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평점 :
⠀
“그분은 어린양을 만들고도 그대를 만들었는가?“ 블레이크의 시 ‘호랑이’의 한 구절이다.
이것이 책의 제목 #슬픈호랑이 (#네주시노 씀 #열린책들 출판)의 유례이다. 저자인 네주 시노는 의붓아버지에게 유년시절 지속적인 성학대를 당했다. 정녕 이 사람이 나와 같은 진흙으로 빚어진, 무언가를 공유하는 동류同類란 말인가? 그 사실에서 저자는 슬프다.
슬픈 호랑이는 저자 본인일지도 모른다.
⠀
그 지난한 세월을 거쳐 40대가 된 저자는 열살남짓 된 자신의 딸을 보며 그보다 더 어렸던, 몹쓸짓을 당했던 자신을 떠올리면서도 스스로 변한 자신을 동시에 발견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어디에도 말할 수 없던 어린소녀는 더이상 없다고. 지금 눈 앞에 있는 이 어리고 사랑스러운 딸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는 ‘엄마’인 자신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
그녀는 이제 그 시절의 자신을 지금의 자신과 분리하고, 그 떠올리기 싫은 사건을 의붓아버지의 입장에서, 시선에서 그려본다. 그를 ‘이해’해보려는 시도이다.
그럴 수 있겠다라는 이해가 아닌, 그는 왜 그래야만 했는지 이해해보려 한 것이다.
⠀
자신의 일대기를 신문에 보도된 자신의 기사들을 발췌하고 회상하고 고백한다. 저자는 어릴 적 자신을 나보코프의 ‘롤리타’와 대조하며 살펴보는데 이러한 태도는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던 그녀가 침묵을 깬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입을 다물어야 하고 나보다 더 절실하게 말할 필요를 느끼는 여자들이나 남자들에게 발언권을 넘겨주어야”한다는 책임감을 느낀 것이다.
⠀
스스로의 아픔을 아픈 개인사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사회에 메시지를 보낸다. 이런 사람들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모종의 이유로 침묵하고 침묵당하고 있다고(그 침묵당하는 방법에는 죽음도 포함 될 수 있다)그러니 상대적으로 인권의 나라에서 태어난 나에게 주어진 발언권을 사용한다고. 이 목소리를 최대한 팽팽히 당겨 활에 걸어 최대한 멀리 닿을 수 있도록. 그것이 자신의, 이 글의 소임이라 말하고 있다.
⠀
그래서 자신의 히스토리를 말하는 것 뿐만 아니라 문학과 예술들을 예를 들며 언제든지 우리 주위에 일어날 수 있는 영 좋지 못한 일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게 한다.
⠀
앞서 말했던, 자신의 사건과 병치했던 ‘롤리타’는 피해자의 시점이 아니라 가해자의 시점에서 쓰여진 책이다. 범죄자의 심리를 따라가며 납득하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하는 스스로를 발견하며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장치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책의 초판을 발매한 출판사가 에로틱한 책들로 유명한 곳이었다는 것을 짚으면서 꼭 그런 것만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하는 식이다.
⠀
그렇게 저자는 읽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함께 부정하며 스스로 생각하기를 요구한다.
그렇게 원래는 최상의 포식자인 ‘호랑이’였던 우리에게 포효할 준비를 시킨다.
⠀
조금 더 나은 상황에 있는 우리가 그럴 수 없는 어딘가에 있을 ‘슬픈 호랑이’들을 대신에 표효해서 세상을 울리고, 세상에 알리고, 세상을 울음소리로 뒤집어야 한다고 설득한다. 슬픈 호랑이였던 그녀는 이제 더이상 슬프기만 하지 않다. 또다른 슬픈 호랑이를 위해 포효해줄 강한 호랑이가 되었음을 이 글로 보여준다.
⠀
우리가 포효할 수 밖에 없도록 자신을 뒤집어 까내놓았다. 그렇게 마침내 이 세상으로 우리를 내보낸다.
발톱과 날카로운 송곳니, 우렁찬 포효를 가르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