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깊을수록 삶은 단순하다 - 세상에 실망할 때 나를 붙잡아 줄 선한 질문들
레베카 라인하르트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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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하루 24시간 중 대부분의 시간을 눈앞에 놓여진 노력과 스트레스받기를 강요하는 힘든 일들과 보이지않아 불안한 미래, 그 때 그거 좀 해둘걸 밀려오는 후회로 점철된 삶인데도 우리들은 왜 그토록 열심히 살아갈까.

죽지못해 산다고 연신 말하는 사람들도 지켜할 무언가(돈, 명예, 가족 등)를 떠올리며 이 악물고 버틴다.
이런 삶을 잘못되었다 할 수 있을까?

물론 ‘내사람’이라는 바운더리안에 있는 이들을 위해 바운더리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있는 선택을 해야할 때도 있지만 모두가 그렇게 사니까 괜찮지않을까?
이러한 선택을 처음할 때는 괜찮을까 싶은 생각에 고민도 해보지만 나중에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않고 당연하다는듯 본능처럼 이같은 선택들을 하게 된다는 것이 나에게, 나아가 사회에 문제가 된다.

과장된 것 같지만, 히틀러 밑에서 수십만의 학살이 일어날때 내가 속한 사회가 바라는(시킨)일이라며 양심이나 죄의식 같은 질문들은 저멀리 던져버리고 무죄라 주장하던 아이히만이, 사회가 살기 나빠지는 이유는 생각없이 부분별하게, 일상보편적으로 책상머리에서 일어나는 ‘나쁜 선택’과 그에 따른 행동의 결과라는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위에서 말했던 우리네 보통의 삶의 선택과 같은 맥락이다.

시대가 전쟁상황이 아닐뿐.
저런 시대에 우리가 저런 상황이었다면,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철학이깊을수록삶은단순하다 (#갈매나무 출판)에서 저자 #레베카라인하르트 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묵직한 존재를 ‘선의 평범성’이라는 사소하고 작은 것들로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의 평범성’이란 JUST DO IT. 그저 실천하는 것이다.

첨단 문명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우리는 점점 살기 좋아지는데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서 우리는 왜 이토록 괴로워할까.
저자는 우리가 무한경쟁사회에서 끝없이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몰아붙여져서, 현재 우리의 모습으로는 한없이 부족해서 지금도 허덕이지만 더 허덕여야한다고 사회화 되어왔다고, 그 여유없음에서 모든 나쁜 것들이 기원된다고한다.

그래서 진정 ‘더 좋아‘지려는 욕망이 본인 스스로의 욕망인지 살피고, 더 좋아지지않아도 지금 당장의 내가 행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실천하라고 말한다.
내가 행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이 바로 휴지줍기, 밝은 미소로 인사하기와 같은 작은 ’선함‘을 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진정어린 선함은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승진,연봉인상 같은 커리어적 성공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않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러면 행복은(저자는 빠른 행복이라 이름붙였다)차가 막히고, 클라이언트와의 말다툼으로 바로 잊혀져버린다. 하지만 진심에서 우러난 작은 선함의 실천으로 느끼는 행복(느린행복이라 저자는 말한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쉽게 만족도가 사라지지않는다.
그리고 빠른행복은 내가 죽으면 세상에서 사라지지만 느린행복은 이 세상에 남아 세상이 조금씩 선해지고 살기좋은 곳으로 바뀌게 해준다.

저자는 이 느린행복을 목표로 삶고 행하는 것이 이 삶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선함을 실천하라는 저자의 권유가 실천의 윤리학을 강조한 스토아학파의 그것과 닮아있다.

실제로 책 안에서 저자는 종교만큼(어쩌면 종교보다도 더 오래된)힌두교와 불교에서 출발해 디오게네스가 실천한 ‘자발적 무욕’, 스토아학파가 추구한 ‘아레테’, 에리히 프롬이 제안한 ‘존재의 기술’로 그 영적인 가르침과 철학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이름붙인 ‘선의 평범성’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보편적 진리에 가까운 것이라 말한다.

