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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G 1호 나란 무엇인가?
김대식 외 지음 / 김영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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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기소개를 할 일이 많았다. 자기소개를 10초 버전, 30초 버전, 1분 버전으로 준비하면서 나를 소개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는데, 내가 뭔데 나를 소개하지? 내가 소속된 학교와 나이는 확실히 나의 많은 부분이긴 하지만, 그게 나를 설명하는 전부인가?

이 잡지는 "나란 무엇인가"를 답하는 성의있는 글들의 모음집이다. 나는 "누구인가"가 아닌, 나란 "무엇인가"라는 게 핵심이다. 미생물학자와 천문학자와 작가와 통계물리학자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나란 무엇인지" 300페이지에 걸쳐서 이야기한다. (애초에 답이 없는 물음이므로) 딱히 나란 무엇인지- 답을 얻지는 못했으나, 적어도 새로운 사람을 100명쯤 만나고 자기소개만 10번을 한 나에게 좋은 휴식이 된 것은 확실하다.

내용뿐만 아니라, 잡지의 형식과 디자인 역시 주목할 만 하다. 김영사는 북디자인을 잘하는 출판사라고 생각했지만, 형식을 벗어나는/과감한 시도도 할 줄 아는 출판사라는 건 몰랐다.
인류가 책을 만들게 된 시점에서부터 출발하면, "나란 무엇인가"라는 고루한 질문에 답하는 출판물은 최소 오천만권은 될 것이다. 2021년에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 심지어 <종이 잡지>를 출판하려면 이 정도는 되야지, 라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는 디자인이다. 지하철에서 읽으면 꽤나 멋져 보이는 표지와 내용이므로 (굳이 그런 이유에서만은 아니지만) 학교까지 걸리는 시간, 왕복 3시간만에 코를 박고 다 읽었다.

아주 다양한 저자들의 다양한 글을 하나의 주제 아래 하나의 종이책으로 묶어내는 것, 이래서 잡지가 재미있다. 매 글마다 다른 질감의 종이를 넘기면서, 페이지 하나하나 고민한 흔적이 느껴지는 디자인을 보면서, 모든게 e-북으로 나와도 종이 잡지만은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주의 광활함과 시간적 유구함을 생각하면 우주 속 인간의 위치는 미미하고 연약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그 긴 세월 속에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그 생명체가 진화를 거듭해 지적 능력을 갖추게 되어 우주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 기적과도 같은 우주의 여정을 통해 인간이 존재하게 되었다.
-천문학자 이명현의 '생각하는 별먼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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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없는 어른도 꽤 괜찮습니다 - 내 삶을 취사선택하는 딩크 라이프
도란 지음 / 지콜론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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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출생자 수보다 사망자 수가 많아지며 인구가 자연 감소하는 인구 데드크로스가 발생했다고 한다. 1인 가구는 전년도보다 6.77% 늘었고, 1/2인 세대를 합친 비중은 전체 세대의 62.6%에 이른다. 전통적 가족 개념이 해체되고 있는 이 시대에, 딩크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아이 없는 어른도 꽤 괜찮습니다>는 아주 시의적절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매체에서는 아이를 키우는 사람의 시각을 많이 접하게 되므로 (그것이 책-82년생 김지영-이든 방송매체-슈돌-든) '딩크족'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채널 자체가 없었다. 책중에서도 이런 내용이 언급된다. 유자녀 가정을 다루는 방송은 수도 없이 많고, 1인 가구를 다루는 방송도 있는데 딩크 부부를 보여주는 미디어는 없다고. 책의 맨 마지막 챕터에서 다른 딩크 부부의 인터뷰를 넣은 것은, '딩크 부부를 다루는 미디어가 없다면 이 책을 통해서 우리의 목소리를, 생각을 확실히 보여주겠다'는 의사 표현 같다.
(이제는 트로트, 백종원, 부자 연예인의 자녀를 보여주는 방송 말고, 딩크 부부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이 필요하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PD였으면 당장 콘텐츠로 쓰겠어)

 

이렇게, 평소 접하지 못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다. 그러나, 나에게는 조금 급진적이라고 느껴지는 이야기도 있었다. 아래는 <아이 없는 어른도 꽤 괜찮습니다> 3장, '여행은 여행답게 떠날 것' 챕터 중 일부다.

