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필사책 어린 왕자 - 마음을 다해 쓰는 글씨 마음을 다해 쓰는 글씨, 나만의 필사책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박선주 옮김 / 마음시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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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린 왕자》를 처음 읽은 건 고등학생 때였는데, 읽으면서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땐 뭐 굴러떨어지던 낙엽만 봐도 눈물이 나는 감수성 짙은 시절이기도 했지만, 사람 간의 관계와 미래에 대한 불투명함이 겹쳐져 심적으로 많이 힘들던 시절이라 나도 모르게 울었던 것 같다. 이미 이런저런 현실적인 고민을 시작했던 나와는 달리 맹목적이면서도 순수한 어린왕자의 마음이 부럽고 또 부러워서.

나를 울게 한 책은 그 전으로도 뒤로도 전무후무해서 유일하게 울면서 읽은 책이 되었는데, 이번에 좋은 기회로 어린왕자를 필사해볼 수 있는 《나만의 필사책: 어린 왕자》를 만나게 되었다. 사람들의 말을 빌자면 ‘열 살에 만나는 어린 왕자와 스무 살에 만나는 어린 왕자 다르고, 서른 살에 만나니 또 다르더라’ 라던데, 지금 만나는 어린 왕자는 또 어떻게 다르려나? 기대감을 가지고 펼쳐보았다.

이 책은 필사를 하면서 보는 책이어서 왼쪽은 책 내용과 일러스트, 오른쪽은 책 내용을 필사해볼 수 있는 노트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필사에 용이하도록 180도 펼쳐지는 제본 방식을 택했다. 책등이 일반 책과는 달리 실로 엮은 듯한, 북바인딩 형태로 되어 있는 독특한 책이었다. 이 출판사가 정말 필사에 진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글씨 쓸 때 펜도 종이도 몹시 편식하는 스타일이라 종이 재질이 별로면 글씨 쓰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지는데(그래서 스벅 다이어리 한 달도 못 쓰고 버렸다. 종이 완전 저질-_- 기름종이나 라이스페이퍼인줄...) 종이 가리는 나도 책장을 넘겨보면서 ‘종이 되게 좋은 거 썼네-’ 라고 말할 정도로 종이 퀄리티가 훌륭했다. 볼펜으로 필사했는데 뒷장에 전혀 비치지도 않고, 뒷장에 볼펜자국이 패이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두꺼워 다음 페이지로 넘기는 걸 방해하지도 않는다. 웬만한 노트보다 나은 것 같아 필사하는 동안 매우 흡족했다.

내가 좋아하는 구절은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기다림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부분이다. 사실 이 부분을 필사하고 싶었는데, 앞부분부터 천천히 읽어보고, 입으로 되뇌며 필사하고, 필사한 것을 다시 한 번 더 읽고...하는 식으로 진행하다 보니 진도가 빠르지 못하다. 좋아하는 구절은 따로 여기에 메모해본다.

・‥…━━━━━━━☆☆━━━━━━━…‥・
이튿날 어린 왕자가 다시 왔다.
"어제와 같은 시간에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여우가 말했다. "예를 들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할 거야. 그리고 네 시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행복해지고, 네 시가 되면 몸을 들썩이며 네가 보고 싶어 안달이 날 거야. 그때의 내 모습이 얼마나 행복해 보일까!
・‥…━━━━━━━☆☆━━━━━━━…‥・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내 최초의 필사는 여덟 살 때쯤이었던 것 같다. 누가 시킨 적도 없는데 좋아하는 단편동화를 손바닥만한 수첩에 옮겨 적었다. 그 책을 좋아해서 매일매일 가지고 다니고 싶은데 책은 커서 거추장스럽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강제성이 없다 보니 몇 달만에서야 완성이 되었는데, 몇 번 못 가지고 다니고 잃어버렸지만 필사했던 것만큼은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사람들이 필사를 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책을 좀 더 곱씹어서 읽어보고 더 깊이 기억할 수 있다는 데 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 책을 통해 어린 왕자의 세계로 다시 한번 더 깊숙하게 들어가볼 수 있을 것 같다. 천천히 오래 곱씹으면서.