배부른 사람들이나 하는 학문이라고 평가절하되는 철학, 예술은 동시에 인류의 역사가 끝날때까지 남아있을 최후의 학문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만큼 인류의 본성과 가까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나를 돌아보고 (메타노이아) 모든일을 겸허히 받아들이고(중용, 메소테스), 스타일과 태도를 생각해보고(스프레차투라)같은 ‘선의 평범성‘으로 나아가는 방법으로 인용된 것들이 철학에서부터 왔으나 그만큼 인위적이 아닌 본능에가까운 것들이라는 반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흡하지만 필사도 하며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옳게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휴지줍기와 같은 사소한 것들을 지금당장 실천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않으니 일단 해봐야겠다. (물론 이전에도 했었으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해보면 이 책의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겠나.

부디 이것이 올바른 이해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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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쓰는 시간 - 한 줄의 기록이 삶을 바꾼다
장예원 지음 / 북로망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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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성공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사업성공, 명문대 졸업, 꿈의직장, 고시합격, 모두가 부러워하는 연봉, 수입, 좋은 자동차, 명품. 인스타그램을 하면 자괴감들게 하는 저런 것들이 성공일까?

나도 한때 저런 부와 명예가 성공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이룬것들과 이룬것들에 대한 보상까지. 나도 만족하고 보는 사람들도 만족하는, 성공은 ’얼마나 만족했으냐‘인 것 같다.

저런 부와 명예를 가져보지는 못했지만 몇몇 책들을 읽어보니 저런 것들이 가져다주는 만족감은 잠시일뿐이고 또 다른 먹음직스럽고 더 커다란 무언가를 향해 달려나가게 만든다.

차가 막힌다라는 단순한 상황에서조차 변색되어버리는 ‘빠른행복’인 것이다. 모두가 한눈에 바로 좋아보인다 성공했구나라고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본인에게 인생이 바뀌었다고, 바뀐 지점이었구나라고 느끼게 하고 다른 사람들도 나중에라도 아 저것이 옳았구나 멋진 것이구나 라고 깨닫는것. 그런 것들이 나는 진정한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내 눈에 좋아보이고 닮고싶은 성공의 모습은 ‘기록’하는 삶이다. 책을 읽은 것들도, 문득 생각이 나는것도, 일기를 쓰는 것도, 하루의 시작점에서 오늘 하고픈일을 적는 것도, 감사했던 것들을 적는 것, 해빗트래커 등등 수많은 기록들이 쌓이고 쌓여 그렇게 더 나은 내가 되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되고싶다라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었다.

그래서 부족하게나마 필사단에 참여하면서 책 속 문장을 받아적고, 다 읽은뒤의 소감을 괴발개발 적어냈다. 매일은 아니지만🤣하루의 시작에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짧은 일기도 적었다. 그러던 와중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티비에서 만나 내적친밀감이 손에 꼽히는 아나운서였던 #장예원 아나운서가 쓴 #나를쓰는시간 (#북로망스 출판)을 만났다.

매분 매초 숨가쁘게 돌아가는 방송국에서 방송 스크립트를 작성하고, 순간집중력으로 애드립처럼 뱉어내야하는 속보전달을 위해 하루에도 몇번씩 글을 쓴 사람인데도 ’기록‘으로 흔들리는 자신을 다잡을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즉, 내가 성공이라 생각하는 닮고싶어했고, 쓰고싶고, 장예원 아나운서를 비롯한 수많은 기록가들의 기록은 ’자기자신을 기록‘하는 기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것을 깨달아도 빈 노트앞에 앉아 펜을 들어도 막상 무엇을 써야할지, 너무나 평범하도 쓸거리가 없는 내 자신과 마주하게되어 당황하기도 좌절하기도 했다.

<나를 쓰는 시간>은 나 같은 이런 사람들을 친절히 돕는다.
(장예원 아나운서 특유의 따뜻한 웃음이 생각나는 책이다)

작가가 흔들리때마다 중심을 잡기위해 되뇌이고, 스스로에게 질문했던 더 나은 내가 되기위해 탐구했던 질문 100개가 담겨있다. 글 소재가 100개나 되는 것이다.
삶, 관계, 내면, 어른, 꿈, 스스로를 믿는 것, 6개의 큰 주제에서 100가지의 질문을 던진다. 하루 하나의 소재를 골라(순서 상관없이 그날 그 순간의 느낌가는대로)빈 공간에 끄적이면 된다.