 

"여행이라는 단어에는 언제나 설렘과 기대가 담겨있고, 자유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아이를 데리고 떠나는 여행은 달랐다. 어느 정도 수평적인 소통이 되는 나이가 되기 전까지 아이를 동반한 여행은 즐거움에 비례한 돌봄 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나날이다. ~ 선택할 수 있다면 솔직히 아이보다는 나에게 좋은 기억을 주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 나와 배우자의 소중한 경험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데 뒤따라오는 고단함을 겪고 싶지는 않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을 따라 여행을 많이 다녔고, 지금도 여름이면 외가, 친가와 여행을 다니는 집에서 자랐다. 나를 위해 돌봄 노동을 해준 어른들 사이에서 여행을 자주 다녔고, 나 역시 이제는 어린 사촌동생들을 돌본다. 온 가족이 함께 떠나는 여행에는, 초등학생 이하의 어린 아이가 꼭 끼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와 함께 떠나는 여행을 이렇게 표현한 저자의 생각이 상당히… 급진적이라고 느껴졌다. 나에게 가족 여행이라면, 항상 어린 아이가 있고 그 어린 아이를 챙겨주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까, 아이와 함께한다는 이유로 겪게 되는 (아이가 없는 여행이라면 겪지 않아도 되는) 불편함을 '뒤따라오는 고단함'이라 생각한 적 없다.

 

이제는 아이가 태어나면 온 동네가 함께 키워야 하는 세상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아이가 태어나면 온 동네가 관심을 기울여줘야 하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키우기'까지는 못해도, '키우기 좋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위와 같은 맥락으로, 노키즈존에 대한 저자의 의견도 나에게는 조금 의문스러웠다.

 

아이들도 분위기를 읽는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나는 오히려 어린 나이일 때부터 좋은 음식, 좋은 작품, 좋은 곳을 많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린 아이라고 해서 키즈클럽, 놀이터, 패밀리 레스토랑에만 가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나는 감사히도 어린시절 부모님께, 다른 가족들에게, 주위 어른들에게 배려를 받으며 좋은 경험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내가 기억도 못하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 거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의 미성숙함을 제재하지 않는 부모들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아이가 밖에서 피해를 끼칠까 외출할 곳을 찾지 못하는 부모들이 있다. 비행기에서 아이의 울음소리를 불편해하는 승객들을 위해 간식거리를 하나하나 포장해 돌리며 사과하는 부모들도 있다. 그러니까, 아이를 너무 생각한 나머지 편향된 이기심을 보이는 부모들을 막기 위해 아이가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이다. 내가 아직 저자의 나이보다는 아이의 나이에 가까워서 하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결혼 6년차로서 아이에 대한 간섭을 충분히 받고, 자녀계획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한 후 딩크로 살기로 저자의 생각을 읽는 것 자체가 좋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독서였다. 저자의 바램대로,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은 이유'를 변명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 내가 나이가 더 들어서 저자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되었을 때는, 세상의 시선이 내 선택의 이유가 되지 않기를.

 

내 독서의 범위가 좁아서일까? 딩크를 주제로 하는 책은 처음 읽어본 것 같다. 딩크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읽으면 가장 좋을 것 같다. 세상에 나보다 먼저 이런 고민을 하고 이런 결정을 내린 사람이 있구나, 라는 걸 알게 되면 든든한 힘이 될 것이다. 책이 주는 힘이 그런 거 아닌가.

 

 

아이를 키운다는 건 때로는 고단하고 상처받으면서도 즐겁고 보람된 일일 것이다. 그 특별한 즐거움 대신 내게 주어진 재능과 기회, 손만 뻗으면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세상의 형태가 있다. 지금 가진 것과 앞으로 누리고 싶은 것만으로도 벅찬 삶에서 아이를 키우는 즐거움과 행복이 빠져도 나는 내내 괜찮은 사람일까.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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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실의 진화
홍성욱 지음, 박한나 그림 / 김영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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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체 과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실험실'을 다루는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지 나 자신에게 의구심이 들었다.

 

새로운 '기술'은 흥미롭지만 (아무래도 이건 돈을 벌 수 있는 신산업과 직접적으로 이어져서 그런듯) 과학? 이미 예에에에에에전에 누군가가 모두 증명해놓은 것을 배우는 건 재미가 없었다. 그런 식으로 과학은 내 진로에서 아주 일찌감치 제외되었다. 과학이 재미있게 느껴진 것은 초등학생때가 마지막이었다. 이렇게 과학을 정적인 학문으로 배워온 것이 과학에 대한 흥미를 일찍 잃게 한 원인인 것 같다.

