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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복어 ㅣ 문학동네 청소년 70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4월
평점 :
갓 열여덟 살이 된 유리가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이부동생과 함께 살게 되면서 겪게 된 일들을 담은 청소년소설 ≪훌훌≫. 불편하고 예민할 수 있는 소재를 제법 세밀한 필체로 그려내 인상 깊게 읽었는데, 작가가 신작 소설을 냈다고 해서 곧바로 읽어보았다. ≪나는 복어≫라니, 어쩐지 제목부터 심상찮다. 지난 소설에서는 여학생이 주인공이었지만 이번엔 남학생이 주인공이다. 자현기계공고 하이텍기계과 2학년에 재학 중인 김두현. 별명은 청산가리. 엄마가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했다고 해서 별명이 청산가리란다. 아, 쎄다. 벌써부터 가슴 한구석이 아린다. 열여덟이면 아직은 부모 그늘 아래 어린 티를 벗지 못했을 나이인데, 엄마가 죽은 것도 모자라 자살에, 그게 별명으로까지 붙어있다니. 이번엔 또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킬까 궁금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전작에서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면, 이번에는 주인공인 두현의 이야기 못지 않게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비중이 높아졌다. 2학년 1학기 말에 전학을 온, 반의 유일한 여자애 재경과 그의 오빠이자 자현기계공고 선배인 재석 이야기, 선생님도 그만두게 하고 여러 아이들도 전과하게 만든 문제아 강태, 그런 강태가 유일하게 따르는 정명진 선생님, 자현기계공고 선배이자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장귀녀 사장에 대한 이야기까지. 주변에 있을 법한 인물들이 저마다의 색깔을 띤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두현은 별다른 꿈 없이 복집을 운영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간다. 엄마는 죽고, 아빠는 감옥에 가 있어 누구에게도 엄마가 죽은 날의 진실을 확인할 수 없다. 엄마의 죽음은 두현에게 늘 물음표로 남아 있었는데, 가뜩이나 복잡한 두현의 인생에 재경이 갑자기 끼어든다. 얼떨결에 친구가 되어버린 재경은 알고 보니 장귀녀 사장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다. 장귀녀 사장이 현장실습규정 미준수로 자신의 오빠를 다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주장하고 있었던 것. 하지만 장귀녀 사장은 사과할 이유가 없고 이미 보상할 건 다 해줬다며 오히려 큰소리를 낸다. 같은 반인 문제아 강태는 끊임없이 사고를 치는데, 유일하게 강태를 조련할(?) 수 있는 정명진 선생님마저 강태로 인해 큰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렇게 사건이 벌어지는 동안 두현은 엄마의 죽음에 대해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데...자세한 내용은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책으로 직접 확인하시길.
여러 이야기들이 맞물리면서 우당탕퉁탕거리는 모습이 마치 우리네 고교시절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싱그러움을 느끼게 한다. 주인공이 성장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청소년 소설을 끊을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듯하다. 민감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마냥 우울하거나 어둡지만은 않게 그려내는 작가의 장점이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 빛을 발한다. 작가의 다음 작품은 어떤 상처를 가진 주인공이 어떤 방식으로 그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