처음에는 비워져있는 공간이 너무나 커보이지만 쓰다보면 줄이 적어서 그 아래를 빼곡히 적어가는(그래서 난 다른 노트에 적었다 하하 적어도 많아도 채워야한다는 압박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그리고 쓴 것들을 넘기다가 유난히 길게 적은 소재가 있다면 그것이 내가 관심있는 부분이라는 반증이니 나를 더 잘 알아가는 계기도 된다.

내가 애정하는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팬이 되어버린 김영하작가가 한 말이 있다. 감정은 형태가 없다고 £₩$(%)?같은 무형태의 것인데 이것을 글로 남기면 글에는 문법적 요소가 있기에 자동으로 가다듬게 되고 형태를 갖추게 되어 의미가 생긴다고. 그 순간의 기분이나 감정이 없는 사람은 없다. 중요하지않다고 감정은 드러내는 것이아니라고 배워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 순간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감정과 기분은 글로 적어 체화시키지 못한 진정하고 솔직한, 나도 모르는 내 자신이다.
인생은 계속해서 나도 몰랐던 내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다. 세계지도를 벽에다 걸어놓고 다녀온 곳은 색을 칠하듯, ‘나’라는 지도의 빈칸을 색칠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겠다.
<나를 쓰는 시간>이 ‘나’로 나를 이끌어주는 나침반이었다.

나를 찾고싶어하는 모든 길 잃은 사람들에게 영원히 고장나지않고 정확하게 목적지를 가리키는 나침반, <나를 쓰는 시간>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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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의 우리 사람 열린책들 세계문학 294
그레이엄 그린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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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어떠한 이야기를 보고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웃기다고 느끼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그 ‘재미난’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이 한없이 진지하면 된다.

웃기는 이야기임에도 시치미떼고(웃긴줄 모른다)한없이 진지한 그들을 보며, 서해의 조수간만 차만큼 커다란 괴리감이 폭소를 유발한다.

#아바나의우리사람 (#그레이엄그린 지음 #열린책들 출판)을 읽는동안 그 어떤 진지하고 긴박한 상황에도 몰입보다는 웃음이 먼저 나왔다. 그만큼 책 속의 세계는, 그들의 목숨을 건 긴박한 첩보활동은 희극적일만큼 비극적이었다.

#우주서평단 에 선정되어 여러 권의 좋은 책들을 감사하게도 읽어왔지만 #우주클럽_문학방 처럼 여러사람과 함께 같은 책을 읽고 드는 의문과 생각을 발제문으로 공유하고 감사하게도 친절한 탐험대들이 자기만의 생각들을 댓글로 남겨준다.

다른 분들의 발제문에 쓸모있는 답변을, 나 스스로도 유의미한 발제문을 작성해야한다라는 부담감(positive)에 그냥 텍스트를 읽어왔던 기존의 독서와는 전혀 다른,강구하는 참된 독서를 할 수 있는 색다른 기회였다.
압박감, 부담감(positive!!)이 있지만 이것이 올바른 독서구나를 배워서, 기회가 있다면 이런 온라인 독서모임을 자주 참여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이 글을 다 쓸때까지라도 이 각오가 유지되기를🤣)

<아바나의 우리사람>은 헤밍웨이의 바나 번쩍번쩍 빛나며 길위를 달리는 클래식카가 떠오르는 쿠바의 내전시대즈음의 영국의 첩보활동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담겨있다.

수많은 의문들이 떠오른다.
왜 이토록 평범한 사람을 첩보요원으로 선택했으며,(보통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약점이 없는 사람을 선택하는데 아내없이 홀로 키우는 딸이 있는 사람을 고르다니, 정말 캐스팅이 스포 그 자체) 정말 이런 사람이 하는 보고가 사실이라고 그 제임스본드의 그 MI6가 맞는지 의심스러울만큼 보고를 체크해보지도 않고, 최후의 순간에 정말, 이런 선택을 할 줄 몰랐는지와 같은 너무나 허술한 구멍들이.