🎁 마음시선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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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복어 문학동네 청소년 70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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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열여덟 살이 된 유리가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이부동생과 함께 살게 되면서 겪게 된 일들을 담은 청소년소설 훌훌. 불편하고 예민할 수 있는 소재를 제법 세밀한 필체로 그려내 인상 깊게 읽었는데, 작가가 신작 소설을 냈다고 해서 곧바로 읽어보았다. 나는 복어라니, 어쩐지 제목부터 심상찮다. 지난 소설에서는 여학생이 주인공이었지만 이번엔 남학생이 주인공이다. 자현기계공고 하이텍기계과 2학년에 재학 중인 김두현. 별명은 청산가리. 엄마가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했다고 해서 별명이 청산가리란다. , 쎄다. 벌써부터 가슴 한구석이 아린다. 열여덟이면 아직은 부모 그늘 아래 어린 티를 벗지 못했을 나이인데, 엄마가 죽은 것도 모자라 자살에, 그게 별명으로까지 붙어있다니. 이번엔 또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킬까 궁금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전작에서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면, 이번에는 주인공인 두현의 이야기 못지 않게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비중이 높아졌다. 2학년 1학기 말에 전학을 온, 반의 유일한 여자애 재경과 그의 오빠이자 자현기계공고 선배인 재석 이야기, 선생님도 그만두게 하고 여러 아이들도 전과하게 만든 문제아 강태, 그런 강태가 유일하게 따르는 정명진 선생님, 자현기계공고 선배이자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장귀녀 사장에 대한 이야기까지. 주변에 있을 법한 인물들이 저마다의 색깔을 띤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두현은 별다른 꿈 없이 복집을 운영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간다. 엄마는 죽고, 아빠는 감옥에 가 있어 누구에게도 엄마가 죽은 날의 진실을 확인할 수 없다. 엄마의 죽음은 두현에게 늘 물음표로 남아 있었는데, 가뜩이나 복잡한 두현의 인생에 재경이 갑자기 끼어든다. 얼떨결에 친구가 되어버린 재경은 알고 보니 장귀녀 사장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다. 장귀녀 사장이 현장실습규정 미준수로 자신의 오빠를 다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주장하고 있었던 것. 하지만 장귀녀 사장은 사과할 이유가 없고 이미 보상할 건 다 해줬다며 오히려 큰소리를 낸다. 같은 반인 문제아 강태는 끊임없이 사고를 치는데, 유일하게 강태를 조련할(?) 수 있는 정명진 선생님마저 강태로 인해 큰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렇게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두현은 엄마의 죽음에 대해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데...자세한 내용은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책으로 직접 확인하시길.

 

여러 이야기들이 맞물리면서 우당탕퉁탕거리는 모습이 마치 우리네 고교시절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싱그러움을 느끼게 한다. 주인공이 성장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청소년 소설을 끊을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듯하다. 민감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마냥 우울하거나 어둡지만은 않게 그려내는 작가의 장점이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 빛을 발한다. 작가의 다음 작품은 어떤 상처를 가진 주인공이 어떤 방식으로 그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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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돈 - 모든 꿈이 비즈니스가 되는 미래
니시노 아키히로 지음, 최지현 옮김 / 다산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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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간 코미디언으로 활동했지만 단 한 번도 스타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던 비운의 사나이. 사업으로 눈 돌린 이후 1년에 자동으로 100억 원 가까운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괴짜 사업가. 니시노 아키히로를 일컫는 수식어다. 10여 년 전에는 모두들 그를 향해 ‘사이비’, ‘실체도 없는 걸 파는 사기꾼’이라며 손가락질했지만, 지금은 모두가 그의 사업수완과 미래를 보는 눈을 닮고 싶어 한다.

그런 그가 책을 냈단다. 《꿈과 돈》이라는, 공동선상에 놓을 생각도 해본 적 없는 두 단어로. 흔히들 꿈을 따라가면 가난해지기 쉽고, 돈을 따라가면 꿈을 포기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기가 좋아 연극판에 뛰어들었다가 오랜 시간 가난과 굶주림, 기약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렸다는 배우들의 이야기를 수없이 보았다. 그런데 니시노는 “꿈을 이루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이 모이려면 꿈이라는 그릇이 있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꿈과 돈은 반드시 함께여야 한다는 말, 이 책을 읽으면 이해할 수 있을까? 호기심이 생겼다.

그는 말한다. 꿈과 돈은 상반 관계가 아니며, 희망을 품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꿈을 최대한 크게 꾸고 돈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그러면서 돈은 ‘돈을 잘 써주는 사람’에게 모인다고 말한다. 이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프리미엄과 럭셔리의 차이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며, 둘의 차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준다.

