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설계자들 - 학병세대와 한국 우익의 기원
김건우 지음 / 느티나무책방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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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60~1970년대에 걸친 한국의 산업화 시대에, 정부 정책을 주도한 사람들이나 민주화 진영에서 저항했던 사람들이나 모두 이념적으로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가지들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가."

[15-16]"종합적으로 이 책은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에 대한 이야기이자 한편으로 ‘남쪽을 선택한 지식인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부분적으로는 ‘학병세대에 대한 보고서’에 해당한다. 인물에 대한 열전이면서 세대에 대한 평전이기도 한 이 책이, 어떤 독자들에게는 ‘한국 우익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다. 또한 이것은 일종의 ‘비평’이자 역사 서술이다...이 모든 것은 ‘해방 후 한국 지성의 역사’의 굵은 맥락 하나를 서술하는 작업이다."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은 여러가지로 읽힐 수 있는 책이지만, ‘민주화 진영’ 대 ‘산업화 진영’으로 작성된 지성의 계보에서 삭제된-혹은 망각된- 이들의 자리를 복원하는 데 힘을 쏟고 있는 책이다. 현재의 좌우 기준에 포섭되지 않는 이들을 포괄하여 해방 후 한국 지성의 역사를 다시 작성한다.

김건우의 작업은 1950년대와 1960년-1970년대의 두 시대축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대략 1917년-1923년생인 학병 세대의 등장과 <<사상계>>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지식인 사회는 해방 이후 이뤄졌던 첫 번째 세대교체로 명명할 수 있다. 1961년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정은 교수와 언론인 중심의 지식인 사회에 대한 통제에 성공하면서 일명 <<사상계>> 세대는 힘을 잃는다.

1965년 한일협정을 전후로 4.19세대는 해방 이후 두 번째 세대교체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사상계>>로 대표되는 세대가 서구를 모델로 하는 민족주의를 추구했다면 6.3사태 이후 등장한 새로운 민족주의로서 반식민주의적 민족주의가 등장한다. 반식민주의적 민족주의는 자생적 근대화라는 개념을 한 축으로 저항의 논리로 작동하는 동시에, ‘국민교육헌장’ 등으로 대표되는 통치의 논리로도 작동한다.

세계주의와 개인의 확고한 정신성을 확립하는 것을 중요시했던 <<사상계>>라는 지성의 계보는 군부쿠데타로 한 차례 기울고, 1960년대 중반 이후에는 새로운 민족주의의 등장으로 희미해진다. 한편, 근대화의 모델을 제시한 <<사상계>>와는 조금 다른 위치에서 형성된 반국가주의의 계보는 무교회주의와 한신계를 통해 1970년대에 명맥을 이으며 단순히 좌우로 정의할 수 없는 민주화의 공간을 만든다.

민주화 세력 대 산업화 세력 구도로 한국 현대사를 바라볼 때 해방 전후의 역사에는 단절이 생겨나게 된다. 이 책을 읽고, 이 인위적인 간극에 대한 의문을 풀 수 있었다. 일본 식민지 시기 일본의 지성으로부터 받은 영향, 개신교를 통해 유입된 미국의 영향이 그 단절을 설명하는 단서가 된다. 이 책의 키워드인 서북 지역주의, 무교회주의, 한신, 가톨릭 등은 외부 사상의 유입로로서 이념적 유연성의 보루가 되었다. 반국가주의를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이 책이 복원한 지성의 계보를 현대적 인간형/현대적 개인의 완성을 추구했던 시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흥미진진한 독서였다. 무엇보다도 고귀한 이상을 추구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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