나 혼자 이 책을 읽었다면 이런 표면적인 질문과 답으로 끝냈겠지만 함께 읽으니 독서구력이 남다른 분들의 남다른 질문으로 본문보다 더 많은 분량들의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진짜’‘우리’‘도덕’‘충성’이라고 믿는 가치들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장소와 시간에 따라 가차없이 바뀔 수 있는 것들이었다는 것이 책 속의 사회에서도,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도 모든 문제들과 갈등의 원인이었다.

‘진짜’라는 것은 내가 참이라고 믿거나 내가 속한 사회에서 ‘진짜’라는 이름으로 학습된 ‘룰’이고, ‘우리’도 누군가가(소위 엘리트라 불리는 기득권세대)가 입맛대로 규정한 ‘도덕’이라는 이름의 또다른 ‘룰’속에서 그 ‘룰’을 지키도록 ‘충성심’이라는 이름으로 가스라이팅 되어 온 것이다.

걸음마를 떼고 말을 할 수 있는 시기즈음부터 가르치는 사람들도 ‘진짜’‘도덕’이라고 배워온 것들을 절대적 ‘진짜’라 믿는 것들로 사회화 시키고, 사회화 되어버리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응당 지니고 있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와 정답들이 이드Id 속에서 거세되어 영원히 잠든다.

주인공이 마지막에 국가를 선택하지않고 개인적 안위를 선택하는 것에 충성심이 없다고 왜 이런사람을 첩보원으로 뽑았냐고 답답해 할 수 있지만, 나는 응당 당연히 십수년을 떠나온 고국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않을 딸의 안위를 선택하는 것이 더 고귀하고 응당 그래야하는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장면이 잠들어있던 이드가 깨어나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이토록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수많은 이데올로기가 절대적인 것처럼 포장되어 녹아들어 구성원들을 가스라이팅하고 있는 경우들이 많다. 사유하여 꽤뚫어보는 진리의 눈을 부릅뜨고 모든 것들을 제대로 볼 줄 알아야한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며 들었다. 그 판단의 오류를 수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명의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여 정의내리는 것이다.
그냥 아무생각 없이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아마 이런 깊은 사유를 하기위해, 글을 읽는데 드는 심력을 줄읻기위해 희극적인 분위기로 글을 쓰지않았나싶다.
삶은 코미디다. 멀리서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가끔 한걸음 물러나서 볼 줄도 알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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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퍼스트 - 돈과 시간을 장악하는 1% 부의 법칙
유나바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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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나이가 드니 무조건 돈을 많이 벌어야한다라는 생각이 사그라드나 싶더니 그러면서도 돈을 많이 벌고싶다 여전히🤣

그래서 나름 책도 찾아보고 유튜브 영상도 구독해서 찾아보는데 실천으로 옮기기도 쉽지않다. 역시 무언가를 실천으로 옮기는데에는 큰 물리적, 정신적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무언가 정보를 줍줍하는 것은 포기하지않고 귀동냥처럼 얻고는 있는데 역시나 부동산으로 하는 재테크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온다. 내 가족, 내 집, 내 안식처. 보금자리에 의미를 크게 두는 특유의 정서가 반영된 것이라 생각한다. 코로나를 기점으로 집값이 단위가 바뀔정도로 급상승하기도 했으니 부동산이란 돈만 있으면 누구든지 해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이고🤣 하지만 부동산을 큰 액수가 초기자본으로 필요하기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러한 생각을 보란듯이 비웃는 책이 있다.

유명한 부동산 투자 1세대 #유나바머 가 자신의 노하우를 집대성한 #더퍼스트 (#위즈덤하우스 출판)에서 투자하기엔 소득이 너무 적다며 투잡 쓰리잡 아무런 목적도 계획도 없이 내 육신과 영혼을 갈아넣는 방식은 결코 오래갈 수 없다고 경고한다.

자본주의는 돈이 아니라 시간을 빨리 버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1대 다수의 구조로 움직이는 자본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지 못하면 결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이고, 주도권을 쥔다라는 것이 먼저 선점한다라는 것이다.

이것도 결국은 돈이 있어야 선점하는거 아니냐고?
그래서 <더퍼스트>는 수익을 더하기의 속도가 아니가 곱하기의 속도로 돈을 불려나갈 수 있는 청사진들을 제시한다.

