려 퇴보한 것이 아닐까.

예술을 돈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모네와 고흐같은 유명한 화가들도 돈이 없어 애를 먹었고, 자신이 표상하던 것이 아닌 것들을 그려 돈을 벌어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것에 최선을 다했다.
어떠한 외압에도 굴하지 않았다. 자신의 신념만 조금 양보했을 뿐인 평소와 조금 다른 이것들은 작가에서 떨어져 나와 무한한 가능성을 갖춘 부족함없는 예술이 되었다.

심미안.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는 눈.
소소한 일상에서 아름다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삶은 얼마나 행복할까.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는 우리 본능이 이미 무엇이 예술이고 예술이 아닌지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 능력은 오랜 시간 선조때부터 해온 것들이 세포에 새겨져 이어져 온 것이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이것이 지금에 와서 진짜, 가짜를 구분하게 된 것은 사람을 그럴듯하게 속여야 이득이 되는 사회 구조의 탓도 있지만 예술을 이전만큼 우리 각자의 삶에 깊게 넣어두지 못했기 때문인 것도 한 몫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살롱전에 수십만명의 인파가 들어오는 것은 우수운 일이었다고한다. 지금은 예술말고고 즐길 것들이 많지만 예술을 곁에 두는 것 만큼 우리를 성장시키고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없다. 많이 겪어야 비로소 알 수 있다.

더욱더 교묘하고 간사해져가는 ‘가짜 예술 만들기’에 속지 않으려면 진짜 예술을 더 많이 보아야 한다.
진짜 예술은 정답이 없다지 않나. 각자의 느낌이 모두 정답이다. 수백년의 세월이 지나 그림의 표면이 갈라진 크랙이 더이상 아쉽지 않다. 그 크랙 하나하나, 그 틈 하나하나가 우리의 생각이 비집고 들어가 연결될 가능성들이니까.

진짜 예술에 대한 갈증을 유발한다.
그 갈증을 시원하게 해소해 줄 차가운 물 한잔.
그것이 진짜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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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여인의 선물
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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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펜을 놓지 않고 마침내 완성한 이야기들이 작가의 의지대로 토시하나 바뀌지 않고 유작이라는 이름을 걸고 세상에 나왔다.

“그 무엇도 건드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이 짧은 메모의 이유가 궁금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바다 여인의 선물> (데니스 존슨 지음 / 다산책방 출판)을 읽는 내내 생각해보았다. 솔직히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다섯개의 이야기는 주도면밀하게 하나의 길로 향하게 적확하게 나아가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소 산만하게 보일 수도 있는, 각자의 삶의 한 부분을 칼이나 가위가 아닌 손으로 움켜쥐어 뜯어놓은 듯하다.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면, 죽음 또는 죽음과 마찬가지인 인생의 내리막의 끝자락에 도달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정도다.

계속해서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물음표를 뒤로 하고 끝까지 읽고 책을 덮었을 때 죽음과 파멸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음에도 뭐랄까 부(-)의 감정에 휩쓸려있지 않았다. 누구보다 죽음에 임박한 이들의 이야기임에도 그런 감정들에 침체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상황을 평가하거나 감정이입하지 않는 문장 때문이었다.

유려한 문장을 만들어내는 작가는 주로 두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자신의 대리인을 세워 인물들을 세심히 관찰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평가해서 글의 주제를 독자들이 쉽고 감동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작가와 세밀한 부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묘사를 하지만 그 어떤 코멘트도 달지 않고 그저 제시만 해주는, 그리하여 독자들마다 감상평과 해석이 천차만별일 가능성이 높은 작가. 쉽게 나누면 주관적과 객관적정도로 표현할 수 있으려나.

<바다 여인의 선물>은 후자에 속하는 글이다.
현재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행동, 대사를 그대로 옮겨놓을 뿐 어느 누구의 평가도 없다. 심지어 인물 스스로도 반복된 마약성분 디톡스, 환각상태, 알콜중독과 같은 상황이라 자신의 처지를 판단할 수 없다. 그저 자신의 그 순간을 나열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나열들은 그들의 삶이다.

누군가의 삶 그 자체를 다른 누군가가 멋대로 입맛에 맞게 편집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게 깔끔하게 편집된 삶은 과연 멋진 삶일까. 병으로 죽음을 앞둔 작가가 말그대로 마지막 불꽃을 태워 담아낸 삶과 죽음에 대한 이 짧은 이야기 하나하나가 작가가 남기고픈 그의 삶이 담겨있는 알레고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픈 말이 정확히 존재하기에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 놓은 알레고리가 훼손되어 사람들에게 오역되는 것을 염려한 것이 아닐까.

