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
켄 코프먼 지음, 조주희 옮김 / 일레븐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체불가능한 업적을 달성한 사람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그 일에 미쳐서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할 것이고 그 사람의 인성도, 업적을 달성하기까지의 과정도 평가된 업적만큼 완전무결할거라 믿게된다.

#모든새를보았다고믿은남자 (#켄코프먼 씀 #일레븐 출판)은 조류학, 자연사, 예술 세가지 분야에 큰 족적을 남긴 존 제임스 오듀본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듀본은 약 200년 전의 사람으로, 수 많은 새들을 발견해 기록하고 솜씨좋은 화가로 직접 새들을 그렸다.

그의 대표작이자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도감 중 하나로 여겨지는 ‘북미의 새 The Birds of America’에는 그가
직접 그리고 기록한 새가 435종에 이른다.

하지만 그의 이런 업적을 이루는 과정과 업적 자체에도 갑론을박이 끝없이 이어져오고 있다.
새를 발견하는 과정을 자신의 주도한 쪽으로 + 직접 발견한 것으로 미화하는 것은 물론,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종도 발견한 것으로 적고, 다른 사람이 발견한 것을 자신이 발견한 양 발표하기도 했다.

직업 외적으로도 그의 도덕성이 논란되기도 하는데, 노예제도를 찬성했고, 돈이 부족하면 노예들을 외딴 곳에 팔아넘기기도 했다.

인간이기에, 많은 것들에 대해 인류적 합의가 제대로 도출되지 않은 시대였기에 그럴 수 있지만(물론 지금은 절대 그래서는 안되는 일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의 가족들이다. 그의 가족들은 오듀본이 죽은 뒤 그의 이러한 것들을 알았음에도 오듀본의 일기와 기록들을 불태우고 은폐했다.
손녀세대도 교모하게 기록들을 짜집기하여 자기 집안의 명망을 드높이려했다.

그럼에도 책에 담겨있는 오듀본의 새로운 종을 찾아나서는 여정에 대한 기록은 평범한 일상에 젖어있는 우리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바다를 넘어 오지를 탐사하며 귀를 사로잡는 낯선 울음소리(이것도 거짓🙈)를 따라 나아가다 마침내 새로운 종을 발견하는 그 순간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라는 제목은 오듀본이 평생동안 얼마나 열심히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일에 진심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누구보다 성실하고 열심히 해왔기에 자기보다 더 많은 새를 발견한 사람은 없다고 자신있게 여길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자신을 끝없이 움직이게 동기부여를 하는 방법은 많다. 자기자신을 누구보다 믿는 것부터, 라이벌과의 경쟁의식, 그 분야에서 1등을 하겠다는 욕심 등 다양하다.
치열하다라는 것. 그것은 한게가 없다. 어디까지 몰두할 수 있는지, 그로인해 어디까지 허용할지, 어디까지 선을 넘을 것인지. 결국 정하는 것은 자기자신이다.
오듀본이 적고 가족들이 태워버린 진실에서는 오듀본은 후회하고 참회했을까?

온갖 색으로 자연스럽게 눈길을 끄는 새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오듀본의 삽화를 구경할 수 있는 이 책이 아주 흥미로울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다른 의미로 흥미로운 책이었다.

위대한 업적을 이룬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새가 아니라 사람을 관찰했다. 욕망, 집착, 최초가 되고 싶다는 발견의 욕망이 어떻게 위대한 업적, 예술이 되어가는지를 따라가다보면 한가지의 색으로,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간단하게 표현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한 것이 입력된다고 선한 것이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세상에 선과 악보다 그 사이에 있는 회색지대에 속하는 것들이 더 많다. 그 회색도 수없이 많은 그라데이션으로 나뉜다. 참으로 단순해보이지만 실상은 복잡한 것이다.