근로소득 외 부수익 창출법부터 평생 써먹는 현금 흐름을 만드는 법 등 시장의 혼란스러워도 무너지지 않는 부로 향하는 일직선 탄탄대로를 완성하는 핵심 원칙 6가지가 담겨있다.

IMF라는 경제대위기에서도 대기업에 취업하면서 남들이 말하는 탄탄대로를 걸었지만 불행한 직장생활을 견디지 못하도 삼십대 초반부터 사업을 시작하며 맨 땅에 헤딩하며 달려온 작가의 철학이 빼곡하게 담겨있다. 내가 걷고있는 길이 탄탄대로 라고 나의 인생도 탄탄대로일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라는 작가의 말이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돌이켜보면 누구나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도 도중에 퇴직하고 나오면 식당이나 카페 치킨집에 퇴직금을 넣고 쫄딱 망하는 일은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고, 정년을 다 채웠다한들 근로소득으로 100세시대를 바라보는 초장수 시대에 충분한 노후보장은 불가능하다. 결국 로열블러드가 아니라면 모두 사업을 해야하는 상황임을 인정하고 모두가 위기임을 말할 때 두려움을 극복하고 1%의 선택을 하는 자질을 갖춘 ‘단독자’가 되어야한다고 말한다.

그 단독자가 되는 작가가 직접 경험한 부의 원리를 따라가다보면 나만의 독자적인 브랜딩을 할 수 있는 ‘1의 게임’을 할 수 있는 공식들을 얻을 수 있다.

성공학이나 자기계발적 요소들은 웬만한것들은 다 들어봤을 거라 생각했는데 1의 게임이나 단독자같은 개념들은 생각해본 적도 없어서, 아직 멀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소득의 단위를 바꾸고, 나도 모르게 증발해가는 돈을 소비하지말고 자본화 시키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사회적 가치를 더해 동기가 끊기지않고, 나만 잘되는 게 아닌 선한 영향력을 전해야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단다.

그러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천’이라고 엄청엄청 강조한다.
그래 맞다. 아무리 알면 무얼하나. 가만히 있으면 이루어질 확률은 0%다. 움직여야 소수점이라도 확률이 생기는 것이다.
너무 잘아는 것이라 할말이 없다😅

나뿐만 아니라(그렇게 믿고싶다)모두가 실천이 가장 약점이 아닌가싶다. 하지만 <더퍼스트>는 책을 만난 타이밍이 왠지 용기를 갖게 만든다. 인생에 꾸준히 무언가를 해온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않는 인생을 살았는데 그래도 독서와 독서기록을 남기는 것을 꾸준히 석달정도 해오고 있는 상황이라 뭔가 석달 전의 나와는 다르지않을까 근자감이 차올랐다.

읽는동안에도 이전에 가끔 봤던 경제, 성공분야의 책을 읽을때와 와닿고 느끼는 부분이 뭔가 달랐다.

내 인생도 바뀌려는 걸까?

스스로가 바뀌길, 그리고 경제적자유를 얻길 원하는 분들이라면 ,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더퍼스트>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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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펙토르의 시간
엘렌 식수 지음, 황은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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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앞에서의 고백처럼, 나의 (성인 이후)첫 고전이었던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의 윌리엄 수도사부터, 내 마음속 넘버원 소설, 댄 브라운의 <천사와 악마>,<다빈치코드>,<인페르노>3부작의 로버트 랭던 교수까지, 이토록 충분한 이유로 기호학을 사랑한다.

아는 사람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온갖 지식들을 교묘하게 바꿔 기시감을 갖게하고, 그로인해 숨겨진 의도를 찾아나서게 하는 그 스마트함이 멋졌고 동경했다.

#엘렌식수 의 #리스펙토르의시간 (#을유문화사 출판)을 읽으면서 기호학이 떠올랐다. 리스펙토르의 글을, 로버트랭던이 기호학적 사실들을 줄줄 외우고 있을만큼 덕후였구나 느껴질만큼, 엘렌 식수도 ‘덕질’했다.