부유층은 무엇에서 가치를 찾고 어디에 돈을 낼까? 정답은 럭셔리다. 프리미엄은 경합이 있는 것 중 최상위 체험을 말하고, 럭셔리는 경합이 없는 체험을 말한다. 프리미엄은 소비자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지만, 럭셔리는 판매자가 부르는 게 값인데도 늘 구매자가 있다. 럭셔리의 가치가 이토록 특출나게 높은 이유는 럭셔리가 꿈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듣자마자 나는 버킨백을 떠올렸다. 돈이 있어도 살 수 없고, 에르메스에서 일정 금액 이상의 잡화를 구매해야만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바로 그 가방. 하지만 부자들은 별다른 불만 없이 돈을 지불한다. 버킨백은 최고의 성능이 아닌 최고의 가치(브랜드)를 지니고 있으니까.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나를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하게 만드는 것이다. 고객이 아닌 팬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옛날에는 맛있는 음식점이 되면 돈을 벌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식당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된 지금은 97점짜리 음식이냐 98점짜리 음식이냐로 성패를 좌우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즉, 다른 식당보다 비싸도, 다른 식당보다 조금 불편해도, ‘팬심’으로 찾을 수 있는 가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읽는 내내 저자가 사람들의 돈 쓰는 심리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답은 사람에게 있고, 그 사람이 꾸는 꿈에 있다. 그가 하는 사업의 방식은 적극적으로 내가 꿈꾸는 바를 알리고 그 꿈의 후원자(팬)가 되어주길 요청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지금 유행하는 것이 아닌 몇 수 앞을 내다보고 미리 움직이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는 벌써 몇 년 전부터 자신의 팀이 NFT를 자금 확보 수단으로 확립시켰다며 NFT의 미래와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NFT는 이미지 동영상 음성 등 디지털 데이터의 보유자가 누구인지 증명해주는 증명서인데, 이를 통해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었는지를 낱낱이 알려준다. 아직 내게는 생소한 분야라 공부가 필요하겠지만 굉장히 흥미로운 접근이어서 공부해보고 싶어졌다.

그는 아등바등 사는 이유를 돕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라고 말했다. 사업을 통해 사람을 돕고, 좋은 일을 하도록 유도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사는 삶. 꿈이 있어야 돈을 벌 수 있고, 꿈꾸지 않으면 돈도 없다고 말하는 그의 철학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동력을 얻었으니 이제 나도 나만의 꿈을 꿔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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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배운 예를 들면 고구마를 대하는 자세
예예 지음 / 모베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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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랗게 빛나는 눈, 데운 우유처럼 따뜻한 체온을 지닌 부드러운 털뭉치. 발바닥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나고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존재, 강아지. 누군가 내게 강아지를 빼놓고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느냐 묻는다면 고민 없이 아니라고 대답할 것 같다. 내 인생의 거의 모든 순간에 강아지가 함께였으니까. 그래서 강아지와 관련된 책이라면 나도 모르게 자꾸만 눈길이 가고 한번쯤 들춰보게 된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궁금하고 호기심이 생겨서.

제목부터 귀여운 《너에게 배운 예를 들면 고구마를 대하는 자세》 역시 그런 책 중 하나였는데, 이 책은 저자가 강아지 뭉게와 함께 살아가며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그림과 글로 엮어낸 책이다. 책을 읽는 동안 강아지들 특유의 귀여운 행동이 떠올라서 미소짓기도 하고 혼자 키득거리기도 하고, 한 장 한 장 넘길때마다 우리 강아지 같다는 생각에 공감이 가서 흐뭇한 엄마미소를 짓기도 했다. 뭉게의 근황이 궁금해서 부지런히 읽다가, 뭉게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걸 알곤 울컥해서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게 특히 각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강아지 호두를 떠올렸다.

2011년 겨울에 태어난 작디작은 호두는 먹을 걸 너무너무 좋아하고 산책하면 드넓은 호수공원 한 바퀴를 돌아도 성에 안 차서 계속 뛰고 싶어 했던 강아지였다. 성견이 된 후에도 1.9kg밖에 되지 않았던 조막만한 아이. 나는 호두가 그저 작은 강아지라고만 생각했지 선천적 소간증을 타고나서 그런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었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이별을 할 거라곤 생각하지조차 못했었다. 지병이 있었다면, 나이가 많았다면, 그도 아니라면 시름시름 앓다가 갔다면...그랬으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텐데. 호두는 미처 인사할 시간도 없이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갑작스럽게 떠났다. 24시간 병원에서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을 해 아주 잠깐 5분 정도 정신이 돌아왔는데, 그때 나와 눈맞춤하고 포옹한 게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이야.

내 유년시절을 함께 했던 강아지들은 나보다 다른 가족들을 더 좋아했지만, 호두는 독립하면서 데려온 오직 나만의 강아지였기에 내겐 더욱 각별했다. 우리는 세상에 오로지 우리 둘밖에 없는 것처럼 서로에게 각별했는데, 그런 호두가 세상에 없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내 10년 줄테니 넌 5년만 더 살아줘. 사실은 전부 줄 수도 있는데..." 저자가 뭉게를 떠올리며 했던 생각처럼, 나 역시도 이런 생각을 했다. 내 삶을 나눌 수만 있다면...