오듀본의 이야기에 나를 비추어본다.
미처 몰랐던, 아니 애써 외면해왔던 나 스스로를 발견한다. 발견했을 때 그 순간의 첫감정. 그것이 앞으로의 우리의 태도를, 삶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기분이 어때?
책을 덮은 뒤 이 질문이 참으로 중요해진다.
계속해서 마음 속에 울림을 남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매일 아침 나는 텃밭에 간다 - 판다 할부지 강철원의 다정한 식물 수업
강철원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하고 있는 일과 결은 같지만 살짝 다른 일.
그 일은 우리에게 긍정적으로 보일까 부정적으로 보일까.
아마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
다시말해 나의 일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다를 것 같다.

푸바오, 러바오, 아이바오를 보살피며 ‘판다 할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주키퍼zookeeper #강철원 에게는 직업이 목부를 꿈꾸던 자신의 꿈과 일치하는 경향이 있었으니 수십년 동안 동물을 관리하고 보듬어온 그에게 식물을 돌보는 것도 긍정적인 이미지였을 것이다.

심지어 가난했지만 마음만은 풍족했던 어린시절 부모님이 농사를 하셨던 기억도 있으니 말이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분들의 상당수가 귀농, 귀촌을 꿈꾸고 있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매일아침나는텃밭에간다 (#한스미디어 출판)는 꿈을 30%정도 미리 맛보는 저자의 성향탓에 시골에 땅을 사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너희들만은 농사짓지않았으면 한다라는 부모님의 바램이 있었으나 어릴 적, 부모님이 쪄주시던 감자, 옥수수, 가을에 자식 몫으로 남겨두고 따지 않았던 감 등에 아름다운 추억이 담겨있는 그는 당당히 땅을 구매해 옥수수 씨를 뿌린다. 당당히 어머니께 전화해서 이것저것 물으면서.

어머니도 아쉬움은 커녕 즐겁게 모든 노하우를 전수해 주신다. 그렇게 옥수수 농사는 대성공을 거두고 지금은 40여종 넘게 경작하고 있는 실속있는 농부가 되었다.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고추, 생명력이 어마어마한 호박, 생으로 먹으면 솔라닌 성분때문에 입가가 따갑고 심하면 배까지 아프지만 묘한 중독성에 여전히 입에 넣는 가지 등 식물 하나하나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가며 저자는 과거를 회상하기도 하고 삶에대한 귀한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한번에 많이 수확하려고 가지를 쳐주지 않으면 오히려 양분이 나누어져 실한 열매가 맺히지 못하고, 관리에 소홀했어서 죽어가던 식물을 애정을 가지고 보살폈더니 다시 초록초록함을 보여주는 것을 보며 욕심부리지 말고, 순리를 따르며, 노력하는 만큼 결실이 따라오는 정직함 등을 배운다. 아마 배운다기 보다는 바쁜 현실 때문에 잊고있던 것들을 다시한번 깨닫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은퇴할 나이가 된 사람들 뿐 아니라 젊은 세대들도 넓은 들판, 숲, 바다 같이 광활한 자연이 보고싶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원하는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순간들이 그렇다.

아마 자연을 찾는 이유는 제각각일테지만 다 걷어내보면 한가지일 것이다. 믿었던 것들, 하지만 사회에서는 실현되지 않는 섭리들이 너무나 당연한 듯 숨쉬듯 일어나는 자연을 보며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닫고 다시한번 힌을 내기 위해서 일 것이다.

<매일 아침 나는 텃밭으로 간다>를 읽으면 직접 갈 수 없는 푸르른 자연으로 나를 속절없이 금새 데려간다.
작물을 기르고, 작물을 기르기위해 조경학을 공부하는 푸바오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키워지는 식물처럼 읽는 나도 보듬어지고 키워진다.
식물을 보듬는 다정한 손길의 다정함이 우리의 마음에 와닿고 그 다정함이 우리 마음 한켠에 씨앗을 심는다.

그 씨앗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것으로도 자라날 수 있다. 그것을 단단히 뿌리내리게 물을 주고, 거름을 주고, 북을 쳐주는 건 우리의 몫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씨앗하나 심어주는 것 또한 우리 몫이자 내 마음 속 씨앗이 잘 자라게 하는 방법 중 하나임을 이 책을 보며 깨달았다.