 

실험실만 해도 그렇다. 중고등학생 때 (폼으로) 흰 가운을 입고 비이커와 몇몇 약품들을 만지작대다가 종 치기 5분전에 정리하는 것, 그게 내가 아는 실험의 전부였다. 이 책은 실험을 '호기심과 열정, 경쟁심과 연대감으로 살아 움직이는 공간', '역사를 바꾸는 조용하고도 치열한 혁명의 현장'이라고 표현한다. 이 표현만 보면 부글부글 끓는 용광로마냥 뜨거운 광장 같은 것이 떠오르지만 실험실에 대한 설명이 맞다. 이 책은 그런 실험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학 개념에 대한 설명? 없다. 정말, '실험실'의 역사에 대한 책이다. 실험실을 이야기하기 위해 과학적 발견과 과학자가 언급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실험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사용된다.

 

실험실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실험'하면 떠오르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이미지, 실험실에서 사용되는 생명체들인 모델 생물, 대학 학부생들을 위한 실험실의 도입 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냥 이 책이 전부 '실험실'이 주제인 알쓸신잡 같다) 앞서 과학은 이미 '보편적으로 증명된 지식'이어서 재미가 없다고 말했는데, 이 책은 2부 실험실의 진화 챕터에서 그 이야기도 빼먹지 않는다. 이미 확고한 사실이 된 과학 지식인 '블랙박스'와 반대로, 실험실은 '만들어지고 있는 과학 science-in-the-making'의 장소라는 것이다.

 

특히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소크 연구소에 관한 내용이었다. 일전에 건축 관련 책에서 소크 연구소의 건축학적 의의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정말 '건축학적으로 무엇을 고려하여 설계했으며 어떤 미를 가지는지'에 대한 이야기였지, 실제로 그 연구소를 사용하는 과학자들이 그 건물을 어떻게 느끼는지는 몰랐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연구소 연구원들에게 칸의 멋진 건축물은 그저 일상적인, 그리고 오히려 조금 불편한 공간이 되어'버렸다는 뒷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 손그림이 너무 섬세하다… 실제 자료 참고가 필요할 경우 QR코드를 넣어둔 것도 포인트였다 책 구성 하나하나에서 공을 들였다는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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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버나딘 에바리스토 지음, 하윤숙 옮김 / 비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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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하반기에 읽은 책 중에 제일 재밌었다. 나 스스로를 '소설은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해왔는데, 내 기준 베스트 책들이 전부 소설인 걸 보면 그냥 소설을 좋아한다고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형식으로 따지면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과 유사한 소설이다. <피프티 피플>에서는 서로 어떻게든 얽혀있는 50명의 사람들이 등장한다면,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에서는 서로 어떻게든 얽여있는 12명의 여자들이 등장한다. 소설의 형식은 유사하지만, 분위기는 아주 다르다. <피프티 피플>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 따뜻함… 그런게 느껴졌다면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은 격정적이고 대담하고 거칠고 섹시하다.

이 소설의 특별한 점은 등장인물들에서 나온다. 12명의 여자들이 전부 흑인이자 영국인으로, 그들은 동성애자거나, 동성애 혐오자거나, 페미니스트거나, 페미니즘에 대해 별 생각이 없거나, 성공하거나, 실패한다. 어쨌든 모든 인물들의 삶에서 '영국'이라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흑인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이 인물들이 겪는 일의 시작점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결국 인종적, 성적 정체성에 닿는다. 이 소설은 12명의 여자들이 이 인종적, 성적 정체성에서 비롯된 열등감, 가난 또는 고통을 어떤 식으로 극복했는지 보여준다.

12명의 인물들 중 단 한 사람도 묻히지 않는다. 그래서 이 소설이 재미있다. 어린 시절 같은 환경에서 비슷한 고민을 한 여성들이 아주 다른 모습으로 성장한다. 영국 이민 2세대인 어떤 인물은 죽도록 공부해 은행장이 되어 과거의 사회적 열악함을 극복하는가 하면, 그 인물의 어린 시절 친구는 예상치 못한 임신으로 슈퍼마켓 계산원이 된다. 12명의 인생을 담고 있으니, 이 책이 두꺼운 것도 당연한 일이다.

