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문학자의 6.25
강인숙 지음 / 에피파니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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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평상시의 사람들의 삶에는 평균치가 있다. 보편적인 삶을 뒷받침해줄 질서가 있기 때문이다. 비상시에는 그것이 없다. 사회는 파편화되고, 질서는 무너지고, 내일의 생존이 위협을 받는다. 그런 시기에는 인간은 대체로 혼자 서 있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각자가 자기만의 경험을 가지게 된다. 나는 열세 살에 한탄강 철교를 기어서 건넜다. 열세 살이라는 나이는 부모의 손을 잡고 가기에는 너무 크고, 혼자 건너기에는 철교의 칸살이 너무 넓은 어중간한 나이다.”

<<어느 인문학자의 6.25>>의 저자 강인숙은 1933년 함경남도 갑산 생으로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났던 발발했던 해에 열세 살이었다. 1945년 해방 이후 북한에서 서울로 피난을 왔었던 가족들은 한국전쟁 하에서 두 번의 피난을 겪는다. 6.25 때에는 광주 정자리까지 갔지만 이미 남쪽으로 내려가버린 전선보다 훨씬 뒤처지는 바람에 서울로 돌아온다. 그리고 1.4후퇴 때 군산까지 도보로 피난을 떠난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1952년 부산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하고, 1953년 대학 2학년 2학기는 전쟁이 끝나고 정부가 환도한 서울에서 맞이한다.

이 책은 대체로 시간 순으로 서술되었지만, 기억을 편편이 이어붙인 글이기도 해서 이야기는 어느 모서리에서 다른 이야기와 여러번 연결되기도 한다. 1933년 생의 저자가 1950년에 겪은 전쟁을 2017년에 쓴 것이니 기억들을 모두 쏟아내고 엮는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총 여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책은 전쟁 중의 이야기인 1장-4장과 전쟁 후의 이야기인 5장,6장으로 나뉜다.

두 부분의 이야기는 각각 다른 점에서 재미있었는데, 나는 전쟁 중의 이야기가 조금 더 재미있었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라고 생각한 전쟁 이야기가 내 조부모들의 이야기와 겹치면서 꽤 가깝게 다가왔다. 왜곡된 거리감이 조정되는 과정에서 여러 시간에 걸쳐 있는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한 시공간에 모였고, 그 이야기들을 저자의 서술에 따라 다시 배치해 보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한편 전쟁 중의 이야기는 매우 낯선 장면들이기도 했다. 전쟁에 의해 만들어지는 일상의 무질서와 질서가 뒤섞이는 장면이 낯설었다. 한강변에서 밤을 새운 피난민들이 돌멩이로 화덕을 만들고 한강물로 밥을 짓는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79] “인민군 치하에 들어간 채로 여름이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비행기가 날아와 폭격을 하는 날이 계속되었다. 사람들은 폭격에 익숙해져서 비행기가 뜨는 방향만 보고도 폭탄이 떨어질 지점을 알게 되었다. ......보통 때는 하루에 한 번쯤밖에 비행기가 뜨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며, 폭격은 아무 데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터득했다.”

전쟁 후의 이야기는 (학문으로서)한국현대문학 성립 초창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일 것 같다. 식민지 하에서 한글을 배우지 않았던 학생들이 한국현대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하여 대학에 입학하여, 피난지의 임시수도 부산 구덕산의 천막 교실에 앉아 있는 모습 같은 것들이 그려진다. 저자가 가르침을 받았던 선생님들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들, 비평론을 가르칠 교수가 없었다, 그 무렵의 문과대 학생들이 전공이나 부전공으로 불문학을 많이 선택했다, 영문학과나 불문학과 수업을 함께 듣는 현대문학부 학생들이 많았다 같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273-274] “그리고 보니 우리는 국사를 제대로 배운 일이 없는 것처럼, 한글 맞춤법도 정식으로 배운 일이 없는 세대였다. 해방 후에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잠깐 배운 것이 우리의 한글 공부의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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