나를 돌보고 그로인해 다른 사람도 돌보게 하는.
다정함이 샘솟게 하는 봄날의 햇살같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분은 어린양을 만들고도 그대를 만들었는가?“ 블레이크의 시 ‘호랑이’의 한 구절이다.
이것이 책의 제목 #슬픈호랑이 (#네주시노 씀 #열린책들 출판)의 유례이다. 저자인 네주 시노는 의붓아버지에게 유년시절 지속적인 성학대를 당했다. 정녕 이 사람이 나와 같은 진흙으로 빚어진, 무언가를 공유하는 동류同類란 말인가? 그 사실에서 저자는 슬프다.
슬픈 호랑이는 저자 본인일지도 모른다.

그 지난한 세월을 거쳐 40대가 된 저자는 열살남짓 된 자신의 딸을 보며 그보다 더 어렸던, 몹쓸짓을 당했던 자신을 떠올리면서도 스스로 변한 자신을 동시에 발견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어디에도 말할 수 없던 어린소녀는 더이상 없다고. 지금 눈 앞에 있는 이 어리고 사랑스러운 딸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는 ‘엄마’인 자신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이제 그 시절의 자신을 지금의 자신과 분리하고, 그 떠올리기 싫은 사건을 의붓아버지의 입장에서, 시선에서 그려본다. 그를 ‘이해’해보려는 시도이다.
그럴 수 있겠다라는 이해가 아닌, 그는 왜 그래야만 했는지 이해해보려 한 것이다.

자신의 일대기를 신문에 보도된 자신의 기사들을 발췌하고 회상하고 고백한다. 저자는 어릴 적 자신을 나보코프의 ‘롤리타’와 대조하며 살펴보는데 이러한 태도는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던 그녀가 침묵을 깬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입을 다물어야 하고 나보다 더 절실하게 말할 필요를 느끼는 여자들이나 남자들에게 발언권을 넘겨주어야”한다는 책임감을 느낀 것이다.

스스로의 아픔을 아픈 개인사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사회에 메시지를 보낸다. 이런 사람들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모종의 이유로 침묵하고 침묵당하고 있다고(그 침묵당하는 방법에는 죽음도 포함 될 수 있다)그러니 상대적으로 인권의 나라에서 태어난 나에게 주어진 발언권을 사용한다고. 이 목소리를 최대한 팽팽히 당겨 활에 걸어 최대한 멀리 닿을 수 있도록. 그것이 자신의, 이 글의 소임이라 말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히스토리를 말하는 것 뿐만 아니라 문학과 예술들을 예를 들며 언제든지 우리 주위에 일어날 수 있는 영 좋지 못한 일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게 한다.

앞서 말했던, 자신의 사건과 병치했던 ‘롤리타’는 피해자의 시점이 아니라 가해자의 시점에서 쓰여진 책이다. 범죄자의 심리를 따라가며 납득하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하는 스스로를 발견하며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책의 초판을 발매한 출판사가 에로틱한 책들로 유명한 곳이었다는 것을 짚으면서 꼭 그런 것만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하는 식이다.

그렇게 저자는 읽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함께 부정하며 스스로 생각하기를 요구한다.
그렇게 원래는 최상의 포식자인 ‘호랑이’였던 우리에게 포효할 준비를 시킨다.

조금 더 나은 상황에 있는 우리가 그럴 수 없는 어딘가에 있을 ‘슬픈 호랑이’들을 대신에 표효해서 세상을 울리고, 세상에 알리고, 세상을 울음소리로 뒤집어야 한다고 설득한다. 슬픈 호랑이였던 그녀는 이제 더이상 슬프기만 하지 않다. 또다른 슬픈 호랑이를 위해 포효해줄 강한 호랑이가 되었음을 이 글로 보여준다.

