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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야행 - 불안과 두려움의 끝까지
가쿠하타 유스케 지음, 박승희 옮김 / 마티 / 2019년 2월
평점 :
1976년생 가쿠하타 유스케는 2012-2015년에 걸쳐 세 차례 극야탐험을 준비한다.
2016년 11월 7일 그린란드의 시오라팔루크 마을에 도착하여 메이한 빙하와 툰드라와 아운나르톡 저장소, 이누아피슈아크 저장소를 거쳐 2017년 1월 13일 달라스만에 이른다. 80일 간의 극야 탐험의 주인공은 가쿠하타와 썰매개 우야미릭크와 별과 달이다.
바람, 눈, 얼음과 고투하며 썰매개 우야미릭크와 함께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 가쿠하타의 경험은 꽤 매혹적인 설정의 경험이다. 극야는 미답의 땅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인정하고 지구의 공전이 만들어내는 시간적 요소를 가미해 만들어낸 한시적으로 존재하는 탐험의 공간이다.
[67-68] “...극야의 끝에서 최초의 태양을 본다는 다소 관념적인 이 행위에서 ‘새로운’ 탐험의 모습을 발견하리란 기대가 있었기 떄문이다. 수개월에 달하는 어둠의 세계, 그리고 그 끝에 떠오르는 태양 빛은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없다. 나는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상상을 불허하는 미지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한편, 작가가 만들어낸 이 탐험의 공간은 개인적인 탐험의 영역이기도 하다. 시스템의 밖에 자기 자신을 던지고, 그럼으로써 미지를 경험한다. 경험의 차원에서 존재하는 주관적인 미지의 세계인 것이다. 어둠은 시각적인 차단을 만들어내 외부세계로부터 한차례 더 작가를 단절시킨다. 추위보다도 거센 바람소리가 더 실감나게 묘사되는데, 나는 바람소리를 읽을 때 작가가 경험하고 있는 주관적인 미지의 세계가 가장 가깝게 느껴졌다.
[214] “내 생각에 미지의 영역은 두 종류로 나뉜다. 표면적 미지와 근원적 미지. ...그에 반해 근원적 미지의 영역은 세계 자체가 비밀투성이다. 얼음이 어떤지, 바람이 어떻게 부는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무엇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공개된 바 없는 세계인 것이다. 철저히 인간계와 단절된 세계.”
[275] “극야의 세계는 지구 뒤편에 남은 금단의 영역이었다. 호사북방오리만이 알던 세계였다.돌아가고 싶지도, 돌아가서도 안 될 땅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나 혼자만의 세계였다. 잠입에 성공해 내가 쌓아 올린 세계였다.”
가쿠하타 유스케는 아내의 출산을 지켜본 경험담으로 극야 모험담을 싸두었다. 극야에서 처음 떠오르는 태양을 보는 것을 산도에서 빠져나와 빛을 보는 아기에 빗대며 주관적인 극야 경험담의 보편성을 획득하려고 한다. 하지만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차라리 출발하자마자 후회하는 모습, 눈보라가 몰아친 다음날 텐트에서 나가는 걸 귀찮아하는 것, 일희일비하는 모습에 공감하는 게 쉬웠다.
극야라는 설정의 거창함과 극야행이라는 경험의 대단함에 비해서 작가가 그토록 몰두하는 자기 자신은 한심한 채로 남아있다. 베가 성을 술집에서 지명하는 여자로 비유하며 “베가짱”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달을 여자에 비유하며 에로틱함을 느낀다. 그러다가 기자시절 술집에 드나들었는데, 그때 여자에게 속았던 적이 있다, 라는 이야기까지 떠올린다. 대단한 경험을 한다고 해서 대단한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교훈으로 얻을 수 있다. 재미가 없지는 않았다. 설정에 집착하는 한심한 남성이 탐험이며, 미지의 세계며 하는 것을 거창하게 말하는데, 그런 것들이 남자와 함께 하찮아지는 것을 보는 게 유쾌하지는 않지만 우스워서 재미있기는 하다.
[231-234] “달빛에 아른거리는 세계는 다 허구다. 우주 행성인 듯 환상적인 이세계는 진짜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혹해 들어왔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전부 가짜였다. 이건 꼭 영업 수법에 꼼짝없이 걸린 순진한 남자 같잖아….하루 스물일곱 개의 지명을 받는 여자에게 차 수리비는 껌이었으니까. 그렇다, 나는 속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