600페이지가 넘는 아주 두꺼운 책이지만, 한번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이런 형식의 소설들이 그렇듯 알게 되는 인물들이 많아질수록 인물들 간의 관계가 드러나므로 더 재미있어진다. 앞에서 읽었던 인물이 아주 싫어했던 여자가 뒤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그 여자의 삶에 또 몰입하게 되는 식이다. 부커상 심사평 중 일부를 인용하며 마친다. '격정적이고 면도날처럼 날카로우며 에너지가 유머가 넘친다. 단 한 순간의 지루함도 없이, 점점 고조되는 속도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 문장 부호 사용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는 점 또한 재미있다. 거의 모든 문장에서 마침표가 없다. 마침표가 찍힌 문장은, 한 챕터의 마지막 문장뿐이다. 마지막 문장이 인물의 어떤 상황을, 어떤 감정을 담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즐겁다.

인물들의 스토리가 전부 실존인물처럼 실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고, 그 전개의 핵심에 페미니즘이 있다. (서양에서, 특히 영국에서) 페미니즘 운동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 알고 있으면 훨씬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물론 나도… 책 두세권 읽은게 전부라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내가 (이 소설의 배경지식을 잘 알 수 있는) 영국인+여성이었으면 정말 더 흥미롭게 읽었을 것 같다. 오늘도 이 세상엔 더 공부해야 될게 너무 많다는 걸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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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의 아틀리에 - 과학과 예술, 두 시선의 다양한 관계 맺기
김상욱.유지원 지음 / 민음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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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문이과 통합형 인재'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1학년 때는 과학 시간의 보고서 결론을 인문학과 엮으면 점수를 더 잘 주기 시작하더니, 고3때도 문과에게는 과학을, 이과에게는 사회탐구를 가르쳤다. 교복을 벗은 지금 내 후배들은 문과와 이과 구분이 없어졌다고 한다. 친구와 하루가 멀다 하고 너는 이과니까 가서 로봇관절에 기름칠이나 해라, 너는 문과니까 가서 붓으로 훈민정음이나 써라 하며 다투던 나는 문이과를 구분하지 않는다는게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능에서 탐구는 어떻게 선택해? 이과 과목 다 안배우고 공대 가면 어차피 대학에서 적응 못할텐데 이거 제대로 된 교육정책 맞냐?? 하면서 술자리에서 교육부 장관이 된 마냥 우리나라 공교육의 미래에 대해 떠들곤 했다. 어쨌든, 나는 조금도 의심할 여지 없이 문과형 인간이었고 고등학교 내내 과학에는 손도 대지 않았으며 (국어 내신은 1등급, 과학 내신은 7등급이었다) 그대로 커서 경영학과에 왔다.

그래, 이제는 과학에서 완전히 탈출했겠지..! 라고 생각했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대학에 와보니 오히려 국어와 영어, 사회탐구만 붙잡을 수 있었던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오히려 수학과 과학을 할 일이 더 많아진 것이다. 필수 교양 강의로 '생명과 환경'을 듣고, 코딩 프로그램을 만지면서 아아아니 내가 이거 하기 싫어서 문과에 왔는데 대학까지 와서 이게 무슨 일이냐, 동기들과 모일 때마다 불평을 주고받았다. 나는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문이과 통합형 인재'의 흐름은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데, 대학에 와서 보니 이게 생각보다 재미있는 거다. (전공 때문에 반강제적으로) 수학과 통계를 만지면서, 교양 강의 때문에 생명과학 책을 읽으면서 어, 생각보다 이거... 재미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살아갈 100년은, 문이과 구분을 떠나서 수학과 과학, 인문학과 철학이 모두 없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교재에 코를 박고 벡터 문제를 풀고 실험을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흥미를 느꼈다. 아마 마케팅을 하려면 빅데이터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 빅데이터를 더 잘 알려면 수학과 컴퓨터, 로직과 친해져야 한다는 걸 알게 된 순간에서 시작한 것 같다. 이성적이고 엄정한 수학에서 출발해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감성까지, 대척점에 존재한다고 생각한 두 분야가 실은 보이지 않는 거미줄과 같은 걸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았다. 그 거미줄 위에 올라타고, 그것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민음사를 통해 좋은 기회로 이 책을 누구보다 일찍 읽게 되어서 아주 기쁘다!