우리가 포효할 수 밖에 없도록 자신을 뒤집어 까내놓았다. 그렇게 마침내 이 세상으로 우리를 내보낸다.
발톱과 날카로운 송곳니, 우렁찬 포효를 가르치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약 세상에서 까마귀가 사라진다면
마쓰바라 하지메 지음, 정한뉘 옮김 / 나무의마음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언가 하나를 얼마니 사랑할 수 있는가.
그것의 답, 바로 #만약세상에서까마귀가사라진다면 (#마쓰바라하지메 씀 #나무의마음 출판)이다.

동물행동학자로 까마귀의 생태와 행동을 연구해온 까마귀 박사인 저자는 어느날 까마귀가 세상에서 갑자기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뜬금없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 한권의 책을 써냈다.
놀라운 것은 저자의 전공은 생물학적 내용뿐만 아니라, 종교, 신화, 문학을 넘어 ‘포켓몬스터’ ‘귀멸의 칼날’같은 애니메이션까지 폭넓은 분야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전공이 아니라 부족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동물행동학자라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인 묵묵히 지켜보고 관찰하는 것으로 폭넓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긴 자신의 전공 쪽으로는 까마귀가 지금 이순간부터 자연에서 사라졌는지, 애초에 까마귀라는 종이 존재한 적이 없었는지를 구분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의 상상력은 참 다시 생각해도 놀랍다.

까마귀가 사라졌을 때를 예상하는 것을 넘어 까마귀를 대신 할 수 있는 ‘대역’을 고르기위한 오디션을 치르는 것도 참신하고 위트 있었다.

까마귀가 담당하고 있는 ‘청소동물’ ‘도시에 사는 동물’ ‘머리가 좋은 새’ 카테고리 별로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동물들을 이상형 월드컵하듯이 탈락시키는데 과연 그는 누구를 최종후보로 낙점했을까?

가만히 생각해보자. 까마귀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동물이 있었다면 그것은 ‘까마귀’라고 불리지 않았을까? 까마귀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완전히 똑같은 습성을 보여주는 까마귀 뿐인 것이다.

결국 무언가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원래 까마귀는 민간 신앙이나 고대 신앙에서는 태양을 상징하는 신이었으나 기독교와 같은 삼대종교에서 그 위치를 내어주고, 해충을 잡아먹어 이로움을 느끼던 농경사회가 주류에서 밀리면서 도시에서 쓰레기 봉투나 뜯는 불필요한 새라는 이미지가 강해졌다. 색도 검어서 불길하다나. 결국 ‘까마귀가 없어진다면’은 ‘필요없어 보이는 OO이 사라진다면’이라는 속편한 불편에서 시작한 것이다.

이 세상에 불필요한 것은 없다. 모두가 각자의 역할로 생태계라는 거대한 태엽을 매끄럽게 돌아가게 하고 있다. 까마귀도 쓰레기 봉투를 뜯고 귀중한 차에 새똥이나 묻히는 것 같지만 쓰레기를 청소하는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가로수의 유충들도 잡아먹고.

무언가 하나가 빠지면 내가 아는 세상이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적응된 불편함이 아닌 새롭고 낯선 불편함과 마주하게 된다. 굳이 새로운 불편함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 일장일단. 하나의 장점이 있으면 하나의 단점이 있다. 우리는 그걸 밸런스라 말하고 보통이라 말한다.

보통이라는게 지루하고 의미없는 것이 아니다.
내가 구축한 내 세계가 문제없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통은 몹시 귀중하고 고마운 것이다.

그런 보통의, 익숙한 내 세계를 그대로 잘 유지하는 것도 좋은 삶의 방향이다. 내 세계에서 작가처럼 낯선 호기심을 가지는 것도 물론 좋다.

유쾌하고 즐겁게. 능동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보통의 우리를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유쾌하면서도 정성 가득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닥터 아포칼립스
연상호.전건우 지음 / 와우포인트 퍼블리싱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가수를 대표하는 명곡이 만들어진 계기를 들어보면, 좋은 음악은 가사와 멜로디가 같이 떠오른다고 하더라.
좋은 글도 작가가 쓰려고 애쓰는게 아니라 저절로 소재가 떠오른다고.

