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린이한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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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이한의 장편소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의 말미에는 작가 후기, 옮긴이의 말, 작가 장이쉬안의 서평, 사회학자 차이이원의 서평이 첨부되어 있다. 책의 말미에 붙은 네 편의 글들은 독자가 실화에 바탕한 소설을 읽을 때 발생하는 윤리적인 면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린이한은 소녀들의 강간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썼으며, 추악한 주제를 다루기에는 지나치게 아름다운 표현을 사용하고 있고, 작가가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점 때문에 독자의 읽기 자체에 윤리적 긴장감이 부여된다.

이 소설에서 피해자로 등장하는 쉬이원과 팡쓰치를 묘사하는 장면에는 “새하얀”이라는 단어와 흰색의 이미지가 반복된다. 화자가 가해자들이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 사냥감을 바라보는 포획자의 시선을 취할 때, 가해자의 목소리를 되살릴 때, 독자는 화자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 하지만 삼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미풍같이 이야기하던 화자의 목소리는 돌연 무너지고 도끼질을 하는 듯한 목소리가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피해자로서의 작가의 목소리가 화자의 목소리를 뚫고 나오는 순간이다. 피해자로서의 작가와 대면하게 되었을 때 독자는 이 작품을 감상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게 된다.

“[13]어른들은 모였다 하면 늘 따분한 음식을 먹었다. 광이 나도록 닦은 변기 속 대변처럼 해삼이 새하얀 본차이나 접시 위에 누워 있었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낙원 - 실낙원 - 복락원 의 세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은 <낙원>의 도입부에서 호텔에서 어른들 사이에 앉아 식사하는 류이팅과 팡쓰치의 모습을 보여준다. 본차이나 접시 위에 놓여진 해삼 요리는 역겹게 묘사된다. 낙원은 실낙원으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다. <실낙원>에서는 주인공인 팡쓰치와 쉬이원을 중심으로 폭력과 강간이 묘사된다. <복락원>에서 쉬이원은 폭력에서 벗어나며 팡쓰치는 실성한 채이고, 류이팅은 대학생이 된다.

린이한은 가해자가 폭력의 장면에서 문학을 인용하는 것을 정성들여 보여준다. 한편 피해자들이 문학의 외피 뒤에 숨어 자신들이 당한 폭력을 되새김질 하는 것을 정성들여 보여준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매개하는 문학이 두른 환상은 조잡한 것으로 드러난다. 작가는 문학이 이런 방식으로 작동하게 하는 환경으로 중산층을 지목한다. 소설의 첫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모두 중산층의 예의를 갖춘 식사장면을 기괴한 것으로 묘사한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사람들은 - 피해자 팡쓰치의 가족을 제외하고 - 다시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다.

“ [331] “당신이 자꾸 이러면 새로 산 내 반지를 아무도 못 보잖아!”
모두들 시끌벅적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들 즐거웠다.
쓰치와 이팅의 아파트는 여전히 휘황찬란하고 풍요로웠다. 그리스식 원기둥은 시간이 흘러도 손때 묻은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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