죽음에 임박해도 삶은 계속된다. 삶의 모든 순간이 또렷한 것만은 아니다. 고통으로 얼룩질 수도 있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내리막의 순간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 속 인물들의 태도는 그냥 평범하다.
그냥 그 순간을 읊조린다. 그런 태도가 죽음과 끝에 대해 읽는 이도 덤덤하게 만든다.

제목에도 담겨있듯 누군가 바라는 것 없이 쥐어준 선물같은 삶에서 죽음이든, 실패든, 허무든 아둥바둥 거릴 필요없지 않은가 라는 초연함이 느껴졌다.

살아있는 것들 옆에 해골을 두어 죽음을 디루었던 바니타스 정물화도 을씨년 스럽다기 보다 죽음을 초연하게 바라보고 비로소 죽음에 대해 조금 더 편안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다.

위대한 작가의 마지막 글에서 그런 바니타스 정물화가 보였다.
이 책은 글로 그려낸 바니타스 정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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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장 밝은 밤에 헤어졌다 - 도스토옙스키 단편 백야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윌마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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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밤이 되어도 여명으로 여전히 밝은 시간.
흔히 밤과 새벽은 감성적이 된다고 한다. 밤에 쓴 글을 아침에 읽으면 이불킥을 하게된다나.
그렇다면 백야 때 사람들의 감성은 어떨까. 밤의 그것일까 낮의 그것일까.

#우리는가장밝은밤에헤어졌다 #백야 (#표도르도스토옙스키 지음 #윌마 출판)은 스물 여섯의 남자 주인공이 ‘나스텐카’를 만나 며칠동안 열병같은 사랑을 앓는 이야기다. 상대적으로 쉽지않는 남자의 사랑. 그것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나에게는 이 사랑의 시작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명확하게 보였다.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그녀의 사랑을 돕기위해 자신의 마음은 숨기고 가장 친한 ‘사랑스러운’친구로 관계를 시작하는 것. 여기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그 씁쓸함은 그것 때문에 넘기는 동성 친구와 부딪히는 소주잔의 소주보다 씁쓸하다는 것을 이미 나는(우리는)알고 있다.

그런 자신의 진실된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는 것도 공감이 간다. 비겁한 변명일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은 알지만 이런 관계로라도 그 사람 곁에 머물고 싶다는 마음. 너무나 잘 안다. <백야>에서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있다면 ‘나’가 진짜 마음을 나스텐카에게 털어놓고 난 이후의 이야기였다.
1년 뒤에 만나러 오겠다던 정인이 이곳으로 돌아오고 며칠이 지나도 나타나지도, 편지로 연락도 주지 않아 실연의 상처를 절감하고 있는 나스텐카에게 진짜 마음을 고백한 ‘나’에게 이제 당신을 사랑하겠노라 말하는 나스텐카의 목소리가 얼마나 아름답게 들렸을까.
이렇게 초심자의 행운처럼 해피엔딩을 바랬지만 역시나 소설에서도 사랑에서 이런 결말을 쉽게 따라주지 않는다.

매일 만나던 밤이 아니라 드디어 내일 ‘아침’을 약속한 순간 나스텐카의 정인은 거짓말처럼 그 둘 앞에 나타났고 그녀는 나의 품에서 벗어나 그에게 뛰어든다.
완벽한 추락을 위해 더 높은 곳으로 올리는 잔인한 클리셰. 소설에 대해 고민하던 이십대의 젋은 대문호는 극적인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극적인 장치로 사랑을 고른 것일까.

기어코 밝아온 아침.
그의 일상은 고요하다. 모든 것이 바뀌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없는 고요한 일상. 그 일상을 깨는 것은 결혼소식을 알리는 나스텐카의 영원한 사랑이라는 이름의 우정을 바라는 편지이다. 화가 날 법도 하지만 ‘나’의 태도는 깊은 울림을 주었다.

어딘가에서 러시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소녀의 표정을 띄고 품에 <백야>를 소중히 안고 있던 옆자리 승객 이야기를 듣고나서 그때 처음 <백야>를 읽어보았었다.

아마 이십대 후반 즈음이었을까. 책을 덮었을 때는 왜 이 책을 그토록 사랑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강산이 변할 시간이 지나 다시 만난 <백야>는 첫사랑의 풋풋함, 사랑의 간질간질함은 물론 진정 누군가의 행복을 바라는 단단한 마음이 보였다.

이 책이 170여년이 지나 젊은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 혼자 지내다 잿빛 세상을 총천연색으로 물들이는 누군가를 만나는 순간을 그들의 퍽퍽한 삶에서도 바라는 것인지, 그런 단단한 마음을 갖고 싶은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어떤 상황 속에 있더라도 갖고 싶은 이상향을 발견할 수 있을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도 등장인물도 독자도 모두 이십대인 책이니 분명 통하는게 있겠지.

청년물이 이제는 조금 낯간지러운 아저씨에게도 어떤 개운한 뒷맛을 주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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