저자는 "삶이 반짝이는 빛이라고 가정했을 때, 우주 단위에서 본다면 뭉게와 나의 삶의 길이는 비슷하겠지만 왠지 뭉게의 삶이 더 밝고 강렬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복잡다단한 감정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과 달리 강아지들은 사랑만 하기에도 모자란 삶을 산다. 그래서 그 사랑을 받아본 사람은 그 온전함을 절대 잊지 못하는 게 아닐까? 어쩌면 그 오롯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삶의 큰 행운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강아지별에서는 호두도 뭉게도 좋아하는 고구마를 마구 먹으며 신나게 뛰놀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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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다리는 한계가 없다 - 불의의 사고 후 유튜버 CJPARK이 한 발로 굴리는 유쾌한 인생
박찬종 지음 / 현대지성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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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고질병이던 허리디스크가 터지면서 다리를 절게 된 적이 있다. 응급 입원해 치료를 받기 시작했을 때도 꿋꿋하게 잘 버텨내던 내 멘탈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용변을 보고 뒤처리를 하는 데에도 허리 근육이 필요하고, 살짝 돌리는 것조차 힘들어 뒤처리를 못하게 됐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좌절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은 느낌마저 들었고 이 고통이 영원히 낫지 않을 것만 같았고 자존감이 바닥을 치면서 나는 어린애처럼 꺼이꺼이 울었다. 혼자만 남은 듯한 느낌과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은 우울감에 몇 시간을 내리 울고 나서야 마음을 좀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겨낼 수 있다. 이겨내자. 굳게 마음먹고 치료받고 재활하면서 몇 년을 버텼다. 꾸준한 버티기 끝에 허리디스크도 자연히 흡수되고 다리를 저는 증상도 사라졌지만 사실 여전히 오른쪽 다리 일부는 감각이 무딘 상태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아마도 예전과 같지는 않을 거라는 주치의의 설명이 있어 기대는 않고 있다).

그전에도 한번 생명을 넘나드는 고비를 넘긴 터라 나도 의지가 참 강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정말이지 ‘쨉도 안 되는’ 강철 멘탈인 분이 있었다. 유튜버 CJPARK으로 알려진,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던 중 트럭 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를 절단하고 장애를 갖게 된 박찬종 님이다. 이번에 《내 다리는 한계가 없다》라는 책을 내셔서 이분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게 되었는데, 이분 멘트가 간지 그 자체다. “내가 의족이 없지, 의지가 없냐?” 멋있으면 다 오빠라던가? 한참 동생인데 오빠라고 부르고 싶어지는 이 든든함이라니. 게다가 “앞으로 남은 평생은 다리 하나 없이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내 몸을 건사하려면 나머지 세 개를 더 튼튼하게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란다. 정말 미쳤다고밖에는 표현이 안 되는 멋짐이다. 대부분 내게 없거나 부족한 것, 힘든 것을 떠올리면서 좌절하게 마련인데 ‘남아있는 것을 더 튼튼하게’ 라고 생각하는 멘탈이라니. 정말 배우고 싶은 마인드가 아닐 수 없었다.

장애인이 된 후 자전거 선수가 된 이유와 과정도 감동적이었다. 의족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제대로 걷지 못하는 절단 장애인과 글을 지켜보는 가족들에게 절단 장애인도 이렇게 잘 걷고 뛰고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걸 보여주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세상에 나를 알리기 위해 올림픽에 나가기로 결심했다고. 나라면 나 하나 살기에도 너무 힘들고 고되다 느꼈을 것 같은데 이다지도 이타적이고 멋진 이유라니. 인생의 큰 고비에서 무너지지 않고 굳건하게 버텨내는 의지에 나도 모르게 여러 번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무리 슬픈 걸 봐도 좀처럼 울지 않는 나인데, 이 책을 읽으며 울컥하는 순간이 참 많았다. 그만큼 저자가 삶에 진심이고 매우 뜨거운 열정을 지녔다는 증거이리라.

나는 저자의 강인한 의지도 대단했지만, 그가 장애를 갖게 되었음에도 주저없이 평생을 함께하기로 하고 영원한 동반자가 되어준 ‘영지 씨’도 참 큰 사람이라 느꼈다. 영지 씨처럼 좋은 사람을 곁에 둔 것도 저자의 큰 복인 것 같다. 저자는 자신의 인생 첫번째 걸음마는 어머니가 봐주셨지만 두 번째 걸음마는 영지 씨가 도와주었다고 말했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서 그들이 함께 걷는 인생에 늘 달콤한 일만 있지는 않겠지만, 이미 쓴 럼주가 든 초콜릿을 많이 집은 것이나 마찬가지니 앞으로는 달달한 초콜릿을 더 많이 집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영지 씨와 함께 오래 오래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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