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테리아 24호
미스테리아 편집부 지음 / 엘릭시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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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난 너무 감상적이야,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오페라를 좋아하는지도 모르지. 문제는 이거야. 감상적인 사람도 좋은 경찰관이 될 수 있을까?”

헨닝 망켈의 발란데르 시리즈 전작을 읽어 온 독자라면 발란데르는 왜 경찰관을 그만두지 않는 것인지 궁금해지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발란데르는 잠을 잘 자지 못하여 늘 피곤하고, 수사관 일은 그를 더 피곤하게 만들며 사생활에도 악영향을 미쳤을 뿐이다. 게다가 범죄를 쫓는 일은 늘 사람이 죽은 뒤에 시작되므로 전력질주하여 범인을 잡는다고 해도 성취감보다는 허탈한 기분을 맛보게 될 뿐이다. 수사관으로서의 발란데르는 낡은 헝겊처럼 지쳐있다. 이런 그를 보는 독자는 발란데르 같은 사람이 어째서, 애초에, 경찰관이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미스테리아 24>에 번역 수록된 <<발란데르의 첫 번째 사건>>은 전 10편의 발란데르 시리즈 중 8 번째 작품이다. [141]”발란데르가 1990년 처음 등장하기 이전의 삶이 궁금하다는 독자들의 질문이 쇄도하자” 망켈이 스물두 살의 순경 발란데르를 주인공으로 쓴 단편이다. 자신의 작품을 참조하여 발란데르의 젊은 시절을 나중에 창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시리즈의 후반부에 등장한 젊은 순경 발란데르는 발란데르 시리즈에 대한 헨닝 망켈의 해석이 담겨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전에 한국어로 번역된 발란데르 시리즈를 읽어 온 나에게는 이 점이 이 단편을 더욱 재미있게 만들었다.

이번에 수록된 <<발란데르의 첫 번째 사건>>은 전체 작품의 전편이고, 후편은 다음 호 <미스테리아>에 연재될 예정이라고 한다. 사건은 발생했으나 범인을 추적하는 일은 아직 시작 전이다.

[158] “그는 메모지가 있나 해서 주머니를 뒤졌다. 장 볼 것을 적은 쪽지뿐이었다. 쪽지를 뒤집어서, 홀름베리에게 거기 전화번호를 적어달라고 말했다.”

소설의 전반부인 수록 작품에서 사건은 마치 발란데르를 찾아온 것처럼 보인다. 발란데르의 옆집이 사건 현장이며 발란데르의 이웃이 피해자이다. 발란데르가 장 볼 목록을 적은 쪽지 뒷면에 사건의 참고인의 전화번호를 받는 장면은 앞으로 사건이 발란데르의 해야 할 일의 일상 목록이 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같다. 저녁 시간이면 얇은 벽을 통해 홀렌이 틀어둔 텔레비전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던 것을 떠올리며 조용한 집 안에서 사건에 대해 생각하는 장면은 앞으로 사건이 발란데르의 일상 감각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을 예고하는 것 같다.

한편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고, 연애는 삐걱거리는, 불안하고 잠을 설치는 스물 두 살의 발란데르를 만나는 것도 즐겁다. 사이가 좋지 않은 아버지는 이 단편에서도 사이가 좋지 않다. 아버지의 기행을 바라보는 것이 스물 두 살의 발란데르라서 재미있는 장면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발란데르의 첫 번째 사건>>(1)에서 발란데르가 왜 경찰관이 되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가 수사관이 되기를 열망하고 있는 것은 너무도 명확하지만 말이다. 가족, 연인과의 다툼을 만들어내는 이 일을 어째서 하고 싶은지는 다음 호에 실릴 후편을 기다려야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발란데르의 첫 번째 사건은 발란데르가 비번이었던 1969년 6월 3일에 시작된다. 이 날은 화요일이었고 다른 사람들의 주중에 제복을 벗고 어정쩡하게 홀로 휴일을 보내고 있는 발란데르 상상하며 읽었다. 스물 두 살의 순경 발란데르는 이미 피로와 멀지 않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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