천문과 기하는 수의 체계인 수학을 필요로 한다. 또 글자를 비롯한 조형을 다루는 모든 미술 분야는 물리 세계 속에 구체화해야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려면 인간의 움직임과 결합해야 한다. 수학, 물리, 생물은 글자의 역사가 시작되는 조건을 형성한다. 그러니까 내가 타이포그래피의 글자체 변천사에 대해 가진 고유한 관점은, 빅뱅까지 가지는 않는 아주 작은 스케일이지만 일종의 빅히스토리적인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 수학과 과학의 엄정한 방법론이 질서를 찾아가고 검증을 거치는 과정은 경이롭고 아름답다. 내게는 과학과 기술이 효율만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언제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뉴턴의 아틀리에>, p14~15

이 책은 이야기, 유머, 꿈, 이름에 대해 이야기한다. 뭐야. 너무 인문학적인 거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인공지능, 상전이, 평균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유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지방은 탄소가 사슬처럼 길게 늘어선 분자구조를 갖는데, 늘어선 탄소 가지 주위에 수소가 포도알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상전이라는 주제에서 라이트/볼드한 폰트를 논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 주제에 대해서 어떤 얘기를 할지 조금도 예측할 수 없다. 그냥 정신을 차려보면 유려한 작가들의 글을 따라 이 주제에서 저 주제로 넘어가 있는 것이다. 5페이지 내외의 짧은 글 안에서 너무나 멀게 느껴지던 주제들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글들이 4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가볍게 만든다.

우리는 별에서 온 원자들이 우리 몸으로 모였다가 다시 흩어진다는 과학의 진실을 안다. 인간은 필멸이라도 인간을 구성하는 원자는 불멸임을 안다. 이 사실은 위안을 준다. 그러나 필멸의 생명이란, 원자들을 기계적으로 단순하게 조립한 장난감에 불과한 것이 아님도 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주 속 유구한 생명의 흐름은 지속될 것을 알고도 개체의 소멸을 애도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뉴턴의 아틀리에>, p134

유지원 타이포그래퍼를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사실 타이포그래피라는 분야 자체가 나에게 흥미롭지만 생소하고, 멀리 떨어진 디자이너들만의 세계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책의 첫 장, '글자의 생김새로 보는 이야기들'이 왜 첫장인지는 확실히 알겠다. '어떤 폰트가 더 맛있게 생겼는지'를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이 저자에게 확 이끌리는 것을 느꼈다. 과학적 사실들과 수학 수식으로 미술과 타이포그래피를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아 정말, 내가 몰랐던 예술가들의 세계는 이런식으로 발전하고 있구나. 지금 가장 21세기적인 예술가는 이렇게 예술과 소신과 과학을 합칠 줄 아는구나, 생각했다.

엄밀히 말해서 검정은 색이 아니다. 색은 빛이 가지는 진동수가 결정한다. 빛은 전자기파, 즉 전자기장의 파동이다. 전자기파가 1초에 450조 번 진동하면 붉은색이 된다. 색을 가지려면 적어도 빛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검정은 빛 자체, 즉 진동할 것조차 없는 것이다. 결국 검정은 색이 아니라 색을 정의할 빛이 없는 상태, 즉 빛의 부재에 붙여진 이름이다.

<뉴턴의 아틀리에>, p330

김상욱 교수님을 처음 알게 된 프로그램은 <알쓸신잡>이었다. 국내 곳곳, 심지어 세계 이곳저곳을 누비며 펼쳐지는 인문학자와 소설가와 과학자와 건축가의 이야기에 나는 푹 빠져서 무한도전 이후로 해보지도 않은 예능 본방사수를 했다. (그 이후로 건축과 과학 책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으니, 이 책은 알쓸신잡을 좋아했던 사람은 틀림없이 좋아할 거라고 확신한다.) 다정하고 차분한 말씨로 물리학을 풀어나가는 김상욱 교수님은 이 책에서도 여전한다. 초현실주의와 양자역학이 같은 시기에, 같은 공간에서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닐 거라고 확신한다. '검정'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엄연히 말하면 검정은 색이 아니라 색을 정의할 빛이 없는 상태'라고 물리학자다운 정의를 내리면서도 '검정은 끊임없이 흑체복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인생이 어두운 것만은 아니듯, 검정도 검지만은 않다.'고 이야기한다. 대체 이 세상에 과학자 말고 어떤 사람이 이런 결론을 내릴까!

이렇게 두 사람이 한 주제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것도 재미있었다. 나라면 이 주제로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두 사람은 너무 다르지만서도, 동시에 정말 닮아 있어서 모두 과학과 예술을 사랑하고 있었다. 초현실주의와 양자역학이 동시대에 시작된 것이 우연이 아니듯, 예술가와 과학자가 <뉴턴의 아틀리에>라는 책을 2020년 4월에 낸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인문학만, 예술만 알던 시대에서 벗어나고 있고 벗어나야 한다.

물리학으로 그림을, 인문학으로 수학을 다시 보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새로운 눈을 얻길 바라며.

그리고 이 책이 그 시작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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