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배운 예를 들면 고구마를 대하는 자세
예예 지음 / 모베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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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랗게 빛나는 눈, 데운 우유처럼 따뜻한 체온을 지닌 부드러운 털뭉치. 발바닥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나고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존재, 강아지. 누군가 내게 강아지를 빼놓고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느냐 묻는다면 고민 없이 아니라고 대답할 것 같다. 내 인생의 거의 모든 순간에 강아지가 함께였으니까. 그래서 강아지와 관련된 책이라면 나도 모르게 자꾸만 눈길이 가고 한번쯤 들춰보게 된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궁금하고 호기심이 생겨서.

제목부터 귀여운 《너에게 배운 예를 들면 고구마를 대하는 자세》 역시 그런 책 중 하나였는데, 이 책은 저자가 강아지 뭉게와 함께 살아가며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그림과 글로 엮어낸 책이다. 책을 읽는 동안 강아지들 특유의 귀여운 행동이 떠올라서 미소짓기도 하고 혼자 키득거리기도 하고, 한 장 한 장 넘길때마다 우리 강아지 같다는 생각에 공감이 가서 흐뭇한 엄마미소를 짓기도 했다. 뭉게의 근황이 궁금해서 부지런히 읽다가, 뭉게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걸 알곤 울컥해서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게 특히 각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강아지 호두를 떠올렸다.

2011년 겨울에 태어난 작디작은 호두는 먹을 걸 너무너무 좋아하고 산책하면 드넓은 호수공원 한 바퀴를 돌아도 성에 안 차서 계속 뛰고 싶어 했던 강아지였다. 성견이 된 후에도 1.9kg밖에 되지 않았던 조막만한 아이. 나는 호두가 그저 작은 강아지라고만 생각했지 선천적 소간증을 타고나서 그런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었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이별을 할 거라곤 생각하지조차 못했었다. 지병이 있었다면, 나이가 많았다면, 그도 아니라면 시름시름 앓다가 갔다면...그랬으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텐데. 호두는 미처 인사할 시간도 없이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갑작스럽게 떠났다. 24시간 병원에서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을 해 아주 잠깐 5분 정도 정신이 돌아왔는데, 그때 나와 눈맞춤하고 포옹한 게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이야.

내 유년시절을 함께 했던 강아지들은 나보다 다른 가족들을 더 좋아했지만, 호두는 독립하면서 데려온 오직 나만의 강아지였기에 내겐 더욱 각별했다. 우리는 세상에 오로지 우리 둘밖에 없는 것처럼 서로에게 각별했는데, 그런 호두가 세상에 없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내 10년 줄테니 넌 5년만 더 살아줘. 사실은 전부 줄 수도 있는데..." 저자가 뭉게를 떠올리며 했던 생각처럼, 나 역시도 이런 생각을 했다. 내 삶을 나눌 수만 있다면...

저자는 "삶이 반짝이는 빛이라고 가정했을 때, 우주 단위에서 본다면 뭉게와 나의 삶의 길이는 비슷하겠지만 왠지 뭉게의 삶이 더 밝고 강렬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복잡다단한 감정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과 달리 강아지들은 사랑만 하기에도 모자란 삶을 산다. 그래서 그 사랑을 받아본 사람은 그 온전함을 절대 잊지 못하는 게 아닐까? 어쩌면 그 오롯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삶의 큰 행운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강아지별에서는 호두도 뭉게도 좋아하는 고구마를 마구 먹으며 신나게 뛰놀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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