직업이라는 카테고리의 무언가 하나를 평생 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덕질을 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것 만큼 좋은(행복한)것은 없다고,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자가 딱 그 행복을 가진 사람이었다.
진정한 덕업일치👍🏻

‘여성적 글쓰기’라는 개념을 창안했다는 저자의 이 책에 수록된 첫번째 글 ‘오렌지 살기’에서 아, 이런것이 여성적 글쓰기인가? 랄 만큼의 글을 보여준다.

열렬히 사모 대상에게 보내는 온갖 미사어구를 가져다 붙인, 그러면서도 남성이 쓴 그런 문장과는 확실히 다르다. 힘을 분명히 준 문장인데도 힘을 주지않은 것 같은 문장이다.
‘너를 처음 본 순간 하늘이 어찌저찌했고 내 심장은 이러쿵저러쿵 했으며’하는, 충분히 낯이 뜨거워질 글임에도 전혀 달아오르지 않는다. 절절하게 끓는데도 뜨겁지 않다. 사람사이의 감정이라기 보다는 절대자를 찬양하는, 찬양하지만 너무나 많이 그분이 행한 기적들에 이미 감화되어 일상이 된 듯한 차분함이 담겨있다.
연애편지보다는 신앙심을 고백하는 성스러움이 담겨있다.
유럽권 언어가 가지는 남성형, 여형성 명사표기를 이용해서(모든 단어들을 여성형 명사로 굳이 다 바꿔놓는다)자기가 고안하고 자기가 가장 자신있는 글쓰기 방식으로 클라리스 리스펙토르를 숭배하고 있다.
심지어 여성형 명사를 넣는 행위 중 하나로 리스펙토르를 이용한 느낌마저 든다.

아마 엘렌식수를 덕질하고, 그 덕질의 일환으로 리스펙토르의 책까지 섭렵하는 찐 덕후들이 이 글을 본다면, 엘렌 식수가 리스펙토르를 얼마나 오마주해서 이 글을 썼는지, 여성적 글쓰기가 리스펙토르를 통해 극대화된 것에 감동했을 것이다.
그 정도 되는 사람들에게 이 글은 저자와 독자로서 만나 주고받는 기호학이 되는 것이겠지.

그 어느쪽도 해당되지 않는 삐약이라 그러한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머글인 나도 문장이 정말 아름답다(알아듣지 못함의 연속이었으나 그래도 찬란했다)느꼈고, 외국어능력이 있었다면 원서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분명 운율감이 상당했을 것이다.
번역이 되었는데도 산문시같은 운율감이 느껴졌으니.
#황은주 번역가님 정말 대단하시다. 리스펙트🙏🏻

이러한 엘렌식수의 덕질은 세번째 글 <진정한 저자>에서 거의 정점에 다다른다.

리스펙토르의 유작 <별의 시간>을 눈에보이지 않는 원자수준으로 쪼개어 그 하나하나 안을 모두 들여다본다.
<별의 시간>속 호드리구가 쓴 소설 속 마카베아 까지 분석한다. 개별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아닌, <별의 시간>의 저자와 호드리구, 호드리구와 마카베아 사이에서 펼쳐지는 복잡한 관계성까지 남김없이 탈탈 털어 적어놓았다.

원자라는 단위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처럼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않는 것들을 진리처럼 믿는 것들이 많다라는 글이 나온다.
엘렌식수에게는 리스펙토르의 생각와 글이 세상 제일가는 진리였다. 원자라는 단위가 있다라는 사실보다 더.

누군가를 그렇게 열렬히 깊이 파고, 체화해서 내가 곧 그가 되는 합일의 경지를 이루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걸 어느정도 살아가다보니 알게된다.

그리고 그 어려운 것이 행복한 인생을 만들어가는 확실한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글쓰기 외의 엘렌 식수의 삶이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의 글쓰기 인생만큼은 분명 행복할 것이다.
그녀의 인생에 글쓰가 전부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처음에 말했던, 기호학의 입장에서 봤을 때, 나의 독서는 성공적이지않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않고, 나도 이 기호학 재미있게 읽어보고 싶다라는 열망이 생겼다.
아 글은 클라리스 리스펙토르를 영업하는(?)글이 분명하다.
그런면에서는 난 이 글을 똑바로, 작가의 의도대로 읽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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