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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평점 :
<슬픈 호랑이>, 에주 시노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그저 흔한 에세이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가
하루만에 완독한 책. 말 그대로 저자의 고백에 빨려들어가듯 읽었다.
저자는 어릴 적 의붓아버지로부터 아동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이다.
단순히 '피해자'라는 말로 저자를 한 마디로 요약할 수는 없겠지만,
저자는 자신의 어머니, 아버지, 의붓아버지를 포함한 가족사를 설명하며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걸쳐,
아홉 살일 때부터 청소년이 될 때까지 성적 학대를 당한다.
저자는 집을 벗어나 대도시에서 대학을 다니며 어머니에게 비밀을 털어놓고,
어머니와 함께 고소장을 제출하며 의붓아버지의 소행을 폭로한다.
그는 (의외로) 순순히 자기의 범행을 인정하면서 자기의 범행 이유를 '관계의 어려움'이라고 설명한다.
당시 사건을 다룬 기사나 조서들은 피해자가 스스로를 해방시키기 위해 털어놓았다고 했지만
사실 저자는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말한다고 얘기한다.
저자의 위치를 단순히 '아동성폭력 피해자'라고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는 한 소아성애 포르노 조직망의 이름이 'damaged for life'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어떤 강간범들은 피해자들의 고통이, 강간의 흔적이 '평생 간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고 말한다.
"내가 조금 더 거리를 두고 이 책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
내가 그냥 무언가를 본 어떤 사람, 동심원처럼 퍼져나가는 반향에 충격을 받은 어떤 사람, 한 여자아이가 당한 일에 복수하기 위해 책을 쓰겠다고 약속한 어떤 사람이면 좋겠다.
그렇게 분명한 이유를 내세우며 거리를 둘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하지만 그건 체스판 위에서 내가 설 자리가 아니다. " (슬픈 호랑이 p.132)
그래서 서평을 적으면서도
저자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망설였다.
자신이 원해서, 선택한 일도 아닌 주제를 통해서 글로 알려지는 게 저자에게 어떤 의미일지 두려웠다.
하지만 저자는 '마치 황소의 두 뿔을 잡고 겨루듯' 정면으로 부딪혀 문제를 해결하고, 계속 나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책의 마지막 대목에서도 저자가 자신은 아동 성폭행을 겪었지만 자신이 성인이 되고 나서는 누구를 강간하지도, 모욕하지도, 배신하지도 않았다고 말하며 최선을 다해 자신 주변의 아이들을 보호하고 아이들이 가는 길에 나타나는 방해물을 치운다고 말한다. 그런 저자의 담담한 용기가 인상깊었다.
저자는 문학을 통해 자신의 고통을 남에게 토해내듯이,
독극물을 처분하듯이 고통을 토해 버리는 것이
자신이 원하는 해방은 아니라고 한다.
고통을 가지고 예술 작품 만들기, 폭력을 미학적으로 형상화하기는
출구 없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작가들은 자기들보다 더 큰 어떤 것에 도달할 때 해방된다.
작가 역시 문학을 통해 '다른 땅'에 다다르는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