#닥터아포칼립스 (#연상호 #전건호 씀 #은행나무 출판)는 영화 <부산행>, <얼굴>을 만들어 낸 연상호 감독의 영상적 언어와 스릴러 문학의 거장 전건호 작가의 활자 언어, 멜로디와 가사가 동시에 작성된 명곡과도 같은 작품이다.

독특한 소재를 찾아내면 좋지만, 매번 독특하기는 어렵다. 뻔하다는 것은 다르게 표현하면 익숙하다는 것이고, 익숙하다는 것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그만큼 쉽다는 뜻이다.결국 뻔한 것을 뻔하지 않게, 지루하지 않고 끝까지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진짜 거장을 결정짓는 요소가 아닐까. 그 기준으로 <닥터 아포칼립스>의 두 아버지는 거장이라 불리기에 충분하다.

인간을 좀비로 만드는 바이러스. 잘나가는 뉴스앵커의 딸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불의의 사건으로 작은 병원에서 수술도 집도하지 않고 살아가던 의사를 만나 감염되면 돌이킬 수 없을 줄 알았던 좀비화가 수술로 치료가 가능할 것이라는 가능성이 생긴다.

선거를 앞두고 말끔히 처리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과 뜻을 같이 하는 거대병원. 그들에게는 감염자를 사살할 수 있는 경제적으로 ‘쉬운’길을 선택할 명분이 필요하다.
저 작은 병원에서 생중계되고 있는 수술이 실패로 끝나야만 한다.

단조로울 수 있는 스토리에 인물만의 서사가 부여되고 그 서사들이 인물들을 ‘연’이라는 이름의 커다란 천으로 기워낸다. 얼굴까지 문신으로 뒤덮인 조폭, 의료기기 회사 직원, 모든 것을 버린 의사, 출세의 욕망에 눈이 먼 의사, 뉴스 앵커, 작은 병원의 나이많은 원장과 간호사 등 각자 기워진 연으로 이야기는 향처럼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간다.

대종말을 뜻하는 아포칼립스. 아포칼립스라는 소재는 인간의 본성을 있는 그대로 꺼내기 아주 좋다. 죽음 앞에서 누구나 팔은 안으로 굽으니까.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서 각자에게 최선의 결말을 바라는 것은 당연하기에 억지로 독자들을 설득할 필요가 없다.

그곳에서 인간은 파벌이 갈린다. 나만의 ‘우리’를 위하는 쪽, 모두의 ‘우리’를 위하는 쪽. 머리로는 모두의 우리를 좇지만 과연 내가 저 자리에 있다면 그 선택을 당연하게 좇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 덮으면서도 시원하게 내 입장은 정리되지 않는다. 다만 이야기가 해피엔딩이길 바라는 것은 모두가 같은 마음일테니 이렇게라도, 시뮬레이션으로라도 올바른 것을 추구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하지 않던 것을 선택하는 것 보다 가끔이라도 생각해본 것을 따를 확률이 많은 법이니까. 그러면 만약에 실제로 아포칼립스와 같은 상황이 와도 조금은 더 인류에게 다음이라는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

책은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들을 활자로 겪으며 그 안에서 누군가의 입장에 공감하며 읽어나가게 된다. 그것이 책장 하나하나를 넘기는게 마음아프게 할수도, 얼른 다음 페이지로 넘기고 싶게 만드는 요소일 것이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닥터 아포칼립스>는 활자가 자동으로 머릿속에서 영상으로 재생이된다. 읽는 동안 이 인물은 배우 누가 맡으면 딱이겠다가 저절로 떠오른다.

책을 읽는 재미란 그런 것이 아닐까.
책에 푹 빠져 웃고 울고, 마음아파하고 기뻐하고 내 세상에 인물들을 데려와서 책과 나의 세상을 합치는 것.

술술 넘어가는 페이지터너가 재밌는 책의 또다른 이름이라면 이 책은 끝내주는 페이지터너이다.

순수하게 책 읽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속도감과 몰입감이 상당한. 얼른 시나리오로 각색되길 바라는. 극장에 걸린다면 기꺼이 한자리, 아니 두자리 차지하고픈 이야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