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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깊을수록 삶은 단순하다 - 세상에 실망할 때 나를 붙잡아 줄 선한 질문들
레베카 라인하르트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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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4시간 중 대부분의 시간을 눈앞에 놓여진 노력과 스트레스받기를 강요하는 힘든 일들과 보이지않아 불안한 미래, 그 때 그거 좀 해둘걸 밀려오는 후회로 점철된 삶인데도 우리들은 왜 그토록 열심히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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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못해 산다고 연신 말하는 사람들도 지켜할 무언가(돈, 명예, 가족 등)를 떠올리며 이 악물고 버틴다.
이런 삶을 잘못되었다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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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내사람’이라는 바운더리안에 있는 이들을 위해 바운더리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있는 선택을 해야할 때도 있지만 모두가 그렇게 사니까 괜찮지않을까?
이러한 선택을 처음할 때는 괜찮을까 싶은 생각에 고민도 해보지만 나중에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않고 당연하다는듯 본능처럼 이같은 선택들을 하게 된다는 것이 나에게, 나아가 사회에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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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된 것 같지만, 히틀러 밑에서 수십만의 학살이 일어날때 내가 속한 사회가 바라는(시킨)일이라며 양심이나 죄의식 같은 질문들은 저멀리 던져버리고 무죄라 주장하던 아이히만이, 사회가 살기 나빠지는 이유는 생각없이 부분별하게, 일상보편적으로 책상머리에서 일어나는 ‘나쁜 선택’과 그에 따른 행동의 결과라는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위에서 말했던 우리네 보통의 삶의 선택과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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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전쟁상황이 아닐뿐.
저런 시대에 우리가 저런 상황이었다면,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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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깊을수록삶은단순하다 (#갈매나무 출판)에서 저자 #레베카라인하르트 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묵직한 존재를 ‘선의 평범성’이라는 사소하고 작은 것들로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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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평범성’이란 JUST DO IT. 그저 실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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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문명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우리는 점점 살기 좋아지는데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서 우리는 왜 이토록 괴로워할까.
저자는 우리가 무한경쟁사회에서 끝없이 ‘더 좋아질 수 있다’고 몰아붙여져서, 현재 우리의 모습으로는 한없이 부족해서 지금도 허덕이지만 더 허덕여야한다고 사회화 되어왔다고, 그 여유없음에서 모든 나쁜 것들이 기원된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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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진정 ‘더 좋아‘지려는 욕망이 본인 스스로의 욕망인지 살피고, 더 좋아지지않아도 지금 당장의 내가 행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실천하라고 말한다.
내가 행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이 바로 휴지줍기, 밝은 미소로 인사하기와 같은 작은 ’선함‘을 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진정어린 선함은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승진,연봉인상 같은 커리어적 성공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않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러면 행복은(저자는 빠른 행복이라 이름붙였다)차가 막히고, 클라이언트와의 말다툼으로 바로 잊혀져버린다. 하지만 진심에서 우러난 작은 선함의 실천으로 느끼는 행복(느린행복이라 저자는 말한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쉽게 만족도가 사라지지않는다.
그리고 빠른행복은 내가 죽으면 세상에서 사라지지만 느린행복은 이 세상에 남아 세상이 조금씩 선해지고 살기좋은 곳으로 바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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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느린행복을 목표로 삶고 행하는 것이 이 삶을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선함을 실천하라는 저자의 권유가 실천의 윤리학을 강조한 스토아학파의 그것과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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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책 안에서 저자는 종교만큼(어쩌면 종교보다도 더 오래된)힌두교와 불교에서 출발해 디오게네스가 실천한 ‘자발적 무욕’, 스토아학파가 추구한 ‘아레테’, 에리히 프롬이 제안한 ‘존재의 기술’로 그 영적인 가르침과 철학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이름붙인 ‘선의 평범성’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보편적 진리에 가까운 것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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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 사람들이나 하는 학문이라고 평가절하되는 철학, 예술은 동시에 인류의 역사가 끝날때까지 남아있을 최후의 학문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만큼 인류의 본성과 가까운 것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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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아보고 (메타노이아) 모든일을 겸허히 받아들이고(중용, 메소테스), 스타일과 태도를 생각해보고(스프레차투라)같은 ‘선의 평범성‘으로 나아가는 방법으로 인용된 것들이 철학에서부터 왔으나 그만큼 인위적이 아닌 본능에가까운 것들이라는 반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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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흡하지만 필사도 하며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옳게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휴지줍기와 같은 사소한 것들을 지금당장 실천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않으니 일단 해봐야겠다. (물론 이전에도 했었으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해보면 이 책의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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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이것이 올바른 이해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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